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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인터뷰] 국립창극단 이광복·정은혜, 모던한 창극을 만나다 [No.128]

글 |박병성 사진 |심주호 2014-06-09 5,026
창극이 달라지고 있다. 내게 창극이란 갓 쓰고 도포 입은 소리꾼들이 판소리를 나눠서 부르는 것이란 얄팍한 지식밖에 없었다. 그만큼 관심이 부족하고 고루하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2011년 아힘 프라이어가 모던한 이미지로 풀어낸 <수궁가>를 보면서 창극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최근 국립창극단이 레퍼토리로 선보이는 창극들은 새로운 시도로 공연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연극계 대표 연출가와 창극 배우들이 만나 선보인 작품들이 연이어 호평을 받았다. 스릴러 창극 <장화, 홍련>이나, 그리스 비극을 성쓰루(sung-though) 창극으로 만든 <메디아>는 대중성과 현대성을 갖추면서 새로운 창극의 가능성을 확인시켰다. 관객들은 전회 매진으로 국립창극단의 새로운 시도에 답했다. 국립창극단의 새 레퍼토리에 더욱 힘을 실어준 것은 10년 만에 선발한 신입단원들이었다. 2013년 투입된 여섯 명의 젊은 피는 짧은 시간에 주요 배역을 꿰차면서 창극단의 새로운 시도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이들 중 이광복, 정은혜를 만났다. 




국악평론가 윤중강은 이광복을 두고 ‘한 작품에서 이몽룡, 변학도, 방자 세 역할을 다 할 수 있는’ 만능 엔터테이너로 꼽으면서 ‘높은 소리도 잘 내고 계면조의 슬픈 소리에도 능하다’고 칭찬했다. 창극 <메디아>를 연출한 서재형은 정은혜에 대해 ‘소리로 연기를 할 줄 아는 배우’라며, 이미 뛰어난 소리꾼으로서 정평이 나 있는 그녀를 배우로도 높이 평가했다. 이들이 들려주는 소리와 오늘날의 창극에 대한 이야기.

소리의 길에 접어든 광대

두 분 다 어려서부터 소리를 했어요. 친구들은 아이돌 가수에 열광할 때였는데, 어린 시절을 어떻게 보냈나요?
이광복 : 지금도 TV를 잘 안 보는데, 어려서도 잘 안 봤어요. 어려서부터 나훈아, 주현미. 성인가수라 그러죠. 트로트를 좋아했는데,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장르는 트로트예요. 
정은혜 : 장르를 불문하고 음악을 다 좋아해요. 클래식도 많이 듣고 트로트도 좋아했어요. 이미자 씨 노래를 굉장히 좋아해요. 해외 아티스트들도 그렇고, 좋은 보컬리스트라면 장르 불문하고 좋아했어요. 하드락만 빼고.  

주위 친구들하고는 남다른 유년 생활이었을 것 같은데, 학창 시절은 어땠나요?
이광복 : 초등학교, 중학교는 일반 학교를 다녔는데, 저는 학교 끝나면 소리 레슨을 받으러 가야 하니까 싫었죠. 친구들도 놀리고요. 한창 사춘기 때잖아요. 그래서 한번은 아버지에게 소리 안 하겠다고 했어요. 당연히 위로해주고 잡아줄 거라 생각했거든요. 근데 하기 싫으면 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정말 몇 개월 소리 공부 안 하고 놀았어요. 몇 년 동안 소리 공부를 시켜놓고 안 잡아주니까 오히려 오기가 생기는 거예요. 그래서 다시 하겠다고 했죠.
정은혜 : 굉장히 노래를 좋아하는 아이였어요. 소리와 노래를 구분하지 않았죠. 학교에서 쉬는 시간이면 늘 복도에 나가 노래를 불렀어요. 수업이 지루해지면 선생님이 은혜 노래 한번 들어보자 하셨어요. 내가 노래를 해서 사람들이 행복해 하니까, 그게 행복했어요. 그래서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예전 소리를 하는 분들의 삶은 굉장히 고단한 것이었어요. 지금과 비교하면 어떤가요?
정은혜 : 아예 노래뿐만 아니라 말조차 못할 정도로 목이 상하기도 했어요. 목을 혹사시켜야 하니까요. 어린 시절에 저희가 감당할 수 있는 음악의 깊이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시대적으로 혹독한 아픔을 겪은 것도 아닌데 농축된 한의 깊이를 이해하고 표현하기엔 너무 어렸죠. 친구들이 부르는 노래는 편한데, 저희가 부르는 노래는 이별하고 떠나보내고 하는 것들이잖아요. 어른들이 보시기엔 어린애가 ‘서방님 가지 마오’ 하는 게 귀여우셨겠죠. 근데 자꾸 하다 보니 정서들이 깊어지더라고요. 너무 이른 나이에 그런 정서를 알게 됐어요.
이광복 : 보통 어린 나이에 소리를 시작하거든요. 어린 나이에 연배가 높으신 선생님을 모셔야 하고, 워낙 국악 쪽이 선후배 관계가 엄해서 사람을 대할 때 태도가 다르죠. 조숙해질 수밖에 없어요. 

