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듀서가 말한다
스타 캐스팅 문제의 일차적 책임자로 종종 지목당하는 제작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았다. 배우 캐스팅에 대한 가장 큰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작품의 상업적인 성공 여부에 따라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제작자들은 스타 캐스팅의 배경과 효과 및 역효과에 대해 대체로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쇼노트의 임양혁 이사는 “만약 뉴욕처럼 공연 시장이 크고 다양한 취향을 가진 두터운 관객층이 있다면 처음 보는 신작이든, 작은 규모의 작품이든 내용을 보고 선택해 줄 것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시장은 아직 그 정도 수준까지 가지 못한 상황에서 너무 많은 작품이 올려지면서 경쟁이 과열되다보니 ‘홍보 마케팅적으로 어떤 이슈를 만드느냐’ 가 중요해진다. 이렇다보니 특히 창작이나 잘 알려지지 않은 라이선스 신작 뮤지컬일 경우 사람들이 공연에 대해 관심을 갖고, (어느 수준 이상의 작품이라는) 신뢰를 갖게 할 방법으로 스타 캐스팅이라는 카드가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스타들의 계약조건은 일반적인 뮤지컬 배우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까다롭고 개런티 역시 부담이 된다. 하지만 홍보 마케팅의 측면에서나 티켓 세일즈 면에서 그들이 가져다 줄 이익이 있을 것을 기대하고 감수하는 것이다. 스타로서 지명도와 충성도가 높은 팬 층을 가진 경우라면 캐스팅 소식만으로 언론 보도가 많아지고, 티켓 판매에 힘이 실린다. 그렇지 않더라도 라디오나 버라이어티 출연이 많은 연예인이라면 매체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홍보활동을 해줄 수 있다. 또한 스타 캐스팅은 투자자를 찾는 데도 도움이 된다. 뮤지컬해븐의 박용호 대표는 “스타가 있으면 유리한 것은 당연하다. 영화나 뮤지컬이나 마찬가지다. 특히 투자를 받으려는 제작자들이 많을 때 그런 현상이 일어난다. 지금 그 현상이 정점에 있고, 앞으로 2,3년은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유능한 투자자들은 연예인 출연이 무조건 좋은 결과로 연결되는 게 아님을 이미 알고 있다. 때문에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연예인을 캐스팅하기만 하면 무조건 투자를 쉽게 받을 수 있는 건 전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런 한계를 알고, 뮤지컬 마니아들의 스타 캐스팅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을 감수하고 스타 캐스팅을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대중성에 무게중심을 두는 대극장 쇼 뮤지컬의 경우 작품의 주관객을 마니아층이 아니라 ‘남녀노소’로 잡게 되기 때문이다. <미녀는 괴로워>, <브로드웨이 42번가>, <삼총사>는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스타 캐스팅에 대한 뮤지컬 마니아들의 불만 중 하나는 무분별한 스타 캐스팅이 뮤지컬 전문 배우의 출연 기회를 빼앗아 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뮤지컬 배우들의 겹치기 출연이 당연할 만큼 공연되는 작품 수에 비해 주연 배우가 부족한 상황에서 아직 주연을 맡길 만큼 실력이 무르익지 않은 신인과 연예인 중 한 쪽을 선택해야 할 때 제작자의 입장에서 후자가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는 항변도 있다. 