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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REVIEWERS TALK] <더 캐슬>, 견고하지 못한 성 [No.189]

글 |안세영 사진제공 |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2019-06-11 4,183

<더 캐슬>, 견고하지 못한 성  

 

미국 연쇄 살인마 하워드 홈즈의 실화를 모티프로 한 <더 캐슬>이 초연을 올렸다. 타지에서 시카고로 건너온 젊은 커플이 호텔 캐슬에 머물면서 살인 사건에 휘말리고, 자신들의 어두운 면을 발견하게 되는 이야기다. <더뮤지컬>이 리뷰어 양성 프로그램을 통해 배출한 ‘더뮤지컬 리뷰어’ 4인이 <더 캐슬>을 관람하고 대화를 나눴다.

 

*익명성을 위해 참여자 이름은 뮤지컬 캐릭터명으로 기재했다.


 

초연작에서 느낀 기시감

모리블_ <더 캐슬> 공연 소식이 알려졌을 때 뮤지컬 마니아 사이에서 왜 또 연쇄 살인마 이야기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어. 최근 나오는 창작뮤지컬은 거의 예술가 아니면 살인마 이야기야. 

스위니_ 배경이나 소재는 <스위니 토드>랑 비슷해. 도시화와 산업화로 인해 인간성을 상실한 19세기 대도시, 그 안에서 벌어지는 연쇄 살인 사건!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더데빌>을 떠올리게 하더라. 선악을 상징하는 캐릭터가 등장해 인간을 시험에 들게 하잖아.

롤라_ 토니라는 캐릭터에게서는 <스위니 토드>의 거지 여인이 겹쳐 보였어. 처음부터 진실을 꿰뚫어보고 벤자민과 캐리에게 위험을 경고하는 예언자 같은 인물이라는 점에서.

레베카_ <레베카>의 벤과도 비슷하지 않아? 건물이 불타는 엔딩도 <레베카>가 떠오르고.

스위니_ 나도 거지 여인과 벤을 떠올리며 토니 역시 반전의 열쇠를 쥔 인물이겠구나 예상했어. 그렇다고 천사가 튀어나올 줄은 몰랐지만! 

롤라_ 토니의 정체가 반전이 되려면 초반에 완전히 미치광이나 바보처럼 보여야 해. 그런데 토니는 처음부터 너무 제정신이야. 그래서 초월적인 존재가 아닐까 의심스러웠어.

레베카_ 토니를 천사라고 보기에는 줄리아와의 관계가 너무 부각되잖아. 줄리아를 자꾸 언급하는 이유를 모르겠어. 

롤라_ 관객이 토니의 정체를 쉽게 파악하지 못하게 하는 속임수 아닐까?

스위니_ 맥거핀인 건가? 홈즈와 토니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 수수께끼가 풀렸다는 짜릿함이 아니라 황당함이 몰려오던데. 자극적인 소재, 관념적인 캐릭터, 어디서 본 듯한 장면들 모두 창작뮤지컬에서 흔히 보아온 요소들이었어. 

 

진실이 드러나도 사라지지 않는 물음표

스위니_ 대본에서 아쉬웠던 점을 하나씩 짚어볼까? 우선 캐리가 살인에 가담하기 전까지 30여 분 동안 이렇다 할 사건 없이 대사로만 이야기를 전개하니까 지루했어.

롤라_ 살인자라는 홈즈의 정체, 살인 수법 등이 일찌감치 공개되잖아. 그다음부터는 캐리와 벤자민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지는데, 그들이 갑작스레 악에 물드는 과정이 납득하기 힘들어. 

레베카_ 사실상 이야기를 끌어가는 건 벤자민보다는 캐리야. 벤자민은 캐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동조하는 거잖아. 캐리의 선택이 중요한데 어떤 결정을 내릴 때 깊은 고민이 느껴지지 않아.

스위니_ 캐리가 홈즈를 돕고 벤자민을 배신하는 이유는 곧 태어날 아기를 좋은 환경에서 키우기 위해서라고 말해. 근데 이 아기가 사랑해서 가진 아기도 아니고 강간당해서 생긴, 심지어 자기가 살해한 사람의 아기잖아. 그런데 이렇게까지 아기에게 집착한다는 게 잘 이해가 안 돼. 

모리블_ 맞아. 홈즈가 ‘그거 왜 낳으려고 그래?’라고 묻자 캐리는 ‘행복하려고요’라고 답하는데, 그게 어떻게 행복으로 이어지는지 모르겠어. 그 부분이 설명되면 조금은 개연성이 생길 텐데. 근데 캐리가 자기 욕망에 충실한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라서 좋다는 의견도 있더라. 

레베카_ 글쎄, 극단적인 선택의 근거로 모성을 내세운 캐리를 주체적이라고 볼 수 있을까?

스위니_ 나도 딱히 신선한 여성 캐릭터로 느껴지진 않았어. 뱀에게 유혹당해 선악과를 따먹고 아담에게 권하는 이브가 떠오르던데. 애초에 홈즈가 살인을 할 때 왜 캐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지도 의문이야. 캐리를 살려두는 것도 모자라 요구 조건까지 들어주다니, 홈즈가 뭐가 아쉬워서? 이런 자잘한 의문점을 마지막에 홈즈가 악마라서 이들을 시험한 거라는 설정으로 무마하는데, 반전이라기보다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를 수습하기 위한 변명처럼 느껴졌어. 

