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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NEW YORK] <콜 미 마담>, 뮤지컬로 정치를 풍자한다는 것 [No.186]

글 |여지현 뉴욕 통신원 사진 |Stephanie Berger 2019-03-19 4,375

<콜 미 마담>, 뮤지컬로 정치를 풍자한다는 것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뉴욕 시티 센터의 ‘앙코르!’ 시리즈

올해 개관 75주년을 맞는 뉴욕 시티 센터는 연극, 뮤지컬, 무용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이 가능한 다목적 공연장이다. 현재 브로드웨이의 극장인 맨해튼 시어터 클럽의 중소극장으로, 그리고 뉴욕 시티 센터가 프로그래밍하는 다양한 레퍼토리를 제공하고 있는 공연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원래는 뉴욕 사회단체인 슈라이너스(프리 메이슨 계열의 자선단체)가 1922년 건설해 보유하고 있었다. 1920년 말, 단체의 재정이 어려워지면서 뉴욕시에 건물세를 체납하게 되고, 결국 건물 소유권이 뉴욕시로 넘어가게 된다. 그리고 1940년대에 이르자 뉴욕시에서 철거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당시 뉴욕시 시장이었던 피오렐로 라과디아(뉴욕 라과디아 공항을 지은 바로 그 사람이다)가 비어 있던 이 건물을 뉴욕 시민들을 위한 다목적 문화 공간으로 바꾸자는 결정을 내린다. 마침내 1943년 뉴욕 필하모닉의 공연을 시작으로 뉴욕 시티 센터의 역사가 막이 올랐다. 무어풍의 인테리어가 매력적인 뉴욕 시티 센터의 메인 공연장은 좌석 규모가 2천 석이 넘는 대형 공간이었다. 1960년대 링컨 센터가 건립되기 전까지는 뉴욕의 단 하나뿐인 다목적 문화 공간으로 뉴욕 시티 발레단과 뉴욕 시티 오페라단도 소속된 적이 있다. 링컨 센터가 개관한 이후 다목적 문화 공간으로 활용됐지만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던 뉴욕 시티 센터의 명성이 다시 찾아온 것은 1994년 첫발을 내딛은 ‘앙코르!’ 시리즈부터였다. 

 

잠자던 작품에 새로운 기회를 주는 시리즈

뉴욕 시티 센터의 ‘앙코르!’ 시리즈는 1년에 세 작품 정도를 선택해, 라이브 오케스트라와 간소한 무대 장치를 이용해 보통 4일간 6회 정도 짧게 공연을 올린다. 브로드웨이에서 다시 보기 힘든 193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를 대표하는 ‘고전’ 뮤지컬이 주인공이다. 콜 포터부터 조지 거슈윈, 로저스 & 해머스타인, 스티븐 손드하임까지 미국 뮤지컬의 세대를 아우르는 레퍼토리를 자랑하는 ‘앙코르!’ 시리즈는 지난 25년간 무려 80여 편 정도의 리바이벌 공연을 올렸다. 특히 1996년에 공연되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결국 브로드웨이로 간 <시카고>는 현재까지 ‘제일 오래 공연되고 있는 작품’이라는 타이틀을 지키고 있는 이 시리즈의 가장 큰 성공작이다. 이외에도 레너드 번스타인과 베티 콤든, 아돌프 그린의 <원더풀 타운>(1953)이나 해럴드 알렌과 입 하버그의 <피니안스 레인보우>(1944) 역시 ‘앙코르!’ 시리즈를 거쳐 다시 브로드웨이에 올랐다. 설사 공연이 브로드웨이까지 이어지지 못하더라도 의미는 남았다. 콜 포터의 초기작 <뉴요커스>(1930), 뮤지컬 마니아에게 큰 사랑 받는 찰리 스트라우스와 리 애덤스의 <잇츠 어 버드… 잇츠 어 플레인… 잇츠 어 슈퍼맨>(1955) 등을 무대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뮤지컬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꽤 큰 의미를 지닌다. 물론 이 시리즈가 사랑을 받는 이유에는 뉴욕의 공연을 오랫동안 사랑해 온 현지 관객과 관광객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선물 같은 감정도 빼놓을 수 없다. 이렇듯 ‘앙코르!’ 시리즈 성공에 힘입어 뉴욕 시티 센터는 2013년부터 좀 더 다양한 시각과 목소리의 작품들을 무대 위에 올리는 ‘앙코르! 오프 센터’ 시리즈를 시작했다. 또 ‘앙코르!’ 브랜드가 사랑받자 ‘앙코르! 언스크립티드’라는 이름의 공연 관련 강좌를 제공하고 있다. 가끔 특별 이벤트로 콘서트를 진행하는데, 지난 2017년 브로드웨이 허드슨 시어터의 개관 공연으로 올랐던 스티븐 손드하임의 <선데이 인 더 파크 위드 조지>가 바로 이 콘서트의 첫 공연이었다. 참고로 작년에는 마빈 햄리시의 <코러스 라인>을 선보였다.

