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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기획] 소품의 세계 - 소품이 만들어지기까지 [No.85]

글 |이민선 사진제공 |소품디자이너 임희정, 임정숙, 조윤형 2010-11-04 7,861

배우들이 손에 들고 나오는 가방이나 칼, 식음을 위한 잔이나 병, 배우들이 앉는 의자와 테이블 정도가 관객의 시각에서 인식되는 소품이라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소품들도 굉장히 많다. 작품의 규모와 컨셉에 따라 등장하는 소품의 수량은 천차만별이지만 적게는 10개부터 많게는 200개가 넘는다고 하니, 관객이 알아채지도 못한 채 존재하는 소품이 얼마나 많은가. 공연에 꼭 필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소품(小品)’이라는 이름 때문에 그저 작고 중요하지 않은 물건처럼 여겨지는 슬픈 운명을 타고 났다. 하지만 필부필부여도 제 집에선 모두 귀한 자식인 것처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허술하게 태어난 소품은 없다. 대체 이 작은 물건, 아니 소중한 물건은 누구의 손에서 어떻게 탄생되는지 그들의 ‘품(品)생기’를 들어보자.


소품이 만들어지기까지 

대부분의 소품디자이너들이 지향하는 소품은 섬세하고 사실적인 것이다.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 줄 진짜 같은 소품을 만들기 위해 효과적인 방법을 모색하고 전문적인 기술을 연마하지만 여유롭지 못한 제작 여건이 늘 아쉽다. 적은 예산과 시간으로 만족할 만한 소품을 제작하는 일은 모든 디자이너에게 무척 힘든 일이다. 공연 개막 전까지는 밤샘 작업도 다반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묵묵히 땀 흘려 소품을 내놓는다. 그들의 힘겨운 제작기를 살펴본다.  


소품 목록 작성
어떤 작품이든 대본에서 모든 작업이 시작된다. 배우가 대본을 받아 대사를 외우고 캐릭터를 파악하는 것처럼, 소품디자이너 역시 대본을 통해 작품의 시공간적 배경과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분석해서 필요한 소품의 1차 목록을 작성한다.
소품은 작품을 완성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 작용하므로 드라마와 음악의 성격, 무대 세트와 의상, 조명 등의 다른 요소들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스태프 회의에서 연출의 의도를 숙지한 후, 무대와 의상, 소품을 담당하는 스태프들이 통일된 컨셉을 공유한다. 무대디자이너가 만든 세트의 분위기에 맞추어 소품디자이너가 장식 작업을 하므로 세트 장식 소품이 목록에 추가된다. 소품의 영역이 정확하게 구분되어 있지 않아서 소품 팀의 업무가 생각 외로 많은 경우가 있는데, 한 작품에 참여하는 각 파트의 디자이너들이 합의하여 업무 영역을 조율한다. 쓰임새와 제작 예산을 고려하여 의상 팀이 아닌 소품 팀에서 모자나 가방, 장신구를 준비하기도 한다.
배우들이 연습을 시작하면 소품 목록이 또 늘어난다. 대본에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캐릭터를 좀 더 뚜렷하게 만들어 줄 소품이 필요할 때도 있고, 어떤 배우가 연기하느냐에 따라 캐릭터가 달라져서 소지하는 품목이 달라질 때도 있다.
대본 분석 결과와 연출 의도, 출연 배우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소품 목록이 어느 정도 완성되면(연습과 리허설, 심지어 공연 개막 후에도 소품이 추가되는 경우가 있으므로 목록이 완벽하게 완성되는 시기는 가늠할 수 없다), 소품디자이너는 자료 조사에 들어간다. 관련 도서나 이미지 자료들을 찾아보고 어떤 모양과 재질의 물건을 준비해야 할지 결정한다. 그리고 스케치를 통해 소품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사전 자료 조사
완성품의 이미지를 머릿속에 간직하고 시장 조사를 나간다. 해당 소품이 어떤 장면에 필요한지, 또 장식품인지 이용품인지 고려해 어떤 재료로 만드는 것이 적합한지 판단한다. 소품의 종류가 다양한 것처럼 소품을 만드는 재료도 굉장히 다양하다. 소품은 가벼워야 하기 때문에 철제 느낌이 나는 물건은 주로 알루미늄을 이용하여 만들고, 부피가 큰 물건은 스티로폼을 조각해서 만든다. 알루미늄, 스티로폼, 나무, 직물 등이 가장 기본적이고 공통적인 재료이다. 시장 조사에서 이전에 사용한 적 없는 재료를 발견하면 그것을 구입해서 새롭게 제작 시도를 해볼 수도 있다. 하지만 제작 여건상 시간 여유가 없어서 익숙한 재료를 사용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소품디자이너들이 재료 구입을 위해 많이 가는 곳은 동대문 시장, 남대문 시장, 고속터미널과 을지로 상가 같은 도매 시장이다. 
재료들을 구입해서 손수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기성품을 구입하는 경우도 있다. 전체 소품 중에서 대략 제작품이 70%, 기성품이 30%를 차지한다. 배경이 현대인 경우 소품의 많은 부분이 기성품으로 해결 가능하다. 기성품이 완성도가 높고 비용까지 절감해 주거나 직접 만들기 어려운 경우에는 굳이 제작을 고집하지 않고 구입하는 것이 현명하다. 하지만 기성품을 활용하는 경우에도 그대로 무대에 올리는 일은 거의 없다. 파손되지 않도록 견고하게 마감 처리를 하거나 장식을 달아 리폼한 후 사용하므로 소품디자이너의 손을 거치지 않는 것은 없다.
소품을 구입하는 일을 쉽게 생각하면 오산이다. 오래된 물건이나 국내에서 구할 수 없는 것들은 원하는 소품을 찾아낼 때까지 수소문하고 발품을 팔아야 한다. 기성품 구입은 품목이 다양한 인터넷 쇼핑몰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으며, 가구는 신당동과 을지로 가구 거리에서, 옛날 물건들은 이태원이나 황학동에서 운명적으로 만나곤 한다.
재료와 기성품 구입에 대한 시장 조사를 마치면 예산 견적을 낼 수 있다. 그것을 바탕으로 공연 제작사 측에서 할당해놓은 소품 제작비와 조율하여, 소품의 질과 양에 대한 계획을 세운 후 제작에 착수한다. 우리나라의 뮤지컬 제작 여건상, 작품의 컨셉이 정해지고 소품 제작에 주어지는 시간은 한 달 가량이다. 그중 조사 기간이 보름 정도, 실제 제작 기간이 나머지 보름 정도 걸리는 편이다. 소품디자이너들은 자료 조사와 시장 조사 기간이 넉넉지 않아 디자인 아이디어를 개발할 여유가 없어 아쉽다고 입 모아 말했다.

