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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뮤지컬

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피처 | 공연의 중간 점검자, 조연출 [No.88]

글 |김유리 사진 |이맹호 장소제공 | De Chocolate Coffee 논현점 2011-01-26 7,569

     

조연출에 대한 기억 하나. 전화기는 늘 목에 걸고, 왼손에는 그날의 스케줄 표가 꽂혀 있는 A4 보드, 오른손에는 펜을 들고 늘 빠르게 걷거나 뛰고 있다. 늘 여분의 배터리를 주머니에 두거나 일부는 계속 충전 중이다. 조연출(Assistant Director)은 사전적으로는 연출가와 가까이 일하면서 예술적 작업과정을 돕는 사람을 지칭한다. 국내에서는 연출가가 되기 위해서 대부분 거치는 단계여서, 작품 내적인 부분뿐 아니라 외적이고 행정적인 부분까지 파악하여 전체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동시에 공연 준비가 무리 없이 진행되기 위해 커뮤니케이션의 윤활유 같은 입장도 취하고 있다. 하루를 통화로 시작해서 통화로 끝내는 조연출의 이야기를 현재 경력 2년~8년 차의 조연출을 통해 들어보았다.

 

                                                                           (왼쪽부터 김수빈, 오루피나, 안정하)

 

조연출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안정하
 이태리에서 연출 공부를 하고 돌아와 공연을 보러 갔는데 관계자가 관람 평을 쓰는 조건으로 마련해 준 자리였다. 관람 평을 읽은 연출가가 내가 연출가를 지망한다 하니 관심을 보였다더라. 그렇게 돌아온 지 한 달도 안 돼서 <루나틱>으로 처음 조연출을 시작하게 됐다. 운이 좋았다. 공연은 어릴 적 부모님께서 몇 번 보여주셨는데 볼 때마다 재밌고, 또 보고 싶었다. 미술 전공으로 안양예고에 들어갔는데, 사실 공연에 더 기웃댔던 것 같다. 매 주말마다 교복 차림으로 동숭동을 혼자 배회했다. 공연을 볼 때면 좋아서 눈물이 났고, 가슴이 뛰었다. 그림은 나이가 들어서도 할 수 있으리란 생각에 하고 싶은 것을 해보고 싶어 유학을 선택했다. 마침 친한 친구를 만나러 이태리에 놀러 갔다가 좋은 극장들을 보고 극장 관련 분야 일을 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졌다. 그렇게 공부하고 돌아오면 공연에 참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연출 과정으로 4년간 유학했다.

오루피나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치다가 고등학교 때는 작곡을 배웠다. IMF 이후에 작곡을 그만두고, 공대를 들어가 한 학기 만에 그만뒀다. 어렸을 적부터 음악을 좋아하고, 춤추는 것을 좋아했는데, 뮤지컬은 두 가지가 다 있지 않나. 우연히 접하곤 재미있어서 몇 편 봤다. 근데 내용은 굉장히 재미있는 얘긴데, 내가 이 자리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워 눈물이 나더라. 그때부터 무대 뒤가 궁금해졌다. 정말 공연 쪽을 꿈꾸게 된 사소하고도 결정적인 계기가 극장 옆 ‘Staff Only’라고 써있는 문이었다. 그 문 안으로 들어가 보고 싶었다. 이를 계기로 재수해서 연출과에 운 좋게 붙었고, 그때 만난 교수님이 이지나 선생님이다. 선생님의 수업은 학생들에게 매시간 새로운 것을 던져주고,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하는 스타일이었다. 한 학기 수업을 듣고 선생님을 졸라 1학년 때, 선생님이 연출하신 연극 <클로저>의 조연출로 입문하게 되었다.


