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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기획] 캐스팅 - 무대를 여는 첫 번째 열쇠, 캐스팅 [No.86]

글 |조용신(공연 칼럼니스트) 2010-11-15 5,313

우리가 뮤지컬 무대에서 만나는 배우들은 어떤 경로로 작품에 참여하게 된 것일까? 물론 캐스팅이라는 일반적인 과정을 통해서일 것이다. 캐스팅은 오묘한 퍼즐의 조합과도 같다. 제작진은 대본에 명시된 배역의 성격과 악보에 표기되어 있는 음역대, 그리고 연출가가 생각하는 음색과 외모를 가이드라인으로 삼고, 그에 적합한 배우를 찾아 나선다. 하지만 이 단계에서 캐스팅이 마무리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바로 리허설 및 공연 스케줄 그리고 출연료 협상이라는 더 높은 산이 앞에 있다. 사인한 계약서를 각자 한 부씩 갖기 전에 캐스팅 프로세스의 완료는 없다. 매번 새로운 뮤지컬이 만들어질 때마다 캐스팅에 쏠린 관심은 실로 대단하다. 그리고 그 핵심은 유명인의 기용 여부일 것이다. 한쪽에서는 제 발로 찾아온 수백 명의 일반 지원자들을 대상으로 광산에서 원석을 찾으려는 오픈 오디션이 열리고 또 한쪽에서는 제작사와 비즈니스 관계를 맺은 협력사들이 티켓 파워가 높은 배우를 전략적으로 영입한다. 따라서 뮤지컬에서 캐스팅을 일반화해서 말하기는 어렵다. 배우를 찾는다는 행위만 같을 뿐 어떻게 찾느냐는 공연의 목적에 따라 달라진다. 어쨌거나 작품의 완성도를 고려하는 순수함과 상업적으로 계산기를 두드리는 영악함 그 중간의 줄타기 덕분에 우리는 그 작품에서 무대에 선 배우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스타 캐스팅의 절정, 김준수
지난 연말 아이돌 그룹 ‘동방신기’ 멤버였던 김준수(시아준수)가 뮤지컬 <모차르트!>의 한국 초연에 주인공으로 출연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국내외의 동방신기 팬들 때문에 그가 출연하는 회차의 티켓이 순식간에 매진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2004년 조승우가 <지킬 앤 하이드>에 출연해 당시로서는 드문 티켓 파워를 보여주면서 업계에 배우 캐스팅의 중요성을 각인시켰다면, 불과 5년 후에 김준수가 <모차르트!>에서 보여준 티켓 파워는 또 한 차원이 다른, 그야말로 메가톤급 충격을 안겼다.
김준수가 <모차르트!>에 출연하게 된 것은 우연한 기회에서다. 애초에 캐스팅 되었던 가수 조성모가 리허설도 하기 전에 부상으로 낙마하게 되었고, 이에 급히 대안을 찾던 중 우연히 내부 스태프의 개인적인 인맥 덕분에 소속사와의 분쟁으로 인해 동방신기 활동을 쉬고 있던 김준수의 캐스팅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사실 조승우의 <지킬 앤 하이드>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국내 뮤지컬 산업의 흐름을 돌이켜보면 흥행의 기본 요소가 작품에서 배우로 급격하게 옮겨오는 과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흥행을 지상 과제로 삼은 뮤지컬 제작사에서는 저마다 배우 캐스팅의 노하우를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해왔는데 김준수의 예처럼 때로는 프로듀서와 연출가, 캐스팅 디렉터 등이 주도하는 정통 캐스팅 프로세스가 아닌, 우연한 기회를 통해 이루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김준수 같은 레전드 급의 아이돌 가수라고 해도 5년 전이라면 지금처럼 뮤지컬 무대에 쉽게 출연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2005년 <아이다>에서 옥주현이 단숨에 여주인공으로 뮤지컬 무대에 소개되었을 때만 해도 아이돌 출신 연예인이라는 선입견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만 했다. 하지만 <아이다>, <시카고>, <브로드웨이 42번가> 등을 거치면서 옥주현은 아이돌 가수에서 뮤지컬 배우로 성공적으로 변신한 ‘롤모델’이 되었다. 최근에는 대중 가수 또는 TV나 영화를 통해 인지도가 높은 스타들을 한두 명 포함하지 않은 뮤지컬을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다. 뮤지컬의 산업화, 대형화를 이끈 대극장 해외 라이선스 작품이 아니더라도 소극장 창작뮤지컬에서도 유명인들의 이름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예전에 비해 캐스팅이 다른 모든 흥행 요소를 압도하는 상황에 이르렀고 몇몇 성공 사례와 적절한 롤모델이 등장하면서 ‘신인배우 김준수’가 레코딩 스튜디오와 콘서트 현장과는 다른 뮤지컬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경계를 넘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캐스팅의 의미와 캐스팅 디렉터
