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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ECIAL INTERVIEW] 연출가 미야모토 아몬 [No.102]

글 |이민선 사진 |심주호 2012-03-26 4,253

 

세계 어디든 그의 무대가 세워진다

 

미야모토 아몬은 한국 관객에겐 생소하지만, 일본에서는 연극과 뮤지컬, 오페라를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연출가로 유명하다. 그는 1958년에 도쿄에서 태어났고, 댄서 및 안무가 출신의 연출가이며, 꽤 간극이 있어 보이는 밥 포시와 스티븐 손드하임을 모두 좋아하고, 일본인으로서 브로드웨이에서 브로드웨이 뮤지컬인 <태평양 서곡>을 연출했으며, 올해 일본에서 개막 예정인 <더 위즈>에 출연할 배우를 캐스팅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무척 방대하고 접점이 없어 보이는 이력들을 확인(?)하기 위해 그를 만나러 갔다. 테이블 너머의 그는 의심의 여지없이 그 모든 일들을 다 하고도 남을 만큼 호기심과 열정이 넘쳤다. 오랜 연륜으로 넓어진 그의 시야 내에서 불가능한 일은 없어 보였다.

 

 

일본에서 공연할 <더 위즈>의 허수아비를 찾으러 한국까지 오셨다고요? 네. 아시다시피 동명의 뮤지컬 영화에서 마이클 잭슨이 허수아비를 연기했습니다. 마이클 잭슨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출연한 뮤지컬 영화죠. 허수아비는 매력적이고 사랑스러운 캐릭터입니다. 기존의 뮤지컬 배우들이 갖고 있는 감성이나 표현 방식과는 조금 다르게, 힙합이나 팝핀 같은 리드미컬한 춤, 마임을 이용한 연기와 소울풍의 노래가 요구되는 역할이고요. 이걸 소화할 수 있는 배우가 일본에도 있긴 하겠지만, 찾기 어려울 거란 생각이 들어서 한국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어제 오디션을 보셨는데 그 결과는 만족스러우신가요? 단번에 적역인 배우를 찾진 못했지만, 좀 더 만나보면 반드시 찾아낼 거라고 믿습니다. 이번에 선발한 배우가 일본에 오게 되면, 단순히 뮤지컬에만 참여시키는 게 아니라 TV 방송에도 출연시킬 계획입니다. 뮤지컬 배우를 넘어 미디어를 통해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스타로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거든요. 이전에도 몇 차례 한국에 공연을 보러 온 적이 있어요. 한국 잡지와의 인터뷰라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 매체에도 하는 이야깁니다만, 한국 배우들은 매우 파워풀하고 기량이 뛰어나서 뮤지컬에 적합하단 걸 이번 오디션을 통해서 다시 한번 실감했습니다. 한국 배우들을 상대로 오디션을 본 게 처음은 아니에요. 브로드웨이에서 <태평양 서곡(Pacific Overtures)>을 공연할 때 아시아 배우가 필요했는데, 일본인과 중국인, 필리핀인 등 많은 배우들이 지원했지만 역시 한국 배우들의 실력이 가장 좋았고, 주연도 한국 사람이었죠(당시 마이클 리가 카야마 역으로 캐스팅됐다).


