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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No.71] 바라보는 시선보다 더 멀리 - 김동욱

글 |김영주 사진 |김호근 2009-08-25 7,313

 

 

김동욱이 뮤지컬 <형제는 용감했다>의 막바지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코엑스 아티움으로 가는 길에 줄지어 선 영화 <국가대표>의 홍보물을 보면서 그가 얼마 전에 개봉한 <오감도>에서 고교생을 연기했고, 드라마 <파트너>에 변호사로 출연 중이라는 사실이 생각났다. 두 영화의 개봉 시기가 맞물린 것은 우연이라고 해도 한 배우의 작품 네 편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일이 흔치는 않다. “그게 참 이상해요. 욕심이 나는 작품이 꾸준히 있어주면 좋을 텐데 꼭 이렇게 몰아서 왔다가 정신없이 끝내고 나면 또 한동안 조용하고 그래요. 2006년하고 올해가 딱 그렇게 몰린 해에요.”

 

상업영화와 독립영화를 부지런히 오가면서 네 작품의 엔드크레딧에 이름을 올렸던 2006년을 지나 보내고, 이듬해 처음으로 출연한 청춘 드라마가 여름을 평정하면서 대중들은 그를 기억하기 시작했다. 배우로서 인지도를 갖게 된 것에 대한 세금처럼 감성적인 트렌디드라마 속 발랄한 소년의 모습이 배우 김동욱의 이미지로 굳어지는가 싶었다.


하지만 그는 시청자들의 열광에서 살짝 비켜서서 영화를 찍고 뮤지컬 무대에 섰다. 김동욱의 프로필을 보면, 그의 이력이 짐작보다 훨씬 촘촘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중이 기대하는 이미지가 무엇이든, 그는 하고 싶다고 생각한 작품이면 상황의 어려움을 따지지 않고 그냥 하고 보는 젊은 배우이다. 긴 영화 촬영을 끝내고 휴식도 없이 곧바로 <형제는 용감했다>의 출연을 결정한 것처럼 말이다. “<형제는 용감했다>는 너무 재미있어서 캐스팅되기 전에도 네 번이나 봤어요. 강원도에서 <국가대표>를 촬영하다가 서울에 오면 챙겨봤을 정도로 이 작품을 좋아했으니까 출연제의를 받고 냉큼 감사합니다, 그랬죠.”


그 후로도 네 번을 더 보았으니 배우이기 이전에 작품의 열혈 팬인 셈이다. 객석에서 볼 때나 무대에 섰을 때나 그가 이 작품에서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장면은 두 아들의 노래를 통해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야기가 드러나는 신이다. 그 장면에서는 문득 부모님을 생각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반대로 자신을 완전히 잊을 만큼 극 속에 깊이 빠져들 때도 있다. “연기를 하든, 노래를 하든 완전히 몰입한 순간에는 사실 개인적인 만족감이 있어요. 그런데 그 다음 순간에는 오히려 걱정이 되요. 공연은 혼자 하는 게 아니니까 약속된 것들을 지키면서 뭐든 그 안에서 풀어내야 하는데 나 혼자 너무 깊이 빠져 있을 때는 내가 나를 못보고, 남도 못 보게 되잖아요.”

 

이미 1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한 그에게 영원히 그 배역의 연기자로 이름을 남길 수 있는 영화에 비해, 무대극은 다른 배우에게 역할을 넘겨줘야 하는 게 아쉽지 않으냐고 물었다. “무대에 서는 동안에는 내 작품이라는 마음으로 하니까요. 그리고 그 작품을 해온 배우들 중에 내 이름이 있다는 거, 정말 좋아하는 작품 안에 내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벅찬 일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엄격하게 말해서, 무대극에서 누군가가 어떤 역을 맡았던 배우 중 한 사람으로 의미 있게 기억되려면 그 배우가 무대 위에서 보여준 모습이 그럴만한 개별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 <형제는 용감했다>에서 김동욱은 슬랩스틱 코미디와 캐릭터 유머 사이에 기대하기 힘든 사실적이고 진지한 감정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면서 그 조건을 충족시켰다. “주봉이라는 캐릭터에 대해 설정되어 있는 까칠하고 철없는 모습들은 주변 인물들에 의해서도 계속 정보가 설명이 되잖아요. 그래서 제가 좀더 무게를 두고 표현하고 싶었던 건 어머니에 대해 애틋한 마음이라든가, 아버지에 대한 원망 같은 여리고 감성적인 부분이었어요.” 석봉과의 관계 때문에 차갑고 인텔리적인 면이 두드러져 보이기는 하지만 사실 주봉은 열두 살 연상의 이혼녀와 결혼을 감행하고,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 유학을 가겠다는 꿈을 꾸는 피 끓는 젊은이이기도 하다. 김동욱의 무대에서는 확실히 그런 모습들이 두드러졌다.

