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2일은 손드하임의 80번째 생일이었다. 네덜란드의 오프브로드웨이라고 자칭하는 m-lab에서는 손드하임의 80번째 생일을 맞아 올해 5월부터 9월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손드하임 페스티벌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 페스티벌의 프로듀서이자, m-lab의 예술 감독인 쿤 반 다이크(Koen van Dijk)를 만나보았다. 이번 인터뷰는 더뮤지컬 독자인 서지은 씨가 정보를 알려주었고 직접 쿤 반 다이크를 만나 진행하였다. -편집자
손드하임에게 보내는 연애 시
인터뷰는 m-lab 시어터 로비에 있는 포이어 카페에서 진행되었다. 극장에서는 개막을 일주일 앞둔 <일요일 공원에서 조지와 함께> 리허설이 진행 중이었다. 점심시간을 맞아 식사를 하는 배우들과 스태프들로 부산했던 카페에서 m-lab의 예술감독인 쿤 반 다이크를 만나 손드하임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들을 수 있었다.
m-lab 시어터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부탁한다.
m-lab은 ‘암스테르담의 오프브로드웨이’라고 자칭하고 있다. 네덜란드에 ‘오프브로드웨이 극장’이 있다는 것 자체가 새로운 발상이다. 네덜란드에서 공연되는 작품은 대부분 브로드웨이 쇼다. 작품의 규모가 크기 때문에 관객도 많이 들어야 하고 제작비도 만만치가 않다. 우리는 네덜란드 관객들에게 오프브로드웨이의 개념으로 작품을 소개하고 싶었다. (브로드웨이의 대형 뮤지컬이 아닌) 특별하고 새로운 작품을 소개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다. 손드하임의 <숲 속으로>가 우리의 첫 작품이다. 그 뒤를 이어 <플라잉 더치맨(Flying Dutchman)> 등 지난 3년간 대략 20여 개의 작품을 소개했다. m-lab은 새로운 창작뮤지컬이나 네덜란드에 처음 소개되는 외국 작품을 소개하고 이 작품들이 네덜란드 관객 입맛에 맞을지를 알아볼 수 있는 일종의 트라이아웃 극장이다.
어떤 계기로 m-lab을 세우게 되었나?
3년 전 욥 반 덴 엔데(Joop van den Ende) 재단의 후원을 받아 시작했다. 욥 반 덴 엔데는 스테이지 엔터테인먼트의 사장으로 네덜란드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에 걸쳐 19개의 극장을 소유하고 있다. 오래 전부터 웨스트엔드와 브로드웨이에서도 연극과 뮤지컬을 제작, 또는 공동제작 해왔는데 현재 웨스트엔드에서 공연 중인 <시스터 액트>가 그 중 하나이다. 네덜란드의 카메론 매킨토시라고 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욥 반 덴 엔데는 네덜란드에서 TV쇼 등을 제작하며 많은 돈을 벌었지만 그는 무대를 굉장히 사랑한다. 그래서 m-lab을 시작할 수 있도록 후원한 것이다. 그는 m-lab 운영에 있어서 예술적으로 참여하지는 않고 금전적으로만 후원한다. 카메론 매킨토시가 런던에서 작은 옥스포드 극장을 후원하여 트라이아웃 극장으로 운영되도록 하는 것처럼 말이다.
어떻게 손드하임 페스티벌을 기획하게 되었나?
모든 것의 시작은 내가 그의 엄청난 팬이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예전에 손드하임의 저작권 에이전시로부터 ‘2010년이 손드하임이 80세가 되는 해인데 m-lab에서 뭔가 특별한 일을 하고 싶다면 저작권 등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먼저 제안을 해왔다는 것인가?) 그렇다. m-lab이 막 생겼을 당시, 그러니까 3년 전에 연락이 왔다. 또 배우 알렉스 클라젠(Alex Klaasen)이 늘 <조지와 함께 일요일 공원에서>를 해보고 싶다고 말했었다. 참고로 그는 네덜란드에서 굉장히 유명한 스타이다. 이 모든 것들이 함께 작용했다.
손드하임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가?
