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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리뷰] <젊음의 행진> ‘행진’하는 ‘젊음’을 유지하는 법 [No.94]

글 |정수연(한양대 연극영화학과 겸임교수) 사진제공 |PMC프러덕션 2011-07-05 5,030

얼마 전이었다. 기차역 카페에서 열차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데, 일흔은 족히 넘었을 할머니들 서너 분이 카페로 들어오셨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동창회에서 오랜만에 여행을 가시는 것 같았다. 기차표를 확인하느라, 쓰고 온 모자 색깔을 칭찬하느라, 간식 챙기느라 분주한 할머니들이 갑자기 왁자해진 건 서너 명의 또 다른 일행이 도착한 후였다. 아마도 몇 십 년 만에 만나는 새로운 동창들이었나 보다. 재미있던 건 할머니들의 인사였다. “어머, 아무개야! 넌 어쩜 고등학교 때랑 하나도 안 변했니. 늙지도 않나봐! 호호호.” 주름살 자글자글한 일흔 넘은 할머니들이 서로에게 하나도 안 늙었다면서 반가워하는 모습은 재미있으면서도 정겨웠다. 추억을 나눈 친구가 아니면 어느 누가 이 파파할머니들에게서 소녀 시절의 모습을 찾아봐 주겠는가. 세월을 거스를 수 있는 힘은 보톡스에 있는 게 아니다. 기억을 공유함으로써 과거는 영원한 현재가 될 수 있는 법. 과거의 기억을 공동의 자산 삼아 현재를 공유하면서 함께 나이 들어가는 이들에게, 시간의 흐름이란 늙음이나 낡음이 아닌 익어감으로 인한 연륜에 다름 아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기억’에서 ‘함께 공감하는 지금’으로 넘어갈 때 서로 간의 정은 더욱 돈독해지는 법.

 


이런 면에서 보자면 뮤지컬 <젊음의 행진>은 함께 나눌 기억을 작품의 토대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어릴 적 친구를 만난 것같이 친근한 공연이다. 2007년에 초연된 <젊음의 행진>은 주크박스 뮤지컬이라는 장르로서 여타의 비슷한 작품과 비교되기도 했지만, <달고나>보다 경쾌 발랄하고 <진짜진짜 좋아해>보다 더 짜임새 있는 완성도를 보여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중가요라는 것이 유행했던 시대와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닌 만큼 적잖은 주크박스 뮤지컬이 시대의 무거움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는데, <젊음의 행진>은 그런 의식 따윈 휙 던져버리고 온전히 노래의 흥겨움에 집중한 것이 오히려 발랄하고 신선하게 다가왔던 기억이 난다. 작품의 이야기도 그렇다. 가사가 다 나와 있는 기존의 노래에 이야기를 끼워 맞추는 것은 적잖이 어려운 일이라서, 주크박스 뮤지컬의 스토리는 대체로 부실해지기 쉽다. 그 와중에 ‘젊음의 행진’이라는 TV쇼와 그 무대의 노래에 열광했던 여고 시절을 교차시킨 구성은 노래의 맥락을 이야기에서 쇼로 건져 올린 장치라는 점에서 꽤나 적절한 것이었다. 게다가 그 섬세한 디테일이란! 옛날 가수들의 노래와 춤을 똑같이 무대에서 재연하는 것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지만, 여고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교실 안팎의 깨알 같은 에피소드는 웃음을 절로 이끌어내기에 충분했더랬다. ‘영심이’라는 만화의 주인공을 빗대어 세대의 코드를 버무린 솜씨는 창작의 능력이란 적절한 배치의 감각과 다른 말이 아님을 잘 보여주었다.


관객의 호응과 공감대라는 기준으로 뮤지컬의 완성도를 평가한다면 <젊음의 행진>은 넉넉한 성과를 거둔 작품이라고 분명히 이야기할 수 있다. 그래서였다. 피곤하다는 친구를 부득불 끌고 극장으로 향했던 것은. 적어도 이 공연을 보는 순간만큼은 직장 생활의 스트레스 따위는 휙 날려버릴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말이다. 옛날의 그 맛이 아닌 거다. 다행히도 이 작품을 처음 보는 친구는 즐거워했지만 초연의 흥겨움을 기억하는 관객으로서는 아무래도 뭔가 아쉬웠다. 외형적으로 보면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그럼 무엇 때문에 이런 섭섭함이 생기는 걸까. 추억을 공유하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함께 공감하는 지금’이 되기엔 뭔가 부족한 듯한 이 느낌은 어디에서 온 걸까.