어떤 호칭으로 불리는 것이 좋으세요. 소리꾼, 창극 배우, 아니면 그냥 배우?
이광복 : 소리를 할 때는 소리꾼으로 창극 무대에 서면 창극 배우로 불러주길 바라죠. 제가 뭐가 되고 싶냐는 질문이라면 광대가 되고 싶어요. 저는 판에서 잘 놀 수 있는 사람을 광대라고 생각해요. 관객과 가까이서 만날 수 있는 광대, 그게 제일 좋을 거 같아요. 
정은혜 : 아직은 정체성이 명확하지 않아요. 7살 때부터 소리를 했지만 판소리도 노래라고 생각해서 저는 노래하는 사람으로 줄곧 살았어요. 다른 분들은 이전에 극 경험이 있었지만 저는 다른 단체와 작업할 때도 보컬로 섰고, 여기 와서 극을 처음 경험하거든요. 줄곧 노래하는 사람으로서 고민을 했는데, 어느 순간 보니 캐릭터에 대해 고민하고 있더라고요. 마리아 칼라스가 토스카나 메디아로 변하듯 작품에 따라 드라마틱하게 노래하고 싶어요. 지금은 저 자신을 소리꾼이나 배우로 한정시키는 것보다 각각의 무대에서 빛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나중에 무대에서 내려왔을 때 관객들이 저를 정의해주지 않을까요. 
이광복 : 은혜는 소리를 많이 하던 친구여서 연극성이 강한 <장화, 홍련> 같은 작품이 잘 어울렸던 것 같아요. 창극의 때가 묻지 않아서 연극적인 느낌이 나올 수 있었던 거죠. 오히려 정통 창극을 맡겼다면 어색했을 거예요. 밖에서는 <장화, 홍련>이나 <메디아>가 창극이냐, 아니냐를 두고 말들이 많은데 이 친구가 해서 그만큼 빛을 발하는 작품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현대판 창극의 경쟁력

창극은 소리로 표현해야 하니까, 특정 캐릭터가 느껴지기보단 소리 자체가 강조되잖아요. 그래서 춘향이와 심청이의 캐릭터를 소리로 변별하기는 힘든 것 같아요. 
정은혜 : 소리와 인물 간의 차이가 있죠. 예전 창극에서는 젊은 캐릭터로 예쁘게 등장해서 걸죽한 소리를 냈거든요. 캐릭터의 이질감이 생기죠. 이번 장화 역을 할 때도 고민했던 것이 선생님 중에는 좀 더 소리를 걸죽하게 하라는 분이 있었는데, 제 생각에는 캐릭터에 부합하는 소리를 내야 관객들에게 인물이 생생하게 전달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조금 더 가볍게 소리를 내려고 했죠. 이전부터도 서서히 극화되고 있었어요. 이도령이 방자처럼 창을 하진 않잖아요. 

