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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거울없이 나를 바라보는 법, 조정은 [No.77]

글 |김영주 사진 |김재설 2010-03-02 6,276


  유학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했던 작품 <스핏파이어 그릴>의 강렬한 인상 때문에 상쇄되기는 했지만, 데뷔 이후 오랫동안 조정은은 로맨틱한 뮤지컬의 히로인을 찾을 때면 첫손에 꼽히는 배우였다. 서울예술단의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한국뮤지컬대상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받으면서 이름을 알린 이후, 디즈니의 대형뮤지컬 <미녀와 야수>에 벨 역으로 깜짝 캐스팅이 되었고, 이어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영원한 첫사랑, 롯테를 연기했다. 깊이 들어가 보면 저마다 다른 상황에 있고 성격이 달랐지만, 관객들에게는 예쁜 드레스를 입고 운명적인 사랑에 빠져 울고 웃는 ‘공주님들’이라는 점이 더 도드라져 보였다. 자신을 여성스럽지 않고, 밝지도 않다고 생각하는 젊은 여배우는 때로는 혼란스러웠고, 때로는 불편했지만 어쨌든 꿈꾸어왔던 뮤지컬 무대에서 자기 몫을 찾아가면서 한 뼘씩 성장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꿈꾸고 준비해왔던 유학을 앞두고 만난 <스핏파이어 그릴>의 ‘펄시’는 계단을 오르듯 나아가던 그녀의 배우 인생에서 새로운 문을 열게 도와준 사람이었다. 페로의 그림책에서 빠져나와서 토니 모리슨이나 신경숙의 여주인공이 된 것 같았던 조정은의 새로운 모습에  많은 이들이 찬사를 보냈다. “저도 물론 최선을 다했지만, 그래도 제가 한 것에 비해서 좋게 봐주셨던 것 같아요. 유학기간에 <스핏파이어 그릴>을 생각하면서 ‘그 때 (김달중)선생님이 주셨던 디렉션이 이런 뜻이었구나’라고 뒤늦게 깨달은 것들이 많아요. <스핏파이어 그릴>은 저한테 정말 특별한 작품이에요. 저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인 (김)선영 언니가 그러더라고요. 모르는 사람들은 네가 펄시를 하는 걸 보고 놀랐다 하지만 나는 그때 네가 정말 편해 보이고, 진짜 너를 보는 것 같아 좋았다고. 배우도 사람이니까, 어쩔 수 없이 그 사람이 생각하고 지향하는 바가 자신이 선택하는 작품에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말 만들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조정은의 변신, 혹은 재발견이라고 했고, 그 찬사의 순간 훌쩍 유학을 떠난 그녀의 뒷모습은 그래서 더욱 선명하게 각인되었다. 떠나있는 1년 반 동안 많은 제작자와 창작자들이 자신의 작품에서 이 역할은 조정은이 딱 맞는데, 하고 아쉬움을 키워나갔다. 당연히 돌아온 그녀가 어떤 작품을 선택하게 될지 관심이 집중되었다. “감사한 일이지만, 제가 없으니까 괜히 더 그렇게 생각을 하셨던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전혀 의도한 것도 아니고 계산한 것도 아닌데 유학이나 복귀나 자꾸 그런 쪽으로 이야기가 크게 포장이 되니까 불편하고 이상하기도 해요. 저한테 꼭 필요한 시간이었지만 대단한 경험을 하고 온 것도 아닌데요.”

 

  고생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현실로 맞닥뜨리는 ‘고생’이라는 것은 정말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것을 배웠다. 당장 다음 달 방세를 걱정하며 학교에서 능숙하지 않은 영어로 연기를 해야 하는, 하루하루의 문제에 떠밀리듯 쉴 틈 없이 돌아가는 그곳의 일상에 적응하면서 조정은은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닌, 외로운 존재라는 사실을 담백하게 받아들이는 정신적인 건강함을 얻게 되었다. “사람이 여유가 있을 때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빠져들고, 그 감정에 젖는 걸 즐기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곳에서는 외로움이나 말을 못하는 창피함, 도망가고 싶은 순간들을 어떻게 피할 도리가 없이 고스란히 감당을 해야 해요. 여기서는 적당히 감추면서 살 수 있는 것들까지 여지없이 다 드러나는 경험을 하면서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고 어떤 사람인지 굉장히 명확해졌던 것 같아요.”

 

  줄리엣과 벨과 롯테가 인생에서 처음 불가사의한 사랑에 빠진 소녀였다면, 조세핀과 모니카는 삶의 마법이 풀린 이후의 허탈감을 이미 맛본 관록의 여인이다. 화려한 사교계를 한 손에 휘어잡으면서도 모든 것을 다 가진 이들이 으레 그렇듯 권태의 수렁에 빠져버린 조세핀은 가난한 재봉사로 위장하는 편법을 쓰면서까지 진정한 ‘로맨스’를 꿈꾸었다. 조정은과 조세핀은 꽤나 다른 사람인 셈이지만, 그런 식으로라도 삶의 생기를 갈망하는 여인이 지금의 조정은에게 맡겨진 것은 꽤나 절묘한 타이밍인 셈이다.

“1막이 더 재미있는 것 같아요. 제일 좋아하는 대사는 2막 마지막에 나오지만요. 아마도 여성 관객들은 그 대사에 더 공감하실 거예요.”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77호 2010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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