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 그녀에게는 ‘한국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한’이라는 수사가 따라붙는다. 예전부터 해외에서 그녀의 인기는 우리가 예측하는 그 이상이었지만 지난해 7집 앨범 「Same Girl」을 발표한 이후 나윤선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이 앨범은 프랑스 재즈 차트에서 4주 연속 1위였고, 재즈 매거진에서 최고의 앨범으로 뽑혔으며, 2010년 프랑스 재즈 시상식에서 재즈 보컬 부분 최고의 아티스트로 선정되는 영광을 그녀에게 안겨 주었다. 2008년부터는 세계적인 재즈 레이블인 독일의 ACT 소속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그녀는 3월 23일 LG아트센터에서 「Same Girl」에 참여한 뮤지션들과 꾸미는 콘서트를 연다. 콘서트 때문에 프랑스에 머물고 있는 그녀가 <더뮤지컬>과의 전화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아버님이 예그린 창법을 개발하신 나영수 선생님(현 국립합창단 예술감독)이시고 어머님이 1세대 뮤지컬 배우 김미정 선생님이십니다. 부모님들이 음악 활동을 하는 데 영향을 끼치셨나요?
어렸을 때부터 늘 옆에서 음악을 하시는 것을 보고 자랐지만 제게 음악을 하라고 하신 적은 없어요. 하고 싶은 것을 하도록 내버려두셨어요. 음악을 시작하고 나서 부모님에게 많이 배웠다는 것을 느꼈죠. 음악을 많이 들려주셨고, 많이 보면서 귀 훈련이 됐던 거 같아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접하기도 했고. 그런 경험들은 굉장히 소중하죠.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두 분을 굉장히 존경해요. 아버지는 지금도 활동을 하고 계시잖아요. 매일 늦게까지 악보를 보시던 모습이 떠올라요. 성실하신 분이세요. 어머니도 굉장히 뛰어난 재능을 가진 분이시고요. 두 분이 직접적으로 가르쳐주진 않으셨지만 음악을 대하는 태도나 그런 것들의 모범을 보여주셨어요.
<지하철 1호선>의 1대 선녀였는데, 지난 4,000회 공연 때 김민기 선생님의 ‘아름다운 사람’을 부르다 목이 메어 잠시 노래를 멈추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본인에게 학전이나 <지하철 1호선>은 어떤 의미인가요?
부모님이 저한테 음악적인 재능을 주셨다면 학전이나 김민기 선생님, <지하철 1호선>은 그것을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주었어요. 어떻게 보면 친정 같다고나 할까. <지하철 1호선>을 하면서 음악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거든요. 음악을 전혀 모르는 저에게 그런 큰 기회를 주시고 <지하철 1호선>을 하면서 굉장히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어요. 선생님에 대한 생각은 그래서 남다르죠. 학전을 생각하면 늘 감격스럽고 애잔하고 잘됐으면 좋겠고. 그런 마음이 들어요.
뮤지컬 배우로 처음 음악을 하셨는데 이쪽으로 활동을 더 하지 않은 이유가 있으세요.
배우로 무대에 서려면 전부 잘해야 하잖아요. 춤도 연기도 잘해야 하는데 전 그런 훈련을 받은 적도 없고, 그건 제가 잘할 수 있는 게 아닌 거 같았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친구의 권유로 재즈 유학을 갔다고 들었습니다. 공부를 하면서 느꼈던 재즈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재즈는 순간적인 음악이거든요. 같은 노래라고 해도 연출할 때마다 달라지고, 또 누구와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음악이기 때문에 무대 위에 설 때마다 늘 새로운 느낌을 받아요. 이 곡을 이렇게 할 수 있구나 싶고. 늘 새로운 음악처럼 느껴져요. 굉장히 자유롭고 신비로운 장르에요.
다른 장르에 도전해볼 생각이 들진 않으셨어요?
재즈에는 다양한 음악의 장르나 색깔이 들어있거든요. 제가 이제 와서 성악을 하기도 그렇고, 제 작품 중 어떤 곡은 팝과 굉장히 비슷한 것도 있어요. 재즈라는 장르 안에서 다양한 색깔을 경험할 수 있어요.
재즈를 배운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가르치는 일이 잘 맞으셨나요?
