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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인터뷰] 극작가 김은성, 영원한 동백꽃의 발화 [No.113]

글 |나윤정 사진 |김호근 2013-03-06 4,647

아름답게 피어난 순간 금세 지고 마는 붉은 동백꽃. 이는 무대에서 화려히 꽃 피우고 사라 지는 연극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 그래서 극작가 김은성은 동백꽃을 좋아한다. 어떤 이는 긴 겨울을 견디다 봄을 앞두고 저물어버리는 동백꽃의 운명이 허무하다 느낄지 모른다. 하지만 생명의 아름다움이 응축된 발화는 보는 이의 마음속에서 영원히 시들지 않는다. 김은성이 무대 위에 피워낸 붉은 동백꽃들이 하나 둘 우리의 가슴속에 각인되어 가는 것, 그 또한 이와 같은 이유가 아닐까?


뒤늦게 연극계에 발을 디딘 청년에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연극의 길을 고민하던 그는 스물아홉이 되던 해 마지막 도전이라 생각하고 자신의 희곡 <시동라사>를 신춘문예에 공모했다. 그리고 들려온 당선 소식. 희망적인 미래의 청사진을 그렸을 법한 순간이지만, 작가의 머릿속엔 ‘꿈을 일이 년 더 유예시킬 수 있게 되었다’라는 현실적인 생각이 떠올랐다. 대한민국에서 연극쟁이로 살아간다는 것, 그만큼 현실적인 무게감이 큰일이다.

 

그로부터 8년 후인 지금, 김은성은 명실공히 연극계의 주목받는 극작가다. 2011년 두산아트센터 창작자 육성 프로그램 아티스트로 선정된 후 2012년 두산 연강예술상에 이름을 올렸고, <목란언니>로 지난 2년간 당선자를 내지 않았던 제49회 동아연극상 희곡상의 수상자로 지명되며 화제를 모았다. “오래 전부터 존경하는 작가들이 받은 상이서 굉장히 기뻤어요. 동시에 걱정도 되고 겁도 났고요. 심경이 좀 복잡했죠.” <목란언니>는 연극협회 선정 한국연극 베스트 7, 평론가협회 선정 한국연극 베스트3에 꼽히며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굳이 수상 이력을 내세우지 않아도, 그간 김은성의 행보는 충분히 인상적이다. 데뷔작 <시동라사>를 시작으로 조선족을 통해 한국 자본주의 사회의 폐단을 꼬집은 <연변엄마>, 탈북자 문제를 다룬 <목란언니>, 광주 민주화 항쟁을 녹여낸 <뻘>, 한국전쟁 발발 전의 이야기를 그린 <로풍찬 유랑극단> 등을 연이어 발표하며 ‘한국적 사실주의 작가’란 칭호를 얻었다. “작가는 시대의 신음을 듣는 존재인 거 같아요. 그것을 침묵하지 않고 기록해 문학으로 남기고, 동시대적으로는 연극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는 거죠.” 그는 시대의 속도를 감시하고, 그것이 만들어낸 그늘을 외면하지 않고 작품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작가의 역할이라 말한다.

 

그래서 김은성은 치열하게 움직였다. 두 권의 희곡집을 발간했고, 서울연극센터 웹진 <연극IN>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며, 연극계 인물들을 인터뷰하는 섹션을 담당했다. 그리고 마침내 극단 달나라동백꽃을 창단. 공연뿐 아니라 극단 단원들과 함께 희곡 낭독 토크쇼인 팟캐스트 <희곡을 들려줘>의 제작, 연출, 진행도 겸하였다. “딱 까놓고 말해서 연극이 동시대의 비주류 예술이라는 것이 저를 좀 더 뛰게 만드는 것 같아요. 내가 적극적으로 주체가 되지 않으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니까요. 마냥 기다리기만 하면 세상과 소통할 수 없잖아요.” 그에게 연극을 한다는 것은 주체적인 예술가가 되는 일이었다.

