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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기획-3] 미국의 창작 지원 시스템 [No.96]

글 |지혜원(공연 칼럼니스트) 2011-10-04 4,607

새로운 뮤지컬 한 편이 탄생하기까지 필요한 것은 단순히 창작자의 땀과 노력만은 아니다. 오랜 세월 동안 무대에서 사랑받은 다수의 브로드웨이 작품들은 작가들의 창작 활동을 뒷받침해 주는 든든한 창작 지원 시스템을 통해 비로소 관객들과 만날 수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는 <넥스트 투 노멀>을 중심으로 어떤 제도를 통해 우리가 사랑하는 뮤지컬들이 만들어질 수 있었는지 확인해 보자.

 

 

아티스트 발굴의 일등 공신, BMI Musical Theatre Workshop
뉴욕의 BMI 뮤지컬 시어터 워크숍(The BMI Lehman Engel Musical Theatre Workshop)은 신진 뮤지컬 창작자를 위한 지원 시스템이다. 1961년 리만 잉겔(Lehman Engel)이 설립한 이 프로그램은 작품보다는 창작자 개인에 대한 지원에 더 초점을 맞춘다. 재능 있는 작가와 작곡가, 작사가들을 위해 전액 무료로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작가들은 다양한 가능성을 시도해 왔으며 실제로 이곳에서 함께한 인연으로 파트너가 되어 공동 작품을 개발한 사례도 적지 않다. 워크숍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첫 해에 작곡가, 작사가로 팀을 이루어 과제를 수행하며 신작의 기본적인 구상을 함께하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물로 10분짜리 뮤지컬을 선보인다. 두 번째 해에는 이보다 발전된 형태로 대본과 노래가 어우러진 한 편의 뮤지컬 작품을 작업하여 선보이고, 이 중 선발된 소수는 상위의 워크숍 프로그램(Advanced Workshop)에 참여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완성된 작품 중 하나가 바로 2009년 토니 어워즈에서 최우수 음악상을 받은 <넥스트 투 노멀>이다.
<넥스트 토 노멀>의 아이디어가 시작된 시점은 브로드웨이에서 막을 올렸던 2009년으로부터 1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8년 BMI 워크숍에 함께 참여했던 작곡가 톰 킷(Tom Kitt)과 작사가 브라이언 요키(Brian Yorkey)는 워크숍에서 발표할 10분짜리 뮤지컬 작품으로 정신과 치료의 일환으로 전기 요법을 받고 있는 한 여성과 그녀와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필링 일렉트릭(Feeling Electric)>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다. 바로 이 짧은 프리젠테이션이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의 초석이 된다.
이후 각자 다른 작품에 참여해오면서도 꾸준히 <필링 일렉트릭>의 개발에 함께한 두 사람은 2002년 워싱턴 주의 빌리지 시어터에서 처음으로 풀 버전의 리딩을 개최할 기회를 갖는다. 이후 뉴욕과 워싱턴에서 수차례의 리딩과 워크숍 공연을 통해 작품을 다듬은 후 2005년 뉴욕 뮤지컬 시어터 페스트벌에 참여해 뉴욕 관객들에게 첫선을 보이는데, 이때 브로드웨이의 베테랑 프로듀서인 데이비드 스톤의 눈에 들게 된다. 프로듀서의 참여와 함께 작품의 개발 과정은 더욱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넥스트 투 노멀>은 오프브로드웨이의 비영리 공연 단체인 세컨드 스테이지 시어터에서 2006년과 2007년 두 차례에 거쳐 워크숍을 갖게 되는데, 이와 동시에 데이비드 스톤의 제안으로 <렌트>의 연출가 마이클 그리프가 참여하게 되면서 작품은 의학적인 치료 요법보다는 함께 고통을 나누는 가족의 이야기에 좀 더 초점을 맞추는 쪽으로 변모하게 된다. 그리고 드디어 2008년 마이클 그리프 연출의 <넥스트 투 노멀>이 오프브로드웨이에서 개막하게 되지만, 평단의 혹평 속에 제작진은 다시 한번 작품을 대폭 수정하기로 결정한다. 이 과정에서 작품의 주요 넘버이자 아이디어의 근간이기도 했던 ‘필링 일렉트릭’이라는 곡이 삭제되고, 여주인공인 다이애나와 가족들의 감정 변화에 좀 더 집중하게 된다. 이후 버지니아의 아레나 스테이지에서 한 차례 더 트라이아웃 공연을 거친 후에야 <넥스트 투 노멀>은 드디어 2009년 4월 브로드웨이에서 공식 개막하게 된다.
