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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INTERVIEW] 안은미 안무가 [No.130]

글 |박병성 사진 |이맹호 2014-08-08 4,433
몸이 기억하는 숨결, 춤

평일 저녁 8시. 아르코예술극장 옥상에 위치한 스튜디오 다락으로 사람들이 하나둘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곳으로 사람들이 몰려든 이유는 공연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안은미와 함께하는 <어른들을 위한 몸 놀이 공장 3355>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안은미는 2011년 할머니들을 대상으로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를 시작으로, 청소년들과 함께 <사심 없는 땐쓰>, <아저씨를 위한 무책임한 땐쓰>, 전 세대가 어울리는 <스펙타큘러 팔팔땐쓰>까지 다양한 커뮤니티 아트를 시험하고 있다. 

이번 <어른들을 위한 몸 놀이 공장 3355> 역시 그 연장선에 놓인 작업이다. “눈을 감고 무릎으로 기어가다가 상대를 만나면 귀에 대고 노래를 불러주세요. 그러면 노래를 듣는 사람은 바람에 흔들리듯이 움직여 보세요.” 몸풀기가 끝난 참여자들에게 또 다른 미션이 주어졌다. 낯설고 부끄러워하면서도 호기심 가득하게 임하는 이들의 입가에는 시종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움직임을 찾고, 예술의 객체에서 예술의 주체로 자리를 바꾼 이들은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다. 안은미 안무가와 커뮤니티 아트 작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몸에 대한 기록에서부터 시작

근래 들어 일반인들과 함께하는 무용 작업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런 작업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일반인들과 함께하는 작업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처음에는 할머니들의 몸에 관심이 있었어요. 몸이 춤의 중심 텍스트인데, 그런 의미에서 몸의 인류학, 역사성을 기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죠. 이런 일이 필요한데 기왕 한다면 춤을 전공한 사람이 하는 게 맞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카메라 들고 할머니들을 찾아 나섰어요. 이분들이 어떻게 춤을 추는지 기록했죠. 카메라 가운데  이분들의 몸을 두고 아무런 목적 없이 담아내려고 했어요. 뚱뚱한 사람이 필요하니까 뚱뚱한 사람을 찾고 그런 것이 아니라, 어떤 몸이든 있는 그대로 담아냈어요. 매일 그런 작업을 하고 보는데도 그렇게 낯설 수가 없더라고요. 

처음에는 기록을 위해 촬영을 했다가 이것이 작품이 됐습니다. 왜 공연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나요?
그분들이 대략 60세 이상이었으니까 보통 아이를 대여섯은 낳은 몸이에요. 멋있는 몸은 아닐지 몰라도 긴 세월 동안 스스로 살아있음을 말해왔던 몸이지요. 사지가 다 똑같지만 거기서 뿜어 나오는 무언의 언어들이 엄청나더라고요. 그런 몸들을 한 달 동안 기록하면서 기존의 시각이 아니라 다른 관점에서 관찰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했어요. 작업을 모아놓고 나니까 이분들을 무대로 모셔 와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렇게 시작한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가 이후 청소년들이나 아저씨들의 몸의 기록까지 이어졌습니다. 
1부는 저희 무용수들이 여행을 통해 경험한 것을 자기 식으로 표현하고, 2부에는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여주고, 3부에는 진짜 할머니가 출연하는 구성으로 만든 것이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였어요. 전혀 낯선 것을 바라보는 그런 시간을 가지고 싶었어요. 이 작업을 하다 보니까, 이들의 움직임에서 뿜어내는 에너지가 인공적인 움직임보다 훨씬 생명력이 있더라고요. 작업을 하다 보면 무궁무진한 보석함을 여는 것 같아요. 끊임없는 자원들이 나오니까 고등학생도 하게 되고, 아저씨들까지 간 것이죠. 

다양한 세대랑 작업을 하다 보면 세대별 차이를 느끼나요?
할머니들은 라디오나 TV 등 다른 매체를 통해 춤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적었던 분들이에요. 젊은이들과는 다른 시간성과 역사성이 극명하게 드러나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보면 딱 알게 되죠.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작품을 할 때와 훈련된 무용수들과 작업할 때 차이가 있나요?
할머니들에게도 뭘 가르쳐 드리진 않아요. 각자 지닌 것이 충분히 아름다우니까 맘대로 춤을 추시라고 해요. 무대에서 떨어지면 안 되니까 자리만 배치해드리는 거죠. 저희 무용단들하고 작업할 때도 특별히 무언가를 지시하진 않아요. 주제를 던져주고 마음껏 움직이라고 한 다음에 좋은 움직임이 나오면 쓰고 아니면 버리는 거죠. 단지 일반인들과 작업할 땐 마음대로 하라고 약속했으니까 그들이 찾아낸 것을 버리지는 않아요. 이분들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를 읽어가면서 그것을 서로 주고받는 과정이 중요해요. 

실제 작품 창작 과정은 어떤 식으로 진행되나요?
주제를 던져주고 스스로 생각하게 만들고 그 과정을 지켜봐요. 수업에 가르쳐주는 것은 몸 푸는 과정이나 기본적인 것들이에요. 음악으로 치자면 여기가 도고, 미고, 파다, 도미솔 화음이 되는 과정만 알려주고 작곡은 본인에게 맡기는 거죠. 

그럼 잘 찾아내나요?
어느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죠. 잘한다, 못한다의 기준이 없는 거죠. 자기 몸으로 자기 이야기하는데 거기에 잘하고 못하고가 어디 있겠어요.

