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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IAL] 무대 뒤 조력자들 - 조유진 어시스턴트 무대디자이너 [No.177]

글 |배경희 사진 |심주호 2018-07-04 9,051
무대 위의 세계를 함께 세우는 사람 
 
무대디자이너의 꿈을 품고 공연계에 입문한 조유진. 대학 졸업 후 소규모 연극 프로덕션에서 이력을 쌓던 그녀가 뮤지컬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된 것은 지난 2016년 오필영 무대디자이너의 어시스턴트로 발탁되면서다. 현재 그녀는 두 명의 고정 어시스턴트 가운데 수석을 맡고 있다.



2017 <라빠르망>
2017 <햄릿: 얼라이브>
2017 <광화문 연가> 
2018 <웃는남자> 

 
 
어떻게 공연계에 입문하게 됐는지 간단히 소개해 준다면.
연극학과에서 무대디자인을 전공해 졸업 후 주위 소개로 연극 무대 일을 시작하게 됐다. 어렸을 때부터 무대디자이너라는 목표가 확실했던 편이라 꽤나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지만, 그래도 곧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 중 하나가 보통 2~3년 차에 위기가 한 번 찾아온다는 거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일을 시작한 지 2년쯤 됐을 때 내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들더라. 스스로 돌아볼 시간을 갖기 위해 잠시 일을 쉬던 중 오필영 선생님이 어시스턴트를 찾는다는 소식을 듣게 됐고, 지인 추천으로 면접을 봐서 이 팀에 들어오게 됐다. 오필영 선생님 어시스턴트로 참여한 첫 작품이 2016년 봄에 올라간 초연 창작뮤지컬 <마타하리>다. 
 
면접 당시 어떤 자질을 중요하게 보는 것 같았나. 혹시 면접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있을까.
까다롭게 진행되는 면접은 아니었고 미팅 형식의 캐주얼한 면접이었다. 물론 나름대로는 열심히 포트폴리오를 준비해 갔다. 그런데 내가 느끼기에 오필영 선생님이 면접에서 중요하게 보셨던 부분은 능력보다는 태도였던 것 같다. 지금껏 무대 일을 고집해 온 이유는 뭐였는지, 어시스턴트로 일하면서 무엇을 얻고 싶은지, 앞으로 어떤 무대디자이너가 되고 싶은지 등등 내가 가진 생각에 대해 궁금해하셨는데, 아무래도 공연이라는 게 여러 사람과 협력해야 하는 일이다 보니 됨됨이나 가치관을 중요하게 생각하신 것 같다.  
 
소규모 연극과 대형 뮤지컬 작업은 차이가 있을 것 같은데 적응에 어려운 점은 없었나.
연극은 보통 원세트 무대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고, 아무래도 세트 규모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뮤지컬의 작업량이 더 많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한 작품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인원도 뮤지컬 쪽이 훨씬 많다. 그런데 규모가 큰 만큼 파트별 구분이나 작업 체계가 명확하게 잡혀 있기 때문에 힘든 점보다는 도움되는 점이 훨씬 많았다. 좀 더 전문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이 뭔지 배울 수 있었던 것 같다. 

