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usical

더뮤지컬

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인터뷰 | [MUSIC FINDER] 음악으로 연기하는 뮤지컬 연주자[No.84]

글 |김문정 2010-10-04 6,638

김문정의 music finder

음악으로 연기하는 뮤지컬 연주자

 

 

처음 건반 연주자로 뮤지컬 작업에 참여했을 때 참으로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화려하고 호화로운 장르인 뮤지컬, 뮤지컬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음악을 담당하는 일원이라는 게 너무나도 기뻤다. 그런데 공연장에서 우리 연주자들이 안내받은 곳은 휘황찬란한 조명이 닿지 않은 무대 아래에 위치한 시커먼 공간이었다. 기어들어가듯 들어간 그곳은 비좁고 답답하고 너무나 어두워서 보면등이 아니고서는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었다.
더욱 암담(?)했던 사실은 드라마틱한 연기와 춤을 보며 즐겁게 연주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장면들을 한 장면도 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저 우리가 의지해야 할 것은 지휘자의 손동작과 숨소리, 간간이 들리는 배우들의 목소리, 바로 옆 연주자의 연주. 이게 전부였다.
우리는 이 공간을 피트(PIT)라고 부른다. 영한사전의 번역을 그대로 옮기면 ‘PIT : (지면의) 구멍, 패인 곳, 구덩이’ 뭐 이런 정도의 뜻이다. 말 그대로 어둡고, 침침하고, 구덩이처럼 패인 공간에 적게는 4~5명에서 많게는 30명의 연주자들이 자리를 잡게 된다.
이 좁고 어둡고 답답한 공간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왜 지휘자는 저렇게 조심스레 지휘를 하는 것일까?’, ‘관객은 이 부분에서 왜 웃는 거지?’ ‘관객은 지금 왜 박수를 칠까?’ 또는 ‘왜 야유를 하는 것일까?’ 이곳에서의 경험이 무대 위의 상황이 너무나 궁금했던 나를 지금의 자리로 이끌어준 소중한 경험들이었음을 고백한다.

대부분 피트는 무대와 같은 높이에서 악기 셋팅이 다 되었을 때 아래로 내려진다.(공연에 따라 피트가 필요 이상으로 넓은 경우, 피트의 일부분을 무대로 늘려 씀으로써 관객과의 거리를 좁혀 친밀감을 주기도 한다. 예) <맘마미아>, <맨 오브 라만차> 등) 그래서 작곡가와 가창자, 연주자 즉 실연자의 음악성이 더 중시되는 오페라의 경우 서막이 시작될 때 무대와 같은 위치에서 지휘자와 연주자를 어느 정도 보여주고 서서히 피트를 내리기도 한다.
최근 막을 내린 <키스 미, 케이트>의 경우 백스테이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원작의 흐름과 무리가 없다는 판단 하에 ‘Exit Music(관객 퇴장음악)’에 PIT를 올려 연주자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예상외의 좋은 반응을 얻었다. 특히 <키스 미, 케이트>의 쇼맨십 강한 연주자들 스스로 관객과의 소통을 즐겨 매일 가면이나 가발을 바꿔 쓰며 흥겨운 대미를 장식했다.

 


음악감독인 내 입장에서 공연을 보고난 관객들이 음악에 대한 호평을 할 때 그야말로 뿌듯함과 보람을 느끼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음악은 좋더라’라는 말만 나와선 결코 좋은 공연이 아니라는 것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음악이 너무 과하여 드라마와 분리되는 것은 아무리 좋은 음악이라도 뮤지컬 음악으로서 적합하지 않다는 말이다. 때문에 유명 작곡가나 편곡자들이 음악과 드라마가 유기적으로 연결시키기 위해 재치 있고 센스 있게 표시해놓은 악보를 자주 접하게 된다. 뮤지컬 악보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지시들.

Appluse & Segue : 보통 넘버가 끝나는 악보 맨 끝 모퉁이에 쓰여 있는데 말 그대로 박수를 받은 후 바로 다음 곡으로 연결하라는 뜻이다. 우리는 여기서 잠깐 고민하기도 한다. ‘박수가 안 나오면 그 다음 곡을 연주해야 하는 것인가? 아닌가?’

Vamp : 뮤지컬에서는 자주 접하게 되는 용어이다. 그날그날 달라지는 배우의 호흡을 중시하고자, 또는 무대가 부드럽게 전환되는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 연주자가 그것들이 정리될 때까지 기다려주는 마디를 지칭한다. 지휘자는 배우의 대사가 끝나거나 혹은 무대 상황이 정리되면 연주자에게 사인을 주어 그 다음 마디로 옮겨가게 되는데, 우리는 이를 ‘Vamp가 풀린다’고 표현한다. (마디가 정해진 MR 공연에서는 Vamp를 쓸 수 없기 때문에 배우나 스태프들이 답답해한다.)

Dirty, Sadly, Sweetly Play : 어느 날 드럼 연주자가 얼굴을 찌푸리고 고개를 숙이고 연주하기에 이유를 물으니 악보를 가리키며 “‘Sadly’라고 써있어서”라고 해서 모두가 웃은 적이 있다. 다른 악기도 아닌 드럼 연주자에게 그런 악상 기호를 준 편곡자의 센스가 돋보였지만 비록 구덩이(PIT)에 있어도 무대 위와 같은 감정을 공유하며 연주하기를 바라는 원작자의 의도가 담겨있는 부분이었다. 몇 년 전 공연을 했던 <이블 데드>에서 좀비가 사람을 해치는 장면에서 쓰여 있었던 ‘Dirty Play’도 흥미로웠으며 그 밖에도 ‘Sweetly’, ‘Happly’ 등 다양한 ‘감정 지시’들을 악보에서 만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재즈의 거장 콜 포터의 <키스 미, 케이트>의 오케스트라의 연습 도중 있었던 일이다. 연주자들의 질문을 듣고 순간 나는 당황했다. Brass(금관악기) 파트에 ‘Hiss’란 말이 표기되어 있고 심지어 음표와 박자 표기가 되어 있었다. (Hiss : 뱀, 거위, 증기 따위가 슈윳하는 소리를 내다.) ‘으잉? 이게 뭐람?’ 그 부분의 앞뒤 가사를 떠올리던 나는 박장대소를 했다. 더위에 지친 출연자들이 오히려 이열치열 기분으로 부르는 노래 ‘Too Darn Hot’ 장면이었는데 ‘Hiss’ 부분의 가사는 이러했다. “하지만 점점 온도가 올라가 온도계가 폭발하면~ Hiss~!”
브라스 연주자들이 연주를 하다가 그 부분이 되면 마이크 가까이 입을 대고 “슈~웃!!” 하며 폭발 직전의 과열된 스팀인 양 음향 효과를 내라는 것이었다. 아마 예민한 관객의 귀에는 브라스 연주들의 소리가 들렸을 것이다.

연주자들이 무대 위의 배우와 같은 감정을 공유하는 것이 그 어떤 장르보다 뮤지컬에서 중요하다. 그것이 잘 조화되었을 때 좋은 공연을 관객에게 선사할 수 있다. 때문에 그것들을 볼 수 없는 어두운 구덩이(?) 속의 연주자들에게 그 감정과 느낌을 연주하고자 지휘자들은 무대 위의 배우들의 연기를 보며 때때로 연주자들을 상대로 어설픈 배우가 되기도 한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84호 2010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네이버TV

트위터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