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에도 관람 등급이 있다
최근 <애비뉴 Q> 의 포스터 및 영상 광고물이 심의 반려 판정을 받으면서 공연계에 신선한 이슈를 던져주었다. 뮤지컬계에서 웬만해선 ‘심의’에 걸릴 일은 없기에 오히려 호기심을 유발한 셈이다. 심의에 대한 논란, 영화계에서는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상영 등급 심사에서 ‘제한 상영가’ 판정을 받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청소년 문제를 다룬 작품이 정작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을 받아 논란이 일곤 한다. 뮤지컬에서 관람 등급 논란이 있었나 떠올려보면, 그런 적은 없었다. 등급을 심사하고 정하는 기관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뮤지컬에도 관람 등급은 있다.
뮤지컬 관람 등급 선정 기준
1976년 5월에 공연윤리위원회가 설립됐다. 무대 공연물을 비롯해 영화와 가요, 음반, 비디오 등과 이들의 광고물을 대상으로 하는 종합 심의 기관이었다. 1996년에 영화 사전 검열이 위헌 판결을 받은 이후, 1998년에 영상물등급위원회가 발족함으로써 공연윤리위원회는 해체됐다. 현재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주요 업무는 국내외 영화 및 영상 콘텐츠의 등급을 분류하고, 외국인의 국내 공연 추천 및 청소년 유해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여성가족부 산하의 청소년보호위원회가 청소년 유해 매체물을 심의하긴 하지만, 연극이나 뮤지컬 같은 공연에 등급을 분류하는 국가 기관은 없다.
본론으로 들어가자. 여러 제작사에 문의한 결과, 뮤지컬의 관람 등급은 “제작사 내부 회의를 통해 자체적으로 결정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대본의 내용 및 연출의 특징 등을 고려해 매긴다는 것. 일부 제작사는 “라이선스 공연의 경우, 현지의 관람 등급을 참고하기도” 하며, “다른 (제작사의) 기존 작품의 사례와 비교해보고” 결정한다고 덧붙였다. 뮤지컬은 영화나 TV 영상물에 비해 대중들의 접근성이 떨어지며 사실적인 현실 묘사가 적으므로, 아직까지는 제작사가 직접 관람 적정선을 정하는 데 무리가 없는 듯하다.
현재 예매를 진행 중인 작품들 중심으로 관람 등급을 조사해보았다. 법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등급 체계 역시 ‘만 7세’와 ‘만 8세’, ‘만 11세’와 ‘만 12세’ 등으로 다양하게 나뉘어 있다. 뮤지컬에서 가장 낮은 관람 등급은 ‘미취학 아동 입장 불가’ 또는 ‘만 7세 이상’이었다. (단, <라이온 킹>은 만 3세 이상 관람가였다.) 초등학생 이상은 되어야 (어린이 공연을 제외한) 뮤지컬 관람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공연 내용의 선정성이나 폭력성 등을 차치하고라도, 미취학 아동의 경우 2시간 가까이 진행되는 뮤지컬에 집중하는 게 어렵다는 생각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초등학생 이상 관람을 전제로, 제작사가 각 작품을 보기에 적당하다고 판단하는 대로 ‘만 13세 이상’ 또는 ‘만 15세 이상’ 등으로 관람 등급이 정해진다.
