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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OVER STORY] SEE THIS ONE SHINE <스위니 토드> 강필석 [No.219]

글 |배경희, 안세영 사진 |김현성 Stylist | 정지은 Hair | 성덕(라메종뷰티 Make-up | 모레(라메종뷰티) 2022-12-19 2,003

SEE THIS ONE SHINE
<스위니 토드> 강필석

 

 

2022년의 끝, 뮤지컬 코미디 <썸씽 로튼>과 고전 비극 <햄릿>을 거쳐 배우 강필석이 당도한 무대는 잔혹한 희비극 <스위니 토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추방당한 이발사 벤자민 바커가 15년 만에 돌아와 복수의 화신 스위니 토드로 거듭나는 이야기다. 15년 만에 관객에서 배우로 <스위니 토드>와 다시 만난 강필석 또한 파격적인 변신을 준비하고 있다. 오랫동안 벼려온 칼이 마침내 조명 아래서 빛을 발할 시간이다.

 

 

“<스위니 토드>의 운전사는 바로 저예요.”

 

섬세하고 감성적인 배우 강필석과 살인마 스위니 토드의 만남이라니! 이번 작품에서 어떤 연기 변신을 보여줄지 벌써 기대돼요.

하하, 저도 그런 면에서 토드에게 끌렸어요. 이번 기회에 제대로 이미지 변신을 해보려고요. 사실 전작 <햄릿> 때 에너지 소모가 굉장히 커서 공연이 끝나면 한동안 쉴 생각이었어요. 기라성 같은 선배님들과 함께 출연하는데 타이틀 롤인 제가 못하면 민폐잖아요. 개막 전부터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엄청났어요. 그런데 연습 막바지에 오디컴퍼니 신춘수 대표님께 전화가 온 거예요. 연말 스케줄을 물어보시기에 저는 좀 쉬겠다고 했죠. 한 6개월은 쉬어야 컨디션이 회복이 될 것 같았거든요. 대표님께서 가만히 듣다가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래? 네가 스위니 토드 역을 하면 어떨까 했는데.” 1초 만에 대답을 바꿨어요. “네? <스위니 토드> 끝나고 쉬어야겠네요.” (웃음)

 

1초도 고민하지 않은 건 전부터 이 작품에 각별한 애정을 품고 있었다는 뜻이겠죠? <스위니 토드>라는 작품을 처음 접한 건 언제예요?
<스위니 토드>가 국내 초연을 올린 게 2007년인데, 실은 그때 토비아스 역으로 오디션을 봤어요. 오디션을 준비하면서 <스위니 토드> 해외 공연 영상을 처음 접했는데 굉장히 생소하더라고요. ‘이게 뭐지? 뮤지컬이 이렇게 어둡고 그로테스크하다고?’ 그게 이 작품에 대한 첫인상이었죠. 그때만 해도 뮤지컬은 경쾌한 장르라는 인식이 있었거든요. 게다가 그때 저는 손드하임이라는 작곡가의 음악이 얼마나 난해한지도 몰랐어요. 연습할 시간이 부족해서 대강 음악을 익혀 오디션장에 들어갔는데, 반주를 듣는 순간 음정을 못 잡겠더라고요. 몇 번이나 다시 기회를 줬는데도 마찬가지였어요. 결국 떨어졌죠. 나중에 객석에 앉아 공연을 보면서 후회했어요. 이렇게 멋진 작품인 줄 알았다면 더 열심히 준비할 걸! 그래서 15년 만에 다시 기회가 찾아왔을 땐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이번에 출연을 결정하면서 음악 때문에 걱정하지는 않았어요?
걱정했죠. 지난 오디션의 기억이 트라우마처럼 남아서 최대한 악보를 빨리 달라고 요청했어요. 그리고 연습에 들어가기 한 달 전부터 악보를 보면서 음정을 익혔어요. 그런데 혼자서 아무리 많이 연습해도 다른 배우들과 함께 노래하기 시작하니까 다시 헷갈리더라고요. 손드하임이 의도한 불협화음을 제대로 내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하지만 고생한 만큼 그 불협화음이 딱 맞을 때의 쾌감은 말도 못 해요. 불협화음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대단히 치밀하게 계산된 화음인 거죠.