이미 한국 배우들에게 호감을 갖고 계셨군요. 일본에서 25년간 뮤지컬 연출을 했는데, 솔직히 말하면 이제 일본 배우들에게 별로 자극받지 못하고 있어요. (웃음) 재능 있는 사람들과 부딪혀서 일어나는 화학 반응을 통해서 작품이 업그레이드되는 경험을 하고 싶은데, 지금 일본 배우들은 모두 저를 선생님으로 따르면서 제가 가르치는 대로 말하고 움직여요. 한국 공연을 봤을 때 한국 배우들은 마음을 열고 관객에게 다가가서 뭔가를 보여주려고 해서 반가웠어요. 국민성 탓인지도 모르지만 일본 배우들보다 한국 배우들은 좀 더 적극적으로 감정을 표현해서 관객을 사로잡는다고 할까요. 물론 일본에도 훌륭한 배우들이 있어요. 그렇지만 숫자가 너무 적어요. 하긴, 얼마 전에 읽은 뉴욕타임스 기사는 재능 있는 배우들이 점점 줄어들어서, 요즘은 적당히 잘하는 ‘가라오케 액터’가 많다고 하더군요. 뉴욕에서조차 그렇다면야…. (웃음)
<더 위즈>처럼 개인적인 작품 활동 외에 요코하마에 있는 가나가와 예술극장의 예술감독으로도 활동하고 계십니다. 무척 바쁘시겠어요.  바쁘지만 즐겁습니다. 작년 초에 가나가와 예술극장에서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로 만든 연극 <금각사>를 공연했고, 그 작품을 가지고 링컨센터 페스티벌에도 다녀왔어요. 그 작품에 캐스팅한 모리타고는 V6라는 아이돌 그룹의 멤버인데, 그 친구가 어디 소속이건 간에 지금까지 함께 작업한 배우 중에 최고 수준의 연기를 보여줘서 만족스러웠죠. 가나가와 예술극장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문화 공연을 소개함으로써 여러 사람들에게 열린 극장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연출가가 되는 게 꿈이었나요? 어떤 계기로 연출가가 되셨습니까? 저는 18살 때 히키코모리였어요. 사람들과 말도 하지 못하고 방 안에 틀어박혀 음악만 들었어요. 고작 열 장 정도의 음반을 갖고 있었는데, 클래식 사이에 뮤지컬 컴필레이션 음반이 두 장 있었어요. 그걸 계속 듣다보니 음악이 귀에 맴돌고 음악을 듣고 떠오른 이미지가 머릿속에 부풀어 오르더군요. ‘아, 내가 이런 걸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말로써는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없었는데, 음악을 통해서 내가 감정을 받아들이고 전달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니, 이것을 무대 위에 펼쳐놓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제가 존경하는 두 분이 있어요. <코러스 라인>과 <드림걸즈>를 만든 마이클 베넷과 <시카고>와 <피핀>의 밥 포시. 두 사람 모두 처음에는 댄서였고, 그 다음에 안무가와 연출가가 됐죠. 저도 그들을 따라서 그 단계를 그대로 밟아보자고 생각하고선, 20살 때부터 돈을 모아 뉴욕에 가서 춤을 배우고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해서 처음으로 만든 작품이 <아이 갓 머먼(I Got Merman)>입니다. 데뷔작으로 큰 성공을 거두고 올해엔 25주년 기념 공연까지 하셨죠. 어떻게 만들게 된 작품인가요? 저는 연출가가 되고 싶었지만, 아무도 시켜주지 않았어요. 하루는 친구에게 전화해서 “극단이라곤 시키와 다카라즈카밖에 없는 이런 나라에 있기 싫다”고 화를 냈지요. (웃음) ‘내가 원하는 브로드웨이 스타일은 없어’ 라면서요. 그랬더니 친구가 “넌 늘 불평불만만 하는 최악의 인간이다. 니가 직접 뭔가 만들어보면 되지 않냐”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 다음 날 바로 가장 싼 값으로 가능한 150여 석의 극장을 빌리고, 직접 전단지를 그리고, 스폰서를 찾아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만든 게 <아이 갓 머먼>입니다. 사실 제 경험은 굉장히 특이한 경우죠. 다른 사람들은 극단에 들어가서 단계적으로 경험하고 지위가 올라가는데 전 아무도 시켜주지 않아서 스스로 데뷔한 것이라 처음에는 “너가 무슨 연출가냐” 라는 얘기도 들었어요. 그런데 아직까지 연출을 하고 있다는 게 신기한 일이죠.


직접 연출가가 되고 보니 어렸을 때 생각한 것과 같진 않았을 텐데요. 상상 이상으로 즐거웠어요. 물론 처음에는 모든 사람들이 제 말을 따라주진 않았지만,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저 혼자 흥분해서 이런저런 제안을 하면 마음이 뜨거워졌어요. 힘든 게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역시 무척 즐거웠습니다. 연출가로서 이렇게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어요. 하지만 여전히 부족해요. 지금 구상하고 있는 작품들로 세계의 관객들에게 더 큰 감동과 즐거움을 줘야죠.


히키코모리가 뮤지컬 연출가가 됐다는 게 놀랍습니다. 뮤지컬은 여러 사람과 함께하는 작업이잖아요. 이전에는 아무도 나를 인정해주지 않고 일본 사회에서 나는 소외됐다고 생각했는데, 연출가가 됐더니 어쨌든 제게 흥미를 가져주고 제 말에 귀를 기울여주더군요. 연출가라는 직업이 제겐 일종의 테라피 효과를 준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그들과 잘 지낼까 고민했다면 굉장히 힘들었을 거예요. 공연이란 게 막을 올리는 날짜가 정해져 있고, 거기 참여한 모든 사람들의 목표는 최상의 공연을 올리는 것이잖아요. 이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쓸데없는 고민은 버리고, 모두 공동의 목표에만 집중하니 굉장히 편해졌어요. 만약 세상에 연출가라는 직업이 없어지고 다른 일을 해야 한다면, 다시 히키코모리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웃음)


댄서나 안무가 출신이라면 안무가 화려한 작품을 주로 맡았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실제 이력을 보면 그렇지 않아요. <아이 갓 머먼>은 노래가 주인 쇼예요. 의도적인 선택이었어요. 데뷔작에서 춤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제 활동 영역을 한정짓고 싶지 않았거든요. 연기 위주의 작품, 댄스 쇼 등 다 도전해보고 싶었죠. 뮤지컬은 여러 가지 요소, 춤과 노래, 연기가 다 있어서 좋은 거잖아요. 각각의 요소들을 따로따로 보여주는 게 아니라, 노래로 스토리를 표현하고 춤을 출 때는 손끝으로 이야기를 하면서 모든 요소들이 하나로 모인 연출, 그런 게 하고 싶었어요.