 

김은성은 극단 달나라동백꽃의 <달나라 연속극>으로 올해의 첫 관객들을 맞이했다. 테네시 윌리엄스의 <유리동물원>을 재창작 한 것으로 2011년 창단한 극단이 지난해 2월 초연한 작품이다. 김은성은 10년 동안 메모해 놓은 것을 모아 5일 만에 이 작품을 썼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시절, 희곡 분석 시간에 <유리동물원>을 처음 접했는데 정말 아름다웠어요. 그리고 읽을 때마다 우리 시대의 이야기와 가까운 면이 많은 거예요. 자연스레 우리 이야기로 각색해보면 어떤 느낌이 들까 생각해봤고, 이를 계속 메모해 두었죠.”

 

김은성은 한 가족사를 통해 2차 대전 전후 미국 사회의 그림자를 그리고 있는 <유리동물원>의 캐릭터들이 자신의 주변 인물들과 많은 부분 겹쳐짐을 발견했다.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명문가 출신의 어머니 아만다는 명문 여고를 졸업했지만 IMF 시대에 당장 거리로 나와야 했던 우리 시대의 어머니와 연결되었죠. 구두 공장에 일하면서도 시를 쓰는 톰은 영화감독을 꿈꾸는 제 친구들과 비슷했고요.” 생각들은 꼬리의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이야기를 만들어갔다. “가장 중요했던 포인트는 로라의 유리동물이었어요. 로라만이 가지고 있는 연약하면서도 아름다운 세계를 어떻게 가져올까. 그러던 중 원주율을 만나게 됐죠. 제가 즐겨보는 TV 프로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에서 5천 자리가 넘는 원주율을 외우는 학생을 보게 됐거든요. 숫자 속에 이야기를 만들어 외운다는 학생의 사연이 참 재밌어서 이 소재를 가져와 쓰게 됐죠.”

 

그리하여 대학교 미화원으로 일하는 지방 명문 여고 출신의 엄마 여만자, 다리가 불편해 집안에 틀어박혀 원주율을 외우는 딸 은하,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영화감독을 꿈꾸는 아들 은창, 그리고 이들에게 잠시 희망이 될 뻔했던 신방과 대학원생 일영이 <달나라 연속극>에 주인공이 되었다. “저는 희곡을 쓸 때 해결이 잘 되지 않은 이야기를 좋아해요. 삶이 늘 그렇거든요. 그래서 인물들이 복잡다단한 감정으로 해석되길 원해요. 이 작품을 선과 악의 구도로 보시고, 일영을 나쁜 놈이라고 미워하는 관객들이 계세요. 하지만 저는 그보다 ‘일영의 시선으로 여만자 가족들을 봤을 때 나는 어떠한가’라는 질문을 가지고 돌아가셨으면 좋겠어요.”


<달나라 연속극> 공연을 끝낸 후, 김은성은 곧바로 창작 활동에 매진할 계획이다. “2013년은 계속 희곡을 쓰는 시간이 될 거 같아요. 올해는 무조건 두세 편의 신작을 쓸 생각입니다. 2011년에 작업했던 작품들이 지난해 공연됐듯, 올해는 2014년 오를 작품들의 초고를 만들려고 해요. 지금은 그동안 야심작으로 준비했던 작품들을 구상하는 단계예요.” 이런 까닭에 그는 향후 2~3년간 재창작 작업도 하지 않을 예정이다.

희곡을 쓸 때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낀다는 극작가 김은성. “저는 희곡을 쓸 때가 제일 재밌어요. 가장 어려운 도전이기도 하지만, 살면서 가장 흥분되는 순간이죠.” 2013년 내내 그가 느낄 강한 생명력에 우리의 마음 또한 설렌다. 동시대의 삶을 향한 그의 치열한 촉각이 이번엔 어느 방향으로 향하게 될까? 강인한 생명력이 담긴 그의 선택을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그 기다림이 아깝지 않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13호 2013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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