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한 해 동안 한국 뮤지컬계에 있었던 여러 가지 이슈들은 단지 올 한해만의 일이라기보다는, 연속성을 가지고 계속되어 온 현상들입니다.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움직임 중에 햇수가 바뀌는 것을 기준으로 칼로 자르듯이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지만, 우리가 그 흐름의 어느 위치에 와 있는지 이해하는 데는 이러한 분석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2010년 한국 뮤지컬계에서 두드러진 다섯 가지 현상과 시장 분석, 그리고 올 한 해 무대 위에 올려진 작품 리스트를 정리했습니다.
하나. 2010년 창작뮤지컬의 성패
2010년 창작뮤지컬을 설명하는 키워드는 두 개다. ‘복고적 소재’와 ‘드라마 원작 뮤지컬’. 최근 몇 년간 성공한 창작뮤지컬을 떠올려보자. 머릿속에 곧바로 떠오르는 건 <김종욱 찾기>, <빨래>, <오! 당신이 잠든 사이> 정도가 아닐까.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창작뮤지컬 시장의 대세는 로맨틱 코미디, 또는 휴먼 드라마였다. 그렇다면 올해는 어떤가. 올 한 해 관객과 평단으로부터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낸 창작뮤지컬로 <피맛골 연가>, <서편제>, <왕세자 실종사건>을 꼽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세 작품 모두 한국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라 할 만하지만 그뿐만 아니라 작품을 풀어가는 방식의 변화에 주목할 만하다. 한국적인 소재를 가지고 이야기하되, 작품의 톤은 현대적이라는 것. 앞서 언급한 세 작품은 시대적 배경을 고증하는 데 기대지 않고 현대적 연출로써 극을 풀어간다. <서편제>의 이지나 연출가는 “<서편제>라고 하면 처음부터 고리타분하다고 여기는데, 사람들이 판소리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을 깨고 싶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복고적 소재를 다룬 뮤지컬’의 경우, 중장년층을 극장으로 끌어들여 관객의 연령층을 넓힐 수 있는 이점이 있지만 자칫 잘못하면 뮤지컬의 주요 관객인 젊은 세대에게 외면을 받을 수 있는 단점이 있다. 그동안 전통 소재 뮤지컬이 흥행에서 실패한 이유도 ‘촌스럽고 고루하다’는 것이었다. 복고적 소재를 다루면서 형식이나 표현적인 면에서는 전통의 답습에서 벗어나 현대적인 숨결을 불어넣어 관객과 소통하는 데 성공한 것이 올해 창작뮤지컬의 바람직한 변화다.
반면, 숱한 화제를 모으며 개막했던 드라마 원작 뮤지컬은 어떤 결과를 남겼을까. 2007년 <대장금> 초연 이후 근근이 명맥을 유지해 온 드라마 원작 뮤지컬은 올해 무려 세 편의 신작이 무대에 올라 관심을 모았지만 실망스러운 결과를 남겼다. 원작 드라마의 후광 효과를 입을 수 있을 만큼 빠르게 뮤지컬로 기획된 <선덕여왕>은 완성도는 노력과 시간에 비례한다는 상식을 재확인시켰으며, <궁>의 경우 아이돌 스타 유노윤호의 출연으로 극장 용 개관 이래 최고의 관객 점유율을 기록했지만 작품의 내적인 완성도에서는 쓴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달콤한 인생>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마니아 취향의 수작이었던 원작 드라마의 품격을 무대에서 살리지 못했고, 한류의 후광 효과도 기대할 수 없었던 이 작품은 제작사의 사정으로 공연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막을 내리는 안타까운 결말을 맞았다. ‘원소스멀티유즈’ 열풍 속에서 대중과 맞닿아 있는 드라마를 뮤지컬로 제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시도다. 하지만 장르적 특성은 물론이고, 일단 러닝 타임부터 달라도 너무 다른 드라마를 뮤지컬로 만드는 것은 애초에 쉽지 않은 모험이다. 드라마가 원작인 뮤지컬은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에서도 찾아보기가 쉽지 않음에도 국내에서 유독 드라마 뮤지컬이 자주 제작되는 이유는 뭘까. 먼저 대중적인 인지도가 있는 원작의 후광에 기대 한류 효과를 겨냥하고 만든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는 드라마 원작 뮤지컬이 국내에서 작품성을 검증받기 전부터 해외 시장 진출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드라마의 판권을 가진 제작사가 뮤지컬 장르에 대한 이해와 애정 없이 원소스멀티유즈의 달콤한 열매만을 바란 채 고민하지 않고 무대에 도전한 것이 근본적인 패인 중 하나일 것이다.
