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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피처 | 아역 배우의 모든 것 [No.80]

글| 김유리, 이민선, 배경희 2010-06-03 7,249

아역 배우

뮤지컬이 대중화되고 타깃 층이 다양화되면서 방송이나 영화 쪽에서 활동하던 아역 배우들뿐 아니라 새롭게 아역 배우를 꿈꾸는 많은 어린이들이 뮤지컬 쪽으로도 눈을 돌리고 있다. 아역 배우가 되는 방법과 오디션, 연습, 공연에 참여하게 되는 과정과 그 사이 놓인 현실적 고민과 과제를 살펴본다.

 

 

 

 

 

 

 

 

 

 

 

 


 

 

아역 배우의 모든 것

200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무대에 올려지는 뮤지컬의 수가 늘고 타깃 층이 다양해지면서, <애니>, <오즈의 마법사>, <소리도둑>, <미스 사이공>, <내 마음의 풍금>, <빌리 엘리어트> 등 아역 배우의 존재가 중요한 공연도 함께 늘어나기 시작했다. 스크린과 TV에서는 아역 배우가 이미 성인 배우를 능가하는 연기력과 감성으로 시청자의 마음을 빼앗은 지 오래지만, 뮤지컬 아역 배우의 경우 가창력이 기본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조금은 특수한 영역이었다. 그럼에도 공연 시장이 확대되고, 뮤지컬이란 장르가 대중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아이들과 부모님의 관심이 영화와 방송을 넘어 뮤지컬까지 확대되고 있다. 글 | 김유리

 

#첫 번째 단계 - 각종 접근 방법
뮤지컬 아역 배우가 되기 위해선 어디를 가야 할까? 포털 사이트에서 ‘아역 배우’를 검색하면 화려하고 다양한 방법과 장소가 제시된 결과 페이지가 보이지만, ‘뮤지컬 아역 배우’를 검색하면, 결과 페이지는 별다른 것이 없다. 전문적으로 뮤지컬 아역 배우를 양성하는 기관이나 학교가 없고, 보통의 아역 배우를 양성하는 곳에서 연기에 관한 전반을 아우르는 현실은 이러한 결과를 이미 예상하게 했다.
자녀가 뮤지컬 아역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어머니를 만나보니, 뜻밖의 모임을 추천한다. 동요를 부르는 ‘어린이 합창단’이다. 홈페이지를 통해 합창단의 전년도 활동 내용을 살펴보니 합창 대회 참가를 비롯하여, CF 촬영, 방송 출연, 뮤지컬 참여, 기업 CM 녹음, 각종 음악회 등 다양하다. 기본적으로 노래가 가능한 아이들이다 보니 활동 영역이 넓다. 이곳은 아이들의 무대 활동을 위해 다양한 장르의 음악 수업뿐 아니라 재즈 댄스, 탭댄스, 한국무용을 가르친다. 입단을 하면 뮤지컬 아역 배우의 기본적인 요소를 배우고, 다양한 활동 기회까지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 경기 지역만 해도 50여 개가 넘는다고 한다.       
활동 경력이 꽤 되는 또 다른 아역 배우의 어머니는 사적으로 준비하는 경우를 이야기해준다. 이 경우는 가장 기본적인 노래, 무용 레슨을 개인적으로 받는 것인데, 평균적으로 60분 기준으로 회당 10만 원 정도의 레슨비가 든다고 한다. 노래와 발레, 두 가지를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받고, 참여하는 공연의 춤형식에 따라 탭이나 재즈가 추가되기도 한다.


