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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인터뷰] <보물> 전무송, 내내 아름다운 긴 여정의 쉼표 [No.110]

글 |김영주 사진 |심주호 2012-11-26 3,891

인생의 대부분을 조명 아래, 무대 위, 관객 앞에서 보내온
연극배우 전무송이 무대 인생 50년을 기념하는
작은 잔치 같은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대배우의 거대한 자의식이 아니라 소탈한 사람의 향기로
그가 무슨 일을 하는 어떤 사람인지, 그 일의 의미가 무엇인지
새삼 깨닫게 하는 그의 이야기를 정리했다.

 

 

우선 축하드려요. 공연을 준비하는 동안에도 특별하다는 생각이 드세요? 어휴, 축하는… 사실 이렇게 막 떠벌리고 싶지도 않아. 여느 공연 같으면 막 떠벌려도 좋은데, 내가 연극한 지 50년 됐다고 기념하는 공연을 떠벌리는 게 좀 그래. 특별히 다른 것도 없다고 생각해. 다만 딸이 쓰고, 사위가 연출하고, 아들이 출연하는 거잖아. 그동안 자식들이 본 연극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무대 위에서 표현해보겠다는 생각으로 작품을 쓰고 준비한 것이 대견하고 고맙다는 생각이 들어.

 

어떻게 시작하게 된 공연인가요? 일 년에 한 번 하는 생일이면 그냥 아침에 미역국 끓이고 맛있는 반찬해서 가족들이 같이 먹고 축하하면 되지만 환갑이다, 칠순이다 이런 날들은 평생에 하루밖에 없으니까 애들이 아버지 잔치를 해드리고 싶다 이런 이야기를 한단 말이야. 그런데 그때마다 내가 싫다고 그랬어.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금년까지는 생존해 계셨는데, 어른들 앞에서 그런 잔치를 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봐서 피했어. 할아버지, 할머니 계신 동안에는 안 되니까 그냥 지나가자, 늘 그랬는데, 걔들한테는 그게 아쉬웠겠지. 내가 우리 어머니, 아버지 생각하는 것처럼 지들로서는 나를 그렇게 생각했을 거 아니야. 그런데 애비가 안 하겠다고 그러니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하다가 마침 50년 되는 해가 금년이라고 하니까 이렇게 해보자 한 모양이야. 처음에는 그동안의 행적에 대한 책도 만들고 스크랩해 놓은 자료들을 수집해서 뭘 어떻게 하고 싶다고 하는 걸 내가 못하게 했어. 거, 뭐가 대단한 거라고. 그랬더니 자기들이 크면서 본 아버지, 자기들과 함께 살아오면서 보여줬던 좋았던 모습이라든지 또 지들 나름으로 안타깝고 안됐고 그런 모습들을 나름대로 그려낸 거 같아. 자식들도 지각을 갖게 된 후로는 제 부모가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고, 어떤 마음으로 인생을 사는지,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는지 쭉 지켜보면서 알게 되는 게 있잖아. 그 이야기를 하려는 거 같아.

 

남은 할 수가 없는 이야기겠네요. 그렇지. 내가 연극을 이걸 했다, 그걸 했다 하는 건 다 남들이 봤어. 그런데 내면은 지들이 제일 가까이에서 오래 접해온 거잖아. 그래서 그런 생각을 한 거 같아. 50년이 되었다는 이 시기에 작품으로서 하나의 점을 찍고 가도록 하는 것이 자식의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선물이라고 생각했다는 게 고마워. 사실은 주변에서 아, 왜 명작으로 하시지, 그런 큰 작품을 안 하느냐고도 하는데 사실은 보여줄 것도 없어. 그동안 연극으로 계속 보여줬는데 뭘 새삼 또 보여줘. 다만 50년 동안 오면서 아까도 말했던 애들이 지켜본 아버지로서의 마음, 그 속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정리해서 보여주는 건 좋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러니까 조용히 하는 게 좋은 거 같아. 좋은 말로 하자면 소박하게 조용히. 좀 속된 이야기로 하자면 바보스러운 짓을 하는 거지(웃음).