 

손드하임은 인물의 감정과 행동을 정교하게 계산하여 음악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잖아요. 노래 연습을 하면서 그 치밀함에 놀란 대목이 있을까요?
제가 특히 흥미롭다고 느낀 건 음악과 드라마가 어긋나는듯 어우러지며 묘한 불협화음을 이루는 장면들이에요. 가령 터핀 판사가 토드의 이발소에 찾아왔을 때 부르는 듀엣 ‘Pretty Women’은 노래만 들으면 아름다운 러브 송 같아요. 그런데 사실 그 노래를 부를 때 토드는 터핀 판사를 어떻게 죽일까 궁리하며 복수의 순간을 음미하고 있거든요. 아주 유머러스하면서도 긴장감이 넘치는 장면이죠. 그런가 하면 ‘A Little Priest’는 토드가 인육 파이를 만들어 시체를 처리하자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린 러빗 부인을 칭찬하며 의기투합하는 노래인데, 마지막에 똑같은 멜로디로 둘의 관계가 파국을 맞는 장면을 표현해요. 음악을 어찌나 기가 막히게 활용하는지 소름이 돋을 정도예요. 악보에 써진 음악만 제대로 따라가도 저절로 감정이 우러나와서 연기가 되더라고요. 

 

토드를 연기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뭐예요?
가장 큰 과제는 ‘에너지’라고 생각해요. 얼마 전에 에릭 셰퍼 연출님께서 제게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스위니 토드>의 운전사는 바로 너다. 핸들을 잡은 네가 얼마나 에너지를 쏟느냐에 따라 이 작품은 롤러코스터처럼 날뛸 수도 있고 한없이 지루해질 수도 있다.” 연출님 말씀대로 관객에게 에너지가 팍팍 전해질 수 있도록 힘주어 밀어붙이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 작품이 지닌 기운 자체가 워낙 세서 이 기운을 감당하고 버티는 힘이 없으면 전부 무너져 내리겠더라고요. 

 

처음부터 끝까지 쉴 틈 없이 달려야 하는군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토드라는 인물 자체가 처음부터 끝까지 굉장히 화가 나 있는 상태거든요. 심지어 토드는 자기 목숨을 구해준 안소니에게조차 친절하지 않아요. 말로는 은혜를 잊지 않겠다고 하지만 안소니가 부르면 바로 “왜!” 하고 성질을 낸단 말이죠. 그래서 제가 연출님께 여쭤봤어요. 왜 애꿎은 애한테 화를 내냐고. (웃음) 연출님 말씀이 토드는 기본적으로 ‘Very Angry Man’이라는 거예요. 살짝이라도 건드리면 바로 터져버릴 것 같은 상태가 유지돼야 한다는 거죠. 음악 또한 그런 인물을 상정하고 쓰였기 때문에, 고맙다며 안소니를 친절하게 대하면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어둡고 기괴한 음악을 소화할 수 없어요. 그래서 토드의 심리가 뭘까 복잡하게 고민하기보다는 오히려 단순명료하게 표현하면서 에너지를 떨어뜨리지 않는 데 주력하고 있어요.

 

 

터핀 판사를 향한 복수를 다짐했던 토드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무차별적인 살인을 저지르잖아요. 결국 그의 참아왔던 분노가 폭발하면서 이런 사태가 벌어진 걸까요?
그건 분노와는 다른 문제라고 생각해요. 무차별적인 살인을 할 때의 토드는 내면이 텅 비어버린 상태에 가까워요. 사랑하는 가족을 빼앗아 간 터핀 판사에게 복수심을 품었을 때만 해도 토드의 분노는 정당해 보여요. 일견 부패한 권력에 맞서는 정의의 사도처럼 보이기도 하죠. 하지만 복수에 성공할 절호의 기회를 어이없게 놓친 다음부터 토드는 길을 잃어버려요. 무엇을 위한 복수인지도 잊어버리고 그냥 복수 자체에 잠식당한 광인이 되는 거예요. 