원론적인 물음으로 돌아가서 캐스팅이란 무엇일까? 캐스팅은 1차적으로 작품의 배역에 맞는 배우를 찾는 매치메이킹 과정으로 전문 영역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재 우리 뮤지컬 업계에서는 캐스팅만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캐스팅 디렉터’의 역할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보통 캐스팅은 오픈 오디션, 프라이빗 오디션, 스타 캐스팅 등의 다양한 루트를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이 중 오픈 오디션의 경우 현재 대부분의 프로덕션에서 크리에이티브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우리나라에는 모든 지원자들을 직접 만나기를 원하는 프로듀서와 크리에이티브들도 많지만 현장의 오디션 지원자들 가운데는 허수도 많다. 겉으로는 오디션에 수백 명 이상이 참여한 사실을 홍보 수단으로 활용하지만 이렇듯 기본 실력이 안 된 지원자들이 적지 않은 현실에서 이들과의 계속되는 오픈 오디션은 제작 프로세스의 속도를 더디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제작사로부터 캐스팅 가이드라인과 권한을 위임받아서 일정 실력 이상의 배우들 명단을 확보하고 나아가 캐릭터 오디션까지 담당해 압축된 복수의 후보자들 명단을 프로듀서와 연출가에게 넘기는 업무를 담당하는 캐스팅 디렉터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가령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 같은 선진 시장의 경우 대표적인 캐스팅 디렉터들은 제작사에 소속되지 않고 별도의 조직을 운영하면서 캐스팅 노하우를 보유하여 경쟁력을 키운다. 또한 실력 있는 배우들이라면 모두 배우노조(AEA)에 가입되어 있기 때문에 노조의 인력 관리 팀과 채널을 통해 제작사와 직접 연결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뮤지컬계에서는 현실적으로 이러한 방식을 바로 도입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대부분 제작사 대표가 프로듀서를 겸하는 시스템인 데다가 오디션에 심사위원으로도 참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프로듀서-특히 제작사 대표가 프로듀서를 겸한다면-가 오디션장에 나타나는 것만으로도 연출가, 작가, 작곡가, 음악감독 같은 작품의 실제적인 창작인력들은 부담을 느끼게 된다. 또한 설령 캐스팅 디렉터가 있다고 해도 시장에 공급되는 작품 숫자가 커지면서 그가 수집할 수 있는 실력 있는 배우 풀은 여전히 부족하다. 괜찮은 신인이 나타나기라도 하면 업계 관계자들에게도 금세 알려진다. 왜냐하면 뮤지컬 제작이 많아지면서 예전보다 리딩 워크숍, 대학교 공연, 크리에이티브 인력의 개인 레슨 같은 기회도 덩달아 늘어났고 ‘실력 있고 아무도 모르는 신인’이라도 업계 관계자의 눈에 띌 수 있는 경로가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성공적인 캐스팅, 뮤지컬 흥행의 제1법칙
뮤지컬은 무대 공연 장르 중 상업성의 총아로서 흥행을 지상 최대의 목표로 삼고, 그 흥행을 담보할 수 있는 요소로 마케팅을 펼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캐스팅이 흥행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브로드웨이에서는 실력 있는 창작자나 프로듀서 같은 제작진, 흥행 성공률이 높은 장르(뮤지컬 코미디), 핵심 관람층(40대 여성), 스타 배우 캐스팅 등을 전략적으로 배치해 신작의 성공 가능성을 높인다. 그러나 뮤지컬 흥행의 역사가 짧은 우리나라에서는 이 중 스타 캐스팅을 제외한 다른 흥행 요소는 초보적인 단계에 머물러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 2006년 샤롯데 극장에서 무기한 일정으로 공연을 시작했던 일본 극단 시키의 <라이온 킹>은 오리지널 작품의 뛰어난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스타 마케팅 없이 국내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한국 단원 배우들로 공연을 하면서 많은 적자를 내고 1년 만에 막을 내렸다. 물론 그 기간이 짧은 것은 아니었지만 <라이온 킹>을 공연 중인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에서 유난히 고전한 것은, 작품성만을 믿고 캐스팅에 관한 이슈를 만들어 내는 노력을 간과했던 이유도 있다.
모든 사람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캐스팅은 작품의 배역에 맞으면서도 티켓 파워를 낼 수 있는 인지도 있는 배우가 작품에 참여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것이다. <맨 오브 라만차>의 조승우, <시카고>의 옥주현, <미녀는 괴로워>의 최성희(바다), <모차르트!>의 김준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송창의 같은 경우가 그에 해당할 것이다. 그러한 퍼즐이 맞춰져서 모든 사람들에게 만족감을 줄 때 바로 캐스팅의 묘미가 있는 것이다. 캐스팅 과정이란 생각만큼 화려하지는 않지만 매우 보람 있는 일임에는 틀림없다.
최근에는 연예 매니지먼트사가 아예 뮤지컬·연극 전문 제작사와 공동으로 지분 참여 형태로 제작에 직접 참여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이미 인지도가 있는 배우들을 안정적으로 출연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선택할 수 있는 레퍼토리가 한정되어 있다는 단점도 있다. 스타의 바쁜 일정으로 인하여 같은 배역을 3명 또는 4명이 맡다 보니 연습 시간에 쫓겨 완성도가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문제는 관객뿐만 아니라 제작사 스스로가 더 엄격한 모니터를 통해 작품성이 훼손되는 것을 막고 균형을 찾을 수 있도록 과도한 스타 캐스팅은 자제해야 한다.

