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작품의 이미지를 강렬하게 전달해야 하는 숙명을 지닌 뮤지컬 포스터. <맘마미아!>, <오페라의 유령> 등 스테디셀러들은 여전히 고유한 포스터 이미지를 고수하고 있지만, 신작들은 늘 작품 특유의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한 고민에 빠진다. 최근 뮤지컬 포스터들은 자극적인 이미지들과의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떤 변화를 시도하고 있을까? 다양한 변화를 꾀하고 있는 뮤지컬 포스터들을 들여다보았다.
영화 스타일의 포스터
최근 눈에 띄는 포스터 경향 중 하나는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감각적인 이미지다. 대표적인 예로 지난해 초연된 <번지점프를 하다>를 꼽을 수 있다. 이 작품은 원작 영화 속 이미지들을 차용함으로써 포스터에 영화적인 감성을 덧입혔다. 뮤지컬해븐 홍보마케팅 팀 김아리 씨는 “쏟아져 나오는 화려한 대형 작품들 속에서 이 공연 자체가 지닌 애틋한 분위기를 강조하고 싶어 포스터에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담아냈다”고 밝힌다. 특히 초연 포스터를 보면 기차역을 배경으로 마주 선 인우와 태희의 모습 위에 하늘색 빛깔이 수채화처럼 덧칠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아련한 첫사랑의 기억을 좀 더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장치라고 한다.
조선희 사진작가의 참여로 화제가 된 <그날들>의 포스터 또한 첩보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청와대 경호실 이야기이기 때문에 스케일을 크게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애초 기획 단계부터 영화 관련 스태프를 섭외하려고 했다.” 이다 엔터테인먼트의 서혜란 팀장은 <광해>, <관상> 등 흥행 영화 포스터를 담당한 디자인 컴퍼니 ‘빛나는’의 이시영 실장을 선택했고, 그와 함께 작업을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이 실장이 조선희 작가를 소개해주었다. “경호원들이라고 검은색 정장을 입고 단체 사진을 찍는 것은 너무 흔해 보일 것 같았다. 무엇보다 작품에 압도적인 스케일이 있다는 걸 표현하고 싶었는데, 영화 쪽에서 워낙 그런 작업을 많이 해본 전문가들이라 좀 더 효과적인 구현이 가능했던 것 같다. 생동감 있게 연출된 무영의 추격 신 같은 경우처럼 말이다.” 촬영 스튜디오의 경우도 조선희 작가가 이전에 드라마 <아이리스>의 컨셉 사진을 찍었던 곳이었다고 한다. 조선희 작가는 첩보, 액션 장르물의 촬영을 많이 한 까닭에 더욱 능숙하게 작업을 진행했다.
“최근엔 공연계의 경쟁이 치열하고, 관객들도 점점 비주얼에 관심이 많아지는 추세다. 작품을 준비하면서 이런 부분들을 계속 의식할 수밖에 없어 홍보 담당자로서 즐거운 부담을 느낀다. 예전엔 해당 작품 자체에 한정해서 이미지를 생각했다면, 요즘엔 다른 공연 장르뿐 아니라 타 분야에서도 아이디어를 얻어온다. 특히 영화는 비주얼적인 측면에서 선두이기 때문에 더 관심을 갖게 된다.” 서혜란 팀장은 일부 스태프가 포스터 작업을 독점했던 과거와 달리 현재는 더 다양한 작업 환경이 열려 있어 관객과 배우들에게 더 즐거운 경험을 전해주는 것 같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외국인 이미지의 포스터
올해 공개된 뮤지컬 포스터 중엔 유독 외국인 이미지를 활용한 것들이 눈에 띄었다. <두 도시 이야기>, <몬테크리스토>, <스칼렛 핌퍼넬> 등 모두 저마다의 특별한 컨셉을 내세우고 있지만, 이들 포스터의 중심엔 공통적으로 외국인 이미지가 사용됐다. 그 까닭에 이것이 최근 뮤지컬 포스터의 트렌드로 읽혀지긴 하지만, 각 공연 제작사들은 의도적으로 특정 경향에 따른 것은 아니라고 한다. 작품을 가장 임팩트 있게 전달하는 대표적인 이미지를 위한 제작사들의 개별적인 시도들이 시기적으로 맞물리게 된 것이다.
“배우 중심의 포스터는 주목도가 높지만 매번 새로 제작해야 하는 등 녹록지 않은 문제가 있다. 그래서 작품을 상징할 수 있는 키워드나 아이콘을 담은 동시에 추후에도 계속 쓸 수 있는 포스터를 제작하고 싶었다.” <두 도시 이야기> 포스터를 기획한 비오엠코리아 공연기획팀 김옥진 과장의 설명이다. <두 도시 이야기>는 혁명 등의 거대한 담론 속에 펼쳐지는 사랑 이야기를 강렬하게 표현하기 위해 사연 있어 보이는 한 남자(시드니 칼튼)의 이미지를 포스터에 내세웠다. “디자인 팀에서 먼저 동양인보다 이목구비가 또렷한 외국인이 우리가 생각하는 이미지와 어울릴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후 모델 에이전시를 찾아다니던 중 지인의 소개로 프랑스 출신의 유명 배우 파비앙을 섭외하게 됐다. 재밌는 건 원본 사진과 포스터를 비교해보면 전혀 같은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원본에서 포토샵으로 눈동자 색깔이나 콧날을 손보는 등 후반 작업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현실에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라 작품에 맞게 새롭게 가공된 인물이란 느낌을 주고 싶어서였다.
<스칼렛 핌퍼넬>의 경우도 작품의 컨셉을 설명할 수 있는 대표 이미지를 개발하자는 취지가 앞섰다. CJ E&M 공연 마케팅 팀 홍보 담당자 민지혜 씨는 “관객들은 배우 중심의 포스터를 선호하지만, 홍보 담당자의 입장에서는 지속적으로 작품을 인지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이미지 중심의 포스터를 더 선호한다. 특히 외국인 모델을 활용할 경우 작품이 대작이고, 해외 원작의 라이선스 공연이란 느낌을 잘 전달해주는 것 같다”고 밝혔다. <스칼렛 핌퍼넬>은 남자 주인공 퍼시가 중심인물이긴 하지만, 사랑 이야기도 작품의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남녀 모델을 모두 섭외해 포스터 촬영을 시작했다. 하지만 비밀스럽게 쪽지를 들고 정의를 실현하는 퍼시의 이미지를 부각하기 위해 최종적으로 남자 모델의 사진을 선택했다고 한다.
<몬테크리스토> 역시 시즌에 관계없이 지속적으로 활용 가능한 메인 포스터를 만드는 데 중점을 뒀다. EMK뮤지컬컴퍼니 임수희 홍보 팀장은 “포스터 기획 단계에서 외국 원작의 느낌과 주인공의 특징을 잘 전달할 수 있는 이미지를 구상했다”고 설명한다. 몬테 크리스토가 복수의 화신처럼 다가와 바다를 헤치며 앞으로 나아가는 이야기를 포스터에 담고 싶어, 이 느낌을 잘 살릴 수 있는 외국인 모델을 기용한 것이다. 임수희 홍보 팀장은 “삼성 로고만 보면 한눈에 그 브랜드를 알 수 있듯 계속 동일한 메인 포스터를 썼을 땐 작품 이미지가 형성되어 한 번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몬테크리스토>임을 알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분석한다. 그런 가운데 아직 대중에게 노출되지 않은 외국인 모델이 작품의 고유한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매우 매력적인 소재로 작용한 것이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0호 2013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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