 

그런 변화 때문인지 몰라도 캐스팅 소식이 떴을 때 전작 <닥터 지바고>의 파샤를 언급하며 기대감을 드러내는 관객분들이 계시더라고요. 혁명가 파샤 역시 사랑하는 사람이 권력자에게 농락당한 걸 알고 복수심에 사로잡혀 잔인하게 변하는 캐릭터잖아요. 직접 연기하는 입장에서 토드와 파샤 사이에 닮은 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저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서 파샤를 떠올리셨다는 얘기를 듣고 놀랐어요. 두 인물은 시작점이 같을지 몰라도 표현 방식은 전혀 달라요. 파샤가 송곳 같은 사람이라면, 토드는 망치 같은 사람이에요. 파샤가 부르는 노래는 음역대가 높기 때문에 그에 걸맞게 날카롭게 찌르는 듯한 느낌으로 표현하려고 했어요. 반면 토드는 음역대가 굉장히 낮고 무거워요. 그리고 파샤가 혁명을 명분으로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죽인다면, 토드는 아예 자기가 뭘 하는지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마구잡이로 살인을 저질러요. 그가 저지르는 연쇄 살인은 복수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과정도 아니거든요. 파샤가 눈가리개를 한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내달린다면, 토드는 아예 눈이 멀어버린 거죠.

 

<스위니 토드>는 어두운 이야기지만 코믹한 장면도 많아요. 특히 무뚝뚝한 토드와 발랄한 러빗 부인의 케미는 이 작품의 재미 요소 중 하나죠. 전작에서 애틋한 멜로 연기를 선보였던 전미도, 김지현, 린아 배우를 상대역으로 다시 만났는데, 색다른 캐릭터로 다시 호흡을 맞춰본 소감이 어때요?
연기할 때 상대 배우와 호흡을 주고받는 것보다 더 신나는 일이 없는데, 세 배우 모두 그쪽 방면으로 탁월한 분들이라 함께 연습하면 아주 즐거워요. 여기서 이렇게 하자고 미리 상의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그때그때 내 연기에 맞춰 반응하니까 매번 새롭고 재미있는 장면이 탄생해요.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난제는 토드가 러빗을 최대한 외면해야 한다는 거예요. 아이러니하게도 둘의 케미는 토드가 러빗을 쳐다보지 않는 데에서 나오거든요! 예컨대 ‘My Friend’ 장면에서 토드가 면도칼을 쳐다보며 “나의 친구”라고 노래할 때 옆에 있던 러빗이 슬쩍 끼어들어서 “나도 당신의 친구죠”라고 노래해요. 그러거나 말거나 토드는 러빗을 신경도 안 쓰거든요. 러빗이 뭘 하든 아랑곳 않고 심각하게 연기할수록 그걸 지켜보는 관객은 더 웃긴 거죠. 근데 러빗이 하는 짓이 너무 웃기니까 저도 모르게 자꾸 쳐다보고 웃어서 큰일이에요. (웃음)

 


“제 한계를 규정하지 않고 계속 가보려고요”

 

제작사 오디컴퍼니와는 <스위니 토드> 이전에 <스토리 오브 마이라이프> <닥터 지바고>로 끈끈한 인연을 맺었죠. 2004년 뮤지컬 데뷔작인 <지킬 앤 하이드> 또한 오디컴퍼니 작품인데, 당시 국내 초연이었던 이 작품의 오디션을 보기로 마음먹은 계기가 있나요?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다닐 때 ‘뮤지컬 앙상블’이란 수업을 들었어요. 이 수업을 들은 이유는 사실 딱 하나예요. 보통 실습 과목은 6시간을 들어야 2학점을 주는데 그 수업은 3시간에 3학점을 줬거든요. (웃음) 그런데 그 수업을 맡은 선생님이 제게 “넌 반드시 노래를 해야 하는 목소리를 갖고 있다”라고 말씀하시면서 공짜로 노래 레슨을 해주셨어요.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뮤지컬에 큰 뜻은 없었어요. 뮤지컬 오디션을 본 건 졸업을 앞두고 어떻게든 일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에서였어요. 당시 창작뮤지컬 <소나기>와 라이선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오디션에 동시에 합격했는데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같은 학과였던 최재웅 배우에게 물어봤어요. (웃음) 재웅이는 저와 달리 입학할 때부터 뮤지컬배우를 꿈꾸었던 친구거든요. 그랬더니 배역이 작아도 무조건 <지킬 앤 하이드>를 하라는 거예요. 그렇게 <지킬 앤 하이드>로 처음 뮤지컬과 인연을 맺게 되었죠.