 

 

이상적인 캐스팅을 위하여
올바른 캐스팅은 신인 발굴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한 가지 캐릭터로 성공한 배우의 다음 작품 배역을 정할 때도 기존의 이미지를 단순 소비하기보다 배우가 가진 잠재력을 최대한 이끌어내는 방향으로 캐스팅이 이루어져야 한다. 사실 업계에서는 한 배우가 동일한 캐릭터로 여러 작품에 출연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A라는 작품에서 한번 보여준 이미지를 새로 올라가는 B라는 작품에 그대로 적용하면 캐스팅 과정은 손쉬울지 몰라도 그 배우는 다른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유사한 느낌을 주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기시감과 식상함을 느끼게 할 수 밖에 없다. 이런 문제를 피하기 위해서는 배우 자신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캐스팅 담당자들 역시 배우의 기존 이미지에 따라 배역을 주는 안일한 캐스팅을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캐스팅 담당자들에게는 새로운 배역에 대한 도전을 통해 잠재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배우를 발굴하는 안목이 필요한 것이다.
브로드웨이에서 베테랑 캐스팅 디렉터 중 한 사람인 데이브 크레몬스는 브로드웨이 매거진에서 자신의 역할에 대해 ‘캐스팅이란 어둠 속에 기대어 앉아있는 사람들에게 비전을 선사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들은 관객일 수도 있고 프로듀서일 수도 있다. 쇼 비즈니스는 결국 사람들이 이끌어가는 것이다. 최종적으로 조명과 박수를 받는 배우가 꿈과 희망을 말하는 주체가 될 수밖에 없다. 그들을 찾아내는 일은 바로 희망을 찾는 일이다. 무엇보다도 배우는 관객이 무대에서 최종적으로 작품을 만나게 되는 창구이자 작품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살아있는 배우, 작품의 현현(顯現)으로서의 그들을 ‘선별’하는 작업이 어찌 쉬울 수 있을까.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86호 2010년 1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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