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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기획-1] 뮤지컬 각색의 다양한 방법 - 각색의 정석, 매체를 이해하라 [No.93]

글 |박병성 2011-06-27 7,566

영화 <발몽>과 <시라노>의 작가 장 클로드 카리에르는 “모든 것이 각색이다”고 말했다. 원작을 가진 작품이 아니더라도 모든 작품들은 실제 인물이나 역사적 사건 또는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한다. 기존 영화나 소설, 만화 등을 원작으로 삼지 않아도 큰 테두리에서 보면 결국 모든 작품은 기존의 어떤 것에서 출발하여 변형한 것이다. ‘이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과도 맥을 같이 하는 논리다. 이렇게 거창하게 말하지 않아도 뮤지컬은 실제로 인접 장르의 작품들을 원작으로 취해 제작하는 경우가 많다. 뮤지컬 빅4가 모두 소설이나 오페라, 우화집을 토대로 만든 것이고 영화가 원작인 <빌리 엘리어트>, <금발이 너무해>, 19세기 표현주의 연극을 토대로 만든 <스프링 어웨이크닝> 등 최근 국내에 올라가는 굵직한 작품들은 대부분 기존 작품을 기반으로 제작한 것이다. 현재 제작된 뮤지컬은 순수 창작보다 원작을 토대로 만든 뮤지컬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많다. 일일이 헤아리지는 않았지만 대략 80퍼센트 정도가 원작을 토대로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뮤지컬에서 각색은 중요한 문제로 대두된다.

 

 

원 소스 멀티 유즈의 활용
왜 뮤지컬은 연극이나 영화에 비해 원작을 가진 비율이 높을까? 뮤지컬 번역가 박천휘는 ‘뮤지컬이 그 어느 장르보다 탄탄한 대본과 명확한 스토리텔링을 요구하기 때문에 순수 창작보다 소설, 연극, 영화를 각색하는 뮤지컬이 많다’고 본다. 종합예술인 뮤지컬은 춤과 노래, 드라마가 결합된 형태이기 때문에 미완의 스토리에 음악과 춤을 배치하는 것보다는 검증받고 탄탄한 스토리를 바탕으로 새롭게 제작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의미이다. 원작이 있는 경우 기본 스토리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꾸며 나가기가 수월하다. 각색에도 작가의 창의성이 발현되고 여러 형태의 각색이 존재하지만 충실한 각색을 한 작품은 아무래도 작가의 의도에서 출발한 순수 창작보다는 작가 의식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과거의 뮤지컬들이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원작 있는 뮤지컬을 선호했다면, 2000년대 이후에는 원 소스 멀티 유즈(One-Source Multi Use)로서 원작의 상품성에 힘입어 상품성 있는 원작을 소재로 삼는 경향이 생겼다. OSMU 방식이 이전 각색 뮤지컬들과 다른 점이라면 기존 각색 뮤지컬이 탄탄한 스토리를 취하기 위한 예술적인 접근을 시도했다면, OSMU 방식은 문화산업적인 입장에서 마케팅적 목적을 띠고 원작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2000년대 브로드웨이와 국내에서 활발하게 일어났던 무비컬 제작 붐은 OSMU의 전형적인 사례이다. 무비컬 제작은 원작이 가진 대중성과 인기를 원동력으로 뮤지컬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이 컸다. 추억의 팝을 사용한 주크박스 뮤지컬이나 국내에서 인기 드라마를 시차 없이 뮤지컬로 제작하는 것도 원전 콘텐츠의 마케팅적 힘을 최대한 이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겨울 연가>와 뮤지컬 <궁>은 한류를 마케팅적으로 활용하고자 만들어진 뮤지컬이다.

 