#두 번째 단계 - 오디션
아역 배우 오디션은 뮤지컬의 특성상 ‘노래와 춤, 연기에 능할 것’이라는 것이 전제되지만, 작품에 따라 세 가지 중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들이 있고, 선발 조건도 각양각색이다. 오디션 정보는 온라인으로는 각 작품의 홈페이지나 인터넷 카페, 그리고 오디션 정보를 모아놓는 인터넷 카페 등에 가입하거나 검색해서 볼 수 있지만, 오프라인으로는 큰 작품이 아니면 접하기가 쉽지 않다. 오디션 경쟁률은 작품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150대 1이다. 2006년 서울시뮤지컬단의 <애니> 아역 오디션에는 100여 명이 몰렸고, 2008년 <내 마음의 풍금>은 150여 명, 2009년 2월에 있었던 <빌리 엘리어트>의 경우는 1차에만 300명이 응시했다고 한다. 작품의 규모와 배역의 비중에 따라 경쟁률이 달라지기도 하지만, 쇼틱의 김민정 제작 감독은 매년 <내 마음의 풍금> 재공연 오디션을 진행하고 있는데 오디션에 응시하는 아역들의 오디션 내용이 예전에 비해 계속 좋아지고 있다고 한다.      
성인 배우들의 오디션에선 배우가 이제까지 만들어온 능력과 이미지를 보고 선발한다. 이미 입증된 능력을 토대로 가능성을 점쳐 보기 때문에 지정곡, 자유곡 심사로 비교적 바로 결과가 나온다. 아역 배우들의 오디션은 기초 심사는 성인과 비슷하지만 아역이 주연인 경우 아이들의 가능성을 중점적으로 살펴보는 방법으로 진행된다. 2008년에 공연된 <소리도둑>의 경우, 노래로 소통하는 여자 아이인 만큼 노래의 비중이 컸다. 1차에서 지정곡 2곡을 기준으로 심사하여 뽑은 10명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연출과 음악감독이 함께 참여하여 일주일 동안 몸짓, 호흡, 연기, 노래 등을 집중적으로 체크하는 워크숍을 열었다. 워크숍은 다양한 상황을 주고 숨겨져 있는 아이의 끼와 습득력을 천천히 살펴보기에 좋은 방식인데, 아역이 주연인 뮤지컬의 오디션 중 많은 수가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트레이닝을 포함하여 1년 동안 진행된 <빌리 엘리어트> 오디션의 경우는 자신만의 특기를 준비해 가는 일반적인 경우와 달리 그냥 와서 오디션에 참가해 보라했다고 한다. 학습된 것인지, 잠재력인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워크숍에서 춤을 보여주고 얼마나 따라오는지를 본다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트레이닝을 통해서는 습득력을 본다. 취재 과정에서 만났던 담당자들이 한목소리를 내는 것은 바로 아이들의 인성을 알아보기 위해선 워크숍이 필수불가결한 요소라는 점이다. 워크숍이 진행되는 동안 엄마와 떨어져 지내기 때문에, 아이가 엄마가 시켜서 배우를 꿈꾸는지, 자기가 원해서 하는지를 금방 알 수 있다고 한다. 결국 심사위원들은 당장은 조금 모자라고 준비가 덜 되었어도 스스로 즐기면서 하고자 하는 의지와 인내력이 있는 아이를 선발한다. 그걸 알아내기 위해 워크숍 동안 여러 이야기도 나눠보고, 일도 시켜보고, 경쟁하러 온 친구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지를 본다는 것이다.
한편, 오디션이 시작되면 아이와 엄마에겐 힘든 시간이 시작된다. 2006년부터 오디션에 참가하고 있는 한 아이의 엄마는 그나마 작년에 본 오디션에서는 아이가 혼자 대기하는 시스템이라 그간 대기실에서 벌어지던 엄마들끼리의 눈치 경쟁과 아이들의 부담감은 훨씬 줄었다고 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아이들이 주역인 공연은 일년에 한두 작품밖에 없다보니 떨어지면 내년을 기다려야 해서 엄마나 아이에겐 굉장히 큰 부담이 된다. 이 때문에 워크숍 기간에 아이와 엄마들 간 겪게 되는 경쟁과 시기, 상처가 생각보다 굉장히 심하다.


