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연 지원사업 창작팩토리
검증된 작품, 아니 검증하며 지원한다
우리가 기억하는 수많은 작가, 작곡가, 화가들은 명문가의 후원이 없었다면 스스로 살아갈 능력이 없는 이들이었다. 예로부터 예술가는 지원을 받으며 살아야 하는 경제적 무능력자이다. 비록 경제적 무능력자들이었지만 인간의 영역을 넘어서 신의 영역을 훔쳐보면서 감히 완벽에 도전한다. 예술은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서가 아닌 그 어떤 실질적인 목적성을 벗어난 가치를 추구한다. 예술이 절대적인 이상향을 모방하든, 그 시대의 진실을 반영하든 어쨌든 예술은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고민한다. 근대 사회로 넘어오면서 국가는 삶의 질적 가치를 높여주는 공공성을 인정해 예술에 제도적인 지원을 해왔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모든 예술이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공공성을 입증할 수 있는 예술가나 예술 작품이 국가의 지원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다면 일반적으로 대중예술로 분류되는 뮤지컬은 지원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그동안 뮤지컬은 예술 지원에서 찬밥 신세였다. 그것은 앞서 말한 대로 공공지원이 예술의 공공성을 입증할 수 있을 때 가능한 것인데 뮤지컬은 그것을 입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뮤지컬 창작자들은 해외 뮤지컬과의 경쟁에서 밀리고, 국가의 지원에서도 소외되는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꼈다. 이런 상태에서 뮤지컬 창작자들에게 힘을 주는 지원제도가 생겼다. 바로 작년부터 문광부가 후원하고 전문연(전국문예회관연합회)이 주관하여 치러지는 ‘창작팩토리’이다.
경쟁력 있는 창작뮤지컬 개발
한해에 공연되는 창작뮤지컬은 100여 편에 이른다. 이들 중 수익을 거두는 작품은 10퍼센트 정도이다. 수익에 성공하는 작품 수도 적지만 수익의 규모도 크지 않다. 대규모 자본과 브랜드 파워가 있는 대작 라이선스 뮤지컬의 틈바구니에서 창작뮤지컬이 살아남기란 쉽지 않다. 제작 노하우가 부족하고, 지명도에서도 열세인데도 그동안 창작뮤지컬의 제작 형태를 보면 무대에 올라가는 것이 신기할 정도인 경우가 허다했다. 음악이 나오지 않아 음악 없이 안무 연습을 했고, 공연 최종 리허설에 가서야 악보를 받아볼 수 있어 첫 공연을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는 배우들의 증언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실제로 적지 않은 창작뮤지컬이 막을 올리기 전까지 과연 공연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몇 해 전부터 사정은 많이 달라졌다. 아예 사라졌다고는 할 수 없지만 경험과 의식 있는 제작사는 2~3년 정도의 여유를 가지고 작품을 준비하고 제작하는 편이다. 이제는 공연 전에 리딩이나 쇼케이스 형식의 발표회를 갖는 경우도 많아졌고, 산학 협동 과정으로 공연예술학교 한 하기 수업으로 예술과에서 미리 작품으로 제작해보는 방법도 시도하고 있다. 이제는 적어도 공연 직전에 악보가 전해지는 황당한 일들은 확연하게 줄어들었다.
올해 2회째를 맞는 ‘창작팩토리’는 연극과 뮤지컬 부문으로 나누어 단계적으로 지원하는 지원 제도이지만 이러한 지원 단계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제작되는 방식을 연상시킨다. 뮤지컬은 워낙 대자본이 소요되기 때문에 실제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라가기 전까지 대본 단계부터 단계적으로 점검을 받는다. 배우들이 낭독과 간단한 노래가 곁들인 리딩 단계, 투자자나 관계자들을 모아놓고 축약된 버전으로 공연하는 쇼케이스, 브로드웨이 입성에 앞서 지역 도시를 돌며 실제 관객들과 만나 관객들의 반응을 점검하는 트라이아웃까지 단계별 검증을 받는다. 완성된 작품을 고치기는 어렵지만 대본 단계에서, 혹은 쇼케이스 단계에서 수정하는 것은 그렇게 많은 수고와 비용을 요구하지 않는다. 정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된다면 그 단계까지 소요된 비용만을 손해보고 손을 떼는 것이 이로울 수도 있다.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끊임없이 단계를 밟아가는 뮤지컬 제작 시스템과 ‘창작팩토리’의 단계별 지원이 유사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전문연의 김현주 팀장은 창작팩토리의 취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기 우물 안에서 제작해서 공연을 올려놓고 첫날 반응 때문에 마음 졸이는 식의 도박식 제작보다는, 작품을 제작해가는 과정 속에서 충분한 검증을 받고 여러 사람들에게 다양한 관점에서 점검받을 수 있는 체계를 통해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한다.