 

첫 뮤지컬에 출연하면서 무엇을 느꼈어요?
솔직히 말해 저는 뮤지컬을 경시하던 사람 중 하나였어요. 무대에서 연기하다 말고 노래하고 춤추는 뮤지컬을 보며 낯설고 이상한 장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심지어 처음으로 도전한 두 편의 뮤지컬 오디션에 모두 합격했잖아요. 으쓱해져서 ‘뮤지컬 별거 없네, 내가 노래를 좀 하나?’라는 착각에 빠졌죠. 그런데 <지킬 앤 하이드>의 주연을 맡은 최정원, 류정한, 소냐, 김소현, 조승우 배우의 노래를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세상에 그렇게 노래 잘하는 사람들은 난생 처음 봤어요. 지킬과 하이드를 오가는 훌륭한 연기에도 충격을 받았고요. 그때부터 뮤지컬을 해야겠다고 굳게 결심하고 본격적으로 노래 연습을 시작했죠. 

 

어쩐지 <썸씽 로튼>의 ‘A Musical’ 장면에서 닉 바텀이 뮤지컬이라는 이상한 장르에 빠져드는 과정이 떠오르는데요? 작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공연한 <썸씽 로튼>은 2020년 국내 초연 때부터 참여했던 작품이죠. 이 작품으로 제5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남우주연상을 받기도 했는데, 1년 만에 재참여를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인가요?
초연 당시 코로나19로 인해 작품이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한 게 안타까웠어요. <썸씽 로튼>은 당대 최고의 작가 셰익스피어에 맞서 인류 최초의 뮤지컬을 만드는 바텀 형제의 이야기인데, 유명 뮤지컬을 재치 있게 패러디해서 뮤지컬 마니아라면 좋아할 수밖에 없는 작품이에요. 배우들도 연습할 때부터 잔뜩 신이 났어요. 연습실에서 마이클리 형이 ‘A Musical’을 부르면 다 함께 흥분해서 소리를 질렀죠. 개막 이후 관객 반응도 좋았는데,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그 기세가 딱 꺾여버렸어요. 심지어 3주 동안 공연이 중단되기도 했고요. 이후 어려운 상황에서 공연을 이어가면서 작품에 대한 애착이 더욱 커졌어요. 그래서 언제든 공연되면 꼭 다시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지금 되짚어 보니 차기작이 아주 흥미롭네요. <썸씽 로튼>에서 <햄릿>을 본뜬 뮤지컬을 만드는 닉 바텀을 연기한 데 이어, 차기작으로 연극 <햄릿>의 햄릿을 연기하다니!
2016년에 손진책 연출님과 원로 배우 선생님들이 공연하는 <햄릿>을 보고 감동했거든요. 그래서 그분들이 다시 모여 공연하는 <햄릿>에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때 두말할 것 없이 하겠다고 했어요. 그 제안을 받은 게 한창 <썸씽 로튼>을 연습하고 있을 때였는데, 생각해 보니 웃기더라고요. 망작 <햄오믈릿>을 만들다가 진짜 <햄릿>에 출연하게 되다니. (웃음) 게다가 <햄릿>은 <스위니 토드>와도 복수라는 키워드로 연결되어 있잖아요. 우연의 일치이지만 신기해요.

