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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TAFF] <달과 6펜스> 다미로 작곡가, 행복한 작곡가로 기억되고 싶다 [No.186]

글 |안세영 사진 |양광수 2019-03-29 6,274

<달과 6펜스> 다미로 작곡가, 행복한 작곡가로 기억되고 싶다

 

다미로는 현재 창작뮤지컬계에서 가장 바쁜 작곡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 초연한 <어린 왕자>와 <홀연했던 사나이>가 1년 만에 재공연을 올리고 신작 세 편이 개막을 앞두고 있다. 올해 그가 가장 먼저 선보이는 신작은 <달과 6펜스>. 서머싯 몸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광염소나타>의 뒤를 잇는 예술지상주의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이다.

 


 

원작과는 다른 이야기


<광염소나타>와 <달과 6펜스>를 잇는 예술지상주의 시리즈는 어떻게 기획되었나?  두 작품을 구상할 당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마블 코믹스의 히어로 캐릭터를 주연으로 하는 영화 시리즈가 공유하는 세계관)’에 흠뻑 빠져 있었다. 국내에서도 웹툰 제작사 와이랩이 하나의 세계관 아래 여러 웹툰을 연결하는 ‘슈퍼스트링’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굉장히 흥미롭더라. 뮤지컬에서도 비슷한 시도를 해볼 수 없을까 생각했다. 마침 <달과 6펜스>와 <광염소나타>가 예술지상주의라는 주제를 공유하고 있으니 이걸 3부작으로 발전시켜 보기로 결심했다. 사실 트리트먼트를 먼저 쓴 건 <달과 6펜스>인데, 아무래도 작곡가가 주인공인 <광염소나타> 쪽이 대본이 잘 써져 첫 번째로 선보이게 됐다.
 

<광염소나타> 때는 공동 작가로 나섰는데 <달과 6펜스> 극작에는 이름이 오르지 않았다. <광염소나타>는 작곡가 이야기이기 때문에 내가 직접 썼지만, <달과 6펜스>는 화가 이야기이기 때문에 전문 작가에게 맡기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성재현 작가와는 전작 <어린 왕자>를 함께한 경험이 있어서 믿고 맡길 수 있었다. 트리트먼트와 송 스케치를 넘긴 뒤에는 대본에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 완성된 대본을 보니 옳은 선택이었다는 확신이 든다. 
 

왜 예술지상주의라는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된 건가? 대학에서 음악을 공부하면서 음악가를 꿈꾸는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열일곱 살에 수석 입학한 친구가 있는가 하면, 저 실력으로 어떻게 입학했나 싶은 친구도 있었다. 그들 틈에 끼어 피가 마르게 연주 연습을 하고 작곡을 하면서 ‘이렇게까지 해서 얻는 게 뭐지?’라는 고민에 빠지곤 했다. 예술이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준다, 위로를 준다고 하지만 예술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결코 아름답지 못하다. 또한 나쁜 의도로 만든 작품이 누군가에겐 아름답게 비치고, 좋은 의도로 만든 작품이 모방 범죄와 같은 악영향을 낳기도 한다. 이 모든 걸 지켜보며 예술과 현실의 괴리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달과 6펜스>의 원작 소설을 생각하면 뮤지컬화에 우려되는 점이 없지 않다. 원작은 다분히 여성 혐오적이지 않나. 또 미투 운동 이후의 공연계에서 예술지상주의, 즉 도덕성은 없지만 예술성은 뛰어난 인물을 칭송하는 이야기가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도 의문이다. 그래서 고민이 많았다. 원작에서는 여성이 도구적인 존재, 예술에 방해가 되는 존재로 그려진다. 뮤지컬은 그래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대본 첫머리에도 이 작품은 소설 『달과 6펜스』에서 모티프를 따와 새롭게 창작되었다는 점이 명시되어 있다. <달과 6펜스>는 <광염소나타>와 달리 원작에서 인용한 문구가 전혀 없고 캐릭터 이름도 원작과 다르다. 특히 미셸이라는 여성 캐릭터의 비중을 강화하고 여성 혐오적인 표현을 피하는 데 공을 들였다. 어제만 해도 미셸이 시들어가는 꽃을 꺾고 떠나는 장면을 두고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2시간 동안 연습을 멈추고 여성 캐릭터가 꽃으로 비유되는 게 옳은가에 대해 배우들과 다 함께 고민하는 시간을 가진 뒤 해당 장면을 수정했다. 궁극적으로 뮤지컬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원작과 다르니 선입견 없이 봐주시면 좋겠다. 
 