무대 디자인 어시스턴트로서 담당하고 있는 주된 업무는 뭔가.
아마 이건 디자이너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 않을까 싶다. 일반적으로 얘기하자면, 디자인 도면을 그리거나 세트 모형을 만드는 게 어시스턴트가 가장 반복적으로 많이 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오필영 선생님께선 프로덕션 회의에서 쉽고 빠르게 디자인 아이디어를 전달할 수 있도록 보통 모형을 가지고 설명하시기 때문에 작품을 할 때마다 많은 모형을 만들게 된다. 일례로 가장 최근 작업인 <웃는 남자>에선 전체 세트 모형만 대여섯 개 정도 만든 것 같다. 심지어 도면은 100장을 훨씬 넘게 그려서 회의 때 도면을 들고 가면 다들 백과사전 아니냐고 농담을 하곤 했다. 도면이나 모형 작업 외에도 실제 세트가 완성돼 무대에 오르기까지 그때그때 필요한 부분을 서포트해야 하는데, 오필영 선생님의 경우엔 전반적인 공연 제작 과정에 어시스턴트가 참여하도록 해주시는 편이다. 물론 체력적으로 힘들 때도 있지만 덕분에 많은 걸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작업 과정에서 주로 많이 소통하게 되는 다른 파트가 있나.
어느 팀 하나 빠짐없이 모든 파트와 많은 소통을 하게 되는데, 시기별로 정도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디자인 스케치가 이뤄지는 프로덕션 초기 단계는 연출부와의 소통이 중요하고, 실제적인 제작에 들어가면 제작소와의 소통이 중요하다. 스케줄에 차질 없이 제작이 진행되고 있는지, 디자인에 수정이 필요한 부분은 없는지 등등을 체크해야 하니까. 극장 셋업 시기에는 당연히 무대팀하고 가장 많은 소통을 해야 한다. 파트별로 수정, 보완돼야 할 사항이 있을 때 담당 어시스턴트를 통해 전달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중간자로서 역할을 잘 해내는 게 중요하다. 
 
디자이너로서 갖춰야 하는 덕목에 대해 크게 배운 점이 있다면.
오필영 선생님은 사전 준비를 정말 철저하게 하신다. 사실 디자인이 확정되기 전에 스태프 미팅 프레젠테이션 용도로 모형을 매번 제작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조금 수고스럽더라도 서로 간의 정확한 의사소통을 위해 항상 꼼꼼하게 준비하신다. 다수의 사람들이 함께하는 팀 작업에서는 커뮤니케이션이 잘못되면 큰 혼란을 가져올 수 있으니까. 그리고 디자인이 완성되기까지 무수한 고민을 거듭하면서 많은 옵션을 생각해 두신다. 그런 철저한 준비성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게 아닌가 싶다.
 
일반적으로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선 어시스턴트 과정을 거쳐야 할 텐데, 현재 이 일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나.
누군가 직업이 뭐냐고 물었을 때 무대디자이너 어시스턴트라고 하면, 대부분 막연히 힘들겠다는 반응을 보인다. 체력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힘든 직업이라는 게 어시스턴트에 대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 같다. 물론 마감이 촉박할 때는 밤을 새워서 일해야 할 때도 있고, 셋업 기간에 극장을 오가며 말 그대로 힘을 써야 할 때도 있다.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사람 관계에서 오는 게 대부분인데, 이건 특정 직업의 문제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달라지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지레짐작으로 겁먹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건 평소에 내 자신에게 하는 다짐이기도 한데, 스스로 자신이 하는 일의 가치를 낮추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시스턴트의 주된 일이 디자이너를 서포트하는 것이다 보니 일에 지칠 때 문득 평생 보조자 역할에 그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 쉽다. 언제 어떤 기회로 디자이너가 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으니까. 일을 시작한 지 2년째에 진로에 대한 고민이 들었던 것도 평생 도면만 그리다 인생이 끝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시스턴트로서 겪는 모든 과정이 나중을 위해 필요한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내가 참여한 작품의 일원이라고 생각할 때 훨씬 더 큰 보람을 느끼는 것 같다. 
 
앞으로 디자이너로 독립할 계획을 가지고 있나.
사실 작년에 직접 디자인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아쉽게 무산됐다. 오필영 선생님께 개인적으로 감사한 것 중 하나가 이런 부분에 대해 많은 신경을 써주신다는 점이다. 어시스턴트들이 느끼는 막연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잘 이해해 주신다고 해야 하나. 향후 몇 년 안에 디자이너로 독립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보잔 얘기를 종종 하시는데, 내가 곧바로 큰 규모의 작품을 맡을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언젠가 나한테 적당한 작품이 올 거라 생각한다. 그때까지 열심히 역량을 키우고 싶은 마음뿐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7호 2018년 6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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