 

개막 후 소품 관리
모든 소품이 무대에 오른 후 적어도 개막부터 일주일까지는 소품디자이너가 소품 상태를 관리해야 한다. 충분한 무대 리허설을 거치지 못하고 무대에 올랐을 때 소품의 색상이 어울리지 않거나 배우가 사용하기에 불편하다는 등의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럴 때 소품디자이너는 재빠르게 소품을 보수해야 한다.
<궁>에서 황태후가 타는 가마가 밋밋해 보인다는 문제가 제기되어, 공연이 없는 월요일에 소품 작업실로 가져왔다. 흐릿한 가마가 조명을 받았을 때 더욱 입체감 있도록 색깔을 덧칠하는 처방이 내려졌다. 일요일 공연이 끝나면 소품 상태를 확인하여, 화요일 공연에 결함 없이 사용되도록 하는 것도 소품디자이너의 몫이다.
<몬테크리스토>에서 몬테크리스토와 루이자의 칼싸움 장면을 기억하는지. 보통의 검투 신과는 달리, 연출이 리얼한 액션을 원해서 무술감독의 지도하에 과격한 칼싸움이 벌어졌다. 게다가 손잡이와 칼날의 무게를 적절하게 재단하지 못해서 손잡이가 칼날에 주어지는 충격을 지탱할 힘이 부족했다. 그 탓에 칼이 자주 부러져서 일주일이 멀다하고 다시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알루미늄 칼날이 싸울 때마다 긁혀서 매번 갈아줘야 했다.