#세 번째 단계 - 연습, 공연, 개런티
오디션에 합격한 아이들은 계약을 진행하고, 연습 스케줄을 잡는다. 초연 때는 10주, 재 공연엔 8주의 연습 스케줄을 잡게 되는 게 일반적이다. 연습 초반엔 오후 수업까지 받고 이후 5시부터 3~4시간의 연습을 한다. 공연에 가까워질수록 오전 수업만 받고 연습실이나 극장에 와서 밤까지 진행되는 연습에 참가한다. 이 연습 시간은 아역의 비중에 따라, 아역과 성인 배우의 파트 비중에 따라, 연출의 스타일에 따라 가변적인데, 대부분 공연에 가까워질수록 성인 배우들처럼 일명 ‘텐 투 텐’이라는 12시간 연습에 들어가기도 한다. 이에 대한 학교의 출석 대체는 예전에 비해 자유로워져서 출결 사항에 문제가 없을 정도로 협조적이다. 학원이나 숙제 등은 연습실에 와서 하게 되거나, 연습이 끝나고 집에서 하기도 한다.
공연이 시작되면 주 7~8회 공연을 두세 명의 아역 배우가 같은 역을 번갈아 맡는다. 주중엔 보통 오후 8시, 주말엔 낮 공연과 저녁 공연을 하게 되는데, 보통 헤어 및 메이크업, 의상 준비, 식사를 위해 늦어도 공연 시작 3~4시간 전에는 공연장에 도착해 있어야 하는 게 일반적이다. 기본적으로 국내의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15세 미만 청소년은 노동부 장관의 취직인허증을 발급받은 자만 근로자로 인정되고, 13세 미만 연소자의 경우는 예술 공연 참가를 위한 경우에만 인허증을 발급한다. 즉 공연에 서는 13세 미만 연소자는 근로자로 인정된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원칙적으로 오후 10시부터 새벽 6시까지 야간 근로를 할 수 없으며, 근로 시간 역시 원칙적으로는 하루 7시간 이상이 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평일 저녁 8시에 시작해 러닝 타임이 2시간 30분 정도, 커튼콜에 참여하는 것을 명예롭게 생각하는 국내 정서상 야간 근로 조항은 엄격하게 지켜지고 있지 못하다. 그래도 ‘끝없는 기다림의 과정’이라 일컬어지는 방송과 영화에 비해 비교적 스케줄이 정확한 편이다.  
이렇게 낮에는 연습, 밤에는 공연을 해야 하는 아역 배우들은 어느 정도의 개런티를 받을까? 앙상블 아역의 경우 성인 앙상블의 50~60퍼센트 정도를 지급하고, 아역 주인공의 경우는 성인 앙상블과 비슷한 수준으로 지급하는 게 일반적이라 한다. 보통의 성인 배우들은 회당 기준으로 개런티를 산정하나, 성인 앙상블과 아역들은 작품 전체 출연료로 계약해서 연습비 조로 일정 금액을 플러스해서 받는 경우가 더 많다. 