둘. 아이돌과 한류 스타의 캐스팅 봇물, 가능성의 확인
계속된 공연계 불황으로 캐스팅의 비중이 더없이 커진 올해, 키워드는 ‘스타’였다. 특히 해외 팬을 보유한 ‘아이돌 스타’와 배우와 가수를 겸하고 있는 ‘한류 스타’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아이돌 스타의 뮤지컬 진출은 2008년 ‘빅뱅’의 승리가 <소나기>에 출연한 이후 꾸준히 있어왔으나, 2010년 한 해 동안 13명의 아이돌 스타가 뮤지컬 무대에 오르면서 정점을 찍었다 할 수 있다. 이미 다양한 해외 공연과 유투브를 통해 아이돌 스타의 인지도가 한반도 밖으로 확산되어 있는 상태에서 지난 1월 아시아 내 큰 인지도를 쌓아온 ‘前 동방신기’의 멤버 김준수가 <모차르트!>의 공연 10회차 3만 석을 매진시킨 ‘사건’이 도화선이 된 셈이다. 이후, 웬만한 대형 뮤지컬에서 아이돌 스타의 이름을 찾기란 어렵지 않은 일이 되었다.
전반기에는 김준수, 태연, 온유 등 현재 대중들로부터 가장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는 아이돌 스타들이 뮤지컬 무대에서 가능성을 시험했다면, 후반기에는 이를 바탕으로 아이돌 스타와 한류 스타가 함께 해외 팬 공략에 나선 양상을 보였다. 8월에는 군 제작 뮤지컬로 화제를 모았던 <생명의 항해>가 현역 복무 중인 한류 스타 이준기와 주지훈을 통해 매회 100명 이상의 해외 팬들을 불러 모았고, 9월에는 ‘동방신기’의 리더 유노윤호가 <궁>에 출연하여 매회 관람객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일본 팬들로 극장을 채웠으며, <락 오브 에이지>에는 원조 한류 스타인 안재욱과 신성우, 아이돌 스타 온유와 제이가 함께 출연하며 다수의 일본 팬과 중국 팬을 국내 극장에 불러 들였다. 또한, 한류 스타 강지환이 일본 공연에 주인공으로 직접 출연하여 2만 2천 석을 매진시킨 <카페인>처럼 한류 스타의 인기를 발판으로 창작뮤지컬이 해외에 진출해 인지도를 높인 경우도 있었다.
이런 ‘스타’의 진출이 모두 성공적이거나 긍정적인 결과를 낳은 것은 아니다. 성공 사례로 꼽히는 경우도 오랜 시간을 투자해 꾸준한 노력으로 뮤지컬계에서 실력을 인정받았다기보다는, 엔터테이너로서의 기본 자질에 적절한 이미지 캐스팅으로 가능성을 확인한 수준이다. <모차르트!>에 출연한 김준수, <태양의 노래>의 태연, <락 오브 에이지>의 온유 등이 이에 속한다. 한편, ‘인지도’와 ‘스타성’만 보고 캐스팅하여 기본기 부족과 연습량 부족으로 제 역할을 소화해내지 못한 이들도 있고, 제작사와의 조율 문제로 불발되거나 조기 하차한 경우도 있다.
2010년의 스타 캐스팅의 중심에는 단연 김준수가 있다. 아이돌 스타로서의 이미지와 극 중 캐릭터와 부합된 이미지에 대한 기대 효과로 국내외에서 티켓 파워를 증명했고, 2개의 뮤지컬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거머쥐었다. 많은 기획자들과 연예 기획사 담당자들이 이런 성과를 꿈꾸며 아이돌 스타를 뮤지컬로 이끌지만, 김준수의 사례는 최성희나 옥주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스타를 기용할 때는 작품의 특성과 캐릭터에 맞는 적절한 캐스팅만이 공연의 작품성과 흥행성을 동시에 보장할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증명한 셈이다.