두 명의 젊은 창작자의 작은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넥스트 투 노멀>은 BMI 뮤지컬 시어터 워크숍, 뉴욕 뮤지컬 시어터 페스티벌, 비영리 공연 단체의 창작 지원 등 오랜 동안 다양한 개발 과정을 거쳐 비로소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관객들과 만날 수 있었다. <미녀와 야수>의 작곡가 알란 멘켄, <속속들이 모던한 밀리>, <슈렉>의 작곡가 제닌 테소리, <에비뉴 Q>와 <북 오브 몰몬>의 음악을 담당한 로버트 로페즈 등 그동안 BMI 뮤지컬 워크숍을 거쳐 간 수많은 아티스트들은 다수의 브로드웨이 작품을 통해 아낌없이 그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뮤지컬 창작 지원의 주역, 비영리 공연 단체
미국 내 다수의 비영리 공연 단체는 신진 아티스트 발굴과 신작 개발에 적극 동참한다. 많은 뮤지컬 작품들이 비영리 공연 단체의 지원을 받아 이루어진 리딩이나 워크숍 공연을 통해 수년간 작품을 다듬을 수 있는 기회를 얻음으로써 브로드웨이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 특히 유명 프로듀서들이 참여하는 대형 뮤지컬이 아닌 비교적 작은 규모로 진행되거나 투자자를 찾기 어려운 신인 창작자들의 작품들 중 비영리 공연 단체의 도움으로 비로소 빛을 발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2000년대 중반 브로드웨이 변화의 흐름을 주도했던 <스프링 어웨이크닝>도 바로 그러한 경우이다. 2006년 12월 브로드웨이에서 막을 올리기까지 약 7년여간의 개발 과정을 거쳤던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샌디에이고의 라호야 플레이하우스, 브로드웨이의 라운드 어바웃 시어터 컴퍼니, 링컨 센터 등에서 워크숍과 콘서트 무대를 통해 꾸준히 작품을 수정, 보안해 왔다. 창작자들은 애초에 이 작품이 원작 희곡과 더 유사한 플롯이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개발 과정에서 수차례 캐릭터와 플롯을 다듬고, 뮤지컬 넘버를 삭제하거나 추가하고, 순서를 바꾸는 등의 과정들을 통해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만의 색깔을 입혀나가기 위해 노력했다. 이후 오프브로드웨이의 비영리 공연 단체인 애틀랜틱 시어터 컴퍼니를 통해서 정식 프로덕션으로 관객들에게 첫선을 보였던 이 작품은 같은 해 브로드웨이로 자리를 옮겨 젊은 관객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2년 남짓 공연되었다.
일찌감치 가능성을 알아채고 물심양면으로 투자를 아끼지 않는 비영리 공연 단체의 노력은 작품에 대한 믿음에서부터 비롯한다. 특히 경험이 많지 않은 신인 창작자의 아이디어를 발견하고 개발 과정을 선뜻 지원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조나단 라슨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며 <렌트>의 개발에 참여했던 오프브로드웨이의 비영리 공연 단체 뉴욕 시어터 워크숍은 이후에도 꾸준히 가능성 있는 신작의 창작을 지원해오고 있다. 뉴욕 시어터 워크숍은 현재 오는 11월 개막을 예정으로 동명의 독립영화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 <원스>를 준비 중이기도 하다. 이외에도 뉴욕은 물론 많은 지역 비영리 공연 단체들도 독자적으로 또는 상호 협력을 통해 새로운 작품의 개발에 힘쓰고 있다.
대형 뮤지컬을 선호하는 상업 프로듀서의 눈과 자본만으로는 다양한 성격의 뮤지컬이 개발되기 힘들다. 또한 그간 브로드웨이 시장의 판도를 바꾸어 왔던 작품들 중에는 유명 프로듀서가 주도했던 대형 뮤지컬만이 아니라 반짝이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한 작은 프로덕션들도 크게 한 몫을 담당해 왔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창작자의 자유로운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고 젊은 프로듀서들의 신선한 시도가 빛을 볼 수 있는 것은 이처럼 다양한 형태의 창작 지원 시스템의 지속적인 운영하에서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96호 2011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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