아역 배우로 산다는 것
어린 시절 무대에 선다는 것은 소중한 경험이다. 요즘처럼 1인 자녀가 많은 때에 다수의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것, 성인 배우들과 함께 생활한다는 것은 어른을 대하는 방법도 배우고 사회성과 책임감을 기를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남 앞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도 익히고 이를 통해 자신감을 키울 수 있는 경험이 자아실현과 인생 방향 설정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하지만 시간과 개런티의 문제는 한번쯤 논의되어야 할 문제다. 어린이의 공연 참가에 대한 조항이 노동법에 잘 규정되어 있는 영국이나 미국, 일본의 상황에 비교하면 국내의 현실은 아직 의식적으로나 제도적으로 미비한 상황이다. 실제로 아역 배우를 키우고 있는 엄마들의 가장 큰 고민은 올인을 원하는 연습/공연 일정 때문에 아이들이 학교에 못 가는 일이 다반사라는 점, 그 때문에 그 시기에 해야 할 공부에 분명히 지장이 있다는 점이다. 브로드웨이의 경우, 배우 활동 때문에 학교 수업과 튜터링에 지장이 가지 않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개런티 부분도 역시 고민거리다. 아역의 어머니들은 아역도 성인 배우만큼 시간적, 심적으로 집중하는데, 개런티를 책정할 때만큼은 ‘배우’가 아니라 ‘어린이’로 보는 것에 불만이다.
한편, 자신의 아이가 아역 배우가 되길 바라거나 이미 그 길로 들어선 아이를 둔 부모님들은 본인의 아이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과한 수준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런 과한 애정은 불필요한 과열 경쟁을 가져온다. 현장에서 오디션을 진행하는 한 관계자는, 결국 아이들에게서 보는 것은 ‘노래와 움직임’이라는 기본기와, 습득력으로 가늠할 수 있는 가능성임을 강조했다. 좋은 기본기를 다지는 것 외에 지나친 개인기 등의 부수적인 것들로 경쟁이 과열될수록 피해를 보는 것은 결국 아이들일 것이다.
아역은 나이라는 시간적 한계를 가진다.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일반적으로 아역의 나이를 초등학교 5~6학년까지로 보고 있다. 중학교 이상이 되면 키고 크고, 2차 성징이 나타나면서 앳된 어른 배우의 느낌이 나온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아역이 중학교 1학년이 되면 대부분 작품에서 졸업을 시킨다. 그래서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 사이의 공백기가 시작된다. 갑자기 설 수 있는 무대가 사라졌다는 생각에 어머니와 아이들은 한동안 걱정과 불안의 시기를 보내기도 하지만, 이미 그 단계를 지낸 선배 아역 어머니는 오히려 성인 뮤지컬 배우를 목표로 하는 아이들에게 이 시기가 약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이야기한다. “그간 집중하지 못했던 공부도 하고 다양한 소양도 닦고, 자기만의 새로운 특기를 만들 수도 있는 시간이며, 다른 분야로 도전해보는 진로 탐색의 시간이 될 수도 있다. 또한, 예술학교로의 진학 등 꿈에 접근할 수 있는 다양한 루트를 경험해보며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시간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아이와 부모님이 버려야 할 것은 조바심이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목표 의식과 도전 정신일 것”이라고 당부했다. 

 

 

 

 

 

 

 

 

 

 

 

 

 


 

어른들은 모르는 아역의 존재 이유

성인 배우들에게 기대할 수 있는 매력에 한계라도 느낀 듯이 TV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아역 배우들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그들은 어른들이 흉내 낼 수 없는 천진난만함과 순수함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데,이런 추세는 더디긴 하지만 뮤지컬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어린 나이 특유의 귀여움으로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함은 물론이고 성인 배역이 줄 수 없는, 혹은 성인 이상의 감동을 주는 뮤지컬 속 어린이 배역을 만나본다.  글 | 이민선 


순수한 꿈을 꿀 수 있는 나이
어린이 배우가 등장하는 작품 중에 현재 국내외에서 가장 대두되고 있는 작품은 올해 8월 국내 초연을 앞두고 있는 <빌리 엘리어트>일 것이다. 이 작품은 탄광촌에서 자란 11세 소년이 발레리노의 꿈을 실현하는 이야기이다. 어른들이 10대 아이들에게 바라는 가장 일반적인 것은 바로 꿈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꿈보다는 현실을 좇아야 하고 여전히 꿈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어른들이 넘쳐나는 세상에, 어린 나이에 재능을 발견하고 꿈을 실현하는 것은 어린이들의 희망사항이기보다는 어른들의 로망에 가깝다. 그런 이유로 어른들은 라만차의 기사가 부르는 ‘이룰 수 없는 꿈(The Impossible Dream)’에 뜨거운 공감을 하지만, 빌리가 느끼는 찌릿한 ‘전율(Electricity)’에는 자신이 감히 닿을 수 없었던 경지에 대한 경외감을 느끼게 된다.
<빌리 엘리어트>의 배경은 탄광촌, 탄광업이 사양길에 접어든 시점이다. 어린 빌리는 꿈을 갖지만, 빌리의 가족을 비롯한 동네 사람들은 일상의 터전을 잃는다. 따라서 발레는 소년의 꿈에서 척박한 현실 속의 한 줄기 희망으로 의미가 확대된다. 아버지는 파업 중인 동료들을 배신한 채 일자리를 찾아 나서고, 동네 사람들은 예술이란 게 어떤 것인지도 모르면서 기꺼이 빌리를 격려하는데, 그것은 그들이 죽었다 깨어나도 꿀 수 없는 꿈을 그가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에 발 묶여버린 어른들이 할 수 없는 탈출을 감행함으로써, 빌리는 가장 큰 미션을 수행한 셈이다.