 


하나씩 생각해보자. 일단 이번에 공연된 <젊음의 행진>은 이야기가 적잖은 비중을 차지했던 예전에 비해 무게중심이 8090 가요 콘서트 쪽으로 많이 기운 듯하다. 어쩌면 이런 시도는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한 세대의 추억상품이 스테디셀러의 레퍼토리로 자리 잡는 과정에서 현재의 대중들과 더 쉽게 교감할 수 있는 방식을 찾는 건 필수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주크박스 뮤지컬로서는 당연한 귀결이랄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이런 공연의 성공 여부는 콘서트 각 장면에서 얼마나 음악적 완성도를 보일 것이냐에, 이 작품의 경우에서는 얼마나 이미테이션을 잘하면서도 노래의 맛을 살릴 것이냐에 있는 셈이다. 그래야 추억을 환기시키는 노래라는 테두리를 넘어서 그 노래의 세대가 아닌 관객들도 충분히 즐길 만한 당대성을 얻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보기에 이번 공연의 음악적 완성도는 진부하다. 애초에도 노래에 대한 새로운 편곡이나 해석이 강하게 개입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배우들의 가창력은 모자람이 없었고 노래의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연극적 재치는 관객에게 흥겨움을 전달하기에 넉넉했더랬다. 그런데 이번 공연은 장기 공연의 여파 때문인지 배우들의 지친 성대와 관습적인 몸짓이 더 도드라졌다. 들을 만한, 그리고 볼 만한 재미가 예전 같지 않더라.


사실 이런 아쉬움이 단지 배우들로부터 비롯된 문제라고만 이야기할 수는 없다. 그것보다는 관객에게 흥행성을 검증받은 작품이 레퍼토리화가 될 때 발생하는 일반적인 문제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보통의 경우, 진지한 작품은 재공연이 될 때 더 좋은 방향으로 다듬어지는 예가 많은 반면 흥겨운 작품은 재공연 되면서 오히려 재미와 완성도가 반감되는 일이 다반사이다. 그 차이는 관객의 공감대를 얼마만큼 확인했는가에 달려있을 터다. 관객이 미처 따라오지 못한 부분으로 관객을 이끌기 위해 작품을 더 섬세하게 매만질 때 공연의 호흡은 차분해지고 그 의미 또한 명확해지지만, 관객의 호응을 확인했을 때는 그 반응을 더 불러일으키기 위해 과잉으로 치닫기 쉬운 법이다. 관객이 좋아하는 부분에 더 집중하고 강조하다가 자칫 작품의 균형을 깨뜨리는 경우가 왕왕 생기는 것이다.


일례로 이번 공연에서는 관객들이 제일 재미있어 하는 조연인 ‘상남이’의 비중이 커졌는데, 원래 이 캐릭터가 만들어내는 재미는 숨어있는 듯하다 슬쩍슬쩍 드러나는 의외성에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예 주인공에 버금갈 정도의 활약을 보이더라. 그 역할을 맡았던 배우가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었기 때문이겠지만 과연 이러한 설정이 극 전체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된 것인지, 그리고 앞으로 지속적인 공연으로 다져지기에 유용한 선택인지 확답할 수 없다. 왜냐하면 작품의 이야기 속에서 숨어 있는 인물이 전면으로 나섰다는 것은 그만큼 이야기의 전체적인 틀이 흔들렸음을 방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건의 흐름은 그대로이지만 그 흐름을 채워야 할 이야기와 정서의 디테일이 사라져버릴 때 남는 건 오로지 우스꽝스러운 에피소드들뿐이다. 하지만 개별적인 에피소드가 살려면 오히려 이야기의 뼈대가 튼실해야 한다. 어차피 특정 세대의 추억을 되살리는 데서 오는 재미는 시간의 검열에 거세되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세대를 넘나드는 이야기가 되기 위해서 살려야 하는 것은 특정 세대의 에피소드가 아니라 어느 세대에게나 공통된, 불안함과 설렘이 함께 꿈틀댔던 사춘기 소년 소녀의 이야기라는 보편성이 아닐까. 하이틴 로맨스에 열광하던 우리 세대나 팬픽에 몰두하는 청소년들이나, 모양새는 달라도 경험하지 못한 사랑에 달뜨는 설익은 호기심은 똑같으니 말이다. 상남이도 좋고 룰라도 좋고 김건모도 좋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은 영심이와 경태다. 그 아이들의 성장과 사랑이 보일 때 1980년대의 노래와 에피소드는 추억의 테두리를 훌쩍 넘어서게 될 것이다.

 


이번 주말 오래간만에 옛날 학교 친구들을 만날 계획이다. 이제는 중년이 된 친구들을 만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아마 기차역 할머니들처럼 니 얼굴은 그대로니 나는 늙었느니 서로들 반가움을 주고받겠지. 추억도 되짚을 거고 지금 사는 이야기도 많이 나눌 거다. 함께 나이 들어가는 친구를 만날 설렘에 기분이 좋아진다. <젊음의 행진>도 우리랑 같이 그렇게 나이 들었으면 좋겠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94호 2011년 7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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