이에 대해 임양혁 이사는 “주연배우의 풀이 굉장히 좁기 때문에 외부에서 누군가를 끌어와야 하는 것이 하나의 측면이기는 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리스크를 감수하고라도 배우들을 꾸준히 발굴하고 성장시켜야 하는 것 또한 제작자의 몫인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책임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 않나 싶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쓰릴 미>, <스위니 토드>, <스프링 어웨이크닝>에서 과감한 신인 발굴을 한 이력 때문에 스타 캐스팅과 인연이 없어 보이는 박용호 대표는 만약 작품과 잘 맞고 실력이 있는 스타라면 당연히 캐스팅을 하고 싶다며 <알타 보이즈>에 김태우를 출연시켰던 것을 성공적인 선택이었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그는 적역이 아니거나 뮤지컬 출연을 대충 하는 아르바이트 정도로 인식하는 스타를 무대에 세우는 것은 모두에 대한 예의가 아니기 때문에 절대 캐스팅을 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제작자들은 이미 연예인 누가 출연한다는 것만으로 화제가 되는 시기는 지났고, 가장 중요한 문제는 스타와 배역의 궁합이라는 것에 동의했다. 즉, 가수가 <헤드윅>에 출연 한다거나, 영화배우가 <쓰릴 미>에 출연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관객들이 그 가수가 연기하는 헤드윅을 보고 싶을 만큼 기대와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캐스팅인가, 영화배우가 <쓰릴 미>의 ‘나’를 연기한다고 했을 때 신뢰가 가는가 하는 점이 공연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것이다. 그 궁합을 정확하게 알아보는 것이 스타 캐스팅이라는 복잡한 게임에서 제작자들이 일차적으로 승리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열쇠이다. 스타 캐스팅이 기존에 뮤지컬을 보지 않았던 일반인들을 새로운 뮤지컬 관객으로 끌어들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는 앞서 말한 ‘승리’ 이후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글_ 김영주
연출가들이 말한다
대부분의 연출가들은 “배우의 캐스팅에 관해 의견을 제시할 수는 있지만 최종 결정권을 갖고 있지는 않다”고 말한다. 모든 프로덕션의 최종 결정은 프로듀서의 몫이라는 얘기다. 만약 제작자가 스타 캐스팅을 제안할 경우 연출가들은 가급적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기존의 뮤지컬 관객만으로는 1000석 이상의 객석을 채우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그들도 이해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연출가들이 먼저 연예인 캐스팅을 제안하기도 한다. 한 해 올라가는 뮤지컬 편수는 많은 데 비해 스타급 뮤지컬 배우는 몇 명 안 되기 때문에 주연급 인물에 비중을 높이기 위해서이다. 장유정 연출은 “조승우의 공연을 처음 보고 뮤지컬 팬이 된 관객들이 있듯이, 스타 캐스팅을 통해 뮤지컬 관객층이 넓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지 않겠냐”며 스타 캐스팅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연출가들은 연습에 참여할 수 있는 스케줄이 확보된다는 전제 하에 스타 캐스팅에 대해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김달중 연출 역시 마찬가지. 그는 “준비된 스타들이 뮤지컬에 참여한다면 좋은 점이 더 많을 것”이라면서 연습 시간과 더불어 ‘노래, 춤, 연기 등 뮤지컬 배우로서 갖춰야 하는 자질과 기술의 필요성’도 함께 강조했다. 연출가가 작품을 만들기 위해 배우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길어야 8주 정도다.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한 한 연출가는 “전체 기간 중 연습의 절반에도 참여하지 않는 연예인들이 있다. 