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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Culture In Musical] 뒤마가 리슐리외 추기경에게 진 빚 [No.87]

글 |김영주 2010-12-08 5,646

뮤지컬 <삼총사>

 

 

1703년, 파리의 바스티유 감옥에서 벨벳 가면을 쓴 남자가 세상을 떠났다. 이탈리아 토리노 인근 피네롤로 감옥에서 옥살이를 시작했다가 바스티유로 옮겨져서 도합 33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투옥 당한 남자는 마르치알리라는 이탈리아 이름으로 생폴 교구 묘지에 묻혔다. 한 세대가 바뀌는 시간보다 긴 세월을 옥중에서 보내다 세상을 떠난 이 정체불명의 남자에 대해 처음 기록을 남긴 문필가는 볼테르였다.


빈정거림에 일가견이 있었던 프랑스의 계몽주의 철학자 볼테르는 어린 루이 15세 대신 나라를 다스리던 섭정 오를레앙 공작의 재정 감축 정책에 대해 “궁정의 말(馬)을 반으로 줄이느니 궁정의 바보들을 반으로 줄이는 편이 나을 거다”라고 한마디를 보탰다가 섭정으로부터 “그대가 한 번도 보지 못한 곳을 보여줄 것을 약속하지”라는 우아한 경고 메시지를 들은 다음 날, 바스티유 감옥에 수감 당했다. 1717년의 일이다.

 

앙시엥 레짐을 상징하는 바스티유의 어둡고 폭압적인 이미지에 한 몫을 톡톡히 한 ‘철가면’ 이야기는, 옥중에서도 유명인으로 대우 받고 나름 잘 지내던 볼테르가 소일거리를 찾아 이런저런 글들을 끼적거린 덕분에 바깥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볼테르가 바스티유에 갇힌 것은 가면을 쓴 사내가 땅에 묻힌 지 14년 후의 일이었지만, 타고난 글쟁이 기질을 십분 발휘해 본 것처럼 생생하게 철가면에 대해 묘사했다. 철가면은 교도소장조차 고개를 숙여야할 만큼 지체 높은 몸이었지만, 철가면을 벗는 순간 바로 살해하라는 철칙 아래 수감되어 있었다,  큰 키에 우아한 행동거지가 돋보였다, 철로 된 가면 아래쪽에 용수철 장치가 있어서 식사를 할 때도 가면을 벗지 않을 수 있었다는 것이 볼테르의 설명이었다.


그가 실제로 어떤 인물인가에 대해 여러 가지 설이 있었는데, 루이 13세의 왕비 안 도트리슈가 재상 마자랭, 또는 경비대장과의 불륜 관계로 낳은 루이 14세의 반쪽짜리 형제라는 설부터, 계승권 문제가 불거질까봐 제거된 루이 14세의 쌍둥이 동생이라는 설까지 있었다. 이 철가면 이야기는 파리의 평민들뿐만 아니라 왕실 인사, 그리고 문필가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입 있고 글줄깨나 쓴다는 이들이 돌아가며 한 마디씩 보태면서 ‘철가면’ 신화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는데, 이 믿거나 말거나 식의 소재로 가장 큰 돈을 번 사람은 역시 대중 취향 역사소설의 최고봉인 프랑스의 월탄 박종화(또는 김진명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알렉상드르 뒤마이다.


알렉상드르 뒤마는 루이 13세의 궁정을 배경으로 정의감으로 똘똘 뭉친 달타냥과 삼총사들이 벌이는 모험담을 시리즈로 썼는데, 1844년 발표한 「삼총사」를 시작으로 1950년에는 3부 「브라쥐롱 자작(子爵)」을 완성했다. ‘루이 14세의 쌍둥이 형제가 감옥에 갇혀있다’라는 음모론을 바탕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친 이 이야기는 나이 먹을 만큼 먹고 커리어도 막바지에 다다른 달타냥과 삼총사들이 악행을 일삼는 루이 14세와 그의 쌍둥이 형제 ‘철가면’을 바꿔치기한다는 이야기이다.


뮤지컬 <삼총사>는 뒤마의 원작과 달리 감금된 쌍둥이 형제가 있는 국왕을 루이 14세가 아니라 그 아버지인 루이 13세로 설정하고, 국왕의 쌍둥이가 리슐리외 추기경이라는 엄청난 상상력을 발휘한다. 이 대단한 설정에 비하면 부자 2대의 이야기를 하나로 묶어버린 것은 놀라운 일도 아니다. 뮤지컬 <삼총사>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부르봉 왕가의 역사에 대해 잠시 잊는 편이 낫지만, 이 뮤지컬을 두고 남의 나라 역사를 왜곡했다고 나무랄 수도 없다. 왜냐하면 이미 알렉상드르 뒤마의 원작부터가 의도적으로 설정한 선악 관계 안에서 역사적 사실을 흥미 위주로 재창조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리슐리외 추기경은 프랑스 절대왕정의 기초를 마련한 명재상으로 이름 높은 정치가이자 성직자인데, 뒤마의 소설에서 나라를 위험에 빠뜨리려는 사악한 악역으로 묘사되어 이미지를 망친 불운한 인물이다. 뒤마 때문에 실제 성격과 다른 인물로 기억되는 것은 루이 13세도 마찬가지라서, 왕비의 불륜이나 의심하는 우유부단하고 어리석은 오쟁이 진 남편으로 묘사되는 이 사람은 사실 인생의 초반부터 생모와 권력 투쟁을 벌인 비범한 인물이고, 구교도 국가의 왕이면서 신교 편에서 30년 전쟁을 이끄는 무서운 실리주의자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알렉상드르 뒤마는 왜 성군 앙리 4세와 메디치가의 피를 절반씩 이어받은 사람다웠던 루이 13세를 무능하고 어리석은, 리슐리외 추기경의 허수아비로 묘사했을까. 그가 주로 활동한 시기가 프랑스 대혁명 이후의 격변기라 부르봉 왕조나 고위 성직자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을 때라는 것이 첫 번째로 추정할 수 있는 이유이다. 두 번째는 <삼총사>가 기사도 문학의 인물 구도를 따르고 있기 때문인데, 역사적인 사실만 냉정하게 따져보면 삼총사가 모시는 안 도트리슈는 적국의 스파이와 불륜 관계였던 부정한 왕비이고, 그들이 적대하는 리슐리외는 프랑스의 진정한 애국자라고 보는 편이 옳다. 하지만 알렉상드르 뒤마의 시대에 부르봉 왕조의 국왕과 권모술수에 능한 가톨릭 성직자는 독자가 호감을 가질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차라리 비련의 사랑에 빠진 아름다운 왕비와 그녀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멋진 기사들이 시대를 초월해서 사랑받을 만한 주인공들이었다. 그리고 이는 귀네비어 왕비와 랜슬롯 경의 사랑 이야기 이후로 서구 문화사에서 수없이 변주되고 있는 기사도 로맨스의 전형에 충실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역사를 다루는 모든 작가는 자신이 다루려는 시대와,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에 모두 종속되어 있다. 두 시대의 역사적 현실에 양다리를 붙잡힌 채로 머릿속에서 펼친 작가적 상상의 나래가 바로 <삼총사>인 것이다. 리슐리외와 루이 13세는 억울하겠지만, 어쩌겠는가, 후세가 이 가상의 모험담에서 얻는 즐거움이 죽은 이들의 이미지보다 더 소중한 것을.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87호 2010년 1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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