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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ial] 창작뮤지컬의 현주소 1 [NO.102]

글 |박병성 2012-04-03 4,861

‘이제는 창작뮤지컬이다.’ 2000년대 중반 본지에서 뮤지컬 시장의 흐름이 창작뮤지컬로 움직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추진했던 기획 제목이다. 그때는 2~3년 사이에 흐름이 바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한국 뮤지컬은 라이선스 위주로 흘러간다. 그러나 최근 이런 흐름의 변화가 읽히는 조짐들이 발견된다. 2011년 대극장 창작뮤지컬 <광화문연가>가 흥행에 성공했고, <모비딕>, <셜록홈즈> 등의 소극장 창작뮤지컬들이 흥행에 성공했는데, 공연 말미에는 티켓을 구하기 힘들 정도였다. 낙타의 바늘구멍으로 비유되는 창작 초연의 손익분기점을 세 작품 모두 넘겼다. 또한 올해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작품 중 창작뮤지컬의 비율이 그 어느 해보다도 높다. 특히 새로운 신작들의 소식이 활발하게 들린다. 한국 창작뮤지컬의 수준이 어디만큼 왔으며, 환경은 어떠한지 현 단계를 살펴보기로 했다. 창작뮤지컬을 아티스트가 중심이 되어 만들어지는 그룹, 기존 대형 제작사의 기획으로 만드는 그룹, 그리고 영화사, 방송국, 매니지먼트사 등 인접 장르에서 뮤지컬 시장에 뛰어들어 만드는 사례를 나누어 살펴보았다.

 

 


자본에 취약한 아티스트들의 선전 아티스트 중심

지난해 본지는 뮤지컬 평론가들의 토론을 거쳐 2011 창작뮤지컬 베스트4로 <광화문연가>, <셜록홈즈>, <모비
딕>, <식구를 찾아서>를 선정했다. 이 중 <광화문연가>를 제외한 세 편의 창작뮤지컬들의 공통점은 아티스트 중심으로 제작되었다는 것이다. 자본의 영향을 많이 받은 뮤지컬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자본 확보에 취약한 아티스트들이 제작한 작품들이 선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앞으로도 아티스트 중심으로 제작하는 방식이 국내 창작뮤지컬을 주도할 수 있을까?

 

 

 

 

아티스트들이 중심이 된 작품들은 <셜록홈즈>, <모비딕>, <식구를 찾아서> 이외에 김운기 연출, 이희준 작가 콤비가 만든 <사춘기>, <마마, 돈 크라이>, <라 레볼뤼시옹>, 극단 죽도록 달린다의 뮤지컬 <왕세자 실종사건>, 예술극장 나무와물의 <6시 퇴근>처럼 아티스트나 작은 극단 중심으로 제작된다. 일단 이런 작품들은 아티스트들의 자본력 확보가 약하기 때문에 대부분 소극장에서 공연되고, 기존 트렌드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소재를 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로맨틱 코미디가 대세인 뮤지컬계에 뱀파이어를 소재로 삼은 <마마, 돈 크라이>나 노인 문제를 다룬 <식구를 찾아서>같이 국내에서 잘 다루지 않은 소재에 도전하고, <모비딕>같이 액터 뮤지션이라는 실험적인 형식을 시도하기도 한다. 이들 작품들은 아티스트들의 욕망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비교적 트렌드에서 자유롭다. 이런 신선한 시도가 마니아 관객들에게 어필하면서 잭팟을 터뜨리기도 하는 것이다.


이들 아티스트들은 크게 두 그룹으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나름 뮤지컬계 베테랑들이 참여한 그룹이다. <모비딕>의 조용신은 창작뮤지컬 코디네이터와 뮤지컬 칼럼니스트로 국내에서 알아주는 뮤지컬 전문가로 꼽히고, <라 레볼뤼시옹>의 이희준 역시 국내 대표적인 뮤지컬 작가이다. <셜록홈즈>의 노우성은 역시 2000년대 초반부터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등의 히트 창작 뮤지컬을 제작해온 인물이다. 오는 6월에 올라가는 <콩칠팔 새삼륙>의 이나오 작곡가, 이수진 작가나, <오디션>의 박용전 연출 및 작곡가 역시 대중들에게는 낯설지만 오래 전부터 뮤지컬 창작 활동을 해온 뮤지컬 창작의 숨은 야인들이다. 이들이 뮤지컬계 전문가 그룹에서는 상대적으로 나이가 젊은 측에 속하고 예술을 접하고 참여한 출발선이 대부분 뮤지컬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이 특색이다. 그래서 이들의 관점이나 발상은 다른 전문가들보다 실제적이다.

 

 

 


또, 한 그룹은 젊은 창작자들이다. 뮤지컬 <피크를 던져라>와 같이 젊은 창작자들이 극단을 만들고 작품을 제작한 결과물이었다. 수박의 <빨래>가 이렇게 출발한 경우이고, 극단 오징어의 <식구를 찾아서> 역시 이런 유형이다. 젊은 창작자들의 힘으로 뮤지컬 제작을 이루어내기는 어렵다. 제작비를 최대한 줄이고 무보수로 봉사하더라도, 국가 지원금에 도움을 받지 않으면 실제 제작까지 이어지기가 힘들다.

