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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INSIDE THEATER] <1945> [No.166]

글 |나윤정 사진제공 |국립극단 2017-07-18 3,758

<1945>

다르지만 닮은 아픔


국립극단의 연극 <1945>는 <하얀앵두>, <3월의 눈> 등 깊이 있는 통찰력으로 인간애를 그려 온 배삼식 작가의 신작이다. 이야기는 우리 역사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 1945년을 배경으로, 혼란의 시대를 살았던 민초들의 삶을 펼친다. 여기에 <경남 창녕군 길곡면>, <기묘여행> 등으로 섬세한 표현력을 보여준 여성 연출가 류주연이 힘을 보태, 시대를 관통하는 이야기를 전한다.




살아내기 위한 선택

                    


1945년은 우리 역사에서 잊을 수 없는 시간이다. 1945년 8월 15일,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일본 천황의 항복으로 삼천리 방방곡곡에 해방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1910년부터 이어진 일제강점기로부터 비로소 해방된 감격의 순간. 하지만 그 안에 온전히 희망만이 자리한 것은 아니었다. 잃어버린 역사가 남기고 간 깊은 상처, 크나큰 상실, 끝없는 증오, 이러한 혼란 역시 당대 사람들이 감내해야 했던 후유증이었다.


배심식 작가의 신작 <1945>는 해방 직후 맞닥뜨린 시대의 아픔을 이야기한다. 평범하지 않은 시대를 살았던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이들은 일제강점기란 지옥을 벗어났음에도 여전히 행복을 찾지 못한다. 그저 살고 싶다는 그들의 소박한 꿈. 하지만 아직까지 현실은 처절할 뿐이다. 이야기의 배경은 1945년 해방 직후, 만주 장춘의 조선인 전재민 구제소. 만주에 살던 조선인들은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이곳에 머물며 조선행 기차를 기다린다. 



작품 속 명숙과 미즈코는 죽을 고비를 함께 넘기며 위안소를 탈출한 기구한 인연이 있다. 하지만 명숙은 조선인, 미즈코는 일본인, 해방 직후 이들 앞에 놓인 운명은 엇갈릴 수밖에 없었다. 명숙은 미즈코에게 이별을 고하지만, 미즈코는 그녀를 붙잡는다. 세상 밖에 덩그러니 던져진 일본인 미즈코에게 의지할 곳은 명숙밖에 없었다. 명숙 역시 이런 미즈코를 차마 외면하지 못한다. 결국 명숙은 엄청난 위험을 안고 미즈코와 함께 조선인 전재민 구제소에 발을 디딘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미즈코가 자신의 벙어리 동생이라고 속이고 그녀와 조선행 기차를 타기 위해 갖은 애를 쓴다. 미즈코가 일본인이란 것이 발각되면 두 사람 다 위험에 처할 수 있음에도 말이다.


1945년, 조선인 전재민 구제소는 혼란으로 가득하다. 민족의식을 갖고 한글을 가르치면서도 자식들을 일본 소학교에 보냈던 지식인, 가족을 파탄에 이르게 한 독립운동가 형을 원망하는 동생, 과거를 숨기고 다른 얼굴로 살아가는 위안소 포주, 장티푸스에 걸려 헌신짝처럼 버려진 사람들, 모두가 불안하고 위태로운 하루를 연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마음은 모두 같은 곳을 향한다. 바로 조선행 기차를 타는 것. 그 염원은 한줄기 희망을 이끌어내는 듯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존엄성을 잃은 인간은 물건처럼 취급당하고,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세상. 이 처절한 현실 속에 결국 명숙과 미즈코는 극한의 상황에 다다르게 된다. 그리고 명숙의 마지막 선택은 우리 삶에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시대를 관통하는 인간의 이야기

                     

 

<1945>의 주된 배경은 조선인 전재민 구제소. 이를 상징적으로 그리기 위해 작품은 무대 컨셉을 황량한 들판으로 설정한다. 피난민들이 세상 밖으로 내쳐진 곳, 나아가 인간이 태어나 떨구어진 곳이 결국 황량한 들판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또한 작품의 화자로 등장하는 두 아이 숙이와 철이의 역할도 눈에 띈다. 무대 한편에 위치한 이들은 극 중간중간 1945년 조선인 전재민 구제소의 기억을 떠올리며 과거를 회상한다. 그에 따라 명숙과 미즈코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조선인 전재민 구제소의 이야기는 숙이와 철이의 기억에서 재구성된 것처럼 그려진다. “철이와 숙이의 회상이 없다면 이 극은 굉장히 척박하고 황량한 느낌일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화자로 자리함으로써 따뜻함과 아련함이 더해진다. 인간 세상에 대한 배삼식 작가의 따뜻한 시각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전재민 구제소 사람들은 매몰차게 명숙과 미즈코를 내친다. 이런 지점이 인간의 이기심과 추잡함을 느끼게 하지만, 숙이와 철이는 아이들 특유의 순수함으로 극의 균형을 잡아준다.” 류주연 연출은 다소 시니컬하게 흘러갈 수 있는 이야기가 숙이와 철이로 인해 따뜻하게 흘러갈 수 있음을 설명한다.


살아남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 그리고 극단적인 선택과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피어나는 인간애. 배삼식 작가는 역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보여주며, 현재를 향해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전작 <먼 데서 오는 여자>가 고단한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기억과 망각에 대한 저항의 이야기였다면, <1945>는 조금 더 멀리 간 해방 원년을 배경으로 한다. 구체성을 결여하고 있는 역사의 공백을 새로운 관점에서 복원하고자 한 작품이다.”



류주연 연출은 “이 작품이 역사적으로 민감한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그 자체가 바로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은 지점”이라고 해석한다. “우리는 왜 이런 이야기를 민감하게 느낄까? 지금 민족적 사고의 흐름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걸까? 이 작품을 통해 기존의 생각들을 돌아보게 만들려 한다. 사실 이 작품이 정답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물론 연출의 입장에서 강조점을 살려 정답을 제시할 수 있지만, 그 대신 작가의 의도를 잘 전달하며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져주고 싶다.” 특히 명숙과 미즈코의 관계는 작가의 생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해방 직후 조선인에게 일본인은 치가 떨리는 존재다. 일본인에게 가장 극악하게 핍박받았던 명숙이 미즈코와 친구라는 것. 이는 굉장히 상징적인 지점이다. 일본인이냐 아니냐가 초점이 아니라, 진정한 피해자는 누구이고, 누가 아팠던 사람인가를 묻는 것이다. 결국 이런 관점에서 인간과 세상을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는 의미다.” 이렇듯 <1945>는 과거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시대를 관통해 현재를 반추하게 만드는 의미 있는 작품이다. “<1945>는 결국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한 역사 속의 인간, 한 사건 속의 인간. 이것이 시대를 관통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고, 어떤 지점과 만나게 되는지 관객들이 느끼게 되길 바란다. 나아가 이 작품을 통해 내 안에 있는 생각들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7월 5~30일   

명동예술극장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6호 2017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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