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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로맨스 로맨스>의 조세핀, 낭만과 거짓말 [No.79]

글 |박민정 일러스트레이션| 권재준 2010-05-11 5,425


<로맨스 로맨스>의 조세핀

낭만과 거짓말 

 

첫 만남이 드라마틱할수록 조세핀의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매력적이었으나 실망스럽기도 했던 알프레드를 알고 난 후부터 그런 생각은 깊어졌다. 그래서 그녀는 무언가 마음을 흔드는 일이 생기면 이성으로 감정을 누르려고 애썼다.  
“심장이 세게 뛸수록 내게 다가올 현실은 더욱 잔인할 거라고 판단하게 된 거죠.”
“알프레드가 시인이 아니어서 실망했던 겁니까?”
“휴, 제발 남의 연애사에 관심 갖지 말아요. 빛바랜 추억 속엔 거짓말만 가득하죠. 나도 못 믿는 내 기억을 불러내서 당신이 뭘 알 수 있겠어요?”
더위 때문인지 신경과민 때문인지 그녀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파르르 떨리는 눈썹 아래 이글거리는 눈동자는 불안한 기질을 드러내보였다. 날아오를 듯 기뻐하다가도 쉽게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곤 하는 사람들에게 흔히 볼 수 있는, 순간적인 열정이었다.
“지루해서 미쳐버리기 일보 직전이었죠. 번드르르한 신사들은 코르셋처럼 날 옥죄었고 결국 치렁치렁한 드레스를 벗어던지고 옷소매가 해진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길을 떠났죠. 낭만적인 사건을 저지르고 싶었던 거예요!”
남의 연애사에 관심 갖지 말라던 그녀가 어느새 자신의 이야기에 빠져들고 있었다.
“우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조세핀은 꿈을 꾸듯 눈을 반쯤 감은 채 말을 이어갔다. 인정해야 할 현실과는 별개로 연인과의 첫 만남을 영화 속 장면처럼 그럴 듯하게 묘사하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듯했다.
“우린 동시에 빠져들었어요. 날 유혹하려던 알프레드를 완전히 믿은 건 아니지만 그의 구애는 나를 소풍가는 아이로 만들어줬어요. 서정적인 눈빛은 영락없이 시인의 것이었다고요!”
그런 첫 만남,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무모한 용기를 발산하게 만드는, 어느 정도 기적이고 행운이지만 그런 종류의 사랑에 자주 빠지는 사람들에게는 결국, 그저 그런 습관일 뿐인 로맨스가 있다.  
“난 다이아몬드보다는 낭만을 안겨줄 연인을 꿈꾸고 있었어요. 소설이나 영화 속에 등장하는 남자들처럼요.”
“당신은 한때 유명한 배우였잖아요. 작품 속 인물을 현실까지 끌어내긴 어렵다는 걸 잘 아시지 않습니까?”
“하얗고 커다랗게 부풀어 오른 솜사탕은 달고 부드럽죠. 오래 두면 금방 녹아서 딱딱해지지만 난 그 달콤함이 허무맹랑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그녀는 인간적인 공감이나 신뢰보다는 연애 자체에 부여하는 의미가 큰 사람에 속하는 듯했다. 솜사탕을 선물할 수는 없어도 솜사탕 같은 말은 한가득 펼쳐놓을 수 있는 로맨티스트, 시인들처럼.
“조세핀, 참모습을 사랑해주기를 원한다면서 왜 모자공장 직공으로 변장했지요? 그건 당신 진짜 모습이 아니지 않나? 상류층의 가식적인 모습에 질려 있었다고 했지만, 결국 그게 바로 당신 자신이고 당신은 돈 없이 살 수 없는 사람으로 보이는데?”
“그래요. 내게 안빈낙도는 어림도 없죠. 하지만 늘 그러한 채로 있어왔던 내 모습을 부인해보고 싶었어요. ‘나’로부터 떨어져 나와야 비로소 진짜 ‘나’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렇게 진실을 구하고 싶었으면서 매력적인 시인과는 왜 진지한 대화를 못했었죠? 그와의 에피소드를 친구에게 편지로 늘어놓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친구가 아니라 당사자인 알프레드와 생각을 나눴으면 뒤늦게 서로의 실체를 확인하고 웃어버리는 어이없는 실수는 하지 않았을 텐데요? 대화도 않고 시인 복장을 한 사람은 시인이라 확신했던 당신은, 화려한 겉모습만으로 당신을 판단했던 사교계 사람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보입니다만.”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이것저것 묻고 답하는 건 전혀 내 스타일 아니에요. 어떤 인간을 단시간에 파악하기 위한 핵심을 찌르는 질문이 존재하기라도 하듯 인터뷰이를 만나기 전 고심해서 물을 거리를 작성하는 사람들이 있지요. 속지 마세요. 질의응답은 함정이에요!”
조세핀은 내내 질문만 하는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는지 미간을 찌푸렸다. 낭만을 비웃는 냉정한 현실에 대한 환멸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쉽게 타오르지만 쉽게 꺼져버리고, 영화 속 대사를 외듯 사랑을 속삭여왔던 그녀라면, 아무리 현실이 냉정할지라도 그럭저럭 받아들이며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  
“정말로 이상적인 연인은 꿈속에서만 만날 수 있어요. 현실의 애인들은 늘 어딘가 불만족스러웠죠. 엄마 품에 안겼을 때처럼 안락하고 완전한 느낌을 주는 환상 속 애인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에서 깨어나면 어찌나 공허하던지 눈물이 찔끔 흘러내렸고 현실의 애인이 미워지기까지 했지요.”
“허무맹랑하군요.”
나는 그녀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어딘지 슬픈 구석이 있는 코미디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난 다른 사람이 내게 싫증을 내는 것보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싫증을 내는 게 더 괴로웠어요.”
“뭐가 두려워서 그러고 살아요?”
“두려워하다니요?
“당신의 연애편력, 콤플렉스 때문 아닙니까?”
“그런가요? 하지만 진짜를 만나기까지 가짜들을 편력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내겐 수년간 감상해도 질리지 않는 음악과 시가 있으니, 뭐 이런 낭만이 있다면, 사람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가능성이 열려있는 거 아닐까요?”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79호 2010년 4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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