김수빈  처음 인연을 맺은 뮤지컬은 열다섯 살 때 본 <렌트>였다. 알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당시 그림을 그리는 것에 권태기가 온 시점이었는데, 그땐 그런 감정을 ‘사춘기 시절 잠깐 느낀 동경’으로 생각하며 애써 눌렀던 것 같다. 그렇게 미대 입시를 준비하던 중, 한예종 영상원을 같이 준비했다. 웬걸, 미대는 떨어지고, 다양한 매체 공부를 하고 싶어 방송영상과로 바꿔 쓴 한예종에 꼴찌로 붙었다.(웃음) 대학에 온 후 공연을 즐겨 보게 되다보니 아무래도 영상 연출이라는 내 전공에 서로 영향을 주고받게 되더라. 그러던 어느 날, 학교의 연기 수업 지도교수님으로 오신 오디뮤지컬컴퍼니 이사님의 수업을 듣게 됐다. 그 학기에 유난히 외국인 학생들이 많아 통역이 필요한 상황이었고, 어렸을 때 외국에서 살다온 경험으로 내가 할 수 있는 한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걸 보신 그 교수님이 외국인 연출과 일해보지 않겠냐고 제의하셔서 2008년 뮤지컬 <마이 페어 레이디>의 연출 통역으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지킬 앤 하이드>, <맨 오브 라만차>까지 데이비드 스완(이하 스완)과 작업했고, 이후 <드림걸즈>나 <미스 사이공>에서도 통역 및 기획팀, 연출부 등에 참여했다. 본격적으로 조연출을 맡게 된 것은 2009년 <올 슉 업>에서다. 사실 뮤지컬 연출에 대한 모든 기본적인 것은 스완에게 배웠으니, 그가 나의 선생님이 되는 셈이다.

 

공연 준비의 A부터 Z까지

 

조연출이 하는 일은?
안정하  캐스팅 섭외 외에 스케줄 정리, 신(Scene)별 정리, 스태프 연락, 그리고 연출가가 공연에만 신경 쓸 수 있도록 스태프, 배우 간의 조율과 정리 등을 담당한다.
오루피나  그리고 모든 기록이 되는 일지를 정리하고 미팅 스케줄 정리하는 일도 한다.
김수빈  회사마다 다른 것 같다. 내 경우엔 회의 일지 자체는 컴퍼니매니저가 쓰고, 나는 연출가에게서 나오는 노트만 적었다.   
오루피나  연습이 들어가면, 조연출은 기본 스케줄 정리를 한다. 요즘은 무대감독님이 연습 때도 계시는 경우가 많아서, 함께하기도 한다. 연출가도 각자의 스타일에 따라 다 다르다. 어떤 연출가님은 신 연습 스케줄을 직접 정리하시기도 하고, 내 경우처럼 조연출이 짜서 컨펌을 받는 경우도 있다. 대강 이 날짜면 전체 신의 몇 퍼센트가 진행이 되어야 한다는 흐름이 경험으로 생긴다. 주 단위로 미리 짜서 연출가님께 보여드리고 문제가 없으면 무대 감독님과 협의해서 디테일한 스케줄을 짜고, 배우들에게 전달한다.
김수빈  내가 경험한 외국 연출들은 해외 팀 무대감독과 연출이 직접 스케줄을 짜더라. 
오루피나  한국에서는 그렇게 하는 게 불가능할 거다. 외국 연출과 스태프들은 한국에 그 작품만 하려고 오지 않나. 
김수빈  그런 팀이 있고 아닌 팀도 있다. 스완의 경우는 들어와서 주어진 작품이 여러 개라도 다 하고 가고, <드림걸즈>나 <미스 사이공>의 경우는 한국 공연을 위해 소집된 크루라 오기 전부터 준비해서 스케줄에 맞춰 진행하겠다고 준비하고 온 사람들이었다. 해외 팀도 경우마다 다 다르더라.
오루피나  사실 스케줄을 짜면서 제일 힘든 게 크리에이티브 팀 스케줄을 짜는 것이다. 사실 감독님들은 2~3개씩 하시는 게 가능한 것 같은데 조연출은 전혀 불가능하다. 오히려 공연 때 배우들 스케줄 맞추긴 편하다. 공연이 저녁때니 거의 낮 시간으로 조정하면 되는데, 감독님들은 수업도 있고, 다른 공연도 하시다 보니 감독님들 스케줄 맞추는 게 제일 힘들다. 그래서 거의 주 단위로 스케줄 미팅을 하게 된다.                                                     

 