즉, 검증 단계를 늘려서 좀더 경쟁력 있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라는 얘기다. 앞서 뮤지컬의 지원 필요성에 대해 의문을 표시했었다. 국내 뮤지컬 시장은 현재 라이선스 뮤지컬 위주로 형성되어 가고 있다. 해외 제작사에 로열티를 지급하고, 문화와 정서 차이로 완벽한 이해가 불가능한 라이선스 뮤지컬이 시장의 상당 부분을 절대적으로 점유하고 있다. 하지만 자본력이나 기술력에서 창작뮤지컬은 열세를 면치 못한다. 앞서 말한 대로 뮤지컬은 음악과 안무, 연기가 결합한 종합예술인 만큼 비용이 많이 드는 장르이다. 그렇다면 시장 보호 차원에서 일정 수준에 이를 때까지 창작뮤지컬의 지원은 필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창작팩토리’는 창작뮤지컬을 지원하면서 올바른 제작 과정을 학습시킨다는 의의가 있다.
창작팩토리는 어떤 제도?
뮤지컬 작곡가 A씨와 작가 B씨는 자신들이 만든 뮤지컬 대본과 음악을 창작팩토리 대본 심사에 응모했다. 이들의 작품이 선정되어 2천만원의 상금을 지원받았다. 자연스럽게 시범공연 참가 자격을 얻은 이들은 작품을 축약한 30분 분량의 시범 공연을 제작했다. 연습실을 한 달간 대여하고, 아는 배우들의 도움을 청했다. 스튜디오에서 MR도 제작했다. 분위기를 줄 수 있는 간단한 소품과, 작품 분위기에 맞는 의상을 구입했다. 비용에 대한 부담이 적지 않았다. 총 6개 팀이 경쟁을 벌이는데 이들처럼 대본 공모에서 선정되지 않고 시범공연 심사로만 지원한 이들에게는 5백만원의 쇼케이스 준비 비용이 제공되었다고 한다. 마침내 심사일 그동안 연습한 쇼케이스 공연이 끝나자 심사위원이 작품에 대한 아쉬운 점을 지적했다. 떨어질 줄 알았는데 뜻밖에 우수작품으로 선정되어서 제작비 8천만원을 지원받았다. 전체 작품 제작비는 3억원 정도를 예상하고 있다. 적어도 작품 제작의 기본금은 될 수 있었다. 힘겹게 서울에서 공연을 올린 후 비교적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1년 후 이들에게 뜻하지 않은 전화가 왔다. 우수작품 재공연 지원작으로 선정되었는데 지역 문예회관에서 공연을 해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두 지역의 문예회관에서 짧은 기간 공연하는 것이라 부담이 없지 않았다. 우선 배우들의 스케줄이 가능한지부터 확인해야 했다. 여러 가지를 점검해본 결과 가능하겠다고 판단한 이들은 7천만원 이하의 지원금을 받고 지역 문예회관에서 공연을 했다.
위의 내용은 ‘창작팩토리’의 전 과정을 지원받은 창작자의 가상 스토리이다. 올해로 2회째를 맞고 있는 ‘창작팩토리’는 빠른 시간 내에 제도적인 틀을 잡아가고 있다. 창작팩토리는 ‘대본 공모’, ‘시범공연 지원’, ‘우수 작품 제작’, ‘우수 작품 재공연’ 4단계로 나누어서 단계별 지원을 한다. 위에서 살펴본 대로 각 단계별로 새로운 지원작들을 선발하지만 우선순위는 전 단계에서 선정된 작품에 있다. 즉 시범 공연은 6개 팀이 시행하는데 우선순위는 대본 공모에서 선정된 작품들에 있고, 나머지를 별도의 지원자들 중에서 선발한다.
창작팩토리는 1회성 지원이 대부분인 형태에서 벗어나 단계별 지원을 추구하고, 제작 단계를 지속적으로 관리하면서 지원하는 집중 지원 제도이다. 뿐만 아니라 ‘우수 작품 재공연’은 사후 지원으로서의 성격도 포함하고 있다. 게다가 우수한 작품을 육성할 뿐만 아니라 지역 문예회관에 유통시키면서 좋은 작품을 개발해서 보급하는 성격을 띤다.