각색의 단계① - 원작의 선택
각색 과정 단계에서 고려해야 할 점들을 살펴보자. 각색을 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원작의 선택이다. 뮤지컬에 적합한 소재가 있을까. 2000년 초반 국내 창작뮤지컬에서는 춤과 노래를 중요 표현 수단으로 하고 있어 그러한 요소가 들어간 원작을 바탕으로 한 뮤지컬들이 종종 만들어졌다. 밴드들의 이야기인 <오디션>, 가수가 주인공인 <미녀는 괴로워>, 댄서가 주인공인 <댄서의 순정> 등 춤과 노래를 활용할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삼아 뮤지컬적 양식이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도록 했던 것이다. <브로드웨이 42번가>, <싱잉 인 더 레인>, <프로듀서스> 등 무대 뒷이야기를 전달하는 백스테이지 뮤지컬은 노래와 춤의 요소를 갖춘 소재들로서 뮤지컬 원작으로 사랑받았다. 그러나 오히려 이렇게 직접적인 춤과 노래를 소재로 사용했을 때 소재로서의 춤과 노래와 표현 양식으로서의 춤과 노래를 어떻게 구별해서 보여줄 것인가 하는 어려움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므로 춤과 노래의 관련 여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모든 것이 뮤지컬의 소재가 될 수 있다. 제작자들은 오히려 뮤지컬의 대중 예술적 성격상 파격적인 소재인가, 풍부한 스토리를 지녔는가, 치밀한 구성을 갖고 있는가, 독특한 캐릭터가 등장하는가, 스펙터클한 무대를 보여줄 장면이 있는가 등등을 고려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뮤지컬로 각색했을 때 적어도 어떤 점에서 원작이 가진 매력 이상을 보여줄 수 있는지를 창작자가 명확하게 인식하는 일이다. 작품 외적으로 원작의 대중적인 인지도, 마케팅적 활용 요소도 고려해야 하지만 그것은 부차적인 문제이다. 혹자는 뮤지컬의 소재는 단순하고 분명한 러브 라인이 있는 것이 유리하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매우 1차원적인 생각이다. 웨버는 다양한 고양이들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T.S 엘리엇의 우화집을 토대로 <캣츠>를 제작해 20여 년을 공연해왔다. <캣츠>가 앞서 말한 기준들 중 얼마나 관련이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창작자의 의지와 확신 그리고 자신감인 것 같다.

 

각색의 단계② - 원작의 분석
원작이 선택되었으면 이제 분석해야 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여러 차례 되풀이해서 보면서 분석한다. 일단 순수한 독자의 입장에서 보고, 그 이후에는 무대화를 염두에 두고 체크해 가며 본다. 극의 구성이나 등장인물 관계도, 작품 속에 사용된 배경 장소 등을 체크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무대화를 염두에 둔다면 아무래도 너무 많은 장소가 등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원작에서 중요한 대사를 표시해 가면서 정리해두는 것이 좋다. 인상 깊은 장면이나 인상 깊은 대사는 원작의 향수를 전해주고 각색물에서도 감동을 주는 경우가 많다. 원작을 각색할 때 작품의 모티프나 스토리만 참고할 것이 아니라면 눈을 감고도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세밀하게 분석해두는 것이 좋다. 모티프만 차용하는 경우라면 원작을 세세하게 분석하는 것이 상상력의 방해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다.
원작을 분석할 때는 원작과 관련된 역사적 배경이나 사건들, 그리고 원작과 비슷한 주제의 다른 작품들이나 원작자가 만든 다른 작품들을 함께 검토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충분한 분석이 끝났다면 이것을 뮤지컬로 만들었을 때의 장점을 생각해본다. 스펙터클한 장면으로 만들 수 있는 부분이나, 노래로 표현하면 좋을 것 같은 장면 등 뮤지컬화 하는 아이디어를 생각나는 대로 정리해둔다. 원작 분석에서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은 원전 콘텐츠를 뮤지컬로 만들 때의 장점만큼이나 단점을 명확히 파악하는 것이다. 단점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그 뮤지컬의 치명적인 매력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라이온 킹>은 광활한 아프리카 초원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무대와는 맞지 않는 소재라고 여겼으나 그것을 동물 가면이나 무대 상상력으로 만회해 애니메이션 이상의 감동을 만들어냈다.

 