창작과 라이선스 조연출의 역할이 다를 것 같은데?
안정하
  라이선스는 대본과 음악이 확실하게 정해져 있는 상태다. 창작은 노래나 극이 아무것도 정해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모든 것을 만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두 배로 힘들지만, 만들 때, 그 이후의 뿌듯함이 그만큼 크다. 노래가 부족하다 싶으면 더 넣을 수도 있고, 넘치면 뺄 수도 있다. 부족한 경우, 채우는 작업을 위해서 연습이 지연되는 상황도 꽤 있다. 그래선지 창작은 시일이 늘 촉박한 느낌이다. 라이선스나 창작이나 조연출이 하는 일은 같다. 하지만, 라이선스보다 창작이 일의 양은 두 배는 되는 것 같다.
오루피나  두세 배도 넘을걸. 창작을 하다 라이선스를 하면 대본과 음악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지가 된다. 물론 감독님들만큼은 아니지만, 창작은 조연출 입장에서도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라 정말 힘이 들더라. 주로 라이선스를 하다, 지난해 창작 작품에 처음 참여해봤는데, 라이선스에 비해 창작 조연출을 할 때 좀 더 디렉터적인 일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다. 라이선스 때는 연출가가 그림을 더 잘 그릴 수 있도록 제반 작업을 위주로 하기 때문에 정리의 성격이 강하다면, 창작은 연출가도 함께 생각하는 걸 바라기 때문에 극 구성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협력으로서의 역할이 좀 더 커지는 것 같다. 창작 때는 연출과 조연출이라는 직책보다는 같은 연출부라는 느낌이 더 강하게 온다. 

 

라이선스라도 외국인 연출이 국내에서 초연을 연출하는 경우는 거의 창작과 비슷했을 것 같은데?
김수빈
  두 작품 모두 기존 원작의 틀은 있었지만, 스완이 한국화하는 작업에서 바뀐 부분은 모두 새로 하는 것이었다. 라이선스인데 창작처럼 작업한 작품이 <스팸어랏>인데, 국내 정서상 100% 통하기 힘든 영국 코미디 작품을 어떻게 한국에서 통하게 할지 고민이 많았다. 라이선스 작품의 경우 관객이 봤을 때 외국 뮤지컬을 보는 느낌과 동시에 한국적 정서가 잘 녹아있어야 한다. 이 작품은 정서적으로 다른 코미디 포인트가 많아서 윤색이 많아졌고, 호흡이 달라지다 보니 라이선스 임에도 창작뮤지컬처럼 음악의 추가나 수정도 더러 있었다. 기존에 만들어져 있는 것을 가져와 그 틀을 지키면서 국내화한다는 것 역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만큼이나 까다롭고 고민이 많은 작업인 것 같다. 
안정하  하긴 틀이 있어도 그 나름의 어려움이 있더라. 요즘 준비하고 있는 창작 작품은 기존에 있던 노래로 구성한 작품인데, 처음엔 아무것도 없는 창작보다는 음악이라도 있으니 다행이다 싶었다. 그런데 노래가 있는 것 자체도 어렵더라. 기존의 가사를 안 건드리면서 이야기가 잘 만들어져야 하니까. 

 

 

무대 뒤의 커뮤니케이터

 