연출님은 일본에서 라이선스 뮤지컬과 창작뮤지컬을 함께 작업하고 계신데, 각 작업에서 얻는 보람이 다를 것 같습니다. 라이선스 뮤지컬은 세계 어디서든 같은 대본과 음악으로 만드니 초연과 비교했을 때 연출에서 차이가 납니다. 예를 들어 <태평양 서곡>은 해롤드 프린스와 제가 어떻게 다르게 연출했는지 볼 수 있죠. 사람들도 그걸 인식하면서 볼 테고요. 창작뮤지컬은 무에서 모든 걸 창조해내니까 흥분되죠. 연출가로서는 둘 다 즐거움이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라이선스 뮤지컬이라면 브로드웨이 공연 그대로 보여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일본에서 일본 사람들이 보여주는 공연이라면 당연히 일본의 오리지널리티를 살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일본에서 <태평양 서곡>을 공연했을 때 원작자인 스티븐 손드하임이 보러 왔어요. 그러곤 제가 연출한 버전의 <태평양 서곡>을 브로드웨이에 선보이자고 해서 뉴욕 공연이 성사됐죠. 그건 일본의 <태평양 서곡>에 일본의 정서가 담겨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각국의 문화를 기반으로 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독창성이 필요한데, 일본에선 보기 힘들어요. 한국에 창작뮤지컬이 많은 걸 보고선 작품을 만드는 입장에서 무척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한국도 창작뮤지컬의 제작 편수는 많지만, 여전히 라이선스 뮤지컬의 영향력이 큽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뮤지컬의 미래를 창작뮤지컬로 보고 지지하는 분위기가 형성돼있죠. 스바라시이! 그런 점이 대단합니다. 일본에서 연간 제작되는 창작뮤지컬이 열 편 정도 될까요. 제작 지원도 거의 없고, 극장들끼리 작품 홍보 전단을 교환하지도 않습니다. 관객들도 외국에서 인기 있었던 작품만 선호하지, 창작뮤지컬에 대한 신뢰가 별로 없고요. 한국에선 창작뮤지컬을 만들어서 미국이든 어디든 진출하려고 하잖아요. 일본은 그걸 시도하는 사람도, 만드는 사람도 너무 적습니다. 물론 제 입장에서 외국에서 들여온 작품을 올리는 것을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 나라의 문화나 사상이 들어가 있는 것은 역시 창작뮤지컬이죠.


그래서 아몬 상은 앞으로도 꾸준히 창작뮤지컬을 만들 생각이시죠? 네. 준비하고 있는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습니다. 그중에 <드림걸즈>의 작곡가 헨리 크리거와 함께 만들고 있는 <업 인 디 에어(Up in the Air)>를 언제 어떻게 올릴까 계획 중입니다. 불교 사상에 기반을 둔 작품인데요. (웃음) 개구리, 쥐, 뱀 등이 등장하고, 절에 있는, 번개를 맞아 위가 부러진 큰 나무가 배경이에요. 개구리가 그 나무 위에 올라가보니 그곳은 세상이 다 내려다보이는 천국이 아니라 굶주린 새끼 매들을 위해서 어미 새가 반쯤 죽은 동물들을 물어 나르는 둥지더란 거죠. 거기서 개구리가 삶과 죽음에 대해 깨닫는 내용입니다.


아시아에서 취할 수 있는 소재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아요. 지금부턴 아시아의 시대가 아닐까요. 아시아에서 맛볼 수 있는 재미를 세계 각국에 보여주고 싶어요. 서양에서 만든 틀 안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그 틀을 이용해서 우리가 표현할 수 있는 걸 보여줘야죠.


25년 동안 뮤지컬 연출을 해오면서 달라진 게 있다면 무엇인가요? 바뀌지 않은 것은 호기심과 열정, 작품을 계속 만들고자 하는 의욕이죠. 바뀐 게 있다면, 시간이 흐르고 사람들의 기호와 관심이 바뀐 데 발맞춘 결과일 겁니다. 해외의 작품들을 보고 배운 표현 방식의 영향을 받기도 하고요. 늘 안테나를 세우고 주위를 살피며 스스로를 훈련시켜요. 어제 오디션에 온 한 친구는 이번 공연에는 맞지 않았지만 굉장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 친구를 위해 뭔가를 하나 만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 해요. 연출가는 늘 안테나에 걸린 것에 반응하고 고민해야 할 것 같아요.


굉장히 많은 일을 하고 계신데, 현재 최고의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지금은 <더 위즈>, 그리고 어제 오디션 장에서 본 친구를 위해 공연을 하나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죠. (웃음) 지금 내가 왜 굳이 뮤지컬을 하고 싶으냐면, 뮤지컬은 이미 장르를 넘어섰기 때문이에요. 여러 장르를 통합해서 모든 걸 다 할 수 있어요. 저는 뮤지컬 연출을 하면서 정말 존경했던 크리에이터인 손드하임을 만나고 그와 함께 작업해서 무척 영광이었어요. 하지만 마찬가지로 젊고 재능 있는 친구들과 작업하는 것도 기뻐요. 이 모든 걸 할 수 있어서 정말 좋습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102호 2012년 3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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