 

자기 자신을 연기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으세요? 대본을 보다보면 내가 지들 엄마와 주고받은 편지 중에서 발췌한 말도 있고, 내가 가끔 가다가 지들한테 던져준 말을 갖고 유추해서 그려본 것도 있기는 한데, 그건 나라기보다는 정말 세상 살아가는 아버지, 가정을 가진 남편, 그리고 일을 가진 한 남자로 사는 모든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있는 모습들이 아닐까 싶어. 연습을 하다보면 내가 이런 생각을 했나 싶어서 거꾸로 되짚어보기도 하는데, 나를 그리고 있다는 느낌으로 하는 건 아니야. 내가 자기들한테 보여줬던 어떤 마음이라든가 행위 같은 것들을 소재로 해서 또 하나의 어떤 인물을 만들어 무대에 세운 거니까. 어찌 보면 어떤 사람은 전무송이를 그렸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예를 들어, 이순신 장군에 대한 작품을 썼다고 해서 그 작품 자체가 이순신 장군은 아니잖아. 소재로 삼아 작품을 재창조하는 거지. 내가 비유를 너무 비약했나?(웃음) 하여튼 그 애들이 내게서 본 몇 가지 소재를 가지고 어떤 인물을 만들어서, 아버지가 하고팠던 말을 그 인물을 통해 내놓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해.

 

 

무대에 대한 첫 기억이 언제에요? 옛날에 내가 유치원을 다녔더라고. 해방이 되어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유치원에서 무용극을 하던 게 사진이 남아있어. 그래서 그걸 보고 ‘어, 어린 시절부터 나한테 뭐가 있었나?’ 했는데 바로 다시 생각해보니까 어렸을 때는 누구나 그런 걸 다 하더라고. 나만 뽑힌 게 아니잖아.(웃음) 그런데 그게 나름 분장이니까. 꼬까옷으로 의상도 입고. 그래서 그때가 시작이라고 생각은 하는데 기억은 안 나. 학교 다니면서 학예회에는 자주 뽑혔는데 내가 배우가 돼야겠다고 생각을 한 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난 후야. 학교 다니면서도 그런 생각을 안 했어. 그런데 등록금 마련이 어려워 대학을 포기하고 나서 친구들하고 영화 구경을 무지하게 다녔지. 그러면서 아리랑 잡지다 뭐다 이런 걸 자주 봤는데 거리에서 픽업돼서 배우가 됐다 이런 게 나오더라고. 그때만 해도 난 연극의 ‘연’ 자도 몰랐고 그냥 영화만 알 때였는데, 말하자면 나는 어떤 허위, 허영 때문에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거야. 옆에서 친구들이 ‘너 배우하면 좋겠다, 잘하겠다’ 그래서 ‘왜?’ 하고 물으면 ‘너 잘생겼잖아’라고 하길래, 그런가? 하고 거울을 보면 내가 괜찮아 보이더라고(웃음). 그런데 사실 배우는 잘생기고 못생기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매력이 있어야 하고 느낌과 특색이 있어야 하는데 그걸 알게 된 건 먼 후일이지.

 

또 배우에게 중요한 건 뭔가요? 배우는 보통 사람들과는 좀 달라야 한다고 생각해. 정말로 좋은 마음과 나쁜 마음이 뭔지를 알아야 하고,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게 되면, 그때는 나쁜 쪽으로는 안 가게 될 거 아니야. 그래서 바르게 살 수 있어야 해. 그전에 선생님들이 그런 말씀을 하셨어. ‘배우가 되려면 먼저 인간이 돼라. 그래야 참된 배우가 될 수 있다.’ 그러니까 훌륭한 배우가 되려면 먼저 인간이 되는 수업을 하라고 하셨거든. 인간사의 제대로 된 희로애락의 갈등을 표현해야 하는 게 배우잖아. 노래도 그렇고 다 그렇지만 우리 삶의 모습을 표현해야 하는 게 배우니까 그걸 알아야 한다는 게 선생님들의 말씀이었지.