부모 찾아 삼만 리의 행복한 결말
불행에 처한 주인공들의 역경 극복기는 감동과 희망을 주는 단골 스토리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겪을 수 있는 가장 손쉬운 고통은 가난이며, 어린이들이 처할 수 있는 가장 비참한 현실은 부모를 잃는 상황이다. 따라서 <애니>와 <올리버!>에서처럼, 가난한 고아가 종종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국내에 정식으로 소개되지는 않았지만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를 원작으로 하는 <올리버!>는 고아로 태어난 올리버가 갖은 고난을 겪은 후에 헤어졌던 할아버지를 만나게 되는 내용이다. 해사하고 귀족 같은 외모의 사생아가 나쁜 어른들에게 핍박받는 모습은 관객들에게 애잔함을 안겨주기 충분하고, 결국 그가 외모에 걸맞는 고귀한 출신임이 밝혀져 행복한 결말을 맺음으로써 관객들을 안심시킨다. 이는 착하고 예쁘지만 가난한 여성이 어느 날 우연히 왕자의 눈에 띄어 신데렐라가 되는 이야기와 같은 맥락이다.
1930년대 공황기의 미국에서 부모를 찾는 애니의 이야기도 별반 다르지 않다. 애니는 고아지만 밝고 씩씩한 성격의 아이다. 일만 알던 괴팍한 성격의 억만장자 워벅스 씨는 애니를 통해 희망과 사랑을 알게 되고, 결국은 애니를 입양하게 된다. 부모를 그리워하는 애니가 ‘Maybe’라는 노래를 부르는데, 그 노래의 가사는 부모님이 ‘젊고 똑똑하고 좋은 사람들일 것’이라는 기대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워벅스 씨는 애니가 노래에서 바랐던 대로 친부모만큼이나 ‘좋은’ 사람이 된다.
아이들은 약하고 보호받아 마땅한 존재이다. 착하고 예쁜 고아들이 좋은 부모를 만나는 것은 아이들을 행복하게 만들 책임이 있는 어른들에게나 그 사회에서는 최선의 결말이다. 게다가 관객에게 아름답고 행복한 결말을 안겨주기 좋아하는 뮤지컬의 속성에도 부합하고 말이다.


어른이 되고 싶어요
남루한 현실에서 공주로 거듭나는 거창한 변신이 아니더라도 아이들은 늘 변한다. 몸이든 마음이든 하루가 무섭게 자란다. <라이온 킹> 1막의 마지막 장면에서, 타잔처럼 나무줄기를 타고 무대 오른쪽으로 사라진 어린 심바가 순식간에 뻥튀기 되어 어른 사자의 모습으로 나타났을 때처럼 말이다. <라이온 킹>은 프라이드 랜드의 왕자 심바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누명을 쓴 충격으로 집을 떠났다가, 성장한 후에 돌아와 선왕의 죽음에 복수하고 땅을 되찾는 이야기이다. 아버지와 함께한 어릴 적 추억과 집을 떠난 후의 방황이 1막 전체에 걸쳐 전개되는데, 이때의 심바는 아역 배우가 연기한다. 어린 사자는 아프리카 초원을 누비며 광활한 대지의 생리를 몸소 배우고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는데, 이때의 경험들이 후에 왕으로 일어설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아버지의 비호 아래 자라는 대신, 혼자 세상에 부딪쳐 배움으로써 왕이 될 운명을 타고 난 자가 왕국을 지켜낼 자격을 얻기 위해 거쳐야 할 시험을 치른 셈이다.
심바의 성장이 그가 가진 비범한 출신에서 오는 조금 특별한 것이라면, 홍연이의 성장은 누구에게나 있음직한 평범한 것이다. <내 마음의 풍금> 속 홍연이는 서울에서 갓 부임한 총각 선생님을 만나면서 첫사랑을 경험한다. 처음으로 자신을 ‘아가씨’라고 불러준 선생님의 말을 통해 그녀는 정말로 ‘아가씨’가 되어간다. 커피와 ‘케니 브라운’을 알아가는 것으로 홍연의 성장이 표현된다. 그녀의 성장이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10대를 지나오며 설레는 풋사랑을 마음에 품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다. 어른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 같은 첫사랑을 경험함으로써 홍연이는 단단한 껍데기를 깨고 나오는 나비가 된다.


