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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치명적인 세 가지 엇갈린 사랑] The Phantom of the Opera

글|박병성 |사진|김호근 2009-09-25 6,867

 

브로드웨이 최다 공연,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작품, 최다 관객 동원 등 뮤지컬에 주어질 수 있는 모든 찬사를 받고 있는 <오페라의 유령>이 국내에 소개된 것은 2001년이다. <오페라의 유령>이 오페라인 줄 알고 관람하는 관객이 적지 않을 정도로 뮤지컬에 대한 인식이 약했던 당시 한국 문화계 전반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이번 공연의 주역으로 2001년 공연 때 뮤지컬 신고식을 치른 윤영석과 김소현이 한층 성숙한 기량으로 참여했고, 이외에 양준모, 홍광호, 정상윤, 최현주 등 한국 뮤지컬을 짊어지고 가는 든든한 기대주들이 가세했다.
파리 오페라 하우스. 경매가 한창인 이곳에 과거의 아픈 사랑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라울 자작, 안무가였던 마담 지리, 아름다운 멜로디의 오르골에 이어 등장한 것은 부서진 샹들리에. 강렬한 파이프 오르간이 압도하는 음악이 흐르면 팬텀, 크리스틴, 라울의 사랑이야기가 펼쳐진다.

 

 

 

바라보는 것만으로 부족한 금지된 욕망 , Phantom & Christine 윤영석, 최현주

 

신의 실수로 태어난 피조물, 부모님조차 거부한 저주받은 존재, 모든 것을 잠식하는 어둠 속에서 자신의 존재가 사라지기만을 바라며 시간의 무게를 견딘다. 한 줄기 봄의 입김으로 다가온 크리스틴, 그녀로 인해 세상은 빛을 얻고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아무도 허락하지 않은 사랑. 강제로라도 빼앗고 싶었던 그녀, 그녀만 가질 수 있다면 그 어떤 희생이라도 감수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나 불행한 그녀를 지켜볼 용기가 없다. 영원한 불행을 예감하면서도 한순간의 안도를 위해 그녀를 보내는 것이 옳은 것일까. 그녀는 짧은 입맞춤을 남기고 떠났다. 이미 죽은 거죽이라고 여겼던 입술에서 온기를 느낀다. 지금까지 살아왔고 앞으로 살아갈 시간을 모두 합친다 해도 결코 바꿀 수 없는 그 순간!

아버지는 말했다. 하늘나라에 가면 음악의 천사를 보내주겠다고. 어느 날 그가 나타났고 나의 영혼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목소리를 들으면 혼곤한 기분이 들고 가슴이 가빠진다. 스스로도 통제할 수 없는 전율, 그러나 그는 음악의 천사가 아니다. 영혼을 울리는 목소리 뒤에는 가면으로 가려진 흉측한 얼굴이, 그리고 그 뒤에는 상처받은 영혼이 있다. 차마 똑바로 쳐다보기도 힘든 추악함. 오랜 시간을 음지에서 지내면서 생긴 음습한 냄새. 외로움으로 뒤틀려진 괴팍한 성격. 살인과 광기. 차마 발을 떼지 못하는 것은 공포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연민. 어떻게 그를 혼자 두고 떠날 수 있을까. 불쌍한 에릭. 불쌍한 에릭.

 

 

 

피할 수 없는 두 개의 총자루,  Raoul & Phantom 홍광호 & 양준모

 

증오는 공포를 압도한다. 미지의 목소리가 크리스틴을 이끌고 어디론가 사라졌을 때 그가 느낀 것은 공포가 아니라 분노였다. 어린 시절 한 소년의 가슴속에 강렬하게 새겨넣은 불씨는 무대에서 그녀를 보는 순간 다시 타올랐다. 겉잡을 수 없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그녀에게 다가간 순간 그녀의 곁을 지키는 어두운 그림자. 상대는 실체 없이 존재하는 유령. 무덤가에서 그자의 실체와 대면했을 때 심장이 멎어버리는 듯했다. 지옥에서 뛰어나온 것 같은 커다란 해골과 불타는 듯한 눈, 가녀린 새처럼 떨고 있는 그녀가 없었다면 두려움에 압도되었을 것이다. 그녀를 지키기 위해 불구덩이를 지나야 한다고 해도 물러설 수는 없다. 지금 그가 총구를 겨누고 있다. 그리고 그 죽음이 될지도 모르는 길로 걸어간다. 사랑을 위해.

한 가지만이라도, 단 한 가지만이라도 라울 자작보다 내세울 것이 있었다면 크리스틴에게 고백할 용기를 냈을 것이다. 그렇게 강압적인 방법이 아닌 진심을 다한 마음으로 그녀에게 떳떳하게 나섰을 것이다. 그는 충분히 신사적이었음으로 설사 거부를 당한다고 해도 실연의 아픔을 의연히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여유가 없다. 실연은 곧 죽음. 아니 죽음 그 이상. 라울 그가 훌륭하고 장래 유망한 청년이라고 해도 그녀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죽음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팬텀과 라울, 크리스틴을 향해 선 빛과 그림자, 서로 양립할 수 없는 운명적 존재. 모든 것을 가진 라울이 크리스틴의 사랑마저 가져간다면 너무나 불공평하지 않은가.

 

 

벼랑 위를 걷는 사랑, Christine & Raoul 김소현 & 정상윤

 

어린 시절 스카프를 건지기 위해 물로 뛰어든 어린 라울을 기억한다. 우정과는 다른 이끌림, 그것이 우리를 먼훗날 다시 만나게 해줄 것이라고 믿었다. 객석에서 뜨거운 시선으로 바라볼 때부터 그를 알아봤지만 내색할 수는 없다. 엄격한 음악의 천사는 음악 이외의 다른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때는 그것이 일그러진 영혼을 가진 한 남자의 질투심이라는 것을 몰랐다. 마법과 같은 감미로운 목소리에 취해 지하미궁에서 그의 정체를 확인했을 때 연민과 두려움이 교차했다. 그것은 끈끈하게 나를 옭아매기 시작했고 이제는 벗어날 수 없도록 질긴 굴레가 되었다. 이런 고민을 풀어놓을 수 있는 것은 오직 라울뿐. 그가 팬텀의 굴레에서 자유롭게 해주지 않을까. 분명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음악의 천사는 너무나도 두려운 존재. 라울이 위험할 수도 있다.

크리스틴 다에? 공연장에서 그녀를 보았을 때 믿기지 않았다. 저렇게 아름다운 여인으로 성장했다니. 어릴 때 그녀에 대한 기억이 생생히 남아있지만 너무나 갑작스러웠고 놀라웠다. 하지만 그녀에게서는 어딘지 모를 불안의 기미가 보인다. 순수하고 맑은 눈망울을 하다가도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린다. 차마 털어놓지 못하는 고민이 무엇일까. 오페라 하우스의 지붕 위에서 그녀는 새장을 벗어난 새처럼 가녀린 날개를 파닥거리며 불안해했다. 그녀를 두렵게 하는 것이 무엇이든 걱정 말아요. 크리스틴 내가 언제나 곁에 있을 테니. 가슴속으로 파고드든 그녀는 어느새 잠이 든다. 그녀의 깊은 잠이 방해받지 않도록 든든한 안식처가 되어주고 싶다. 영원히.

 

 

진행 | 정세원, 김영주, 배경희
스타일리스트 | 유영선  헤어 | 한지선   메이크업 | 오미영(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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