가르치는 일은 굉장히 좋았고 즐거웠어요. 가르치려면 준비도 많이 해야 하는데 공연을 많이 다녀서 성실하지 못한 선생님이었어요. 학생들에게 미안해서 그만뒀지만 즐거운 경험이었어요. 그 학교 디렉터가 학생들을 가르쳐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해주셨을 때 재즈를 오래 배우지 않은 상태여서 내가 무엇을 가르칠 수 있을까 걱정도 돼서 안 하려고 했는데 디렉터 말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와서 이 정도까지 했다는 것을 보여주기만 해도 된다는 거예요. 재즈가 선생님과 학생이 같은 무대에 서기도 하고, 서열이나 규율 같은 것이 약한 장르잖아요. 학생과 선생님이라기보다는 동료처럼 굉장히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어요.
나윤선 씨 음악은 우리가 익히 아는 재즈보다는 정제된 느낌입니다. 보컬 보이스에 영향을 받은 것이 있나요?
학교에 들어와서 처음 배운 것은 흑인 재즈 스타일의 스탠더드 재즈였어요. 제 목소리하고는 안 맞나 보다 싶어 그만두려고도 했어요. 그러자 선생님이 웃으시며 그래서 네 목소리가 더 좋은 거라며 다양한 재즈 음반들을 들려주셨어요. 유럽 쪽에서는 다양한 목소리를 가진 사람들이 재즈를 하더라고요. 민속적인 색깔이 강한 재즈를 하는 사람들도 있고, 스윙 재즈나 굉장히 다양한 색깔을 가진 재즈 뮤지션들이 있었어요. 그런 유럽의 재즈 보컬리스트들의 음악을 들으면서 나도 할 수 있겠구나 싶었죠.
나윤선 씨는 재즈 뮤지션이지만 목소리에서 한국적인 혼과 한이 느껴집니다. 무가에서 느껴지는 성스러움도 담겨 있고요.
제가 한국 사람이니까 아무래도 그렇지 않나 싶어요. 잘 모르겠어요. 저는 그냥 제 스타일로 부르는 것이니까.
작년에 발표한 정규 앨범 「Same Girl」이 대단한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프랑스 아카데미 오브 재즈에서 재즈 부문 최고 아티스트로 뽑히고, 프랑스 재즈 차트 4주 연속 1위, 프랑스 재즈 매거진이 선정한 최고의 앨범이라는 영예도 안았습니다. 이번 앨범이 특히 사랑을 받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모르겠어요. 저도 너무 놀랐고 같이 음반을 만든 프로듀서나 저희 레이블에서도 다 놀라고 있어요. 프랑스에서 음반이 나온 지 5개월이 됐는데 지금까지도 많이 사랑해주세요. 제가 좋아하는 뮤지션들과 음반을 낸 거고. 지금까지 낸 음반들 중에서도 다양하면서 같은 무드라고 해야 되나 그런 게 느껴진다고도 하고, 헤비메탈이나 샹송 등 좋은 곡들을 다양하게 선택해서 레퍼토리를 꾸몄다는데, 물 흐르듯이 지나가서 계속 듣게 된다고도 하고 다양한 말씀을 해주시는데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다들 얼떨떨해 하고 있어요.
음반을 보면 기존 곡들을 새롭게 편곡해서 부른 곡들과 신곡들이 섞여 있는데요. 다른 이들이 불렀던 곡들을 부를 때와 신곡을 부를 때 차이가 있나요?
글쎄, 그렇게 큰 차이를 느끼지는 못해요. 기존 곡을 부를 때는 어떻게 다르게 편곡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내가 만든 곡도 편곡에 대한 고민을 하거든요. 둘다 힘들죠. 물론 오리지널의 영향을 받기는 했죠. ‘My Favorite Things’는 많은 아티스트들이 노래했지만 제 기억 속에서는 어렸을 때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엄마가 한국말로 부른 노래가 오리지널로 다가왔어요. 메탈리카의 ‘Enter Sandman’을 부를 때도 오리지널에 대한 부담이 있었는데 그렇다고 그게 제 목소리를 바꿔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같이 연주하는 팀이랑 호흡을 맞추면서 하는 거니까 큰 차이가 나지는 않았어요.
전작도 그랬지만 음반이 일정한 틀을 가지기보다는 굉장히 다양한 스타일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 작업을 선호하시나요?