서로의 손을 이끌다
<사운드 오브 뮤직> 속의 폰 트랩 대령의 자녀들이나 <소리도둑>의 아침이는 자신의 결핍된 부분이 충족되면서 성장하게 된다. 거기에는 음악이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는 공통점도 있다. 그리고 두 작품 속 아역의 성장이 흥미로운 것은 어른들의 도움으로 아이들이 행복을 되찾는 동시에 어른들 역시 그 아이들의 영향으로 긍정적인 변화를 겪는다는 점이다.
오랜 군생활로 엄격하고 딱딱한 성격을 지닌 폰 트랩 대령은 자녀 교육에도 그런 성향을 유지했다. 아버지의 호루라기 소리에 따라 생활하던 일곱 명의 자녀들은 가정교사 마리아에게 노래와 춤을 배우면서 이전에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즐거움과 설렘을 느낀다. 마리아는 부재했던 어머니를 대신해, 첫째 딸 리즐부터 막내 그레텔까지 그 나이의 아이들이 갖기 마련인 고민에 충실히 답한다. 아이들은 그녀에게서 부족했던 애정과 따뜻함을 얻는다. 전과 달리 활기차게 바뀐 아이들의 모습은 무뚝뚝한 폰 트랩 대령의 마음도 누그러뜨린다. 그는 행복해하는 자녀들을 보며 마리아에게 감사의 마음과 동시에 사랑의 감정을 품게 된다. 마리아와 아이들의 노래는 그들 모두에게 새로운 가족을 선물하는 결과를 낳았다.
<소리도둑>의 아침이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말을 잃어버린 아이다. 웃음과 소리를 잃은 채 살아가던 아침이가 말문을 트게 된 것은 노래를 통해서이다. 노래로 대화하는 아침이를 발견한 이는 말더듬이 치린이와 무능한 작곡가 유준이다. 치린이나 유준 역시 외부와의 소통에 원활한 편은 아닌데, 그런 이들이 아침이가 세상과 소통하도록 돕는다. 그들의 노력에 반신반의하던 마을 사람들도 아침이를 위해 의기투합하여 처음으로 노래를 부르는데, 한적하다 못해 삭막했던 마을은 노랫소리로 활기를 얻게 된다. 젊은 시절의 의료 사고에 대한 자책감으로 스스로를 고립시킨 소아과 최원장도 이들의 노래에 가세하며 세상 밖으로 나온다. 자신을 짓누르던 자책의 무게를 덜어냄으로써 아침이도, 마을 사람들도 음악이 이끄는 바깥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다. 어른이 어린이를 돕기 시작하지만, 순수하고 맑은 아이들을 통해서 어른들이 깨닫고 위로받는 경우도 많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인정할 수밖에 없다.