롤라_ 신작 창작뮤지컬에서 흔히 드러나는 문제는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거야. 앞뒤 사건이 인과 관계로 연결되는 게 아니라 여기 멋진 장면 하나, 또 여기 멋진 장면 하나, 마치 짤을 이어붙인 것처럼 진행되는 거지. 그 사이의 빈틈은 관객이 상상으로 메워야 해. 

레베카_ 음악은 어땠어? 난 기억에 남는 노래가 없어서 아쉬웠어. 

롤라_ 캐리와 벤자민의 첫 듀엣 ‘여기, 시카고에서’는 기억에 남아. 가사는 희망찬데 불길한 음악이 흘러나와서 손드하임이 떠올랐어. 그런 스타일을 밀어붙여서 스릴러의 분위기를 확실히 살리면 좋았을 텐데, 대부분의 노래가 감정 전달 외에 드라마적으로 어떤 기능을 하는지 모르겠어. 

스위니_ 무대는 미로 같은 호텔의 구조를 충실하게 살린 형태였어. 

롤라_ 하지만 계단이 많고 움직일 공간이 좁다 보니 배우들이 불편해 보여. 등퇴장도 정신없고, 인물들이 오밀조밀 붙어 있으니까 긴장감이 생기는 게 아니라 답답해. 다만 객실 뒤의 사람이 비쳐 보이는 구조는 흥미로웠어. 그 구조를 잘 살려서 앞뒤가 다른 인간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면 더 좋을 것 같아. 화려한 객실 뒤에서 살인이 진행되는 걸 보여준다든지 말이야. 

 

의도를 파악하기 힘든 열린 결말

스위니_ 이 작품은 수미상관 구조를 취하고 있어. 똑같은 대사를 오프닝에서는 홈즈가 말하고 엔딩에서는 벤자민이 말하는데, 이렇게 표현한 이유가 뭘까? 

레베카_ 나는 결말에서 벤자민이 일부러 홈즈인 척하고 잡혀가서 처형당하는 거라고 받아들였어. 자기가 벤자민으로 죽으면 악마인 홈즈는 부와 사회적 지위를 그대로 유지하고 살아갈 수 있잖아. 그걸 막기 위해, 홈즈를 사회적으로 죽이기 위해 자신이 홈즈인 척하고 죽는 거라고 해석했어. 그러니까 마지막 순간 벤자민은 자신을 희생해 선을 택한 거지. 

롤라_ 난 반대로 벤자민이 완전히 악마가 된다고 생각했는데. 마지막 순간 자살하지 않고 원래 계획대로 홈즈의 신분을 훔쳐 살아가는 거지. 형사 앞에서는 홈즈의 시체가 방화범 벤자민의 시체인 양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고. 교수대의 목줄은 실제 목줄이 아니라 벤자민이 서류상 사망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라고 해석했어. 

스위니_ 난 엔딩 장면에서 굉장히 혼란스러웠어. 홈즈가 벤자민의 제2의 자아였나? 창작뮤지컬에서 워낙 자주 등장하는 설정이잖아. 그래서 다른 관객들의 후기를 찾아봤는데, 무엇이 정답이라고 말하기 힘들 만큼 관객마다 결말에 대한 해석이 제각각이더라. 

모리블_ 열린 결말을 의도한 게 아닐까? 

스위니_ 창작진들 말로는 인간의 실존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싶었대. 극 중에 ‘선택’을 언급하는 장면이 많은데, 선과 악 사이에서 시험에 든 인물을 통해 영문도 모른 채 태어나 스스로 존재 방식을 선택하며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고뇌를 이야기하고 싶었나 봐. 

롤라_ 죽이지 않으면 죽는 극한의 상황을 설정해 놓고 인간의 선택을 논하기엔 무리가 있지 않나. 생존 본능 앞에서는 선악을 논하기 힘들잖아. 차라리 생존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악해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으면 어땠을까.

스위니_ 인물의 선택을 보여주고 ‘만약 당신들이라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이들의 선택을 악이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선에서 끝났다면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을 거야. 그런데 여기서는 천사가 나오잖아. 선악의 대결로 가고 싶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를 설득해 줘야지.

레베카_ 토니가 나서서 다시 선을 선택할 기회,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든가 말이야.

롤라_ 초기 대본은 홈즈도 악마가 아니고, 토니도 천사가 아니었다고 들었어. 벤자민이 살인마 홈즈에 동화되어 점점 악해지고, 캐리는 이와 반대로 사건의 진실을 쫓는 선한 인물로 설정되어 있었대. 다소 뻔한 구도이긴 하지만 이편이 추리하는 재미도 있고 인물 간의 대립각이 선명해서 더 재미있었을 것 같아. 

스위니_ 왜 지금처럼 바뀌었는지 모르겠지만, 흥행 요소에 휘둘리지 말고 <더 캐슬>만의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찾길 바라.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89호 2019년 6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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