나는 m-lab의 예술감독이면서 뮤지컬 극작, 작사가이다. 학창시절에 손드하임에 대해 공부를 했는데 당시 손드하임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 질문을 했고, 그는 답변을 보내왔다. 몇 번 편지를 주고받은 후 ‘다음달에 뉴욕에 갈 예정인데 혹시 직접 만나서 몇 가지 물어봐도 될까요’라고 편지를 보냈는데 그가 흔쾌히 허락했다. 굉장한 일이었다. 단 한 번이었지만 그를 직접 만나 한 시간 반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극작과 작사를 하고 있다고 말하고 내가 작업한 내용의 데모를 몇 가지 보여줬다. 그 이후 4년 뒤에 내가 쓴 뮤지컬 <시라노>를 브로드웨이에서 선보이게 되었는데 오프닝 날에 손드하임이 직접 전보를 보내왔다. ‘브로드웨이에 입성한 것을 축하하네-스티븐 손드하임’. 그 전보는 내 보물이다. 손드하임은 내게 스승 같은 존재이다. 그의 작품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정말 최고라고 생각한다.
벽에 보니 손드하임에게 온 편지가 있더라.
사실 그게 손드하임 페스티벌을 시작하게 된 진짜 계기이다. 어느 3월22일, 그의 생일날 우리는 ‘Happy Birthday Mr. Sondheim’이라는 행사를 가졌다. 우리는 ‘(손드하임의 생일파티를) 함께할 모든 분들은 악보를 가지고 오십시오. 피아노 반주자의 반주에 맞춰 여러분이 가장 좋아하는 손드하임의 곡을 불러주세요’라고 이메일을 보내 사람들을 초대했다. 그날 저녁 네덜란드 공연계의 크고 작은 인사들이 이곳에 모였다. 이곳 벽에 ‘Happy Birthday’라고 커다랗게 장식을 하고 케익도 준비해서 특별한 저녁을 보냈다. 그리고 커다란 생일카드에 그날 저녁에 모였던 2백여 명의 사람들 모두가 이름을 써서 손드하임에게 보냈는데 그 답신으로 받은 것이 바로 벽에 붙어 있는 편지이다.
<로마로 가는 길에 일어난 재미난 일> <숲 속으로>
페스티벌 기간에 손드하임의 세 작품 <로마로 가는 길에 일어난 재미난 일>, <숲 속으로>, <일요일 공원에서 조지와 함께>가 공연된다. 특별히 이 세 작품을 고른 이유가 있는가?
이 세 작품들은 손드하임이 쓴 완성작들이다. 이 세 작품에 앞서
프로그램 중에는 ‘Lost in translation’이라는 워크숍도 있었다. 어떤 프로그램인가?
네덜란드에는 작곡가를 찾는 작사가, 또 그 반대로 작사가를 찾는 작곡가들이 많다. m-lab에서는 이러한 젊은 창작가들에게 만남의 장을 마련하여 함께 대화를 하고 팀을 만들 수도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매년 워크숍을 개최하고 있다. 이번에는 사흘간 열다섯 명의 작사가와 작곡가들이 워크숍에 참여했다. 참가자들은 함께 손드하임의 작품을 분석하고 네덜란드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했는데 이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번역을 하기 위해서는 노래를 이해해야 하고, 가사와 그 속의 숨은 의미(subtext)를 파악해야 한다. 번역한 후에도 서브텍스트가 그 안에 여전히 존재해야 했다. 작품 가운데서 그 노래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도 알아야 하고 손드하임이 캐릭터 중심으로 노래를 쓰기 때문에 캐릭터도 이해해야 한다. 매우 흥미로운 작업이다. 워크숍에는 네덜란드의 전문 번역가 세 명이 모두 참여했는데 그 중 한 명이 나다. 우리 셋은 이 젊은 작가들과 함께 일하며 어려운 점을 설명해주려고 노력했다.
지금까지 네덜란드에는 손드하임의 어떤 작품이 소개되었으며 관객들의 반응은 어땠나?