작지만 강렬한 존재감
실재하는 인물이지만 상징적 존재로 등장하는 아역도 눈에 띈다. <남한산성>의 나루와 <모차르트!>의 아마데의 경우가 그러한데 둘 다 현실 속 인물이긴 하나, 그들의 말과 행동은 그들 자신의 것이라기보다 작품 전체의 주제를 드러내기 위한 기제로 작용한다.
<남한산성>에서 나루의 아버지는 어지러운 역사의 희생자로 죽임을 당하고, 나루는 광대 부부를 따라 삶을 이어간다. 슬픔으로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씩씩하게 노래하는 나루의 모습은 난세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가는 민초들의 생명력을 상징한다. 공연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나루 테마’는 흐릿한 삶의 희망을 노래하는데, 혹독한 시련 속에서도 삶을 이어나가는 인간의 모습은 <남한산성>이 전하려는 주제와 통한다. 앞장서서 고군분투하는 이들보다 그 난장에서 한 걸음 뒤에 물러서 있는 아이의 존재가 더 명료하게 다가오는 것은 그 진흙 속 싸움이 아이의 밝은 미래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모차르트!>의 아역은 상징적인 의미가 더욱 뚜렷하다. 아역 아마데가 크고 나서도 성인 모차르트 옆에 함께 등장하여, 모차르트의 분신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모차르트의 외형은 달라지고 주위 상황도 바뀌지만, 모차르트 내면의 천재성과 욕망은 어릴 적 그대로임을 아마데를 통해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모차르트가 행복할 때나 슬플 때나 그의 곁을 지켰던 아마데는 결국 모차르트를 가장 외롭게 만드는 존재였다. 아마데는 몇몇 선택된 소수에게만 주어지는 천재성을 상징한다. 그리고 모차르트는 자신의 천재성에 의해, 즉 아마데가 곡을 쓰던 펜촉에 찔려 죽는다. 마냥 착하고 귀여운 얼굴의 아역에게 죽임을 당하는 장면은 모차르트의 죽음을 극적으로 부각시키면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모차르트!>가 천재 작곡가의 비범한 삶과 죽음을 그린 만큼 천재성을 상징하는 아역을 작품 속에 배치한 것은 흥미롭고 적절한 설정이었다. 

 

 

 

 

아역 배우 재범이의 하루   정리 | 배경희

 

07:00~08:00 기상, 등교 준비
오늘은 학교에 지각을 했다. 눈을 떴더니 8시였다.
엄마가 내가 너무 곤히 자서 안 깨웠다고 했다.
엄마 때문에 학교에 늦었다고 짜증을 마구 부렸다.

세수하고 이를 닦고 엄청난 속도로 학교에 갈 준비를 마쳤다.

 

08:30~15:00 학교 도착, 수업
아빠가 늦게 출근하시는 날이라 학교까지 데려다 주셨다.
다행히 조금만 늦었다. 선생님께도 많이 혼나지 않았다.
지난주에는 공연 연습 때문에 오전 수업만 받고 갔었는데 선생님이 많이 이해해 주셔서 참 다행이다.

 

15:30~16:30 방과 후 공부방에서 공부
학교가 끝나고 다른 애들은 준하 생일 파티를 간다고 했는데 나는 못 갔다.

다음주부터 중간고사라서 공연장에 가기 전에 공부방에 가야 했다.
한 시간 동안 과외 선생님하고 중간고사 공부를 했다.

 

16:30~22:30 공연장으로 이동, 저녁 공연 준비, 공연 종료 후 집으로 갈 준비
평소보다 10분 일찍 공연장에 도착했다.
분장을 마치고 저녁을 먹는데 주인공 누나가 나보고 점점 더 잘한다고 기특하다고 해줬다.
기분이 좋았다. 저녁을 먹고 나서 마이크 테스트도 하고 무대 리허설도 했다.
매일 하는 건데도 재밌다.

오늘은 숙제가 많아서 분장실에서 틈틈이 숙제를 했다.

 

22:30~24:30 귀가, 씻기, 숙제하기, 취침 준비
엄마하고 아빠가 모임에 가셔서 혼자 버스를 타고 집에 왔는데 버스 안에서도 책을 봤다. 우리 아빠가 그랬다.
학교 성적 떨어지면 뮤지컬 못하게 한다고.
그래서 나는 열심히 안 할 수가 없다.
집에 도착하니까 열한 시 반이었다.
숙제를 아까 다 못해서 얼른 씻고 책상에 앉았다.
벌써 열두 시도 넘었는데. 그래도 두 밤만 자면 월요일이다.
월요일에는 공연을 안 하는 날이니까 평일에 못 했던 걸 월요일에 해야 한다.
노래 학원도 가고 발레도 배우러 가야 해서 월요일에도 친구들하고 놀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다.
그래도 내가 너무너무 좋아하는 발레 선생님을 만날 수 있어서 신난다.
아, 아침에 엄마한테 괜히 짜증을 부려서 죄송하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80호 2010년 5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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