 

1950년대의 정치 풍자극 <콜 미 마담> 

올해로 26번째를 맞이하는 2019년 ‘앙코르!’ 시리즈의 첫 작품은 어빙 벌린의 뮤지컬 <콜 미 마담>이다. 사실 이 작품은 1995년에도 이 시리즈에서도 공연된 적이 있다. 1994년 ‘앙코르!’ 시리즈의 라인업은 제리 복과 셀던 하닉의 <피오렐로!>(1959), 로저스 & 해머스타인의 <알레그로>(1947), 그리고 커트 와일과 아이라 거슈윈의 <레이디 인 더 다크>(1941)로 구성됐다. 평단과 관객의 반응은 좋았으나 티켓 판매가 많이 이뤄지지는 않은 것이 문제였다. 때문에 ‘앙코르!’ 시리즈의 지속이 다소 어려운 상황에 놓였고, 나름 큰 기대를 걸고 다음 시즌의 첫 작품으로 준비한 뮤지컬이 바로 <콜 미 마담>이었다. 이때 <콜 미 마담>은 브로드웨이 베테랑 여배우인 타인 데일리를 내세워 큰 성공을 거두었다. 타인 데일리는 1989년 <집시>의 억세고 매력적인 엄마 로즈 역을 맡아 1990년 토니 어워즈에서 뮤지컬 부문 최우수여배우상을 받은 배우다. 그녀는 1950년 <콜 미 마담> 초연에서 여주인공을 맡았던 전무후무한 배우 에델 머먼(그녀 역시 <집시>의 로즈로 유명하다)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앙코르!’ 시리즈는 <콜 미 마담>의 성공으로 지금까지 사랑받는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꽤 성공적이었던 과거를 가졌지만 <콜 미 마담> 스토리는 현재 관점에서 조금 진부하고 밋밋하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샐리 애덤스는 정치나 외교에는 문외한이지만 오클라호마에서 유전이 터져 생긴 가족의 재력으로 워싱턴 사교계의 여왕이 된 인물이다. 그녀는 미국의 33대 대통령인 해리 트루먼의 임명을 받아 가상의 나라인 리히텐슈타인에 외교관으로 가게 된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리히텐슈타인에서 코스모 콘스탄틴 수상과 사랑에 빠진다. 또 샐리 애덤스의 열정 넘치는 남자 비서 케네스는 리히텐슈타인의 공주 마리아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정치나 외교를 잘 모르는 워싱턴 사교계의 인물이 권력자와의 친분으로 외교관이 된다는 설정은 트루먼 대통령이 당시 룩셈부르크의 외교관으로 펄 메스타라는 여성을 보낸 역사적 사실에서 모티프를 얻었다. 초연 당시 트루먼 대통령이 재선에 당선되어 임기 중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나름 신랄한 정치 풍자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가상의 국가인 리히텐슈타인이 가난한 나라라는 설정, 그리고 콘스탄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샐리 애덤스가 이 가난한 나라가 당연히 미국의 원조를 원하리라 생각하고 차관을 진행하는 점 등은 가난한 나라에 대한 물질적인 원조가 많았던 당시 미국의 외교정책에 대한 비판이기도 했다. 

정치와 사회상에 대한 풍자가 이야기의 틀을 구성하고 있지만, 그 중심에는 전혀 다른 배경의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익숙한 로맨틱 코미디가 있는 전형적인 미국의 뮤지컬 코미디이다. 이런 유머는 일단 미국 뮤지컬의 거장 중 하나인 어빙 벌린의 음악과 그에 딱 맞아떨어지는 재치 있는 가사 그리고 그에 걸맞은 하워드 린지와 러셀 크루즈(로저스 & 해머스타인의 <사운드 오브 뮤직>과 콜 포터의 <애니씽 고즈> 등에서 같이 작업한 뮤지컬 극작 콤비)의 코믹한 대사를 통해서 전달된다. 정치와 외교에는 무능하지만, 사람은 잘 다루는 샐리 애덤스와 그녀보다 훨씬 더 똑똑하지만 숙맥인 그녀의 비서 케네스 깁슨의 조합은 전형적인 1950년대 코미디 스타일로 지금도 역시나 많은 웃음을 자아낸다. 또 리히텐슈타인의 공주인 마리아와 케네스의 만남을 반대하는 공작 부부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서툴지만 풋풋하게 마음을 나누는 장면도 따뜻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이 작품의 이야기가 주는 소소한 즐거움이나 유머는 매력적이라고 하기에는 낡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아무리 풍자라고는 해도, 지금 미국 대통령과 그 내각의 무능함과 친목 정치가 연이어 뉴스에서 보도되고 있는 현재와 별반 다르지 않은 샐리 애덤스의 모습은 관객이 공감하고 싶은 주인공은 분명 아닐 것이다.  

