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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기획-2] 앙상블에게 묻다 [No.90]

글 |배경희 정리 | 배경희 2011-03-30 6,348

앙상블은 할 말이 많다, 또는 그렇게 보인다. 그런데 어떤 이야기가 하고 싶은 것일까? 앙상블  75명에게 직접 물었다.

(* 아래의 내용은 5개 제작사의 대형 공연에 앙상블로 참여하고 있는 배우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 결과입니다.)

뮤지컬에서 중년 배우를 보긴 힘들다. 메인 배우든, 앙상블이든 마찬가지다. 무대를 차지하고 있는 건 언제나 젊은 배우들이다. 그렇다면 앙상블의 연령대는 어느 정도일까? 남자 배우는 20대 후반 ~ 30대 초반, 여배우는 20대 중반~ 후반이 평균이다. 무대가 때가 되면 졸업하는 학교도 아닌데, 왜 이렇게 젊은 배우 일색인 걸까? 30대 후반의 배우 C는 이렇게 말했다. “개런티 문제 때문이에요.” 설명인즉, 앙상블의 경우 경력이 전혀 없는 신인 배우가 아니라면, 개런티 책정에 경력보다 나이가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제작사에서 나이 많은 배우를 캐스팅하기 꺼린다는 것이다. 따라서 팀의 중심을 잡아 줄 만한 연륜 있는 배우를 한두 명 캐스팅하고, 나머지는 경력은 부족하더라도 개런티 부담이 적은 젊은 배우를 선발한다는 이야기다. 스태프 A가 말했다. “무대에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애들을 뽑아서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고. 앙상블의 수준은 공연의 퀄리티와 직결된다. 제작사는 이를 모르고 있는 걸까?

 

 

“1년에 세 작품하면 운이 좋은 거예요.” 경력 4년 차 배우 K의 말이다. 한 해에 공연되는 작품 수를 고려해 볼 때(2010년 말 본지에서 조사한 결과 지난 한 해 서울 지역에서 공연한 뮤지컬은 167편이다), 운이 좋아 세 작품에 참여 했다는 이야기는 선뜻 수긍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납득할 수 있다. 앙상블이 필요한 공연은 주로 대형 공연인데 한 해 동안 올라가는 대극장 공연의 편수가 많지 않고, 연습 기간 한 달, 공연 기간 두 달, 여기에 오디션 기간까지 포함하면 한 작품에 참여하는 데 최소 4개월의 기간이 소요되며, 앙상블의 경우 더블 캐스트가 없어 겹치기 출연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K는 지난 한 해 3편의 공연에 참여하면서 일 년 동안 하루도 쉴 수 없었다고 했다. 공연과 다음 작품 연습을 병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1년에 세 작품이면 많이 한 거예요. 한 작품을 하고 나서 바로 다음 작품을 할 수 있도록 공연 스케줄이 짜여 있는 게 아니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오디션에 합격한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에요.”

 

 

세 번째 질문으로 배우들에게 어떤 교육 과정을 거쳤는지 물었다. 조사 결과 4년제 대학 뮤지컬 관련 학과 전공자와 2년제 대학 뮤지컬 관련 학과 전공자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두 항목의 응답률을 합치면 57퍼센트. 절반이 넘는 수치다. 과반수가 넘는 앙상블이 뮤지컬 배우를 전문 직업으로 생각하고 입시 전부터 준비를 해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어디를 막론하고 제작사가 앙상블을 스카우트하는 경우는 드물다. 배우들이 작품에 참여하는 가장 흔한, 거의 유일한 경로는 공개 오디션이다. “쉽게 말해 과거 공개 오디션에 300명이 몰렸다면 요즘에는 700명이 몰린다고 보면 돼요.” 홍보담당자 A의 설명이다. 한편 앙상블이 제작사의 콜을 받는 것은 이런 경우다. 출연을 결정했던 배우가 중도 하차해서 결원이 생기거나, 공연 개막을 앞두고 캐스팅이 완료되지 않았을 때, 해당 제작사의 기존 작품에 출연한 경험이 있는 배우들에게 연락이 간다.

 

 

예상은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1년 동안 벌어들인 수입으로 1,000만 원 미만이 가장 높은 응답률을 보인 것은 다소 충격적이다(응답자 중에는 500만 원 이하도 있다). “경력이 별로 없는 20대 배우의 경우 하루 페이가 5만 원 선이에요. 석 달 공연(주 8회 공연) 한다고 하면 4~5달 동안 500만 원 정도 버는 셈이죠. 연습 페이를 따로 주지 않으니까. 예전에는 연습 기간에도 일정 페이를 줬는데 요즘에는 거의 안 줘요. 게다가 지방 공연 일정이 잡혀 있으면 다른 공연에는 참여할 수 없으니 이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에요.” 공연 관계자 J의 말이다. 설문 조사 과정에서 한 가지 눈에 띈 사실은 참여하고 있는 작품에 따라 배우들의 평균 수입에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는 점이다. 제작사별로 앙상블 개런티에 큰 차이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주연 배우들의 개런티는 상승한 반면 앙상블의 개런티는 과거에 비해 오히려 낮아졌다”는 게 앙상블 배우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한정적인 제작비 안에서 스타 배우들의 값비싼 개런티를 지불하면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 이들이 앙상블이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그마저 정확하게 지급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경력 5년 차 배우 L은 “신생 제작사의 경우 돈을 거의 못 받는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대형 제작사의 경우 흥행에 실패해도 다른 작품으로 제작비를 충당할 수 있는 대안책(?)이 있지만 신생 제작사는 기댈 작품이 없기 때문에 위험 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돈을 못 받으면서도 계속 공연에 참여하는 것은 배우로서의 마인드가 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면 결국 하나 둘씩 무대를 떠날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6년 차 배우 B의 말이다.

 

 

개선돼야 하는 점? 단연, 개런티 문제다. 개런티 문제는 두 가지로 나뉜다. 기본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최저 임금으로 출연료를 조정해줄 것과 급여를 정확한 날짜에 지급할 것. 3년 차 배우 L은 이런 말을 했다. “길게는 6개월 이상 밀리는 경우도 다분해요. 지급이 늦어질 경우 최소한의 양해를 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배우 C는 반문했다. “계약서에는 출연 사항을 어길 시에 몇 배의 위약금을 지불해야 된다는 내용이 있어요. 그런데 왜 출연료가 밀릴 경우의 보상에 대한 조항은 없는 것일까요?” 개런티 문제 다음으로 근무 환경 개선이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근무 환경 개선에 포함되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쾌적한 연습 환경, 식사 제공, 휴식 공간을 마련해 줄 것, 체계적인 연습 시스템을 갖춰줄 것. 이번 설문 조사에서 가장 눈 길을 끈 것은 인격적인 존중을 해 줄 것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앙상블을 주연 배우로 성장하기 위해 거치는 하나의 단계라는 편견이 아니라 앙상블도 공연에 참여하는 배우라는 것을 인식해줄 것을 당부했다. 앙상블의 요구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90호 2011년 3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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