 

그것은 베테랑 아티스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최근 2~3년 사이 다양한 창작뮤지컬 지원 제도가 활성화되면서 아티스트들의 독자적인 작품 제작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모비딕>은 국내 지원 제도를 잘 활용한 모범적인 예로, CJ 크리에이티브 마인즈와 두산아트랩을 통해 작품의 개발 비용을 절약하고, 대구뮤지컬페스티벌 창작 지원작으로 선정돼 작품을 검증한 후, 대구 공연과 서울 본 공연 시간차를 최소화해 대구에서 사용했던 무대나 의상 등을 포함해 세트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다. <식구를 찾아서> 역시 창작팩토리에서 희곡 공모와 쇼케이스 공모에 선정되어 기본 개발 비용을 세이브하고, 대구 공연에 이어 서울 본 공연이 이루어지면서 세트 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 이처럼 경쟁력이 있는 소재와 작품이라면 외부 자본에 의지하지 않고도 창작뮤지컬을 올릴 수 있다. 작년 아티스트 중심의 창작뮤지컬들이 좋은 성과를 가져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와 같은 창작 지원 시스템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문제는 재공연이다. 이런 지원 시스템들이 대부분 창작 초연에 집중하고 있어 아티스트들 의 작품들은 재공연을 올릴 때 자본금을 확보하기가 힘들다. 지원 시스템 중에 창작팩토리에서 재공연 지원이 있지만 단 두 작품만을 지원할 뿐이다. 창작 초연 공연으로 손익분기점을 맞추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첫 공연에서 다음 공연의 시드 머니(Seed Money)까지 확보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식구를 찾아서>는 작년 평단과 관객들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지만, 재공연에서는 지원을 받지 못해 제작비 마련에 어려움을 겪었다. 애초부터 지원금에 의존하지 않았던 <셜록홈즈> 팀은 초연의 흥행에 힘입어 상대적으로 재공연을 한결 수월하게 시작할 수 있었다. <셜록홈즈> 팀은 창작진들이 3년 동안 일을 해서 모은 자본을 시드 머니로 삼고, 일부 원금 상환 조건으로 투자를 받아 작품을 올렸다. 다행히 수익이 생겨서 초연에 마련한 시드 머니로 다음 공연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초연 공연이 성공하자 더 나은 조건으로 투자 유치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셜록홈즈>는 매우 행복한 경우이지만, 아티스트들 중심으로 제작되는 뮤지컬의 경우 좋은 평가는 곧 지속적인 공연이란 등식이 성립되지는 않는다. 이희준 작가의 <사춘기>나, 극단 오징어의 <한밤의 세레나데>는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마니아층의 지지가 뒤따랐다. <김종욱 찾기>나 <오 당신이 잠든 사이>처럼 상시 공연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자본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투자자들이 참여하지 않고는 힘든 일이다. 그래서 조용신 칼럼니스트는 “재공연부터는 전문 프로듀서가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실제 <모비딕> 재공연의 경우는 5천만 원에서 1억 원까지 소액으로 분산해서 투자하는 엔젤 투자자들 덕분에 제작에 여유가 생겼다. 창작뮤지컬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브로드웨이처럼 엔젤 투자자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해 수익 브랜드로 만들어내기까지 장기적인 투자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작년 한 해만 놓고 보자면 아티스트들이 제작의 중심에 선 창작뮤지컬이 작품성이나 흥행에 좋은 성과를 보였다. 영화로 치자면 기획 영화보다 영화감독 주도의 영화가 시장에서 더 인정을 받은 셈이다. 해외에서 전문적으로 뮤지컬 창작 공부를 하고 돌아온 전문 창작자들도 많아졌고, 그동안 많은 제작 노하우를 익힌 전문가들이 참여해서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트렌드에 함몰되기보다는 아티스트들의 자발적 욕망을 원동력 삼아 기획자 중심의 작품과는 결이 다른 작품들을 생산했다. 관객들이 특별히 라이선스 뮤지컬을 선호하는 경향도 많이 사라졌고, 비교적 관대하게 받아들이게 된 시장의 변화도 도움을 주었다. 아티스트 중심으로 제작되는 방식이 초연에서 주목받을 수는 있지만 이것이 안정된 콘텐츠로 브랜드 파워를 키워가기 위해서는 프로듀서와의 결합이 필요하다. 마케팅이나 작품 매니지먼트 노하우가 있는 기존 제작자들과 아티스트들의 검증된 작품이 만난다면 행복한 미래에 도달하지 않을까. 이에 대해 아티스트들은 기존 제작사의 노하우나 시스템을 인정하면서도 그러한 결합이 이상적이라는 반응이다. 제작자들의 취향과 아티스트들의 그것이 차이가 나기 때문에 기존 제작자와 결합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다. 한편으로는 힘들게 키워놓은 자식을 넘겨주지나 않을까 우려하는 마음도 있다. 애초부터 함께 만든 것이 아니라 아티스트들에 의해 개발된 작품을 시스템과 자본력이 갖춰진 제작자가 결합하는 형태는 여러 마찰이 예측된다. 그래서 이상적인 생각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서로가 잘할 수 있는 분야를 분담해서 협업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이러한 시도로 시행착오를 거치는 과정이 필요해 보인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02호 2012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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