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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Musing on Music] 컨셉 뮤지컬의 음악 [NO.110]

구술 | 이나오(뮤지컬 작곡가) | 정리 | 박병성 2012-12-04 4,443

<컴퍼니>로 들여다보는 컨셉 뮤지컬의 음악

 

컨셉 뮤지컬의 음악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컨셉 뮤지컬 자체가 주관적인 표현일 수도 있다.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을 정도다. 일반적으로 손드하임의 <컴퍼니>를 컨셉 뮤지컬이라고 일컫는데 <컴퍼니>의 음악적 특징이 컨셉 뮤지컬의 음악적 특징으로 대체될 수는 없겠지만 이를 살펴봄으로써 막연하게나마 일반 뮤지컬과의 차이가 드러나지 않을까.

 

 

 

 

 

 

송 모멘트가 부재한 노래

컨셉 뮤지컬은 아이디어(컨셉)가 중요한 작품이다. 내용보다도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중요하다. 음악 역시도 어떤 식으로 구성했느냐에 초점이 놓이게 된다. <컴퍼니>의 오프닝 곡은 작품이 지닌 모던함을 담고 있으며, 작품 전체의 스코어 또한 팝적인 영향을 드러낸다. 수직으로 뚝뚝 떨어지는 선율, 짧은 프레이즈들, 여기저기서 ‘바비’를 부르는 소리들, 이런 요소들이 모여 모던한 도시 속의 사람들을 형상화해낸다. 손드하임은 이 곡을 보리스 애론슨의 <컴퍼니> 무대 디자인을 본 후 작곡했다고 한다. 2층 구조로 된 무대에서 수직으로의 움직임, 뉴욕이 가진 도시 자체의 기계적인 사운드를 토대로 오프닝 넘버를 완성한 것이다. 애론슨의 무대가 손드하임에게 구체적인 컨셉을 제시했기 때문에 이러한 오프닝 곡이 나올 수 있었다. 이 오프닝 곡은 작품을 관통하며 총 네 차례에 걸쳐 각기 다른 분위기로 리프라이즈 된다.


<컴퍼니>의 거의 모든 곡은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바르셀로나’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곡이 관찰자의 입장에서, 또는 관객을 향해 부르는 식이다. 조앤이 주도하며 부르는 ‘The Little Things You Do Together’만 봐도 그렇다. 다이어트를 하는 사라와 금주 중인 해리가 각자의 욕구불만을 가라테로 해소하며 옥신각신한다. 그때 불현듯 조앤이 나와 관객을 향해 결혼생활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을 반어적인 가사로 노래한다. 이 곡의 아이러니와 장면이 맞물려 결혼생활의 소소한 일상을 풍자하는 것이다. 작품을 아우르는 이런 서사 구조를 간접적으로 이끌어가는 것은 다름 아닌 작품의 주인공인 바비이다. 


바비는 거의 모든 장면에 등장하지만 대부분 사건의 중심에 서지 않고 맞장구를 치거나 극을 관찰하는 입장을 취한다. 그래서 몇몇 평론가들은 주인공이 극을 이끌어가지 못하며 수동적이라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극 중 장면이 바비의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는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생각의 흐름에는 앞뒤를 연결하는 플롯이 없듯, 이 작품에서도 바비의 머릿속 잔상들만 존재할 뿐, 플롯은 없다. 따라서 각각의 장면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으며, 장면 전환 또한 시공간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이루어진다. 이 장면들이 그의 경험인지 아니면 상상인지도 불분명하다. 작품의 처음과 끝은 바비의 서른다섯 생일 파티 계획으로 시작해서 생일 파티로 끝나는데, 이것이 같은 생일 파티인지, 다음 해인지, 친구들과 바비가 같이 있는지 혼자 있는지도 모호하다. 다만 처음과 끝 장면에서의 바비의 심리 상태가 변했다는 것만 뚜렷할 뿐이다.