예술지상주의 시리즈라는 이름을 내걸긴 했지만, <광염소나타>는 원작과 달리 예술보다 도덕의 손을 들어주는 쪽으로 결론이 난다고 느꼈다. 예술이 결코 사람 위에 있지 않다는 게 솔직한 나의 철학이다. 예술을 한다는 명목으로 주변에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광염소나타>와 <달과 6펜스> 모두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도덕적인 메시지를 너무 직접적으로 드러내면 역효과를 일으킬 것 같았다. 마지막에 살짝 생각의 여지를 남기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달과 6펜스>의 모리스, 유안, 미셸, 케이는 원작의 각각 어떤 캐릭터에 영향을 받아 탄생했나. 모리스는 찰스 스트릭랜드, 유안은 더크 스트로브, 미셸은 블란치, 케이는 소설의 화자가 변형된 캐릭터다. 케이는 <광염소나타>에 등장하는 K와 이름이 같다. 둘 다 액자식 구조의 작품에서 서술자 입장에 서 있는 캐릭터다. 3부작의 세 번째 작품에도 K라는 인물을 등장시킬 예정이다. 그런데 창작뮤지컬에 K라는 이름의 캐릭터가 너무 많다고 하니 좀 고민스럽긴 하다. (웃음)
 

네 명의 등장인물 가운데 가장 감정이입이 되는 인물은 누구인가? <광염소나타>에서는 S의 재능을 질투하는 J에게 감정이입이 됐는데, 이번에는 괴팍한 천재 모리스에게 애착이 간다. 나에게도 모리스처럼 자만에 차서 건방을 떨던 시절이 있었다. 약속을 어겨도, 심술을 부려도 주변에서 ‘쟤는 예술가잖아’ 하고 이해해 주니까 점점 그걸 당연시하게 됐다. 하지만 삼십 대 중반에 이르러 깨달았다. 좋은 곡을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사람이 먼저란 걸. 전에는 불멸의 작품을 남기고 쓸쓸하게 죽어간 예술가들을 동경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달과 6펜스>에서 모리스는 죽기 전에 이런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고작 이걸 남기기 위해 여기까지 달려 왔나’. 나는 그렇게 죽고 싶지 않다. 많은 사람과 어울려 내 노래를 흥얼거리다가 행복하게 눈을 감고 싶다. 행복한 작곡가로 기억되고 싶다.



 

3부작을 관통하는 음악


<광염소나타>는 살인과 방화에서 영감을 얻는 작곡가의 이야기다. 하지만 뮤지컬 음악은 어둡고 난폭하기보다 부드럽고 서정적인 분위기였다.  살인을 통해 음악을 만든다는 내용 자체가 워낙 자극적이기 때문에 음악까지 거칠면 관객이 극을 받아들이기 힘들 것 같았다. 살인을 저지른 뒤 최고로 행복한 상태에서 작곡을 한다면 오히려 천국을 걷는 듯한 부드러운 음악이 나오지 않을까 상상했다. 
 

소설 『달과 6펜스』에서 찰스 스트릭랜드의 그림은 관능적이고 위험한 아름다움을 지녔다고 묘사된다. 뮤지컬 <달과 6펜스>의 음악도 이런 분위기인가? 이번 음악은 <광염소나타>보다 더 부드럽고 청초할 거다. <달과 6펜스>는 큰 사건 없이 네 인물의 관계, 이들의 예술적 지향점이 변해 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춰 흘러가는 극이다. 그러다 보니 천천히 부드럽게 감정을 노래하는 곡이 많다. 
 

<광염소나타>와 <달과 6펜스> 모두 피아노와 현악기로만 악기를 편성했다. 예술지상주의 시리즈에 속한 두 작품이 지닌 음악적 공통점이 또 있나? 두 작품 모두 각각의 등장인물을 대변하는 악기가 설정되어 있다. <광염소타나> 때는 이 점이 크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달과 6펜스>에서는 확실히 부각시킬 생각이다. 피아노 반주 없이 첼로와 바이올린만으로 연주하는 곡도 있다. 또한 ‘6펜스의 달’이란 뮤지컬 넘버에서는 3부작을 관통하는 시그니처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공통된 대사도 나오니 찾아보시기 바란다. 
 

‘달’이 상징하는 이상적·근원적인 세계와 ‘6펜스’가 상징하는 세속적·물질적인 세계. 상반된 두 세계에 속한 인물들의 노래는 어떤 대비를 이루나? 달을 좇는 인물 모리스는 무장조, 무조성의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최대한 고음을 피했다. 모리스라면 말하듯이 노래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의 노래는 선율적이지 않고 불협화음도 많다. 그러다 보니 배우들이 음을 못 잡아서 굉장히 고생하고 있다. (웃음) 유안은 6펜스의 세계에 속해 있지만 모리스의 영향을 받아 점차 그를 닮아간다. 그래서 유안의 노래는 후반부로 갈수록 모리스와 비슷해진다. 나중에는 똑같은 노래를 서로 바꿔 부르기도 한다. 
 

작곡 과정에서 영감을 준 음악이 있나? 트리트먼트를 쓸 때 LP판으로 브람스의 음악을 즐겨 들었다. 우울하게 흘러가다 갑자기 기쁨으로 치솟고, 또 갑자기 극도의 어둠으로 떨어지는 그의 음악은 낭만파 음악 특유의 힘을 지녔다. 특히 브람스 현악4중주 제1번 C단조는 듣고 또 들어도 경이롭다. 브람스는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삶을 살다 간 작곡가이기도 하다. 생전에 크게 각광받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비참하게 살지도 않았고, 후대에 그 진가를 인정받았다. 브람스는 노년에 새로운 곡을 쓰기보다 젊은 시절 쓴 곡을 재편곡하는 작업에 치중했다. 나도 나이가 들면 그런 작업을 해보고 싶다. 
 

