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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Focus] 뮤지컬의 옷을 입은 학원 드라마 [NO.103]

글 |정세원 2012-04-10 4,382

춤과 노래로 청춘을 끌어안다

 

인생에서 가장 뜨거운 열정이 꿈틀거리는 순간. 현실에 대한 고민보다는 내일에 대한 꿈과 희망으로 가슴 벅찬 청춘들의 이야기를 다룬 학원 드라마는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다양한 형식으로 변주해 온 학원 드라마는 이제 뮤지컬과 만나 말로 다 표현 못할 청춘의 뜨거운 열정을 화려한 춤과 노래를 통해 담아내고 있다. 학교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뮤지컬 드라마들을 살펴본다. 


 

 

 


학원 드라마의 가장 큰 매력은 생동감 넘치는 에너지로 충만했던 청춘의 아름다운 순간을 환기시켜준다는 점이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충이나 성공을 위한 경쟁 따위는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학교라는 공간에서, 주인공들은 친구들과의 우정과 이성 문제를 고민하고 특별활동을 통해, 따뜻한 교사 또는 선배의 도움을 받아, 그들만의 꿈을 키운다. 어떤 고난과 시련이 닥쳐도 젊음의 패기와 열정으로 도전을 포기하지 않고 부딪쳐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고 신이 난다. 현실보다는 꿈과 낭만을 노래하고 이성보다는 감성에 더 충실하다는 점에서 학원 드라마는 뮤지컬 장르와 닮은 부분이 많다. 지금까지 발표된 뮤지컬 드라마들이 주로 학교를 배경으로 펼쳐지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들이 다니는 그곳이 예술 고등학교나 예술 대학, 뮤지컬 학과, 또는 합창단이나 밴드 등의 클럽 활동이 가능한 학교로 한정되어 있는 것은 춤과 노래를 드라마와 자연스럽게 접목시키기 위한 가장 쉽고 설득력 있는 선택일 것이다.


뮤지컬 드라마의 붐업을 일으킨 디즈니 채널의 <하이스쿨 뮤지컬> 시리즈는 제목 그대로 고등학교가 배경이다. 우연히 만나 사랑을 싹 틔운 과학 천재 가브리엘라와 농구부 주장 트로이가 우연히 그들의 숨겨진 끼를 찾아내 교내 뮤지컬 무대에 서고(1편), 여름방학을 거쳐(2편), 졸업(3편)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들은 노래와 춤으로 대화를 나누고, 교실과 식당, 농구장, 공연장 등 드라마가 진행되는 장소를 배경으로 화려한 장면들을 연출할 뿐만 아니라, 오프닝과 엔딩 곡에 맞춘 뮤지컬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등 전형적인 뮤지컬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거기에 잘생기고 예쁜 주인공과, 스포츠를 하는 남학생과 너드 여학생의 연애 이야기, 십대 취향의 예쁜 의상과 볼거리들, 귀에 착착 감기는 팝송 등으로 전 세계 청소년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고교 합창단의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 드라마라는 것만 빼면 <하이스쿨 뮤지컬>과 <글리>는 닮은 구석이 거의 없다. 십대들을 매혹시킬 꽃남 꽃녀도, 그들의 달콤한 로맨스 역시 찾아보기 힘들다. 뚱뚱한 흑인과 힘없는 게이, 게이 아빠를 둔 왕따, 뱀파이어 룩을 고수하는 동양인, 다리를 쓰지 못하는 장애인 등 재능은 있지만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루저 취급을 받는 학생들이 글리 클럽 ‘뉴 디렉션’의 멤버들이다. 교내 최상위 그룹에 속해 있던 풋볼팀 쿼터백도, 치어리더 주장도 최하위 글리 클럽에 가입한 순간 슬러시 세례를 피할 수 없다. 고교 생활이라고 하기엔 너무 막장으로 가는 인물들의 관계도 디즈니의 세계와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글리>가 매력적인 것은 이 오합지졸의 학생들이 노래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서로를 이해하며 성장해간다는 점이다. 전국합창대회 우승을 목표로 글리 클럽이 선보이는 다양한 무대는 <글리>가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게 된 가장 큰 힘이다. 극 중에서 뮤지컬 장면은 주로 리허설이나 실제 공연 장면에서 등장하는데, 익숙한 팝 명곡부터 현대 팝, 뮤지컬 음악 등 새롭게 재해석한 노래들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열한 명의 작곡가가 투입된 <하이스쿨 뮤지컬>과 구분된다. 기존의 곡을 사용하고는 있지만 각 에피소드마다 등장하는 3~5곡의 노래들은 그 상황에 놓인 인물들의 심리 상태를 반영한 듯 잘 들어맞는 가사를 지니고 있어 뮤지컬 드라마로서 <글리>의 매력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하이스쿨 뮤지컬>과 <글리>가 뮤지컬의 옷을 입기 위해 교내 클럽 활동을 앞세웠다면, 지난해부터 시즌제로 방영된 KBS 드라마 <드림하이1,2>나 영국의 뮤지컬 드라마 <브리타니아 하이>는 예술 고등학교 자체를 배경으로 택했다. 이들보다 먼저 발표된 알란 파커 감독의 1980년 영화 <페임> 역시 마찬가지. 이 작품은 노래, 춤, 연기 등 예술 분야에서 최고의 명성을 자랑하는 라 구아디아 예술 고등학교 학생들이 꿈을 향해 노력하고 땀 흘린 4년간의 과정을 그린 성장 드라마다. 점심시간의 즉흥 댄스 장면이나 거리의 택시 위에서 한판 난장을 벌이는 학생들의 춤 장면 등 끼 많은 젊은이들이 선보이는 열정 충만한 장면들은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뿐만 아니라 저마다의 고민 속에서 오직 스타의 꿈을 좇던 학생들이 학교 생활을 통해 변해가는 모습들을 섬세하게 묘사해 감동을 더한다. 스타를 꿈꾸는 것은 <드림하이>의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다른 점이라면 신한류 중심에 서 있는 아이돌 가수들이 대거 투입됐다는 것 정도. 2018년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각종 상을 휩쓸며 세계적인 스타로 떠오른 한국 출신 가수 ‘K’의 기린예고 신입생 시설을 회상하면서 시작되는 <드림하이>는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최고의 예술 사관학교 기린예고에 모인 학생들이 같은 꿈을 향해 노력하고 경쟁하며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려낸다. 예술반에 들어가지 못한 입시반의 고혜미, 송삼동, 김필숙은 자신의 재능을 알지 못한 채 실패와 탈락을 거듭하지만, 성공의 길보다는 꿈을 향한 진심을 우선하는 스승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서 백조로 거듭난다.