 

처음부터 주목받으셨어요? 처음 서울예대의 전신인 드라마센터, 연극 아카데미에 들어가서 수업을 하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어. ‘친구들이 나더라 잘생겼다고 했으니 역시 주인공…’ 그 생각을 했지. 그런데 선생님이 큰 역을 안 줘. 주인공 역을 안 줄 뿐만 아니라 그나마 있는 대사도 잘려 나가고 말을 잘 못한다고 혼만 났어. 그래서 내 외모에 대해서 회의를 갖기 시작했지(웃음). 이건 아무것도 아니로구나, 말을 제대로 배워야 하고, 모든 걸 제대로 하려면 다른 많은 걸 공부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차츰차츰 하게 된 거지. 외형적인 건 둘째야. 하지만 타고나는 부분은 있어야 해. 자기가 모자란 부분을 공부해서 타고난 부분과 접하게 됐을 때 빛나게 되는 거니까.

 

그때 50년이나 이 일을 하게 될 거라고는… 그 생각은 못했지. 그냥 ‘내가 배우가 될 수 있을까’라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을 늘 했지. 한 작품을 할 때마다 어떨 때는 ‘너 지금 대체 뭐하는 거야?’라는 비판을 받고 기가 죽어서 ‘나는 배우가 못되겠구나.’ 실망을 하고, 또 어떤 작품은 ‘너 이번에 괜찮았어’라고 칭찬을 듣는데 그러면 ‘어? 그럼 나 배우가 될 수 있겠네!’라고 희망에 부풀고 그렇게 오르락내리락한 거지. 그러다가 점점 인정을 받으면서 작품은 쉬지 않고 하게 됐는데, 그때는 또 생활이 어렵잖아. 그러니 생활 때문에 연기를 포기해야 하나 고민을 하기도 하고, 또 극복하려고 애를 쓴 시간이 있었지. 그런데 지나고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그렇게 헤어 나오기 위해 발버둥 치고 고민했던 시간들이 먼 장정 속에서 굉장히 유익했다는 거지. 그런 아픔, 괴로움, 이런 것들을 참아내는 인내심이 작업하는 동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많은 보탬을 주고, 그 덕분으로 여기까지 오게 된 거야.

 

고통 속에서 뭘 배우셨어요? 그 고통과 괴로움의 순간들이 있어야 내 주변에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절실함’이라는 게 생겨나. 차 한 잔, 밥 한 그릇부터 내 아내, 내 새끼, 우리 선생님, 후배와 선배가 나한테 얼마나 필요한지 알아야 해.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는 동안 내 주변에 스치는 인연들은 모두 다 나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존재들이야. 그런데 우린 그런 생각을 잘 못해. 그런 것들을 내가 연극을 통해 깨달아가는 시간이 있었단 말이야. 그러니까 이걸 크게 자랑하고 어쩌고 하는 게 그래. 그냥 내 공부였는데… 내가 공부하는 과정이었을 뿐이었는데 그게 뭐가 대단해. 그리고 솔직히 사람들도 그렇게 대단하다고 생각도 안 해. 진짜야.(웃음) 그냥, 그 사람 참 열심히 살았어, 그 사람 참 열심히 하고 있어, 이런 식으로 살아온 시간에 대한 평가는 하지. 그런데 자랑을 하면 할수록 별거 없는 거야. 다 똑같은데 좀 요란하게 소리를 내거나 요란하게 꾸미는, 그런 차이지.

 

 

연극배우 전무송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각인될 수 있었던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음, 그건 그런 거 같아. 그리 머리가 좋지도 않고, 뛰어나지도 못하고, 그런데 하고는 싶고, 그리고 ‘아, 이게 좋다’라는 생각은 하고. 그러니까 부족하고 모자란 모든 것들을 극복하면서 열심히 하는 거지. 왜냐면 좋아하니까. 열심히 끊임없이 쫓아다니면서 기회를 달라고 부탁을 하고, 그래서 기회가 주어지면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하는 거, 그거야. 그렇게 해왔어. 특별하게 무슨 수를 써본 적은 없어. 내가 타고난 대로, 주어진 만큼 최선을 다했고  될 수 있는 대로 바르지 않은 것에 현혹되지 않으려고 애를 썼지. 많이 어려운 일이야. 현혹되기 직전에 피하기도 하고 그랬어. 연극을 그만두겠다는 생각까지 갔으니까. 그런데 주변에 나하고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 ‘그러지 마’, ‘하자’ 라고 끌어주고 그러면서 여기까지 온 거지.