조연출의 주된 역할에 대한 고민이 많을 것 같다. 각자 무엇이라 생각하나?
오루피나
  연출가마다, 제작사마다 요구하는 역할이 달라 정답은 없다. 그래서 조연출마다 개인적으로 고민이 있다. 무대디자이너는 무대를 디자인한다는, 조명 오퍼레이터는 프로그램을 짜면 되는 역할들이 각 포지션마다 정해져 있는데, 조연출은 전문적으로 무엇을 한다는 그 ‘무엇’이 모호하다. 전체적인 연습 스케줄도 짜고, 배우들 관리도 하고, 의상 얘기도 하고…여러 가지를 한다. 이는 스스로도 전문적으로 인식하기 힘들거니와, 실제로 외부에서도 조연출은 어느 정도 감각이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다른 파트를 하다가, 또는 제작사 직원인데 조연출 하는 경우도 굉장히 많다. 이런 과정에서 조연출이 가지는 전문성에 대해 고민하다 스스로 내린 결론은 ‘조연출은 의사소통의 가장 중요한 루트’라는 것이었다. 모든 파트의 사람들이 혼선이 생기지 않게 해야 한다. 당연히 모든 결정권은 연출가가 가지고 있지만, 그분이 사소한 이야기까지 다 듣고 결정할 수 없기 때문에 중간 점검자의 역할로서 이야기를 취합해서 전달하고, 결정된 것을 다시 의사소통할 수 있는 위치라고 생각한다. 뭔가 중간에 꼬인 부분이 있으면 해결하고, 조율하는 것은 단순히 감각으로만 처리하기엔 함께 보낸 시간과 그로 인한 신뢰가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김수빈  맞다. 나는 조연출과 통역을 같이했던 경우가 많아 포지션과 일 분담 쪽으로 고민했다. 연출가와 직접적으로 의사소통해서 배우들, 각 파트에 연출의 의도를 빠르게 전달할 수는 있었지만 두 가지를 겸하다 보니 한국 스태프를 관리할 시간이 부족하더라. 그렇게 되니 조연출로서의 내 역할이 무대감독님이나 컴퍼니매니저에게 분담이 되기도 했다. 한편, 통역에서 조연출이 되는 순간 생기게 된 고민이 바로 커뮤니케이션의 문제였다. 통역을 할 땐 모두 살갑게 지내면 됐지만, 조연출 포지션이 되면서 외국 연출가가 떠난 후 스태프와 배우들과의 관계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외국 연출가가 정립한 틀을 지켜내기 위해 연기에 대한 수정 노트를 주게 되는데, 나이도 어리고 경력도 짧은 조연출이 이 말을 어떻게 해야 더 잘 받아들여 줄까를 수없이 고민했다.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게, 납득시킬 수 있게 평소 행실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우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솔직히 외국 연출가가 떠나고 나서 재정립이 되더라. 결국 나이에 관계없이 사람을 설득하는 기술을 키워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건 연출가를 꿈꾸기 때문에 더 고민을 많이 해야 하는 점이더라.
안정하  어렸을 때 느꼈던 조연출의 일과 지금 느끼는 그것이 다르다. 학교를 다닐 때는 조연출은 연출가와 함께 무언가를 만드는 작업이라 생각했다. 워크숍 작품을 할 때도 모두가 스태프고 일원이지 조연출, 연출이라는 타이틀을 딱히 나누지 않았다. 막상 돌아와보니, 국내에선 위치가 확실히 나뉘어 있더라. 그래서 어렸을 땐 조연출은 배우들이 즐겁게 연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연습 진행하고, 공연이 잘 돌아가게 잡다한 업무를 하면 되는 것이라 생각해서 대학로에서 포스터 붙이고, 홍보 마케팅도 해보고, 안 하는 것 없이 다 해봤다. 하지만 이제는 앞의 것은 기본적인 것이고, 중요한 건 의사소통과 관계라는 생각이 든다. 조연출은 이 공연을 잘 할 수 있도록 스태프와 배우들 사이에서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는 사람이다. 

                                                                                                        

외국에서 조연출의 역할은 어떤가?
김수빈 
국내에 들어온 외국 스태프들의 경우를 보면, 역할의 분화가 잘되어 있어서 각각 하는 일이 분명하다. 무대감독, 컴퍼니매니저, 조연출, 협력연출, 협력조안무가 하는 역할이 다 다르다. 이름 하나에 대해서 예민하다 싶을 정도로 으레 좀 철저히 지켜주는 것 같기도 한데, 그래서인지 혼선이 덜한 것 같다. 협력연출이라 하면 연출가와 협의하고 협력하며 작업하고, 조연출은 그런 협의 사항들이 잘 실현될 수 있도록 연출부적인 서포트를 하더라. 분화가 잘되어 있는 것을 보면서 조금 더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오루피나  미국에서 뮤지컬 공연 연출을 했던 지인에게서 ‘외국에는 조연출이라는 파트가 없는 곳이 많다’고 들었다. 시스템이 잘 구축된 경우, 지금 조연출이 하는 일을 외국에서는 컴퍼니매니저와 무대감독이 함께 100% 소화가 가능하고,

연출가가 창작하는 데 필요한 사람은 협력연출로 붙는다고 하시더라. 
안정하  내가 <메노포즈>할 때는 세컨드 조연출이 따로 있었다. 조연출도 일하는 파트가 나뉘어 있었던 경우다. 물론 그땐 한국에서도 첨 도입하는 시스템이라 잘 활용하진 못했지만, 역할 시스템만 잘 구축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사실 지금은 혼자 하기에 너무 벅찬, 며칠은 밤을 새워야 할 수 있는 양을 한 명이 소화하고 있는 거다.
오루피나  <천국의 눈물>에도 두 분이 있다 하더라.
김수빈  <빌리 엘리어트>는 조연출이 세 분 정도 있는 것 같더라. 이렇게 되면 두 사람의 역할이 확실히 나뉜다. 한쪽은 무대감독과 컴퍼니매니저의 성격이 강한 조연출, 한쪽은 대본 등 연출부에 더 집중되는 조연출. 같은 조연출이라도 역할 분담이 뚜렷하게 나뉘어져 있다면 일을 좀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

