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토대로 만든 창작물은 고증과는 별개로 스토리텔링의 과정에서 이미 비판의 위험을 안고 있다. 더구나 그것이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을 소재로 한 작품이라면 더욱 그렇다. 대표적인 예가 명성황후다. 수많은 소설, 드라마, 영화, 그리고 공연들이 명성황후를 다루고 있고, 그때마다 비판에 시달린다. 그럼에도 명성황후의 이야기는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다. 이달 선보이는 서울예술단의 새 가무극 <잃어버린 얼굴 1895>도 명성황후를 또 다시 소환한다. 그의 어떤 점이 이처럼 창작자들을 매혹하고 있는 것일까. 그동안 각 장르의 작품이 콘텐츠로 활용해온 명성황후의 다양한 모습들을 되돌아봤다.
을미사변, 새로운 영웅의 탄생
1895년 10월 8일, 훗날 을미사변으로 불리게 되는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일어난다. 명성황후의 문화 콘텐츠로서의 가능성은 바로 이 사건에 현대의 창작자들이 주목하면서 시작됐다. 이 사건이 없었다면 명성황후의 삶과 그를 둘러싼 역사적, 문화적 해석은 지금보다 단선적인 양상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내가 조선의 국모다’란 말을 남기고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다는 일화로부터, 그는 민족의 비극을 상징하는 하나의 표상이 됐다. 시아버지인 흥선대원군과의 정치적 갈등과 한반도 점령 후 대륙으로 진출하려던 일본의 압력 등 당시 국내외 상황들도 연민과 공감을 유도하는 요소가 됐다. 무엇보다 한 나라의 왕비가 일본 낭인들에게 잔혹하게 살해당한 사실은 문화 소비자들에게 민족적 공분을 일으키는 데 충분했다.
이런 점 때문에 뮤지컬 <명성황후> 이후 쏟아져 나온 관련 콘텐츠에서는 그를 민족의 영웅으로 되살리려는 시도들이 공통적으로 발견되고 있다. 이문열의 희곡 『여우사냥』 같은 서사물을 비롯해 드라마, 영화, 연극, 만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에서 명성황후를 변주하고 있다. 몇 년 전에는 중국에서 드라마가 방영되기도 했고, 한때는 할리우드에서 한미 합작으로 영화화하려는 기획도 진행된 바 있다. 도서 역시 200여 종이나 출간됐는데, 이 역시 역사적 평가보다는 민족주의적인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모든 인식은 뮤지컬 <명성황후>가 국내외에 엄청난 신드롬을 일으키면서 시작했다. 물론 엄밀히는 뮤지컬이 원작으로 삼은 이문열의 희곡 『여우사냥』이 그 뿌리가 될 것이다. 이 희곡과 뮤지컬에서 명성황후는 처음으로 긍정적인 모습으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발표된 소설 속 ‘민비’는 총명하지만 간악하고 부덕한 왕비로 표현됐다. 김동인의 소설 『젊은 그들』이나 『운현궁의 봄』에서는 쇄국정책을 썼던 대원군을 영웅으로, 명성황후는 음탕하고 나라를 망친 독부(毒婦)나 여우로 묘사하고 있어 차이가 크다.
반면 시해 100주기를 맞아 제작된 뮤지컬 <명성황후>는 그를 조선을 위해 희생한 잔다르크에 가깝게 묘사하고 있다. 또 이 작품은 명성황후를 신비스러운 존재로 표현하면서 일종의 숭배 대상으로 만들었다. 이는 민비의 시신이 불타면서 비극적 결말로 마무리되는 원작과는 다른 설정이다. 숭배의 대상으로 재탄생한 명성황후는 이후 이어지는 대부분의 창작물에서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발휘하는 캐릭터가 된다.
다양한 매체, 다양한 해석 시작
드라마 <명성황후>(2001)는 명성황후를 소재로 한 드라마 중 가장 대중적인 성공을 거둔 작품이었다. 명성황후 역의 배우 이미연이 도중하차하고 최명길로 교체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전까지 드라마에서 명성황후는 영웅의 모습이 아니라 표독한 성정을 지닌 왕비에 불과했지만, 이 작품에서는 외교에 능하고 현명한 인물로 새롭게 그려졌다. 이는 이듬해 한일 월드컵에 앞서 식민지 역사를 극복하기 위해 명성황후를 긍정적으로 재현하려는 의미도 있었다. 특히 이 드라마가 깊은 인상을 줬던 건 소프라노 조수미의 주제가 ‘나 가거든’ 덕분이다. 여기에 극 중 대사 “나는 조선의 국모다”가 전국을 강타하면서 명성황후는 시청자들에게 완전히 역사적 영웅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2009)은 무협 작가 야설록의 원작 소설을 스크린에 옮겼다. 명성황후에 대해 알려진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가상의 호위무사를 새롭게 등장시켜 명성황후와 러브 라인을 만드는 새로운 실험을 시도했다. 정치적, 외교적 분쟁이 아니라 여성으로서 명성황후의 모습을 그렸다는 점에서 영화의 시각은 신선했다. 카피마저 ‘조선왕조 마지막 멜로’였을 정도였다.
영화는 명성황후가 결혼 전 호위무사와 연애를 했었다는 가정을 전제로 고종과 함께 삼각관계 멜로드라마를 구축했다. 극 중에서 ‘황후’라는 호칭 대신 ‘민자영’이라는 본명이 더 자주 불렸다는 것도 이런 드라마의 성격을 반영했다. 다만 가상의 인물인 호위무사의 캐릭터상 액션 신이 많을 수밖에 없었고, 결국 명성황후를 둘러싼 역사적 재해석보다 결투 신 중심의 액션물이 되어버린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호위무사와의 하룻밤을 묘사하는 장면은 명성황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라는 애초 의도와 달리 ‘불륜’, ‘음탕’이라는 기존의 부정적 이미지를 되살리는 패착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확인되지 않은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불어넣는 실험은 만화라는 매체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시도되곤 한다. 웹툰 <해서>는 기본적으로 민족주의적 입장을 취하면서 통쾌한 가상의 이야기를 덧입혔다. 여성 호위무사를 등장시켜 명성황후와 대원군을 두 축으로 하는 드라마에 활력을 불어넣은 것이다. 기존의 창작물처럼 두 인물을 이분법적인 시선으로 그리지 않고 각자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태도가 인상적이다. 다만 철저한 고증 없이 진행된 까닭에 역사적 오류들이 계속해서 지적돼 역사물로서의 가치는 다소 떨어지는 편이다.
이번에 서울예술단이 보여주는 <잃어버린 얼굴 1895> 역시 이제껏 다른 매체의 창작물들이 보여준 재해석의 영역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민족 영웅’ 명성황후가 아닌, ‘여자’ 민자영에 초점을 맞춘 것은 이미 익숙한 설정이다. 다만 가상의 인물들이 빚어내는 드라마와 혼령으로 등장하는 명성황후가 어떤 화학작용을 일으킬지는 충분히 기대가 되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창작물에서 명성황후는 아직도 감상적으로만 소비되고 있다는 인상이다. 그래서 단순히 민족주의적인 태도나 여성성에 주목한 판타지보다는 하나의 문화 콘텐츠로서의 명성황후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한 철저한 연구와 창의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0호 2013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