창극의 매력이 뭘까요?
이광복 : 창극은 즉흥성이 강해요. 관객들과 짜여진 대본 없이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창극의 매력이에요.
정은혜 : 무한성인 것 같아요. 한태숙 선생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자기들 소리가 이렇게 스릴러하고도 잘 묻을 수 있어. 소리적 질감이 굉장히 잘 어울려. 해학극은 기본이고, 희랍 비극까지 커버할 수 있으니 어떤 장르랑 부딪혀도 가능하죠. <지킬 앤 하이드>를 창극으로 바꾸면 또 다른 모습의 작품이 나올 수 있다고 봐요. 거기에 전통의 깊이까지 더할 수 있다면 그 어떤 종합극보다 경쟁력이 있을 거예요. 

전통에 대한 해묵은 논란 중에 보존해야 하느냐, 계승 발전해야 하느냐인데, 창극을 놓고 생각해보면 어떤가요?
정은혜 : 선생님의 소리를 오롯이 원형에 가깝게 하려고 공부해요. 소리에 깊이를 더하는 작업은 꾸준히 해야 해요. 그게 단단하지 않으면 넓어지려고 한들 대중예술에 편승될 수밖에 없어요. 창극으로 <장화, 홍련>이든, <메디아>든, <배비장전>을 하든 본질적으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 소리 안의 본질적인 요소들, 공력, 표현 방식들을 잘 지켜야 한다는 거예요. 
이광복 : 그런데 똑같은 제자들이 같이 배워도 다 소리 내는 방식이 달라요. 근본적으로 뿌리는 하나인데도 그렇더라고요. 자기에게 맞는 소리를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우조, 평조를 잘하는 사람이 있고, 슬픈 계면조를 잘하는 사람이 있거든요. 그래서 죽을 때까지 공부를 하는 게 소리인 것 같아요. 
정은혜 : 농담 삼아 명창 되어 ‘아’ 소리하고 죽는 게 판소리라고 하잖아요. 판소리 완창을 7바탕 했어요. 소리를 성실하게 해왔는데, 그때보다 극을 하니까 더 관심을 가져주시더라고요. 전통을 지켜나갈 때 관심을 받을 수 있다면 우리 것을 지키기 위해 좀 더 노력할 텐데, 자꾸 대중적인 입맛, 시대적인 코드에만 반응이 오니까 감사하면서도 야속한 맘도 생기더라고요. 

한길을 우직하게 가셨던 분들이 있어 오늘날 국립창극단의 새로운 레퍼토리가 빛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번 레퍼토리들이 정통 창극과 가장 큰 차이라면 무엇일까요?
정은혜 : 소재가 다양해졌어요. 특색 있는 연출님들과 만나서 다양한 창극 스타일이 나오는 것 같아요. 그 전에는 창극에 연출이 없었잖아요. 지도위원은 있지만. 
이광복 : 연극계 유명 연출님이 오시는데 그분들도 창극에  깊은 이해와 지식이 있진 않으세요. 그럴 수밖에 없죠. 창극을 잘 아는 전문 연출가가 필요해요. 작가도 마찬가지예요. 소리를 하기 위해선 3,4조나 4,4조로 써주어야 하는데, 조를 이해하지 못하세요. 그래서 대본이 나오면 작창 선생님과 소리에 맞게 정리해야 하죠. 과도기인 것 같아요. 둘 다 잘하는 분이 나와야 하는데, 그렇다고 소리하는 분이 연출을 맡으면 창극 틀에 갇혀서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할 것 같아요. 
정은혜 : 둘 다 잘하는 사람을 배출하는 것이 저희의 역할이기도 하죠. 소리 하는 분이 연출 공부를 하면 나아지지 않겠어요. 다양한 연극 연출님을 만나면서 극에 대한 공부가 많이 됐어요. 지속적으로 하다 보면 둘다 이해하는 분이 나오지 않겠어요. 