 

힘들었던 기억은?
안정하
  사실 제작사에서 조연출을 그렇게 전문직으로 생각하지 않는 분위기다 보니 공연계에 입문을 원하는 사람이 있다 하면 무대 크루나 조연출에 배치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나처럼 전문적으로 배우고 경력이 꽤 있는 경우, 실제로 페이 부분에서 부담스럽다고 이야기하는 제작사가 꽤 있다. 그런 이야기를 반복해서 듣게 될 때 이 업무를 전문적으로 봐주지 않는 시각도 그렇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으로 힘들다.
오루피나   나도 같은 얘기 몇 번 들었다.
김수빈   사람을 대하는 게 제일 힘들다. 아직까지 ‘넌 여자고 아직 어리잖아.’라고 하시는 분들이 있다. 충분히 이해는 하지만, 작품을 위해서는 그런 분도 설득해서 함께 가야 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한 해 두 해, 작품을 하면서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아 다행이지만, 여전히 열심히 했는데,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내 요청이 거부당할 때 그때의 좌절감이란. 하지만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라 생각한다. 그런 반응을 여유롭게 받아낼 수 있는 지혜로움, 연출부의 바운더리 안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훈련이 필요한 것 같다. 

 

여러 가지 불합리한 상황에 놓여도 연출가가 되는 과정이라 생각하면서 배우는 입장으로 잘 걸어온 것 같다. 그렇지만 경력이 늘어나면 연출을 할 것인지, 조연출을 계속할지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지 않나.
김수빈
  전문 조연출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연출이 되기 위한 발판으로 조연출을 경험해보는 것도 좋지만, 아예 전문 조연출을 꿈꾸는 친구들이 있으면 더 전문화되는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을까.
오루피나  사실 전문 조연출이 되는 것도 생각해봤다. 그런데 불가능하더라. 내가 7년 전에 받던 페이는 지금도 같은 수준이다. 다행히 정하 씨와 나는 사수라 할 수 있는 연출가 선생님이 계시기 때문에 이제까지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그런 사수나 은사님이 계시지 않고 그냥 프로덕션으로 하는 거면, 우리는 오히려 선택받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안정하  경력이 많을수록 원치 않으니까.  
오루피나  제작사도 우리가 배우와 스태프들과 쌓아온 인맥도 있어 일이 더 빠르고 안정적이게 진행된다는 건 알지만, 그걸 페이로 연결해 책정해주지 않는다. 그게 가능한 전문직으로 인정만 되면 나도 그렇게 하고 싶다. 그렇지만 지금으로서는 연출가가 되기 위해 잠깐 지나가는 과정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가끔 이정도 경력이면 연출을 하라고 편하게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다. 하지만 스물여섯에 입봉을 하고 느낀 것은 더 배워야겠다란 생각이었다. 연출가로서는 아직 통찰력이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안정하  나 역시 그렇다. 스스로 연출력에 대해 엄한 스타일이라 선뜻 연출 입봉을 못하는 것이 무대에서 배우들의 장점을 끌어내는 것을 포함해 연출가로서의 통찰력이 필요한데, 아직까지도 그것을 못할 것 같다는 부담감이 있다.

                                               

그럼에도 그 모든 걸 상쇄할 만한 기쁨이 있을 텐데, 어떤 때인가?
김수빈 
연출가가 정말 원하는 것을 배우 분들이 온전히 체화하고 이해할 수 있게 충분히 대화하고 노트하고, 그것이 반영되어 실제로 무대에서 배우가 스스로 느낄 정도로 좋아졌을 때 기분이 참 좋더라. 관객도 그 예민한 차이를 감지하고 거기에 반응한다.
오루피나  무엇보다도 가장 뿌듯한 순간은 객석 맨 뒤에서 첫 공연을 바라보는 순간이다. 한 작품씩 올릴 때마다 며칠씩 밤새우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스트레스 받고 자책하고 밥도 못 먹으며 힘들어 하는데, 첫 공연 시작할 때의 설렘과 공연이 끝난 후에 터지는 관객들의 박수를 통해 그 모든 것이 해소된다.
안정하  동감이다. 힘들긴 하지만 그걸 상쇄시킬 만한 매력이 분명 있다. 사람들에게 받는 행복감도 있고, 관객들이 반응을 보이면 내 작품처럼 행복한 느낌도 들고, 배우, 스태프가 공연이 끝나고 ‘우리 또 나중에 이번처럼 좋은 작품 만들자’고 할 때 마치 내 작품인 양 뿌듯하고 행복하다. 무엇보다도 준비 기간에 함께 무언가를 만든다는 기쁨은 이루 말 할 수 없다. 창작초연 전문 조연출로서는 더더욱.(웃음)


