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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CULTURE IN MUSICAL] 스스로 선택하는 죽음에 대하여 [No.68]

글 |김영주 2009-06-01 6,309

스승에 대한 사랑과 증오가 너무 컸던 가리옷 사람 유다는 예수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후에야 그것이 신의 ‘인류 구원 계획’에서 자신이 맡은 역할임을 알게 된다. 그가 자기 운명을 원망하며 나무 아래서 목을 맬 때 관객들은 연민과 공포에 전율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생지옥을 견디지 못한 자가 진짜 지옥으로 도망치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법의 세계를 가리키는 별빛을 잃으면서 삶의 의미까지 잃은 자베르가 검은 세느강에 몸을 던졌을 때, 그리고 어린 아들을 새로운 세상을 향해 돌려 세운 킴이 커튼 뒤에서 방아쇠를 당겼을 때 역시 우리가 <레 미제라블>과 <미스 사이공>에서 기억하는 인상적인 순간이다. 

 

 

대중적인 희가극에서 줄기를 뻗어나간 초기 뮤지컬은 북뮤지컬로 발전하면서 점차 극성이 강화되었다. 춤과 노래, 재담이 핵심이었던 이 장르에도 비극적인 정서와 입체적인 캐릭터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 관객들은 19세기 후반 이탈리아 오페라의 전통을 계승하듯 비장한 노래에 이어지는 주인공의 자살에서 비극의 카타르시스가 발현되는 뮤지컬을 보게 되었다. 뮤지컬에서 다루는 것은 대체로 사회적인 자살이 아닌 개인적인 자살인데, 작가의 창작물에서 자살이 이렇듯 온정적인 시선 아래 낭만적으로 그려지는 것은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 이후로 맥이 끊겼다가 근대 이후부터 가능하게 된다.   


근대 이전의 기독교 사회나 이슬람 세계에서는 인간의 생명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신의 것이라는 관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일종의 살인이라고 보았다. 자살자는 교회 안에서 장례식을 치르거나 제대로 된 무덤에 묻힐 수도 없었기 때문에 유족들은 이중으로 고통을 받아야 했다. 프랭크 와일드혼의 <루돌프>의 주인공인 오스트리아 황태자 루돌프는 어린 정부와 동반자살을 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장례미사를 치르기 위해서 황제인 아버지는 아들이 정신병자였다는 ‘변명’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자살을 도덕적으로 비판할 수는 있지만, 성직자들이 ‘성경의 예증도, 철학적 논증도 없이’ 자살자들에게 죄인의 낙인을 찍어서는 안 된다는 쇼펜하우어의 일갈대로 근대 이후 서구사회에서는 종교의 영역 밖에서 자살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삶을 부정하고 자살을 찬양한 ‘염세주의자’로 알려진 쇼펜하우어는 사실 자살에 대해 엄격한 시선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는 ‘자살’이 세계를 지옥으로 만드는 맹목적인 생의지를 극복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처한 현실에 대해 부정하려는 또 하나의 생의지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이는, 자살 자체를 죄로 보기보다는 해탈하지 못한 자가 고통을 이기지 못해서 목숨을 끊는 것을 문제시했던 불교의 관점과도 통하는 면이 있다. 그렇다면 불교와 함께 아시아인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유교의 경우에는 어떨까.


모든 정신적인 가치가 주자의 가르침에 따라 결정되었던 조선 사회에서 자살은 그 원인과 목적에 따라 전혀 다른 평가를 받았다. 부모가 물려주신 것은 머리카락 한 올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지만 가정의 울타리를 벗어나서 국가를 지탱하는 이념을 지키기 위한 자살일 때는 만고에 기억되어야 하는 선하고 바른 행위로 칭송받았다. 그리하여 동네마다 얼굴도 보지 못한 남편을 위해 등 떠밀려 죽은 여인의 드높은 절개를 기리는 열녀문이 여봐란 듯이 섰던 것이다. 여기서 한 번 짚어봐야 할 문제가 있다.
고대 로마나 동아시아에서는 사회적인 신분이 높은 사람이 큰 죄를 지었을 때, ‘명예롭게 죽을 수 있도록’ 자살을 하라는 의미에서 칼이나 극약을 내렸다. 이 죽음은 자살인가, 아닌가.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점에서 타살이라고 생각하는 쪽이 다수일 것이다. 그렇다면 명청대와 조선 중기의 그 수많은 열녀들은 자살한 것인가, 타살 당한 것인가. 중국의 인류역사학자 톈루캉(田汝康)은 그의 저서 『공자의 이름으로 죽은 여인들』에서 그녀들의 죽음이 사회적 집단 타살이라는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몽골족이 지배한 원나라를 멸망시키고 새로운 왕조를 창업한 주원장에게는 자신의 정통성을 굳건히 할 새로운 이념이 필요했다. 그는 형사취수제 등 유목민족 특유의 분방한 성 풍속을 극도로 혐오해서 여성의 정절을 어느 시대보다 강조하는 도덕주의를 내세웠다. 그 결과 그네를 타다가 치마 속이 드러나거나, 남자 의원에게 진맥을 받았거나 하는 가장 사소한 이유로 목숨을 끊을수록 여인의 정절은 더욱 칭송할 만한 것이 되었다. 남편을 잃은 여인들은 자신이 죽을 날을 가족들에게 공언하고, 그들의 찬사 속에서 공개적으로 자살하기도 했다.  이 정도면 한 사회가 집단적으로 장려한 참혹한 공개 타살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반면 뮤지컬 <나인>에서 예술가/연인/남편으로서 궁지에 몰린 귀도 콘티니나 <콘택트>의 성공한 광고기획자 와일리의 자살 기도의 전후사정을 살펴보면 현대사회가 낳은 새로운 유형의 동기를 찾을 수 있다. 극도로 발달한 개인주의에 따르는 거부할 수 없는 세금, 소외와 고독은 집단 밖으로 나와서 자신의 욕망을 적극적으로 실현해온 단독자들의 숙명이다.
“개인은 여러 가지 다양한 동기로 자살한다. 어떤 사람은 특별한 사정으로 자살하며, 또 어떤 사람은 정의라는 이름으로 자살한다. 또 다른 어떤 사람은 사후의 명예를 위해서 자살하지만 증오와 복수를 위해 자살하는 사람도 있다. 모든 경우가 다 불가피한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모두 불필요한 것일 뿐이다.” 자살이 어느 시대보다 칭송받았던 명대의 한학자가 한 말이다.


자살이란 결국 생의 의지라는 강력한 본능을 이겨내고, 삶을 맺기 위한 육체적인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어떤 것을 절대적으로 갈망할 때만 가능하다. 그런데 정말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산 자의 그 치열한 허무 다음에 죽은 자로서 감당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우리 중 누구도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인간이 자기 존재를 걸고 벌일 수 있는 마지막 도박에서 진정한 승리를 거둔 자는 아무도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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