 

다시 만나는 소품
소품디자이너가 만든 소품들은 제작사로부터 의뢰받아 제작된 것이므로 디자이너가 아닌 작품의 제작사가 소유한다. 고생해서 만든 자식 같은 소품들은 디자이너의 손을 떠나, 공연이 끝나고 나면 제작사의 소품 창고에 고이 보관된다. 그리고 재공연의 기회가 주어지면 다시 빛을 보게 된다. 하지만 한 번 무대에 올랐던 소품이라고 그대로 재활용할 수는 없다. 소품디자이너가 모든 소품을 확인한 후에 다시 사용할 수 있는지, 보완할 필요가 있는지, 또는 새로 제작해야 하는지 판단한다. 이전 공연과 달라진 장면이 있다면, 연출과 회의를 통해 소품이 추가되기도 한다.
올해 두 번째 공연을 올린 <잭 더 리퍼>에는 신문이 많이 필요했다. 초연 때 신문을 종이가 아닌 현수막 천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찢어지지 않고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신문을 펼쳐 들고 읽는 장면에서 빳빳하게 세워지지 않는 문제점이 있었다. 소품디자이너가 고안해낸 생각은 맞붙인 두 장의 천 안쪽에 유리 테이프를 붙이고 본드를 바르는 것. 그 결과 부드러운 천을 지지해줄 힘이 생겨서 신문이 휘지 않았다. 작품의 극본이나 연출이 공연을 거듭하며 발전하듯이 무대와 의상, 소품도 초연보다 더 풍부한 아이디어로 작품 완성에 조력한다.

 

 

 

 

 

 

 

 

 

 

 

 

 

 

 

소품디자이너가 말하는 기억에 남는 소품 제작기

 

 

<스위니 토드> 면도칼과 새장
이발사 스위니 토드에게 중요한 도구는 면도칼이다. 연출은 스위니의 면도칼이 화려하면서도 주도면밀하게 보이도록 접었을 때 길이가 10센티미터 이하가 되기를 요구했다. 사이즈가 작은 면도칼이 대극장 무대에서 눈에 띄지 않을 염려가 있어서, 면도칼이 빛나도록 날에 광을 아주 많이 냈다. 그리고 손잡이 보석 장식도 굉장히 화려하게 했다.
안소니가 분노에 찬 마음을 참지 못해 새장을 가슴속에 안은 채 부서뜨리는 장면이 있다. 철제 새장이 쉽게 부서지지 않을 것을 예측하여 대나무로 된 새장을 구입한 후, 철제의 느낌이 나도록 검게 칠을 했다. 그리고 좀 더 쉽게 부서지도록 칼집을 냈다. 새장을 매회 부수었기 때문에, 대량으로 새장을 제작해야 했다.

 

 

<드림걸즈> 마이크와 가방
<드림걸즈>에는 유난히 마이크가 많이 등장했다. 얇은 받침대를 가진 둥근 스탠딩 마이크와 무대 천장에서 내려오는 것 등 가지각색이었는데, 연출이 요구한 대로 모두 준비해야 했으므로 서울에 있는 거의 모든 마이크 가게를 다 뒤져서 찾아냈다.
가방도 많이 필요했다. 악기 가방은 하드 케이스로 주문을 해 검은 천으로 된 악기 가방 위에 두꺼운 판을 덧대어 제작했다. 가방은 보통 나무로 틀을 만들고 그 위에 가죽이나 왕골 같은 재료를 덧입힌 후 사포로 갈아서 마무리한다. 그리고 예쁘게 단장하기 위해 여행 스티커를 붙이고 니스 칠을 했다. ‘드림스’의 세 멤버가 들었던 하얀 가방은 그녀들이 입은 하얀 의상과 같은 직물을 이용해 만들었다.

 

 

 

 

 

<궁> 음식들
이신과 채경이가 친정에 간 날, 부모님께서 저녁 식사를 한상 거하게 차려 오셨다. 그것도 모자라 중국집에서 요리가 배달되어 온다. 배우들이 싸먹는 상추는 진짜이지만, 테이블에 놓여 있는 음식들은 모형 음식이다. 소품디자이너가 직접 만든 것은 아니고 모형 음식 전문 업체에 의뢰한 것인데, 수많은 업체들 중 몇 년간 시행착오를 겪은 후에 잘 만드는 전문 업체 몇 군데를 발견했다. 중국 요리를 잘 만드는 집, 한식을 잘 하는 집 등 실제로 맛집을 찾아가듯 소품 역시 맛집이 따로 있다. 그 맛집 정보는 디자이너의 보물이다.