자기 발전의 끈을 놓지 않아야

 

조연출, 연출가를 희망하며 조연출을 하고자 하는 친구들이 있을 것 같은데, 그들에게 선배로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안정하 
조연출만을 희망하는 친구들은 아직 없을 것 같고, 연출가를 희망하기 때문에 조연출로 시작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을 것 같다. 주위에 배우를 좋아하다가 공연 쪽에 조연출로 들어와서 실망하고 상처받는 경우를 굉장히 많이 봐왔다. 밖에서 볼 때는 이 자리가 배우들을 다 알고, 친한 것 같고 그런 면만 보일 수 있겠지만 실상 그렇지만은 않다. 그렇게 쉽게 생각하고 뛰어들지만은 않았으면 좋겠다. 몸도 마음도, 정신적으로도 굉장히 힘든 일이다. 뒤처지거나 한번의 실수라 해도 다시는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없을 수 있기 때문에 더 치열하게 내 자신을 발전시키려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이 직업은 그 모든 걸 보상해주는 큰 매력을 가진 직업이기도 하다. 물론 그 매력이 매력이 되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공연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겠지.
오루피나  다른 사회도 마찬가지겠지만, 세상엔 정답이 없다는 걸 실감하게 해주는 것이 공연이 아닐까. 연출가란 포지션은 그 없는 정답 속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답은 이거야’라는 걸 만들어 보여주는 역할인 것 같다. 그러려면 사람들과 마음을 열 준비가 되어 있는 긍정적인 사고 방식이 필요할 것 같다.
김수빈  일에 치여 늘 시간이 부족한 포지션이지만 연출가를 꿈꿀수록 조연출 때부터 자기 콘텐츠를 만드는 것에 대한 노력의 끈을 놓으면 안 될 것 같다. 좋아하는 공연에 참여해서 뭔가 많이 배웠지만, 절대 내가 연출한 건 아니라는 거다. 그림이든, 노래 한 곡이든, 영상을 만들든, 대본을 쓰든, 이후에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내 목소리를 내기 위해선 힘들고 고되더라도 내 것을 만들고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다. 또 하나는 원칙을 지켜내기 위해 설득해내는 기술, 설득을 못하면 배우들이 편히 연기할 수 있는 바운더리를 세팅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된다. 시작하는 단계라도 연출이 되기 위해서는 그 두 가지는 항상 생각하고 있어야 할 것 같다.

 

 

 

 

 

안정하

안양예고 졸/ 이태리 Paolo Grassi 연출 과정 수료
Universita Internazionale Kuniakilda 연출 과정 졸 / 8년 차
조연출|뮤지컬 탈(2010), 바람의 나라(2009), 대장금(2010~08),
조지 엠 코헨 투나잇!(2007), 메노포즈(2005), I Love You(2005),
루나틱(2004)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 (2009), 키친(2004, Italia)

 

 

 

 

 

오루피나 

성균관대학교 연기예술학과 연출 전공 졸 / 7년 차
조연출|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2010, 2009),
I Love You(2009), 컴퍼니(2008), 밴디트-또 다른 시작(2008~07),
텔 미 온 어 선데이(2007), 록키호러쇼(2006~2005) 외
연극  귀신의 집으로 오세요(2007), 굿바디(2007~2006),
장영남의 버자이너 모놀로그(2006), 클로저(2005) 외
연출|뮤지컬  록키호러쇼(2008)

 

 

 

 

 

 

김수빈 

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과 졸업 예정  / 3년 차
조연출 |스팸어랏(2010), 올 슉 업(2010~09),
맨 오브 라만차(2010~09), 빨간 블라우스(2006)
연출 통역|미스 사이공(2010), 드림걸즈(2008),
지킬앤하이드(2008), 맨 오브 라만차(2008),
마이 페어 레이디(2008)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88호 2011년 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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