일부러 의도해서 그런 것은 아니에요. 다양한 색깔이 내 색깔일 수도 있고요. 재즈라는 것이 하나로 묶일 수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자유로운 장르라 다양한 것이 특이하다거나 별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번 음반에는 강원도 아리랑도 있고 샹송이나 메탈리카 음악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하다고 말씀하시는데 다 제가 좋아하는 음악이거든요. 다양한 색깔일 수도 있는데 그게 다 저라고 생각해요.
이번 앨범에 강원도 아리랑이 있었지만 지난 앨범에서도 민요풍의 곡이 있었습니다. 민요에 특별한 애정을 갖고 계신 건가요?
민요가 갖는 정서들이 좋아요. 누가 들어도 아름다운 멜로디이고 단순하고 반복적이면서 한번 들으면 귀에 속속 들어오는 힘이 있어요. 신나는 곡들도 있지만 대부분 구슬프다고 할까 아련한 감정이 깔려 있는데 제가 그런 정서에 끌리는 것 같아요.
독일의 재즈 레이블인 ACT 소속으로 2008년부터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ACT 소속 아티스트가 되면서 이전과 생활이나 음악 세계 기타 등등에서 변화가 있었나요?
저한테 하나의 전환점이었는데 그 전에는 아시아나 프랑스를 비롯한 주변에 있는 유럽 국가에서 음반이 나오기는 했지만 ACT와 일하면서 좀 더 활동 범위가 넓어졌어요. 월드 와이드한 기획사여서 제가 캐나다, 미국, 어느 나라를 가든 그 나라에 제 음반이 나와 있어요. 아티스트가 공연을 하는데 그 나라에 음반이 있느냐 없느냐는 중요하거든요. 아티스트를 서포트해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이번 음반에서 같이 연주한 뮤지션들도 모두 ACT 소속이에요. ACT에서 실력 있는 분들을 만나서 음반의 성과도 좋고 공연 섭외도 많이 들어오고 활동 범위가 넓어지고 있어요. 고마운 마음이 들죠.
한국에 머무는 시간이 많지 않은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되셨습니다. 그렇게 음악을 하면서 전 세계를 떠도는 생활이 한편으론 부러우면서도 한편으론 쉽지 않은 일일 거란 생각이 듭니다. 그런 자신의 일에 대해서는 어떠세요?
무대에 서보셨어요? 서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거든요. 뮤지션들은 노는 것보다 무대에 서는 것이 즐겁고 행복해요. 무대에 설 기회가 많은 건 축복받은 거예요. 최근에는 미국, 캐나다, 그리스, 어느 한 곳에 오래 머물지 않고 계속 떠돌아야 해요. 굉장히 피곤한 일이지만 불평할 수 없어요. 이것은 뮤지션으로서 정말로 행운이고 행복한 일이에요. 저를 보러 와주시는 분들이 있고. 많은 호응과 사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면 힘든 것보다 감사하는 마음이 더 크죠.
음악을 하지 않을 때는 어떻게 보내시나요.
굉장히 단순한 삶을 살아요. 음악을 빼면 일상. 쉴 때는 아무것도 안 해요. 일이 없는 날이 많지도 않고. 그래서 더 단순해지는 거 같아요.
3월 23일에 LG아트센터에서 콘서트를 합니다. 이번 콘서트에 대단한 아티스트 분들이 함께 참여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소개를 부탁드려요.
음반에 참여한 스웨덴 기타리스트 울프 바케니우스는 저와 듀오로 활동한 실력 있는 연주자예요. 재즈계의 마지막 전설이라는 오스카 피터슨과 작업했던 분이에요. 랄스 다니엘손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첼리스트이자 콘트라베이스 주자인데 음반 작업은 같이했지만 함께 무대에 서는 것은 처음이에요. 기대가 커요. 그리고 아코디언 연주자인 뱅상 빼라니는 프랑스를 대표할 만한 젊은 연주자 중 최고거든요. 다들 전 세계를 다니며 연주를 많이 하는 친구들이에요. 이런 만남이 흔하지 않은데 LG아트센터에서 기획을 해서 한 무대에 설 수 있게 됐어요. 제가 좋아하고 모두 훌륭한 뮤지션들이라 함께할 공연을 더 기대하고 있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90호 2011년 3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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