각색의 단계③ - 원작의 재창조
각색은 제2의 창작이다. 훌륭한 원작을 토대로 했다고 해서 각색 뮤지컬도 훌륭할 것이라고 기대하기 힘들다. 원작의 작품성과는 상관없이 각 작품의 특징과 매체적 차이를 명확히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영화평론가 앙드레 바쟁은 ‘충실한 각색자는 원작에 상응하는 대응물을 발견하는 번역자’에 비유했다. 충실한 뮤지컬 각색은 원작과의 매체적 차이를 인식하고 그에 적합한 뮤지컬적인 등가물을 발견하는 것이다. 매체성의 이해는 각색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원작이 문학, 연극, 영화 어떤 것이냐에 따라 그 장르가 가진 매체성을 해체하고 춤과 노래가 중심이 되는 뮤지컬로 옮겨놓을 것인가가 관건이다. 무엇보다도 음악적 컨셉을 정하고, 음악의 역할을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 <스프링 어웨이크닝>에서 음악은 학생들의 억눌린 자아나 욕망이 분출하는 판타지적인 장면에서 사용했다. 이 작품은 억압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을 노래로 표현한다는 명확한 컨셉을 가지고 있었다.
어떤 각색 뮤지컬도 원작을 그대로 수용할 수는 없다. 매체적인 차이로 인해 드라마나 인물이 삭제되거나 축약되고 때로는 새롭게 추가되기도 한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에서는 소설 원작에서 극장 좌석 안내자일 뿐인 마담 지리에게 팬텀 대리인의 역할을 부여했다. 팬텀이 실제로 등장하지 않을 때가 많지만 그럴 때에도 마담 지리를 통해 그의 존재를 느끼게 했다. 연극 <스프링 어웨이크닝>에 등장하는 어른 역할을 뮤지컬에서는 단 두 명의 배우가 1인 다역으로 연기한다. 자유로운 본능을 추구하는 학생들과 이를 억압하는 어른들로 갈등 구도를 세우고 자유로운 본능을 억압하는 기성세대를 동일 배우가 연기하게 함으로써 이러한 갈등이 가시적으로 드러나게 한 것이다. 이렇듯 무대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극을 이끌어가기 위해 원전 콘텐츠와 각색물은 필연적으로 차이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 차이의 정도에 따라 충실한 각색(Faithful Adaptation), 다원적 각색(Pluralistic Adaptation), 변형적 각색(Transformative Adaptation)으로 구분할 수 있다.

 

 

 

 

 

 

 

 

 

 

 

 

 

 

 

 

 

 

 

 

 

 

 

 

세 가지 각색 방법
충실한 각색이란 원전 텍스트의 배경이나 플롯, 주제, 캐릭터 등을 큰 가감 없이 충실하게 변환한 각색을 말한다. 충실한 각색은 직역에 가까운 번역이다. 매체적 차이로 인한 변화는 불가피하다. 그러한 불가피성을 인정하고 원전 콘텐츠의 중요한 의미를 훼손하지 않고 담아내려고 노력할 때 그것을 충실한 각색이라고 볼 수 있다. <대장금> 초연 공연은 50여 부 작의 드라마를 뮤지컬로 담아낸 충실한 각색에 포함되는 작품이다.
다원적 각색은 크게 두 가지로 실현된다. 하나는 원전 콘텐츠가 가진 의미를 매체성을 고려해 캐릭터를 창조한다거나 장면을 새롭게 만드는 변형을 허용하는 것이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에서 성인 빌리가 공연하는 엔딩 장면은 밝은 조명을 향해 도약하는 모습을 올려찍기로 촬영하여 감동을 더해주었다. 이 장면은 뮤지컬에서 어린 빌리와 성인 빌리의 이인무로 표현했다. 극 중간에 빌리의 환상을 보여준 이 장면은 영화와 전혀 다른 구성을 하고 있지만 영화와 같은 효과를 얻게 된다. 다른 하나는 원전 텍스트를 선택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괴테의 소설에서 사회 비판적인 요소를 삭제하고 베르테르와 롯데, 알베르트의 사랑에 초점을 맞춘 전형적인 다원적 각색에 속한다.
한편에서는 완전히 충실한 각색이 가능한 것인가 하는 의문을 품기도 한다. 영화평론가 루이스 자네티는 연극 그대로를 영상으로 촬영한 것만을 한정해 ‘원작 그대로의 각색(Literal Adaptation)’이라고 하고 원작과의 거리에 따라 충실한 각색, 느슨한 각색으로 나누었다. 자네티가 말한 충실한 각색이란 원작의 의미를 충실하게 반영한다는 전제하에 매체의 차이를 인정하고 창조적으로 변용한 다원적 각색에 가깝다. 앞서 언급한 <빌리 엘리어트>의 경우 자네티의 기준으로 보자면 충실한 각색에 해당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원전 콘텐츠를 창작을 위한 기본적인 모티프로만 삼는 변형적 각색이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뉴욕으로 옮겨 폴란드 이주민과 푸에르토리코 이주민들의 갈등으로 그린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가 변형적 각색의 범주에 포함된다. 뮤지컬에서는 이주민들의 아메리칸 드림이 추가되고 결말에서 마리아가 살아남는다. <고궁 뮤지컬 대장금>은 원작 드라마를 해체해서 장금이의 업을 풀어가는 주요 플롯으로 삼았고, 드라마에 등장하지 않은 조광조를 등장시키기도 했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93호 2011년 6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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