 

 

 

열린 결말, 결혼으로 한 걸음 전진
<컴퍼니>는 기존 북 뮤지컬과 달리 송 모멘트가 중요하지 않고, 노래를 누가 언제 부르는지도 신경 쓰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장면과 넘버를 통합하는, 더 나아가서는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컨셉’이다. 1막 후반부에서 바비의 여자 친구 중 한 명인 마르타는 뉴욕을 ‘낯선 이들이 오고 가는 도시’라 노래하며(‘Another Hundred People’),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와 도시인의 모습을 묘사한다. 이는 도시인의 고독을 간접적으로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이 노래와 맞물리는 장면에서 다른 여자 친구인 에이프릴과 캐시가 순서대로 등장해 바비와 이야기를 나누다 떠난다. 그리고 노래의 마지막 단락이 끝나면 마르타와 바비의 대화로 이어진다. 각각의 인물들은 서로의 관계에 대해, 또한 자신들이 뉴욕에 어떻게 왔는지, 뉴욕을 왜 떠나게 되었는지, 뉴욕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들의 등퇴장 또한 바쁘게 움직이는 뉴욕마냥 갑작스럽게 이루어진다. 즉 ‘뉴욕’이라는 컨셉 안에서 장면, 인물, 노래, 움직임이 통합된 것이다.  


<컴퍼니>는 솔로인 바비가 다양한 친구 커플들을 만나면서 결혼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작품의 창작자들이 생각한 작품의 주제는 간단히 ‘결혼은 쉽지 않다’였지만, 어떤 평론가는 결혼을 부정적으로 보는 작품이라고 보기도 한다. 바비가 어떤 길을 선택하는지 명확히 알려주지 않는 열린 결말이라 모호한 면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솔로인 바비가 결혼에 대해 점점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 심리 과정을 연결 짓는 중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비가 부르는 ‘Someone Is Waiting’, ‘Marry Me a Little’, ‘Being Alive’이다. 1막 중반부의 ‘Someone Is Waiting’에서는 각 여자들의 장점만 지닌 완벽한 결혼 상대를 기다리는 바비의 환상을 노래한다. 조금 지나, 1막 피날레인 ‘Marry Me a Little’에서는 결혼을 원하지만 책임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심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작품의 마지막 넘버인 ‘Being Alive’에서는 환상의 벽을 깨고 현실로 한 걸음 내딛고 싶은 심정을 노래한다. 음악적으로도 이렇게 서서히 변하는 바비의 심리는 각각의 넘버에서 서로 다른 색채로 묘사된다. ‘Someone Is Waiting’은 꿈속을 헤매는 듯한 몽환적인 분위기로 정적이며 반복적이다. ‘Marry Me a Little’은 한 단계 상승될 듯 말 듯하다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Being Alive’는 점점 고조되며 확실한 클라이맥스에 다다르며, 처음과 끝이 확연히 다르다. 멜로디뿐만 아니라, 가사의 세세한 부분에서도 바비의 심리 변화가 드러난다. 앞의 두 곡은 바비의 심리 상태와 반대인 가사로 이루어져 있는 반면, ‘Being Alive’는 바비의 솔직한 심정을 직설적으로 담고 있다. 또한 ‘Someone Is Waiting’, ‘Marry Me a Little’, 그리고 ‘Being Alive’의 초반부까지 바비가 말하는 결혼 상대는 막연한 대상을 지칭하는 ‘Someone’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Being Alive’의 중반부부터는 더욱 구체적인 대상을 지칭하는 ‘Somebody’로 바뀌며, 누군가와 함께하고자 하는 심정을 직접적으로 호소한다. 2006년 브로드웨이 액터 뮤지션 버전에서는 ‘Being Alive’의 후반부에서 바비 앞에 핀 조명 하나가 놓인다. 그 조명은 ‘Marry Me a Little’에서도 비쳤지만 당시 바비가 끝내 내딛지 못한 현실 세계를 그린다. ‘Being Alive’에서 마침내 바비가 조명 안으로 한 걸음 발을 옮긴다. 그렇게 자신의 벽을 허물고 새로운 출발을 하려는 그의 미래를 암시하며 바비의 심리 여정은 막을 내린다.   

 

 

<컴퍼니>의 음악은 크게 보면 세 가지 구실을 한다. 하나는 작품의 상징인 ‘도시’의 색채를 표현해 담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주인공의 심리를 깊이 있게 묘사한 것이다. 또한 평소 리프라이즈를 꺼려한다는 손드하임이지만, 이 작품에서만큼은 오프닝 곡을 리프라이즈하는 형식을 과감히 취한다. 이러한 구성과 음악적 언어가 작품 속에 흩어져 있는 장면들의 연결고리를 형성하는 것이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10호 2012년 1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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