참여자들이 공연하기 전과 후의 삶이 많이 달라질 것 같은데요?
회사 가는 게 즐거워졌다고 하더라고요. 공연이 낯선 작업일 테고 공연을 하려면 안 하던 고민을 많이 해야 하잖아요. 고민할 수 있도록 숙제도 많이 내주고. 안 쓰던 뇌를 사용하면서 새로운 활력이 생기는 거죠. 

일반인들의 춤이 분명 잘 추는 것은 아닌데도 감동을 주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거짓말을 안 하니까. 진짜는 어느 것이든 감동을 줘요. 강아지가 주인을 보고 반가워서 신 나게 꼬리 칠 때도 감동이 있죠. 진짜의 액션은 그것이 무엇이든 얼마가 됐든 감동적이죠. 그런데 그걸 잘 찾지를 못해요. 자신은 진짜로 한다고 믿지만 그게 아닐 경우가 많죠. 대상이 있고 근거가 있으니까 그 기준에 맞춰 움직이고 있을 뿐이죠. 진실이 있으면 스스로 접근하려는 어떤 지점으로 가기 때문에 다르게 느껴지는 거죠. 저는 그쪽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옆에서 부추기는 거고.  



우리가 잃었던 몸의 기억
                  
<어른들을 위한 몸 놀이 공장 3355>는 이전의 작업들과 어떤 차이가 있나요?
이전 작업은 그분들의 몸, 춤에만 한정해서 작업한 것이었어요. 이번 작업은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야 하고 온전히 그분들을 위한 시간이 될 거예요. 춤만 매체로 하지 않고, 언어도 사용할 거고, 어떤 사람이 영상으로 말하고 싶다면 영상으로 표현될 것이고, 다양한 매체가 사용될 거예요. 그렇게 40여 명의 이야기가 모여서 작품이 되는 거죠.

이번 작품의 주제를 ‘성(性)’으로 잡았어요. ‘성’을 주제로 택한 이유가 있나요?
우리나라에서 성은 사회적으로 빠른 진화 과정을 거쳤어요. 성적인 편견이나 선입견도 변화를 겪었죠. 이런 것들이 이분들 안에 쌓여 있을 거예요. 다른 주제보다 변화 과정이 명확하게 드러날 거예요. 힘든 이야기지만 해보면 재밌을 것 같아요. 이분들이 폐쇄적으로 반응한다고 해도 그것을 보는 게 중요하죠. 그것을 지각하고 느끼는 과정이 작업이니까. 

인문학 강좌를 병행하는데, 어떤 강좌를 하고, 왜 하나요?
미술이나 비평 쪽도 하고, 현대예술의 흐름이라든가 주제는 다양해요. 주로 예술에 관련해서, 이론적인 체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것들이죠. 공부하면 재밌잖아요. 그리고 공부한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주죠. 

일반인들과의 작업에서 성취하고 싶은 것이 있나요?
세상에 다른 측면의 몸을 보여주고 싶은 거지 별다른 이유는 없어요. 우리는 돈을 내고 교육받은 몸을 보러 다니잖아요. 그건 그거고, 오히려 교육받지 않은 몸에서 더 다채로운 움직임이 나와요. 세상에는 다양한 몸이 있고 그것은 그 나름대로의 시각으로 봐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어요. 서열이 없는 다른 시각. 

오늘 수업에서도 시종 웃으시던데요. 훈련된 무용수가 아닌 일반인들과 작업할 때 즐거운 점이라면?
우리 무용단이 7명인데 오래 작업해서 그 사람들의 몸은 다 외우고 있잖아요.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한계와 그것이 변하는 과정을 보는 것도 물론 즐거운 일이죠. 그런데 일반인들은 거의 알 수 없는 언어로 이야기하니까 그것을 보는 것이 무척 재밌어요. 동일한 미션을 줘도 각자가 조금이라도 다르게 하려다 보니 어마어마한 것들이 나오잖아요. 그들에게는 쑥스러움의 미학이 있고, 당당함의 미학이 있어요. 어쩌면 그렇게 절묘한 몸을 지녔는지 그것을 보는 게 신기한 거죠. 

훈련되고 정제된 춤을 보다가, 할머니들의 춤을 보면서 더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춤이 뭘까? 하는 원론적인 질문이었어요. 
자유에 대한 갈망을 표현하는 거. 죽음을 극복하려는 신체의 아우성. 사지를 흔들어대는 이유는 살고 싶다는 거겠죠. 춤은 노동이나 단순한 일상에서 벗어나는 거죠. 사냥을 하든, 농사를 짓든 반복 노동을 해야 하고 움직임이 단순해지잖아요. 춤은 반복 노동이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은 노동의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죠. 

무용단에서 죽 지켜봐 왔던 이태석 씨가 말하길 요즘 선생님은 춤의 관점이 몸에서 출발해서 점점 생각으로 옮겨가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인문학 강의도 하시고 점점 말을 많이 시키신다고요. 
춤이라는 게 어떻게 보면 생각을 표현한 거잖아요. 생각이 있으면 춤이 명확해져요. 알고 해야 해요. 앎이라는 건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힘을 갖는 것이죠. 춤은 자신이 살아온 과정에 대한 질문이라고 생각해요. 옛날 어머님들은 잔치 때나 슬플 때도 팔을 벌려서 춤을 췄어요. 자신의 어떤 것을 덜어낼 때 항상 춤이 있었어요. 신에게 기도할 때도 있지만 스스로 신이 되고 싶은 것이죠. 역사학자 전우용 선생님이 가르쳐준 건데 ‘신 난다’는 게 신이 나온다는 거잖아요. 신을 만나고 신이 들어온다는 거, 춤이라는 게 그런 거예요. 우리가 원래 가지고 있었던 그런 느낌을 돌려드리고 싶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0호 2014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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