 

29대의 악기가 라이브로 들려주는 어빙 벌린의 멜로디

사실 이 부분은 ‘앙코르!’ 시리즈가 작품을 선정하고 올릴 때마다 항상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긴 하다. 이미 물리적으로 몇십 년의 시간이 지났을 뿐 아니라 그동안 사회적으로 엄청난 변화를 겪은 미국인의 정서가 달라졌다. 이런 상황에서 옛날 이야기를 관객에게 들려주는 것이 어떤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에 대한 궁리는 계속될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의미는 작품, 관객 그리고 당시 미국 사회가 마주하고 있는 문제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관점에서 ‘앙코르!’ 시리즈가 중요한 브랜드가 된 이유를 작품 자체가 관객에게 와닿았다라고만 설명할 수는 없다. 아마도 이 시리즈의 가장 큰 매력은 작품이 뮤지컬로서 가진 음악적인 특성을 극대화해서 관객들에게 전달한다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번 작품 <콜 미 마담>도 마찬가지이다. 미국 뮤지컬의 ‘지금’을 만들어낸 수많은 명곡을 수준 높은 오케스트라 혹은 밴드가 연주하고, 그에 맞춰 브로드웨이 베테랑 배우들이 노래하고 연기하는 것은 이 자체로 ‘앙코르!’ 시리즈가 존재할 가치는 충분해진다. 이번 공연에서 샐리 애덤스 역을 맡은 카르멘 쿠삭은 에델 머먼이나 타인 데일리만큼의 스타 파워나 카리스마는 없다. 그러나 그녀의 목소리는 어빙 벌린이 상상한 워싱턴 사교계의 대모 같은 존재인 샐리 애덤스의 목소리를 담아내기에 충분했다. 코스모 콘스탄틴 역의 벤 데이비스 역시 브로드웨이의 크고 작은 작품들을 통해 얼굴을 많이 알린 바리톤으로 어빙 벌린의 유려한 멜로디에 딱 맞는 음색을 지녔다. 특히 1막의 마지막에서 카르멘 쿠삭과 함께 서로가 천생연분임을 확인하며 함께 부르는 ‘The Best Thing for You’는 다른 듯 어울리는 두 사람의 음색을 통해 관계를 다시금 확인시켜준다. 

무려 29대의 악기가 등장하는 뉴욕 시티 센터의 오케스트라는 어빙 벌린 음악의 가장 큰 장점인 유려한 멜로디를 잘 부각해 준다. 1막에서 정당 싸움을 하는 국회의원들을 달래며 샐리가 부르는 ‘The Washington Square Dance’나 케네스가 리히텐슈타인에 도착해 처음 마리아를 만나서 부르는 ‘It′s A Lovely Day Today’, 2막에서 샐리가 상사병에 걸린 케네스와 함께 부르는 노래인 ‘You′re Just In Love’ 등 미국인에게 친숙한 뮤지컬 넘버들은 오케스트라의 선율을 통해 관객의 향수를 자극한다. 

뮤지컬 <팔세토>와 <스펠링 비>의 의상을 맡았던 젠 카피로는 미국 사교계의 화려함과 리히텐슈타인의 소박함을 대비해서 보여준다. ‘앙코르!’ 시리즈에 자주 참여해 온 알렌 모이어의 무대는 열 개 남짓의 대소도구를 통해 효율적으로 공간을 만들어준다. 또 눈에 띄었던 것은 2016년 리바이벌로 공연된 어빙 벌린의 다른 뮤지컬 <홀리데이 인>에도 참여한 바 있는 데니스 존스의 안무이다. 벌린의 음악이 지닌 고전적인 느낌과 워싱턴 사교계에서 췄을 법한 여러 장르의 사교댄스를 앙상블의 움직임을 통해 굉장히 잘 풀어냈다. 결과적으로 그의 기여가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잡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연출의 특별함이 상대적으로 덜 보였던 작품에서 안무가 무대 구성과 움직임을 잘 통일했기 때문이다.  



 

무대 위에서 뮤지컬의 역사를 보는 것의 가치 

아쉽게도 ‘앙코르!’ 시리즈의 2019년 첫 작품은 만족감보다는 아쉬움이 더 많았다. 그렇긴 해도, 이번 <콜 미 마담>을 비영리 단체의 무대에서나마 볼 수 있는 것은 공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큰 특권이다. 이전에, 그리고 앞으로도 모든 ‘앙코르!’ 시리즈가 그렇겠지만, 무대 위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배우들이 전달해 주는 이야기는 오래된 책을 상상하며 읽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앙코르!’ 시리즈가 지닌 마지막 장점은 많은 수의 앙상블 멤버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무려 스무 명 남짓한 앙상블이 열 명이 넘는 주요 배우들과 함께 무대 위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것은 뉴욕 시티 센터 ‘앙코르!’ 시리즈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야기가 아쉽거나 진부하게 느껴지더라도, 30명 가까운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29대의 악기가 만들어내는 선율과 함께 연기하는 그 모습만으로 ‘앙코르!’ 시리즈는 충분히 눈여겨볼 만한 프로그램임에 틀림없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86호 2019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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