각종 지원금이 축소되고 있는 시점에 창작팩토리는 반가운 제도이긴 하지만 창작자들 중에서는 불만의 목소리도 없지는 않다. 우선 시범 공연을 위해 지원되는 지원금이 연극이 3백만원
, 뮤지컬이 5백만원인데, 연습실 대관부터 배우들 연습, MR 제작, 간단한 소품이나 의상 등 이것으로 준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완성된 작품이 아니라 축약된 버전을 위해 한 달여를 연습한다는 것이 소모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또한 우수 작품 재공연의 경우에도 극단 측의 일정이나 배우들의 스케줄 상 맞지 않은 경우가 많다. 또한 서울 공연에 이어서 지역으로 내려간다면 어느 정도 비용이 절감할 수 있으나 서울 공연 계획 없이 단순히 지역 문예회관 공연만을 위해 스케줄을 잡는 것은 여러 모로 어렵다고 한다.
창작팩토리는 올해로 2년째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여러 모로 새로운 측면이 많은 제도이다. 어떤 정책이든 완벽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부족한 것을 수정해가면서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창작자들은 지원 정책을 감안해서 장기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다.
MINI INTERVIEW
김현주 전문연 사업팀장
올해 두 번째를 맞이한다. 지난해에 비해 달라진 것이 있는가?
우수 작품 선정에서 지난해에는 최우수작과 우수작을 구분했었는데, 그에 대한 등급을 없앴다. (완성된 것이 아니라 쇼케이스를 통해 평가하는 데 등급을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판단이었다.) 창작팩토리는 굉장히 포괄적인 사업인데다 비록 시범사업이라고 시작했지만 첫해라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있었다. 대본 공모 사업의 지원 기준이 ‘발표하지 않은 희곡’이고, 시범공연은 ‘공연되지 않은’ 작품이다. 이 기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해서 선정된 작품이 취소되는 일이 발생했다. 올해부터는 이러한 기준을 구체적으로 명기했다. (www.nacac.or.kr 전문연 사이트 참조)
시범공연의 경우 실제 들여야 하는 노력에 비해 지원되는 것이 너무 적다는 지적이 있다.
취지를 잘 이해하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이다. 본래 시범공연은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검증을 받게 하고 싶은 목적이었다. 작품을 개발하는 것은 제작사들의 본연의 임무이다. 우리는 예술 작품을 지원하겠다는 것이지 (쇼케이스) 용역을 주겠다는 것이 아니다. (기자: 단지 지원금만이 아니라 연습실이나 배우들의 지원도 이야기하고 있다.) 현물 지원에 대해서는 연습실과 같은 공간 지원에 대해서 검토 중이다.
지원의 형태를 띠고 있는데 작년에 선발된 뮤지컬을 보면 대중성이 짙은 뮤지컬 코미디 일색이다. 어느 정도 공공성이 확보된 작품을 지원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작년에 지원된 작품을 본 사람들이라면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지원된 작품의 상당수가 로맨틱 코미디물이었다. 작년에는 지원작들의 분위기가 일관된 측면이 있었는데 올해 지원한 뮤지컬들은 소재나 형식 면에서 다양해져서 반가웠다.
의상이나 무대, 유명 배우를 섭외할 수 있는 기존 기획사가 유리한 구조이다. 신인 작가나 작곡가가 참여하기에는 아무래도 불리한 구조이다.
그러한 점을 충분히 배려하고 심사위원들도 어느 정도는 감안하고 심사를 한다. 단계별 심사이다 보니 다음 단계로 넘어올 때 창작자 개인이 좀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심사위원들이 작곡가나 작가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기도 한다. 창작자로서는 자신을 알릴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시범 공연은 지금 심사위원과 문예회관 관계자에게만 공개하는데 기왕 준비한 것을 관계자들에게 오픈하는 것이 작품이나 창작자들의 관심을 더 높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의견은 지난해부터 제기된 것이다. 마니아나 관계자들에게 오픈을 할 경우 제작사의 경우 관객을 동원하거나, 특정 배우의 팬들로 인해 관객 반응을 조작할 수 있다. 그것이 심사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폐쇄적으로 운영했다. 그런데 이 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 지점이고 두 차례 걸쳐 진행해보니 심사위원들이 그런 분위기에 휩쓸리지는 않는 것 같았다. 고려해볼 사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