연습에 참여하더라도 저녁 시간에 잠깐 들르는 그들에게서는 작품에 대한 애정조차 느껴지지 않는다”면서 “그들의 캐스팅을 받아들인 것은 연습을 통해 충분히 캐릭터를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습에 나오지 않으니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고 말했다. 조광화 연출이 농담처럼 “바쁜 스케줄을 쪼개서 연습실을 찾아주는 스타들이 고맙지 않냐”고 얘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부분의 연출가들은 피할 수 없는 스케줄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을 연습실에서 보내면서 다른 배우들과 함께 땀 흘리고 작품을 만들어가는 스타들이 더 많다고 했다. <굿바이 걸>의 하희라처럼 작품을 위해 방송 스케줄을 모두 취소하고 연습에 올인하는 스타 배우들도 꽤 있다. 장유정 연출은 “함께 작업해야 하는 스타들의 바쁜 스케줄을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연습실에 자주 오지 못하는 스타들을 기다리면서 애태우기보다 현장에 있는 배우들과 최선의 작업을 하는 것이 경제적이라는 얘기다. 대신 그녀는 “스타들이 연습에 참여할 때에는 연습실에 자주 오지 못하는 것을 눈치 보지 않도록 배려해주고, 재밌고 즐거운 분위기를 조성해 그들이 최대한 열린 마음으로 연습에 참여하면서 숨기고 있던 가능성을 최대한 끄집어낼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연출의 몫인 것 같다”고 말했다. 조광화 연출은 연습을 통해 바뀔 가능성이 창작 초연작일수록 스타들에게 유리하다고 덧붙였다. 김달중 연출가는 “공연과 연습을 동시에 참여하는 뮤지컬 배우들이 많다보니 오히려 스타들보다 더 연습에 참여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배우로서의 자질을 채 갖추지 못하고 무대에 오르는 이름뿐인 뮤지컬 배우들도 많고, 실력보다 인기에 더 치중하는 배우들도 상당수라는 것이다. 장유정 연출과 김규종 연출은 “공연에 참여하는 연예인들 중에는 스타이기 이전에 풍부한 경험과 무대 장악력으로 빛을 내는 배우들이 분명 존재한다”면서 연예인에 대한 선입견을 갖지 말고 배우로서 그들을 대할 것을 당부했다. 아이돌 스타의 경우에도 혹독한 연습생 시절을 거쳐서 그 자리에 오른 만큼 뮤지컬 배우들에 결코 뒤쳐지지 않는다는 데에도 의견을 일치했다.
물론 연기 경험이 전무할 경우 무대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연출가들도 알고 있다. 그들이 아무리 빨리 캐릭터를 이해하고 습득한다고 해도 배우로서의 공력이 부족하다보니 무대 위에서의 아쉬움도 없지 않다. 공연 중에도 다른 활동 때문에 작품에 온전히 집중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 것도 염려스러운 점이다. 스타 캐스팅에 있어서 연출가들이 안타까워 하는 또 하나는 그들이 자신의 한계에 대한 도전 정신 혹은 작품적 고민을 가지고 뮤지컬에 도전하기보다 스케줄이 비어서, 혹은 이해관계로 인해 무대를 찾는 경우가 아직은 더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연습실에서 끙끙대다가도 무대 위에서 제 몫을 해내는 스타들이 있다. 그들이 무대 위에서 하루하루 성장해 가는 것을 지켜보는 재미가 크다”는 김규종 연출의 얘기처럼, 상당수의 연출가들이 스타들과의 작업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지금은 관객들이 뮤지컬 시장으로 유입되어야 하는 시기이므로, 스타 캐스팅을 통해서라도 당분간은 뮤지컬을 ‘붐업’ 시켜야 한다는 데 연출가들의 의견은 일치한다. 그리고 작품의 완성도가 아닌 스타를 위한, 단순히 흥행에 초점을 맞춘 작품들을 관객들에게 선보이기보다는, 훗날 연예인들이 빠져나간 자리를 채울 수 있는 완성도 높은 콘텐츠를 마련해두어야 한다는 것도 그들은 알고 있다.
글_ 정세원
배우들이 말한다
무대에서 함께 호흡해야 하는 배우들이야말로 스타 캐스팅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이들이라고 할 수 있다. 배우들은 스타 캐스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체적으로 긍정하는 분위기다. ‘배우의 활동 영역을 구분 짓는 것은 의미가 없을 뿐더러 티켓 파워가 있는데 실력까지 갖춘 스타라면 환영할 일’이라는 것이 배우들의 입장이다.
