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곡, 죽은 황후와 아이돌을 위한 무도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지 알 수 없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만은 아닌 모양이다. <김준수 뮤지컬 콘서트 - 르베이와 친구들>에서 <엘리자벳>의 대표적인 넘버 여섯 곡을 들을 들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프랑스와 독일어권을 비롯한 비 영미 유럽 뮤지컬을 사랑하는 열성적인 마니아들이 직접 대본을 번역 하고 자막까지 만들어서 영상회를 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 열정 덕에 접하게 된 스크린 속의 <엘리자벳>은 유례없이 새롭고 의미심장하며, 어둡고 아름다웠다.
<엘리자벳>이 영화였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수도 있었겠으나 극장 안의 뮤지컬이 영상 속의 그것과 얼마나 다른지 아는 게 병이라, 저 독특한 매력과 가치를 지닌 작품이 한국에 들어올 수 있을 것인가 말 것인가에 속을 태울 수밖에 없었다. 마침 포화상태에 이른 한국 뮤지컬 시장에 <노트르담 드 파리>, <로미오 앤 줄리엣> 같은 프랑스 뮤지컬이 새로운 물꼬를 터주었고, 제작자들은 작품 수가 많지 않은 프랑스 밖에서 새로운 금광을 찾느라 눈빛을 빛냈다.
<엘리자벳>은 분명 그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작품이었다. 내로라하는 국내의 제작사들이 판권을 놓고 경쟁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고, 투어버전과 라이선스 중에 어느 쪽으로 방향이 정해질 것인가 같은 구체적인 사안들이 업계 종사자들의 입담에 올랐다. 이 즈음 <엘리자벳>의 제작비가 브로드웨이 빅4 못지않고, 2007년 빈 프러덕션의 오사카 투어는 전 좌석이 매진이어도 흑자를 낼 수 없는데, 일본의 대표적인 사철 기업 한큐가 창사 100주년 기념으로 팬 서비스 차원에서 유치했다는 ‘설’도 들려왔다.
사실 우메다 극장에서 <엘리자벳>을 보면서, 이 작품이 가진 매력과 위험요소가 모두 예상보다 크다는 생각을 했다. 합스부르크 황실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지만, 관객들이 좋아하는 로열패밀리의 화려한 라이프스타일을 재현하는 데는 별 관심이 없고, 그들 내면의 어두운 절망과 갈망을 형상화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한국 관객들이 오스트리아 황후의 기묘한 삶에 공감해줄 수 있을까 회의가 들기도 했다. 그래서였을까. 그 후 한동안 <엘리자벳>과 관련된 새로운 이야기는 더 들려오지 않았다. 그런데 그로부터 3년 후, <엘리자벳>의 2012년 한국 초연을 예고하기 위한 뮤지컬 콘서트가 열렸다.
올림픽 공원 체조경기장에서 나흘간 진행된 뮤지컬 콘서트에서 객석을 채우고 있었던 대부분의 관객들이 <엘리자벳>에 대해 사전지식이 없다는 사실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그 콘서트의 메인타이틀에 이름을 빌려주고 있는 스타가 아니었다면, 이런 성대한 방식으로 <엘리자벳>을 미리 만날 수 없었으리라는 것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동방신기는 잘 모르지만, 그 멤버들 중에서 시아준수라는 사람이 <모차르트>에 캐스팅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흥미로운 조합이라는 생각을 했다. 시아준수가 어떤 보컬, 어떤 개성을 가진 사람인지를 알아서가 아니라, 동방신기와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 사이의 분쟁에 대해 기사를 통해 대략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품 속의 모차르트가 현대의 스타에 가깝고, 극중 빈 사회의 살벌한 위선과 쾌락주의가 오늘날 쇼 비즈니스 계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시아준수는 다른 뮤지컬 배우들보다 저 문제들에 대해 더 많이 겪고, 느껴왔을 것이다. 하지만 <엘리자벳>은? 쉽게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오랫동안 <엘리자벳>을 기다려온 관객 중 한 사람이지만, 근본주의자처럼 ‘불순한 아이돌 스타를 신성한 뮤지컬 무대에서 몰아내자!’라고 외칠 마음은 없다. 다만, <모차르트>의 성공이 저 ‘신인배우’의 실제 삶과 극중 상황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행운에 힘입은 바 크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는 2012년에 보게 될 무엇이 어떤 것일지 상상하는 일이 불안하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하다. 어쨌든 덕분에 예고편은 재미있게 잘 보았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86호 2010년 11월호 게재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