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을 때, 기분 전환을 하기 위해, 추억이 담긴 곳이거나 오랜 단골집이라 잊지 않고 찾게 되는 나만의 장소는 누구에게나 있을것이다. 뮤지컬 배우 여섯 명이 말하는 내가 즐겨 찾는 장소.
신사동 가로수길에 있는 ‘그란데(Grande)’라는 가게가 있어요. 서울 시내에 있는데도 꼭 여행 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곳이에요. 울적하거나 안 좋은 일이 있을 때 그곳에서 맥주 한 잔을 하면 기분 전환하기에 딱 좋죠. 가끔씩 와인을 마실 때도 있는데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특이한 와인이 많아요. 와인 리스트에도 설명을 참 잘해놓았고요. 테이블이 몇 개 안 되는 아주 작은 곳인데 조그만 공간이라는 점이 아주 매력적이에요. 가로수길 중심에 있는 카페나 식당은 거의 다 크고 고급스런 분위기잖아요. 그런데 ‘그란데’는 정말 작고 아늑해서 외국 여행을 갔을 때 현지인들이 일상적으로 찾는 공간을 갔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에요. 겉으로 보면 예쁘고 안으로 들어가면 아늑해요. 추천 메뉴는 화이트 크림 스파게티. 진짜 맛있는데! 한 가지 단점이라면 좀 비싼 편이라 자주는 못 먹어요. 홍합 요리도 안주하기에 딱 좋고요. 젊은 남자 분들이 하는 곳인데 그분들이 음식도 직접 하시더라고요. 아 참, 안주 말고 식사 메뉴는 점심과 저녁 식사시간에만 주문이 가능하답니다.
임강희
명지대학교 앞에 있는 ‘엄마손 떡볶이’는 고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찾는 단골집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열반회라는 모임을 했다.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 학교를 다닌다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 급우들끼리 뭐라도 하나 만들어 보자는 마음에서 시작한, 그냥 모여서 즐겁게 놀자는 모임이었다. 열반회라는 이름은 1학년 10반의 10명이 모인 거라서…. 학생 때라 돈이 없으니까 일인 당 2천 원씩 걷어서 떡볶이를 먹으면서 우리의 모임을 시작했다. 그 친구들하고는 아직도 친하다.
나는 엄마손 떡볶이집이 진짜 맛있어서 자꾸 가게 되는데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가보면 특별히 맛있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어쨌든 나한테는 최고의 떡볶이집이다. 아, 연신내 시장 골목에 있는 할머니 떡볶이집도 정말 맛있다. 안 간 지 오래됐는데, 생각난 김에 한 번 가봐야겠다.
강필석
제가 좋아하는 장소는 특정한 곳은 아니고 코엑스 앞 큰길인데, 그 길을 참 좋아해요. 서울에 그 정도로 큰 길은 없는 것 같아요. 가끔씩 전시도 하는 곳이죠. 재수와 삼수를 하면서 우울하고 암울하던 시절에 그 길을 혼자 많이 걸었어요. <지킬 앤 하이드>에서 루시가 ‘Someone Like You’를 부르고 난 후 스쳐가는 인파 속에 혼자 외롭게 서 있을 때와 비슷한 고독감을 느꼈어요. 삼수를 하고 있을 때 길에서 재수 시절 친구를 만났는데, 명문대에 합격한 친구가 ‘넌 뭐하니?’라고 물었을 때 ‘어, 나 삼수해’라고 말하면서 느끼는 자괴감이 참 컸어요. 잘 차려입은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곳이지만 꾸미고 다닐 여유도 없을 때니까 볼품없는 모습으로 매일 매일 오가던 길이에요. 그런데 그런 우울한 시절의 추억까지 다 포함해서 그 길이 좋아요. 지금도 답답한 일이 있을 때 찾곤 합니다.
한지상
공연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다보니 여유가 생길 때면 확 트인 공간을 찾게 돼요. 멀리 여행을 가면 좋을 텐데 아쉽게도 제가 감히 멀리는 못 가는 성격이에요. 대신 지하철, 버스를 타고는 어디든 잘 다녀요. 서점도 혼자 잘 가고 영화도 혼자 잘 보는데 여행은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미사리에 있는 ‘봉주르’라는 카페를 자주 가요. 능내역 기찻길 옆에 있는데 연인들에게 특히 사랑받는 곳으로 유명해요. 저도 처음엔 남자친구를 따라 가서 알게 됐죠. 운전을 하면서부터는 친구들과 더 자주 찾게 되는 것 같아요. 수제비와 비빔국수가 정말 맛있거든요. 어둑어둑해질 때 가면 모닥불을 피워놓고 군고구마와 감자도 구워먹을 수 있어서 더 좋아요. 좋은 공기를 쐰 덕분인지 맛있는 음식을 먹어서인지 ‘봉주르’를 다녀올 때면 기분이 좋아져서 다음 날 공연할 때 더욱 힘이 난답니다.
윤공주
내가 가장 즐겨 찾는 공간을 공개하지 못해 미안하다. 혼자 있고 싶을 때 찾는 공간이라 당분간은 나만 알고 있으련다. 두 번째로 좋아하는 공간은 달리는 차 안이다. 완전히 밀폐된 공간에 있을 때 집중이 잘 되고 좋은 아이디어가 많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일정한 엔진 소리를 가만히 듣다 보면 외부로부터 들려오는 모든 소리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머릿속의 생각들이 정리되지 않거나, 공연 연습을 하다가 잘 풀리지 않는 문제가 생길 때면 나는 차를 몰고 무작정 달린다. 지금 연습 중인 <건메탈 블루스>는 국내에서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작품이라 배우들 모두 고민이 많은데, 집에서 대학로를 달리는 동안 정리된 것들이 꽤 많다. 사실 극비의 장소 역시 굉장히 좁은 공간이다. 주변이 거의 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이석준
대학로에 이안이라는 술집이 있다. 안으로 들어서면 가운데 물길이 있고 방석을 깔고 앉는 인도식 주점이다. 졸졸 흐르는 물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는데 그래서인지 술집이지만 시끄럽지가 않다. 조용한 분위기가 참 마음에 든다. 쿠션이 넉넉해서 기대기도 좋고. 맥주를 예쁜 양철통에 담아내는데, 이 술병의 주둥이가 넓어서 술이 넓게 따라지다보니 거품이 안 생기는 것도 좋다. 술잔도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500CC잔이 아니라 위스키를 언더록으로 마실 때 얼음을 넣어서 나오는 그런 작은 유리잔인데 사람이 시각적인 것에 약한 동물이라 같은 맥주도 훨씬 좋은 술로 느껴진다.(웃음) 체력이 좀 떨어졌다 싶을 때는 삼성동에 있는 지호한방삼계탕도 즐겨 찾는다. 좋은 재료가 많이 들어가고 제대로 끓여서 국물이 진짜 걸죽하다. 성이 기억나지 않는 무슨 지호 박사님이 특허를 낸 삼계탕이라는데 지금까지 먹어본 삼계탕 중에 이 집 것이 제일 맛있다. 건강 삼계탕, 미용 삼계탕, 옻 삼계탕이 있는데 여자 분들은 피부에 좋은 미용 삼계탕을 선호하더라. 나처럼 열이 많은 사람들을 위한 건강 삼계탕도 있다. 옻삼계탕은 남성들에게 특히 좋다던데 1000원이 더 비싸다.(웃음)
김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