손드하임의 작품 중 가장 처음 소개된 것은 <스위니 토드>이다. 나는 번역가로 제작에 참여했다. 작품은 꽤 만족스러웠지만 흥행은 되지 않았다. 이후 <소야곡>, <컴퍼니>, <폴리스>가 벨기에에서 들어왔다. 보통 정도의 흥행 성적을 거뒀다. 그리고 JvdE가 제작한 <열정>이 있었다. 네덜란드에는 손드하임의 작품을 기꺼이 보러올 관객들이 있지만 그들의 숫자는 많지 않다. 그래서 손드하임 작품을 한다고 하면 규모는 그리 크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손드하임의 작품을 굳이 큰 규모로 제작할 필요는 없다. m-lab의 방식으로 최대 12명으로 이뤄진 배우진과 최대 4명의 오케스트라로 제작을 한다면 얼추 수지가 맞는다. 네덜란드에서 이렇게 소규모 제작이라는 것은 새로운 개념이다. 이제까지 네덜란드에는 주로 브로드웨이 대작들이 소개되었지만 (손드하임의 작품은) 그렇게 제작할 수 없다. <맘마미아>는 1,500석 까레 극장에서 공연할 수 있지만, <컴퍼니>는 그럴 수 없다. 브로드웨이가 만든 큰 물결 뒤에 오는 오프브로드웨이 같은, 작지만 잔잔한 물결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다.
했다. 그래서 나도 네덜란드에서 그런 식으로 시작하고 싶었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뮤지컬을 얼마나 좋아하는가?
네덜란드 사람들은 뮤지컬에 관심이 많다. 그러나 그 역사는 사실 굉장히 짧다. 1988년에 <캣츠>를 들여온 것이 처음이다. 최초로 웨스트엔드 규모의 작품이 공연된 때이기도 하다. 그 이후로 <레 미제라블>, <미스 사이공> 등의 대규모 작품들이 이어졌다. 지난 경제 위기 이후 관객이 줄긴 했지만 뮤지컬 시장의 규모는 여전히 크다.
1988년 <캣츠> 공연은 (네덜란드 배우가 없어서) 영국인과 미국인들이 네덜란드어로 연기를 하기도 했다. 발음 때문에 공연을 이해하기 어려운 면도 있었다. (뮤지컬을 보았던) 관객들 중 젊은층은 직접 배우로 무대에 서고 싶어 한다. 그래서 25년여가 지난 지금은 네덜란드에도 좋은 교육기관이 많이 생겼다. 나는 네덜란드에서 교육을 받은 배우들이 런던이나 뉴욕의 배우만큼이나 잘한다고 말할 수 있다. 네덜란드 배우가 해외 작품에 진출하는 경우도 있다. 런던, 뉴욕, 비엔나, 독일 등 세계 곳곳에서 말이다.
네덜란드의 창작뮤지컬이 얼마나 제작되고 있는가? 웨스트엔드나 브로드웨이의 작품에 비해 경쟁력이 있는 작품들이 있나?
네덜란드에서 대형 창작뮤지컬을 해서 관객을 모으려면 유명 영화나 소설, 그리고 스타가 있어야 한다. 얼마 전 막을 내린 <시스케 드 랏(Ciske de Rat)>은 소설이 원작이고 영화화되었으며 대니 드 뭉크라는 유명 스타가 출연했다. 이 세 가지를 모두 충족시키면 관객을 모으는 데 훨씬 수월하다. 하지만 이 작품은 외국에 절대 진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너무나 ‘네덜란드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 작품이 역대 네덜란드 창작뮤지컬 중 가장 성공적인 작품이라 생각한다. 이런 대형 작품 이외에도 작은 흐름이 존재할 수 있다. 커다란 상업적인 타이틀 없이 네덜란드적인 소재와 주제를 담고, 네덜란드 사람이 새로 쓴 작품을 만들 수 있다. 규모가 커질 수는 없겠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만약 성공하면 큰 무대로 옮길 수도 있지 않겠는가?
굉장히 성공적일 경우에 가능할지 모르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작은 극장에서 공연을 올리다 보면 세트도 거의 없고 의상이나 소품도 간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도 수익을 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 작은 공연으로) 절대 부자가 될 수는 없겠지만 그 수익은 다음 작품, 또 다음 작품을 할 수 있는 밑천이 될 것이다. m-lab에서는 이러한 새 작품을 현실화하는 데에 도움을 주고 싶다.
네덜란드 회사가 아닌 제작사에서 네덜란드 뮤지컬을 만들기도 하는가?