셋. 섣부른 도전이 부른 어두운 결과
2000년 이후 2007년까지 무섭게 성장해온 뮤지컬 시장이 2008년부터 하락세를 보이며 올해도 침체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러 차례 뮤지컬을 제작하며 잔뼈가 굵은 제작사들은 그들이 쌓아온 노하우와 신뢰도를 바탕으로 작품 제작을 이어가거나 뮤지컬 시장의 현실을 인식하고 안전하게 불황을 견뎌나갈 방법을 모색하였다. 하지만 뮤지컬 시장에 대한 이해 없이 여전히 뮤지컬 한 편의 흥행이 큰 수익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장밋빛 꿈을 꾸며 제작에 뛰어든 신생 제작사들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호된 신고식을 치른 결과는 무대에 발을 딛자마자 가시밭길을 견디지 못하고 퇴장하여 자취를 감추는 것이었다.
영화 <내 사랑 내 곁에>와 <전우치>에 제작 투자를 했던 애플팝엔터테인먼트는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의 공연권을 취득하고 뮤지컬 제작에 뛰어들었다. 단시간에 창작뮤지컬을 개발하기는 어렵다는 뮤지컬 전문가들의 조언에 따라 애플팝엔터테인먼트는 <커피프린스 1호점>을 준비하는 동안, 소형 라이선스 뮤지컬인 <로맨스, 로맨스>를 먼저 선보이기로 결정했다. 신생 제작사의 신작에 대한 신뢰도가 낮아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제작을 이어갔다. <로맨스, 로맨스>에 참여한 스태프나 출연진, 작품 자체에 대한 평가는 호의적이었으나 적은 제작비가 산출해낸 공연의 외양은 허술했고, 마케팅 전략에서 미흡함을 보여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이지 못했다. <커피프린스 1호점>의 성공만을 기대하며 <로맨스, 로맨스>의 제작을 강행한 애플팝엔터테인먼트는 아쉽게 날개를 펼쳐보지도 못하고 뮤지컬의 꿈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올해 6월 국내에서 첫선을 보인 <코러스 라인>의 재무 이사가 배우를 폭행한 사건은 뮤지컬 관계자와 관객 모두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코러스 라인>이 브로드웨이에서 성공한 작품이어서, 뮤지컬을 처음으로 제작한 나인컬쳐의 기대가 컸을 것이다. 하지만 작품의 유명세만 듣고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은 화려한 세트도 없고 드라마틱한 스토리나 눈에 띄는 주인공이 없는 데 적잖이 실망했다. 한국 관객의 관람 경향을 고려하지 않고, 해외 연출가를 영입하고 원작의 내용을 고수하여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한 아쉬움을 남겼다. 인지도 있는 출연진이 없었다는 점, 의미 없는 연예인 캐스팅을 시도했다가 결과를 번복한 점 등도 공연의 신뢰도를 떨어뜨렸다. 수익을 거두지 못한 제작사들이 그렇듯이 임금 지급이 늦춰지거나 이행되지 않았고, 정당한 권리를 요구한 배우를 향해 되려 폭력을 행사해 충격과 실망감만 안겨주었다.
이후 다온커뮤니케이션즈가 제작한 <달콤한 인생>도 계획했던 공연 일정을 채우지 못하고 간단한 공지만으로 막을 내려, 출연 배우가 하루아침에 설 자리를 잃었다. 한국뮤지컬협회는 부실한 제작사로 인해 뮤지컬계 종사자들이 피해 입는 것을 막기 위해 해당 제작사에 제재를 가하는 대책을 마련하고 있으나, 구체적인 제보가 없거나 협회에 등록되지 않은 제작사일 경우에 대처할 방법이 없어 예방이 쉽지 않다. 현재 뮤지컬 시장을 냉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제작에 뛰어드는 일은 무모한 일이다. 속도를 내어 전진하기보다는 차근차근 단계를 밟으며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이 도전의 쓴맛을 덜어내는 방법이다.
(다음 페이지에 계속)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87호 2010년 12월호 게재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