 

 

 

 

<카페인> 뻐꾸기시계
<카페인>의 주 배경이 되는 카페에 뻐꾸기시계가 있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라 기성품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공연 장면에 맞추어 울어야 하는 임무를 띤 뻐꾸기를 아무 데서나 데려올 수는 없는 일이다. 필요한 순간에 뻐꾸기가 튀어나올 수 있도록 소품디자이너가 직접 제작했다. 시계 뒤에서 사람이 직접 조종할 수 있도록 고안한 것. 보기에만 좋은 시계였다면 구입하는 것이 저렴했겠지만, 소품의 기능을 생각했을 때 만들 수밖에 없었다.

 

 

 

 

 

<락 오브 에이지> 양철 쓰레기통
데니스가 양철 쓰레기통 속에 들어가 앉아 있다가 뚜껑을 열고 나오는 장면이 있었다. 그런데 데니스 역을 맡은 배우 남문철과 김진수의 몸집이 커서 사이즈가 큰 양철통이 필요했다. 가장 큰 양철통을 샀는데도 역부족이었다. 다시 사방으로 문의를 해 겨우 600리터짜리 빨간 고무 통을 구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빨간 고무 통이 옆에 놓인 양철 쓰레기통들과 똑같이 보이도록 칠해서 겨우 대용량 양철통을 준비했다. 하지만 무대 중앙에 위치한 대형 양철통이 관객의 시선을 흩트린다는 연출의 판단으로 그 장면에서 삭제되었다. 디자이너가 열심히 만든 엄청 큰 양철통도 소품 리스트에서 사라졌다.

 

해외에서 온 소품
창작 작품이나 많은 라이선스 작품들에서 소품은 앞서 설명한 대로 국내 연출과 디자이너들의 의견을 모아 제작된다. 그런데 라이선스 계약 시, 해외 제작사에서 대본과 음악뿐만 아니라 모든 디자인도 원작을 따르도록 조건을 내세운 경우, 소품 역시 그에 따라야 한다. 해외에서 제작한 소품들이 그대로 국내 무대에 오르거나, 해외 제작사에서 제공한 디자인 가이드에 따라 제작된다.


<미녀와 야수>의 소품은 전부 해외에서 공수해온 것이었다. 그런 경우, 국내 소품 팀에서 하는 일은 사용 진행과 보관, 유지와 보수 정도이다. 그리고 공연이 끝난 후에는 그대로 다시 해외 제작사에 반납한다.


<오페라의 유령>에 쓰인 소품도 거의 대부분 영국, 호주 등 해외 프로덕션에서 가져온 것이다. 하지만 팬텀의 가면은 배우 얼굴에 맞게 제작해야 하므로, 해외 팀이 전수해준 방법대로 새로 만들었다. 그들이 제공한 바이블에는 밀리미터 단위로 자세한 사이즈가 기재되어 있으며, 외국인 디자이너가 직접 자세하게 알려주어 ‘쇼텍라인’ 소품 팀은 우리나라에는 없는 가면 제작 기술을 익힐 수 있었다. 가면무도회 장면에서 쓰이는 모자들 역시 모두 해외에서 가져왔지만, 배우들의 머리 크기에 맞지 않아 쓸 수 없는 것들이 있었다. 그래서 50% 정도는 공수해온 모자들을 표본으로 삼아 제작했다. 모자 원단이나 형태를 원래의 것과 똑같이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유학하고 온 모자 전문가를 섭외해서 자문을 구한 후 제작할 수 있었다.


<빌리 엘리어트>도 소품의 사진과 사이즈가 기재된 상세한 디자인 바이블을 제공했다. 그에 맞춰 제작하되, 우리나라에서 구입할 수 없는 것들은 해외에서 공수했다. 미국과 영국, 호주에서 가져오고 한국에서 제작한 것도 있으니 <빌리 엘리어트>의 소품들은 4개국에서 준비한 것이다.
원작 제작사가 까다로운 기준에 맞추어 제작하라고 요구하는 경우, 국내 디자이너들은 그들의 의사를 이해하면서도 융통성 없이 오리지널 디자인을 고집하면 답답하고 힘들다고 한다. 게다가 직접 고민하고 디자인하는 작업에 비해 창작의 재미도 덜하다. 하지만 우리보다 앞선 기술과 디자인을 배우고, 선진 제작 시스템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에 장점도 충분히 있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85호 2010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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