아니다. 네덜란드 뮤지컬을 만드는 사람들은 모두 네덜란드 출신의 프로듀서이다. 꽤 많은 제작자들이 있는데
그중 JvdE를 포함한 여섯 명이 유명한 제작자들이다. 이번 시즌에 넬슨 만델라에 관한
<아만들라 만델라(아만들라는 넬슨만델라의 아명)>라는 대형 작품을 올렸다. 이미 140회 공연을 했고 투어도 했다.
규모가 굉장히 컸는데 배우진만 24명이었다.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작품은 뭐라고 생각하는가?
너무 많아서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열 개에서 스무 개까지도 제목을 읊을 수 있다. 애니 M.G 슈미트와 해리 바닝크가 함께 여덟 작품을 썼다. 요스 브링크와 프랑크 산더스도 여덟 개에서 열 개 작품을 함께 만들었다. 그들도 굉장히 큰 성공을 거뒀다. 90년 대, 그러니까 <캣츠>가 들어온 이후에 나는 아드 반 다이크와 <시라노>, <조>, <렉스>와 같은 작품을 썼다. 나도 열 개의 창작물을 만들었다. 하지만 금전적인 성공에 있어서는 <시스케 드 랏>을 따라갈 수는 없다. 외국으로 진출한 것까지 따지자면 여러 나라에서 공연한 <시라노>를 들 수 있다.
네덜란드에서 한 해에 공연되는 작품의 수(라이선스, 오리지널)는 얼마나 되는가, 그리고 웨스트엔드와 브로드웨이처럼 오픈런이 가능한가?
네덜란드 뮤지컬의 기반은 투어 공연들이다. 거의 모든 뮤지컬이 투어 형식으로 제작된다. 매 시즌마다 10개 정도의 뮤지컬이 투어를 한다. 그 외에 오픈런을 하는 작품이 세 개 있다. 스케베닝엔의 포티스 시어터에서는 <메리 포핀스>가, 위트레히트의 베아트릭스 극장 에서는 <사운드 오브 뮤직>이 장기공연을 끝내고 <요셉과 어메이징 드림코트>를 공연하고 있다. 오픈런 작품 중 네덜란드 작품이 거의 없다. 국제적으로 흥행을 거둔 큰 작품뿐이다. 창작뮤지컬 중 <시스케 드 랏>은 전국 투어 후 스케베닝엔에서 몇 개월 공연 후 막을 내렸다. 총 공연 기간은 2년 반 정도였다. 굉장한 성공이다.
손드하임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무엇인가? 좋은 게 너무 많아서 하나를 고르기엔 어려운 줄 알지만 대답 부탁한다.
그렇다. 정말 다 좋다. 오랜 기간 동안 내 대답은 아마 <스위니 토드>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일요일 공원에서 조지와 함께>를 준비하고 있다. 작업을 하면서 그 작품의 깊이를 더 알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손드하임 작품을 들라고 하면 <일요일 공원에서 조지와 함께>라고 말할 것이다.
<로마로 가는 길>의 연출 방법이 굉장히 특이했다. 라디오 드라마 같았는데 이 작품을 직접 본 적이 있는가?
직접 본 적은 없다. 대본만 읽었다. 네덜란드 관객들에게 대본 자체를 어떻게 전달할지 고민했다. 관객뿐만 아니라 제작자의 관심을 얻기 위한 티저 광고 같은 효과를 노린 것이다. 그들이 대본만으로도 작품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알게 되면 제대로 된 무대에 올릴 수 도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나는 배우들이 대본을 들고 직접 읽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 라디오 드라마 같은 형식을 생각해 냈는데 이건 단지 형식일 뿐이다. 특히 말장난 같은 것을 많이 넣었다. 의상이 없고 세트도 없고 배우들이 대본을 읽는 형태이기 때문에 연습 기간이 비교적 짧았다. 뉴욕에서 이런 방식을 봤는데 ‘잊혀진’ 뮤지컬을 소개할 때 이렇게 하더라. 이런 식으로 연출한 것은 관객과 프로듀서 모두에게 꽤 흥미로운 방식이다. 이걸 본 제작자가 내년이나 내후년쯤에 제대로 된 의상과 세트를 갖춰 무대에 올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82호 2010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