 

그동안 해온 작품에서 특별히 내가 이해하기 좋은 인물이다, 하고 생각했던 인물이 있으세요? 이해하기 좋다 그런 작품은 거의 없어. 노력해서 작가가 만들어놓은 그 인물에 가까이 다가가려고 애를 써서 어느 정도 그렇게 다가간 작품이라면 <세일즈맨의 죽음>이라든가, <고도를 기다리며>가 생각나고. 옛날에 <베게트>라는 작품이 있었는데 거기에 베게트 역할을 하면서 애를 많이 썼지. <햄릿>을 번안한 <하멸태자>라든가, <춘향전>의 이도령이라든가, <마의태자>의 마의태자 같은… 다 그렇게 다가가보려고 노력했던 작품들이라 기억 속에 남아있다고. 그래서 50년이 지나는 동안, ‘아, 나도 그런 인물들을 만나봤어. 그런데 다 해내지는 못했어. 그래도 노력은 해봤지. 그렇게 노력해서 무대에서 박수는 받았지만 그 작품을 쓴 작가들이 만약 살아서 무대를 봤다면 좋아할까? 아니면 싫어할까? 그렇지만 어쨌든 나는 내게 주어진 능력대로 최선을 다한 거야. 그러니까 할 수 없지 뭐’ 그렇게 생각을 해.

 

무대는 정말 화려하고, 늘 다른 사람의 시선을 받고 박수를 받는 곳이잖아요. 그래서 땅에 발을 못 붙이기도 쉽고, 또 정말 뛰어나고 개성이 강한 빛나는 사람들도 많아서 흔들리지 않기가 너무 힘든 환경인 거 같아요. 음. 그런데 지금 우리 얼굴들을 보면 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어. 전 세계를 봐도 나와 똑같은 사람이 없어. 둘도 없어. 그렇게 사람들의 생각도 다 달라. 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뭔가 하나씩은 다 다르거든. 그만큼 바라는 것도 다르고, 하는 행위도 다르고 다 다른 거야. 화려한가 구질구질한가는 그냥 자기가 떳떳하게만 생각하면 어느 쪽이든 자기 철학이라고 봐. 남을 자기 기준에 두고 아, 저 사람은 행복하겠다, 저 사람은 불행하겠다고 판단하는 건 어리석은 생각이지. 나름의 기준으로 자기가 진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삶은 어떤 형태로 나타나든 행복한 거야. 애초에 다르기 때문에. 자기한테 무엇이 행복한 것인지 열심히 생각해서 그걸 이루고 나면 행복해지는데, 그 욕심을 채우기란 굉장히 힘이 들지. 그러니까 옛날에 어떤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어. 너 스스로에 대해 공부하라고.

 

연기를 하면서 자기 자신을 더 잘 알게 되셨어요? 그걸 알았으면 행복…했겠지. 그걸 아직 모르고 있어. 그래서 내 꿈이야. 그것이 내가 살아가는 힘이고. 그걸 향해서 살아가고 있어. 그걸 알아야 된다, 그래야 내가 훌륭한 배우가 될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인간이 되어야 배우가 된다, 배우가 된다면 인간이 된 것이거든. 그게 이루어졌다면 이제 끝난 거지 뭐. 그렇지 않아? 바랄 게 뭐가 더 있어. 끝난 거나 마찬가지지. 그런데 그 욕구가 물론 욕심이 아닌 게 없겠지만, 그것이 내가 살아가는 희망이요, 힘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해.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110호 2012년 1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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