레퍼토리 작품들은 <장화, 홍련>처럼 현대적으로 각색한 것과 <배비장전> 같은 복원 시리즈가 있는데 연기할 때 접근 방식이 다를 것 같아요?
정은혜 : 복원 시리즈 작품을 할 때 오리지널 창극 방식으로 해야 할지, 좀 더 사실적으로 해서 시대적인 공감을 얻어야 할지 고민이었어요. <숙영낭자전>을 할 때 특히 그런 고민이 들었는데, 배경은 조선 시대지만 슬로건은 ‘조선판 사랑과 전쟁’으로 나갔잖아요. 불륜, 치정, 사랑과 집착 이런 이야기를 어떤 소리로 풀어야 지금 우리 옆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자연스럽게 녹여낼지 고민이 많이 됐어요.
이광복 : 새롭게 작곡되는 곡이 있어요. 뮤지컬 선율인데 국악 선율로 불러달라고 요구하는 거예요. 국악은 떠는 음, 꺾는 음, 평조 내는 음이 정확해서 현대적인 음율을 넣으면 국악적으로 부른다고 되는 게 아니거든요. 너무 어색한데 그렇게 부르라고 요구할 때 굉장히 고민이 되고 힘들었어요. 

이번 레퍼토리 시즌은 연극과 유명 연출가들이 참여해서 작업을 했는데요. 같이 작업한 소감이 어땠나요?
정은혜 : 판소리에서도 이면이란 게 있지만, 캐릭터로 내재되어 있는 정서를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 다른 각도로 접근할 수 있었어요. 극의 모든 캐릭터가 살아 숨 쉬어야 완성된 이야기를 할 수 있잖아요. 각 역할이 자기 몫을 해냈을 때 생기는 시너지가 좋았어요. 판소리는 그런 협업을 느끼기 힘들잖아요. 한편으론 극적으로만 치중하다 보니 소리를 이해하고 보완할 필요성을 느꼈어요. 하나의 공연물로 완성도와 깊이가 보완된다면 창극의 경쟁력이 생길 것 같아요. 
이광복 : 그전에는 소리로 끌고 가려고 했다면, 이젠 좀 더 배우로서 고민하게 됐어요. 이전에는 선생님들이 하는 걸 잘 따라 하면 잘하는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내가 중심이 되어서 캐릭터가 보이게 하려고 고민하게 되요. 

이번에 처음으로 <장화, 홍련>을 봤어요. 복원 시리즈의 창극과는 다르게 현대적인 내용에 판소리 양식이 결합하니까 굉장히 새로우면서도 현대적인 느낌을 받았어요. 전통 양식인데도 오히려 더 모던하다고 할까, 창극의 경쟁력을 느꼈어요.
정은혜 : 동양적인 보이스가 필요하다고 해서 독일 연출가가 만드는 실험 오페라에 참여한 적이 있어요. 저만 동양인이었죠. 그 연출이 제 소리가 진짜 모던하다는 거예요. 이상한 고집스러운 아름다움이 있대요. 이미 현대적이고 너무 모던해. 정말 이게 전통이니? 라고 묻더라고요. 진짜 좋은 오페라는 텍스트를 몰라도 정서와 감정으로 전해지는 게 있잖아요. 우리 소리는 필터에 걸려내지 않고 감정에 던지는 솔직한 직구가 있거든요. 우리만의 독창성과 독보적인 아름다움을 알아주지 않으세요.
이광복 : 해외에서 공연을 하면 자막이 있긴 하지만 알아듣기가 힘들거든요. 그래도 소리를 느끼고 적절한 대목에서 박수가 나와요. 외국에 나가면 기립박수가 나오거든요. 오히려 해외 사람들이 더 잘 알아봐줘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새로운 것에 열광하는 분위기가 있죠. 지금 세대 관객들은 조금만 흥미를 끌 수 있게 접근한다면 오래된 것이 아니라, 낯설고 새로운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고 봐요. 국악이 관심에서 멀어진 또 다른 이유가 실제로 현장에서 들으면 좋은데 미디어를 통해 들으면 맛이 안 사는 것 같아요. 
정은혜 : 판소리는 극장 양식에 맞춘 장르가 아니라 음향이 어마어마하게 중요하죠. 조금만 음향이 잘못 잡히면 가볍고 천박한 보이스로 변질되기 쉬워요. 마이크 없이 오롯이 소리의 질감을 느낄 수 있게끔 창극 전용극장이 만들어지면 보완되지 않을까요.
이광복 : 창극에도 전문 연출, 전문 작가, 전문 공연장이 있다면 지금보다 훨씬 경쟁력이 있을 거예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8호 2014년 5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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