한 가지 눈에 띄는 점은, 가장 낮은 등급을 단 뮤지컬의 대부분이 대형 작품이라는 사실이다. 중소형 작품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대중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더 많은 관객들에게 열려 있다고 볼 수 있다. 뮤지컬의 주요 관객층은 20~30대 이상의 성인이며 아동 관객의 비중이 매우 적기 때문에 제작사에서 크게 문제 삼고 있지는 않은 듯하다. 한 홍보 담당자는 “공연을 보고 싶은 부모 입장에선 초등학생 자녀를 두고 혼자서 관람하기는 힘들 것”이라며, 배려의 의도를 전했다. 영화의 경우, 관람 등급 하향 조정이 관객 동원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뮤지컬은 아직은 소수가 즐기는 장르이고 주 관객층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기 때문에, “관람객 수를 염두에 두고 관람 등급을 낮추지는 않는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유동적인 관람 등급
<렌트>의 경우, 2007년 대학로 공연까지는 만 8세 이상 또는 초등학생 이상 관람가를 유지하다가, 2009년 한전아트센터 공연 때는 중학생 이상 관람을 유도했고 2011년 충무아트홀 공연 때는 만 14세 이상 관람가로 정해졌다. 제작사가 임의로 관람 등급을 정할 수 있다 보니, 같은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공연 시기에 따라 다른 관람 기준을 제시하는 경우가 있었다. <미스 사이공>은 2010년 초연 당시 만 8세 이상 관람가였으나, 2012년 재공연 때는 만 15세 이상 관람가로 크게 제한했다. <쓰릴 미> 역시 2007년 충무아트홀 초연 때는 만 13세 이상 관람가였다가, 같은 해 대학로 공연에선 만 18세 이상으로 높이고, 이후 2009년부터는 쭉 만 15세 이상 관람가로 공연하고 있다.
관람 등급이 변한 이유에 대해 정확한 근거를 들을 수는 없었고, “쉽게 말하자면, 공연을 한번 해보니까 이렇게 해도 되겠다는 판단하에 이뤄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초연의 경우 관객 반응을 정확하게 짐작할 수 없었으나, 재공연 때는 지난 공연에 대한 평가와 더불어 현실적인 관람 등급 조정이 가능해진 것이다.
<스프링 어웨이크닝>의 경우, 고등학생 이상 관람가에서 만 17세 이상 관람가로 미세하게 제한선을 높였다. 해당 제작사는 “더 많은 청소년들이 보기를 바라는 작품이고, 실제로 미국에서는 부모님 동반하에 또는 학교의 지원으로 청소년이 관람한 사례가 많았다. 한국에서는 성적 표현 때문에 현실적으로 등급 설정에 어려움이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고 전했다.
라이선스 뮤지컬에서 현지 관람 등급과 한국의 것에서 차이를 보이는 또 다른 작품은, 최근 ‘19금 뮤지컬’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애비뉴 Q>이다. <세서미 스트리트>에 등장했던 인형 캐릭터들이 등장하지만, 성인들의 현실을 농도 짙게 담아내고 있다. 따라서 국내 초연을 진행하는 제작사는 “만 15세 이상 관람 가능하오나, 섹스와 동성애, 포르노 등의 문제들을 당황스러울 만큼 뻔뻔하게 다루고 있어 만 18세 이상 관람을 권장합니다”라는 재미있는 홍보 문구를 삽입했다. 하지만 브로드웨이 공연에서는 기본적으로 ‘만 12세 이상 관람’을 앞세우고, “<애비뉴 Q>가 어린아이들이 보기엔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으나, 적당한 관람 등급을 정하기도 어렵습니다. 부모님들은 각자 자녀의 성숙도를 고려해 재량껏 결정하세요. 하지만 십대 자녀에게 <애비뉴 Q>를 보여준다면, 그들은 당신을 정말 쿨한 부모로 생각할 거라 장담할 수 있습니다”라고 더욱 재치 있는 관람 기준을 제시했다.
추가로, 정해진 관람 등급은 엄격하게 지키고 있는지 물었다. 예상 가능하게도 “당연하다”는 답변이 대부분이었다. 관람이 불가능한 연령의 관객에게는 사유를 설명하고 관람 포기를 유도하는데, 사실 이런 경우는 별로 없다고 한다. 대부분의 유료 관객들은 작품 정보를 확인하고 오기 때문이다. 관람 불가능한 초등학생 자녀를 데리고 와서 보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경우는 99% 초대권 및 프로모션 티켓을 소지한 관객이라고. 딱 봐도 유아인데, ‘우리 애 초등학생’이라고 고집하는 부모님을 당해낼 수 없는 현실적인 고충도 있다고 한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0호 2013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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