 

같은 이름을 가진 많은 사람들 중에서 자신을 구분 짓기 위한 설명이 ‘그냥, 연기하는 사람 김동욱’이기를 바라는 그가 배우가 되기 위한 구체적인 준비를 시작한 것은 입시를 4개월 앞두었을 때였다. 예술고를 졸업했거나 배우 경력이 있는 경쟁자들 틈에 끼어있던 그 풋내기를 이름부터 근사한 연극원에서 스물세 명의 합격자 중 한 명으로 선택한 것은 스스로 생각해도 의아한 일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한동안 ‘대체 왜 뽑은 거야?’라는 원망이 가슴에 쌓일 만큼 갖은 구박을 받았다. “정말 냉정하게 말씀을 하셨어요. 그만두고 다시 수능 봐서 일반 학교 가라고, 안 늦었다고.” 실기 수업 때마다 가슴에 못처럼 아프게 박히는 이야기들을 들어야 했지만, 나이 차가 나는 선배들과 어울렸던 술자리는 그저 좋았는데 그 선배들의 이름은 뮤지컬 관객들에게도 익숙하다. 김도현, 최재웅, 강필석 등등. 휴학을 고민하고 있을 때 그들에게서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다독임을 받았다. 지금 고민하는 것들도 1년이 지난 후에 보면 왜 그런 고민을 해야 했는지 자연스럽게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지금은 또래의 친구들과 함께 수업을 듣는 게 정말 행복한 일이라는 충고였다. 휴학을 하고 상업영화로는 첫 작품이었던 변영주 감독의 <발레교습소>에 출연하면서 그에게도 ‘후배’들에게 조언을 할 수 있는 깨달음이 생겼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절대로 학교 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학교에서 배워야할 것들을 다 배우고 나와도 늦지 않은 것 같아요. 그 당시에 저는 실패도 경험이라는 생각으로 나왔지만, 학교 밖에서 하는 일은 내가 혼자 배우고 경험을 쌓는 것에 의의를 두고 끝날 수 있는 작업이 아니었어요. 공부하기 위해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맡은 것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하는 건데, 그때는 너무 어려서 그걸 몰랐어요.”

 

10대 시절이나 지금이나 김광석과 유익종, 김현식의 음악에 심취하고,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선배들과의 술자리를 더 좋아하는 김동욱과 대중이 좋아하고 기대하는 그의 이미지 사이에 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그는 이런 ‘오해’가 대중 앞에 서는 사람뿐만 아니라 세상을 사는 모두에게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던 원하지 않던 차곡차곡 자신의 일부로 쌓여간 여러 가지 요소들에 대한 타인의 시선을 모두 포용할 수 있을 만큼 큰 그릇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롤 모델로 삼고 있는 아티스트가 있냐고 묻자 진지하고 차분한 답변이 돌아왔다. “저 역시 한 사람의 관객으로, 팬으로 그들을 보는 것이니까, 내가 보고 생각한 것처럼 그들이 살아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어요. 단지 비춰지는 모습을 보는 것뿐이니까. 저는 그래서 그냥 그 사람의 작품에서 보이는 모습만 보고 싶어 해요. 그 사람이 좋은 연기를 하고, 좋은 노래를 하고, 좋은 웃음을 준다면 그것에 대해서만 느끼고 받아들이면 되는 것 아닐까 생각해요. 다른 분들이 저를 볼 때도 그렇게 생각해주시길 바라는 마음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김동욱이 혼잣말처럼 ‘인터뷰를 좀더 일찍 했으면 좋았을 텐데 공연기간이 얼마 안 남아서 아쉽다’고 중얼거렸을 때, 앞으로 계속 뮤지컬을 할 테니까 상관없지 않으냐고 반문하자 그는 금방 수긍하며 웃었다. 뮤지컬 <온 에어>로 처음 무대와 인연을 맺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와 무대에 섰을 때, 그리고 <형제는 용감했다>에 출연 결정이 났을 때와 공연을 마쳤을 때를 비교해보면 그는 늘 예상했던 것보다 한 뼘씩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TV 스타’로 분류되는 출신성분을 가진 배우로는 드물게 까탈스러운 뮤지컬 관객들의 호평을 받고 있는 김동욱에게 지금은 <형제는 용감했다>를 마치는 때라는 것보다도,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가 쌓여가는 시점이라는 데 더 큰 의미가 있지 않을까. 기대감이라는 것은 젊은 배우가 자기 무대를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기분 좋은 선물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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