흔히 예술적 재능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딱 잘라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재능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혹자는 끝없이 샘솟는 열정이, 혹자는 고독을 견디는 능력이 곧 재능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어떤 때 스스로 재능이 있다고 느끼나? 사람 관찰을 즐기는 게 나의 재능인 듯싶다. 일종의 직업병인데, 사람들이 지닌 저마다의 호흡이 나에게는 음악으로 들려온다. 느린 소나타, 빠른 탱고, 에너지 넘치는 라틴 음악, 자유로운 재즈 등등. 뮤지컬 대본을 읽을 때도 직접 대사를 읽고 연기를 하며 등장인물이 어떤 호흡을 지녔는지 파악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실제로 곡을 쓰는 데 걸리는 시간은 오히려 짧다. <달과 6펜스>의 경우 피아노 앞에서 작곡한 시간은 16일 정도다. 물론 잠도 못 자고 쓰긴 했지만 말이다.


 

2017년 <더뮤지컬>에 실린 <리틀잭> 작업기를 보니 술집이나 한강에서 즉흥적으로 작곡한 곡이 많더라. <달과 6펜스>에도 그런 곡이 있나?  오프닝 넘버이자 작품 전체를 꿰뚫는 테마곡 ‘달의 얼굴’을 길거리에서 작곡했다. 버스 안에서 대본을 읽다가 가사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떠오르는 멜로디를 즉시 녹음한 것이다. 이 노래가 <달과 6펜스>에서 가장 먼저 쓴 곡이다. 가끔 이렇게 보자마자 악상이 떠오르는 가사가 있는데, 그렇게 만들어진 곡이 관객에게도 사랑을 받더라. 
 

소설 『달과 6펜스』 속 화가 찰스 스트릭랜드는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철저히 무관심하다. 하지만 뮤지컬은 대중 예술이고 흥행 여부를 무시할 수 없다. 한 인터뷰에서 ‘제작사가 큰 손해를 보지 않는 공연을 만들고 싶다’는 말을 남겼던데, 뮤지컬 음악에 요구되는 대중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지금까지 작곡을 하면서 대중의 취향에 맞춰 스스로 타협한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기본적으로 타고난 성향 자체가 대중적인 편이다. 어렸을 때부터 라디오를 끼고 살았고, 대학에서도 실용음악을 전공해서 대중가요에 친숙하다. 그래서 내가 좋으면 관객들도 좋아할 거라는 믿음이 있다. 대중적인 음악이면 어떤가? 나도 이십 대에는 어려운 음악을 만들고 싶어 했다. 이 세상 모든 음악 이론을 섭렵하겠다는 생각으로 미국 교재까지 구해다 공부했다. 그런데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이게 다 말장난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온갖 어려운 용어를 써서 설명해 놓았지만, 결국 핵심은 마음을 흔드는 음악을 만드는 게 아닌가. 쉬운 음악이든 어려운 음악이든 그 핵심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예술지상주의 3부작의 세 번째 작품도 어느 정도 밑그림이 그려져 있나? 그렇다. <광염소나타>가 작곡가, <달과 6펜스>가 화가 이야기였다면 3부에서는 배우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이건 원작이 없는 순수 창작물이고 배경도 현대다.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인 만큼 중극장으로 규모를 키워서 인물들 사이의 치열한 두뇌 싸움을 보여주고 싶다.
 

예술지상주의 외에 뮤지컬에서 다뤄보고 싶은 주제가 있다면? 요새 ‘사람들이 왜 이렇게 화가 나 있지?’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별거 아닌 일에도 화를 내고 서로 물어뜯지 못해 안달이다. 다들 빠르게 변하는 시대를 쫓아가느라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없어서 그런 게 아닐까. 오세혁 작가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헤르만 헤세의 자아 성찰 소설 『데미안』을 뮤지컬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남녀 2인극이되 회차에 따라 두 배우가 서로 역할을 바꾸어 연기하는 형식을 생각하고 있다. 『데미안』은 한 사람 안에 공존하는 밝음과 어둠, 남성과 여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기 때문에 이러한 실험적인 형식이 잘 어울릴 것 같다. 흥미로운 작업이 되리라 기대한다.
 

올해는 <달과 6펜스> 외에 어떤 신작을 선보일 계획인가? 7월에 허난설헌을 주인공으로 한 뮤지컬 <난설>이 개막하고, 11월에는 홍콩 영화 <무간도>를 무대화한 작품으로 첫 대극장 뮤지컬에 도전한다. 올해를 바쁘게 보내고 나면, 내년에는 6개월에서 1년 정도 뉴욕에 머무르며 재충전의 시간을 보낼 계획이다. 개인 레슨을 받고 뉴욕에서 활동하는 지인들과 교류도 하며 브로드웨이 진출이라는 꿈을 향해 한 발짝 나아갈 것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86호 2019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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