 

비록 무리한 설정과 개연성, 설득력 부족한 드라마에 대한 지적은 피할 수 없었지만 <드림하이>는 쇼케이스 대회나 월말 평가 등 매회 배틀 형식으로 진행되는 시험과 경쟁, 화려한 공연들로 시청자들의 눈을 즐겁게 했다. 자신의 생일을 모른다는 진국에게 들려준 혜미의 ‘겨울아이’, 짝사랑하는 제이슨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부르는 필숙의 ‘기다리다’, 혜미를 보며 가슴 아파하는 삼동의 ‘아직 못 잊은 거죠’ 등 드라마 속에서 인물들의 심정을 대신한 노래들은 뮤지컬 드라마만이 줄 수 있는 매력이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스타가 된 이들이 다시 학교로 돌아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드림하이2>는 전편의 인기 요소들(아이돌, 음악, 성장 이야기)을 그대로 활용했지만, 밋밋한 스토리 전개와 설득력 약한 캐릭터 설정 등의 아쉬움을 남기며 막을 내렸다. 지난 2008년 영국 ITV가 제작한 뮤지컬 드라마 <브리타니아 하이> 역시 예술고 학생들의 꿈에 대해 노래한다. 노래와 춤, 연기에 재능 있는 학생을 오디션을 통해 선발하고 각자의 꿈을 향해 다가가는 것을 돕는 브리타니아 하이스쿨 학생들의 이야기를 총 9개의 에피소드로 담아낸 <브리타니아 하이>는 매회 한 명의 캐릭터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에 두세 개의 뮤지컬 장면을 연출해 선보인다. 아버지 몰래 예술학교에 입학한 제즈와 그의 친구들이 비즈니스 스쿨 학생인 척하는 에피소드는, 어머니 몰래 기린 예고에 입학한 송삼동이 친구들과 함께 만든 어머니를 위한 가상의 쇼케이스를 연상시킨다.

 

 

 


뮤지컬 배우를 꿈꾸는 청춘들의 성장기를 그린 뮤지컬 드라마 <왓츠업>에도 가족 몰래 뮤지컬 학과에 진학한 인물이 등장한다. 정치인의 숨겨진 자식이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얼굴 없는 가수 ‘하데스’의 가면 뒤에서 살아가는 하도성과, ‘걸어 다니는 뮤지컬 백과사전’이지만 남들 앞에서 노래하지 못하는 김병건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과 함께 비극적 운명에 놓인 장재헌과 박태이, 오두리, 은채영 등 서로 다른 사연과 결코 작지 않은 아픔을 가진 청춘들이 뮤지컬 학과에 모여 꿈과 사랑, 우정을 나누고, 괴짜 교수 선우영과의 만남과 이별을 통해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간다. 뮤지컬보다는 학원 드라마로서의 정체성에 좀 더 무게가 실린 듯하지만, <왓츠업>은 드라마 중간 중간 등장하는 뮤지컬 장면들로 말로 다 못할 그들의 마음을 들려준다. 도성이 하데스의 무대를 통해 가면 뒤에 숨겨진 존재로 살기 싫은 마음을 노래하고, 상상 속에서나 ‘Those Magic Change’를 부를 수 있었던 병건이 홀로 선 무대 위에서 ‘몸이 다 부서져도 이루고픈 꿈’을 들려주는 것처럼 말이다.


이외에도 예술대학 100주년 기념 뮤지컬이라는 큰 줄기를 따라 국악과 밴드 활동을 하는 청춘들의 꿈과 사랑을 그린 MBC의 <넌 내게 반했어>와, 거친 삶을 살아가는 꽃미남 고등학생 밴드 안구정화가 음악을 통해 자신들의 아픔을 치유하며 성장해가는 모습을 담은 tvN의 <닥치고 꽃미남 밴드>가 음악을 덧입혀 선보인 학원 드라마들이다. 비록 국내에서 제작된 뮤지컬 드라마들이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꿈꾸는 청춘, 젊음의 뜨거운 열정을 음악과 춤으로 표현하는 것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이제 남은 숙제는 뮤지컬의 장르적인 즐거움을 드라마와 캐릭터에 얼마나 잘 버무려내느냐 하는 것이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03호 2012년 4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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