 

남자 배우라면 누구나 꿈꾸는 역할인 햄릿을 연기한 소감은 어땠나요?
사실 연습 내내 많이 헤맸어요. 대본 리딩을 하는데 연출님께서 단어 하나를 그냥 안 넘어가시더라고요. “뒤틀린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난 태어났어.”라는 대사를 치는데, 연출님께서 ‘뒤틀린’과 ‘바로잡는’의 대사 톤이 어떻게 똑같을 수 있느냐고 지적하셨어요. 관객들 마음에 그 단어를 확실하게 심어주려면 더 뒤틀리게 말해야 한다고, 뒤틀리지 않은 걸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겠냐고 말씀하시는 걸 듣고 뜨끔했어요. 그 문장만 거의 한 시간을 연습한 것 같아요. 함께하는 배우 선생님들의 연습량은 또 어떻고요! <햄릿>에는 대한민국 1등 배우들이 다 모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 정도 연기 실력을 갖춘 선생님들이 그렇게 연습을 많이 한다는 사실에 놀랐어요. 거기서는 제가 젊은 배우 축에 속했는데도 체력적으로 감당이 안 되더라고요. 선생님들의 열정과 무대를 대하는 진지한 태도를 보면서 저도 더욱 뜨겁게 작품에 임하게 되었어요. 

 

경력이 쌓일수록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받을 기회도 점점 줄어들잖아요. 대선배들과 함께한 작업이 새로운 자극이 되었겠어요. 

이전까지는 저 스스로 ‘내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야’라고 한계를 정해두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햄릿> 때 선생님들의 지도를 받으며 그 한계를 뛰어넘는 훈련을 한 거예요. 절대 낼 수 없다고 생각했던 큰 소리도 내보고, 머리만 쓰는 대신 몸으로 부딪치면서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았죠. 그렇게 하다 보니 제가 생각지도 못했던 무언가가 표현되더라고요. 스스로도 깜짝 놀랐어요. ‘여기까지 왔으니 됐다’ 하고 안주하는 게 아니라 ‘아직 뭔가 더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고 접근하니까 연습이 더 재미있게 느껴졌어요. <스위니 토드>를 연습하는 지금도 선생님들께 배운 걸 적용해 보려고 노력하는 중이에요. 제 한계를 규정하지 않고 계속 가보려고요.

 

자연스레 선배의 역할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었을 것 같아요. 
<햄릿> 공연이 끝날 때쯤 선생님들이 저희 후배들 눈치를 많이 보았다고 고백하시더라고요. 선생님들도 저희에게 모범이 되는 모습을 보이려고 굉장히 노력하셨던 거예요. 사실 제가 <햄릿> 팀에서는 후배였지만, 다른 공연 팀에서는 후배들을 챙겨야 할 나이잖아요. 그동안 선배들한테 보고 배운 모습을 이제는 제가 후배들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껴요. 제가 ‘대충 이 정도로 끝내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후배들도 그런 저를 보고 따라할 테니까요. 무대에 대한 존경심, 그건 누가 가지라고 해서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앞서 무대를 지켜온 선배들이 무대를 경외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 후배들도 그 모습을 보고 무대의 가치를 깨닫는다고 생각해요.

 

이전에 다른 인터뷰에서 작품 선택 기준으로 흥미로운 ‘텍스트’와 적절한 ‘타이밍’을 꼽은 적이 있죠. 그동안 출연한 작품 가운데 다른 때가 아닌 바로 그 시기에 만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작품이 있나요? 
저에게는 <스위니 토드>가 바로 그런 작품이에요. <햄릿>을 만나기 전이었다면 이렇게 큰 도전을 감당하지 못했을지도 몰라요. 제 한계를 넘어서는 작품이라고 생각했을 테니까요. 그런 면에서 <스위니 토드>가 적절한 타이밍에 절 찾아와 줘서 고마워요. 배우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고민 없이 관성대로 연기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쉬워요. 다행히 그때마다 좋은 작품과 동료를 만나서 열정을 되찾았는데, <스위니 토드>가 저에게 또 한번 그런 자극이 되어주고 있어요. 연습하면서 제가 느끼는 이 짜릿함을 관객분들에게 그대로 전해드리고 싶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19호 2022년 12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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