단, 이것은 무대에 설 자질이 있는 연예인을 캐스팅 했을 경우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다. 무분별한 연예인 캐스팅에 대해 반대하는 배우들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특히 아이돌 스타의 캐스팅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배우들이 많았다. 최정원은 “실력이 없는데도 연예인이면 무조건 캐스팅하려고 하는 행태는 분명 잘못된 일이다”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수긍 가능할 만한 캐스팅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배우들이 스타 캐스팅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다. 공연에 대한 애정과 열정 없이 작품에 참여하는 경우와 공연계에 대한 이해 없이 작업에 참여하는 경우다. 최민철은 “활동이 뜸해진 배우들이 뮤지컬을 만만하게 보고 뛰어들었다가 잘 안되면 ‘내가 뮤지컬 좀 못한다고 별 지장이 있겠냐’는 생각에 쉽게 포기하기도 한다”면서 “그런 마인드로 작품에 참여하는 것은 서로에게 좋을 것이 없다”고 말했다. “공연계에 대한 이해 없이 참여하는 연예인은 좀 곤란하다. 좋은 공연을 위해서는 배우들끼리의 호흡이 중요한데, 자기 것만 연습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연예인들이 있다”는 김산호의 의견이나 “뮤지컬은 공동 작업인데 바쁜 스케줄로 자기 부분만 연습하는 연예인들이 많다”며 “배우들 간의 친밀감을 형성하기도 힘들고 좋은 호흡을 보여주기 어렵다”는 강필석의 이야기가 이를 뒷받침한다.
가장 최악의 상황은 연예인들이 자신의 의지가 아닌 타의로 공연에 참여할 때라고 입을 모은다. 잘해보겠다는 의지조차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연예인 A는 듀엣 곡을 부르는데 음이 안 올라가자 노래를 멈춰서 상대 배우를 당황하게 만들었고, B의 경우 고음은 아예 코러스가 불러줬다는 후문도 있다.
연예인의 작업 참여로 분위기가 흐려진다는 의견도 있었다. 강필석은 “연예인들이 대접을 받는 분위기가 조성되다 보니 뮤지컬 배우들도 조금만 인지도가 생기면 대우를 받으려 한다”며 “이는 서로 피곤해지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배우들이 스타 캐스팅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이유 중 하나가 요즘 같이 어려운 상황에는 어떻게든 관객을 공연장으로 불러들여야 한다는 것인데 이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배우들도 있었다. 특정 연예인이 출연해서 공연장을 찾는 관객의 경우 제대로 된 뮤지컬 관객층으로 흡수하기 어렵고, 작품이 아닌 스타 마케팅으로 승부수를 두려고 하면 뮤지컬이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기 힘들어 결국 악순환이라는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현재 <오페라의 유령>에 참여하고 있는 정상윤은 “<오페라의 유령>은 작품 자체를 즐기러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니까 확실히 관객의 분위기가 다르다. 공연은 배우와 관객이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인데 작품이 아닌 특정한 스타를 보러 오는 경우 극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라며 의견을 더했다.
주연급 배우가 아닌 조연이나 앙상블 배우에게 스타 캐스팅은 또 다른 문제이다. 한 조연 배우는 “연예인들의 상황 맞춰 몇 번씩이고 연습을 반복해야 하지만 싫은 내색조차 할 수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또 다른 배우의 전언에 의하면 “동선을 맞추는 작업이나 궂은 일을 하는 것은 뮤지컬 배우의 몫”이라는 것. 또한 연예인들은 개런티가 비싸기 때문에 아무래도 간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특히 앙상블 배우들의 경우 그 영향을 더욱 크게 받는다고 한다.
물론 부정적인 있는 것은 아니다. 뮤지컬에 대해 잘 모르고 왔다가 뮤지컬의 매력에 빠져서 열심히 노력하는 연예인들도 있어서 자극을 받는 좋은 계기가 되기도 하며, 연예인과 더블 캐스팅이 되면 자신은 뮤지컬 배우라는 타이틀을 달고 무대에 서기 때문에 더 열심히 하게 된다는 긍정적인 의견도 있다.
배우들은 스타 마케팅은 호불호를 분명히 나눌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아무리 부정적이라고 해도 막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지금 가장 뜨거운 문제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무것도 아닌 문제이기도 하며,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고 결국 배우 스스로가 더 잘하도록 노력하는 편이 맞다고 했다.
글_배경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