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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FOCUS] 배우 집단 하고 싶다 [No.147]

글 |배경희 사진 |김동우 2016-01-29 6,940

나아갈 힘을 얻는 힐링 모임


집단 ‘하고 싶다’의 시작이었던 대학로를 넘어서 무대와 브라운관 곳곳을 휘젓고 다니고 있는 여섯 남자, 박해수, 신성민, 이준혁, 임철수, 주민진, 최성원. 단단한 결속력을 자랑하는 이들이 꽤 오랜 기간 꾸준히 스터디 모임을 갖고 있다는 것은 공연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익히 잘 알려진 이야기다. 그들은 어떻게 이런 재밌고도 엉뚱한 모임을 시작하게 됐을까? 11월의 어느 밤 그들의 스터디 모임 현장을 습격했다.




지난 11월 11일 밤 11시를 넘어선 늦은 시각. 한성대 근처에 위치한 한 극단의 지하 연습실에 대학로의 낯익은 얼굴이 하나둘 도착하기 시작했다. 약속 시간에 맞춰 도착한 신성민과 임철수, 주민진, 세 사람은 나머지 두 멤버를(창단 멤버인 최성원은 드라마 촬영 스케줄로 이날 모임에 참석하지 못했다) 기다리는 동안 오늘의 모임이 시작된 계기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다. “저, 성민이, 준혁이 형, 철수, 성원이 다 <여신님이 보고 계셔> 초연 멤버예요. 그때 저희가 종종 잘 어울려 다녔는데, 이렇게 자주 모여서 수다 떨고 놀 거 아예 연기 스터디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우리끼리 진짜 재밌게 놀면서 공부해 보자고요. 해수 형은 그때 ‘여신님’ 멤버가 아니었는데, 철수 룸메이트라서 철수가 데려왔고요.” 주민진의 말에 신성민이 보충 설명을 더한다. “둘은 서로 마음이 맞아 룸메이트로 산다기보다 경제적인 여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마음은 안 맞아요.” 다시 한 번 이어진 주민진의 폭로. “철수가 청소를 하도 안 해서 해수 형이 되게 힘들어 해요.” 돈독한 관계에서만 허용 가능한 훈훈한 비방이 오가는 사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박해수가 한 손에 1.5리터 주스를 들고 등장했다. “저희끼리 모일 땐 물만 마시는데, 오늘은 손님이 오셔서 특별히 준비했어요. 저희한테는 잔칫날인 거죠.” 장난기 섞인 인사를 건네던 박해수가 멤버들을 향해 진지하게 말한다. “이거 회비로 샀어.” 집단 ‘하고 싶다’라는 이름의 이 스터디 그룹은 모임 유지를 위한 월회비가 있을 뿐 아니라, 각자 역할 분담이 이뤄져 있는 꽤 그럴듯한 체계를 갖추고 있다. 모임의 총 책임자인 주장, 회비를 관리하는 총무, 연습실 대관을 담당하는 연습실장, 공부할 내용을 정리해 팀원들에게 공지해주는 스터디장, 스터디장의 스터디 준비를 돕는 부스터디장, 그리고 모임에 오기만 하면 되는 평단원, 여섯 멤버가 여섯 개의 다른 역할을 맡고 있다는 게 이들의 설명. 모임 내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건 평단원이지만, 6개월마다 투표로 주장을 선발하기 때문에 막상 주장에 뽑히지 않으면 마음이 상한단다.



매주 수요일 밤마다 모여 두 시간씩 스터디를 한 지도 벌써 2년째. 공연과 연습으로 누구보다 바쁜 스케줄을 자랑하는 이들이 오랜 기간 모임을 지속할 수 있었던 힘에 대해 임철수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설명했다. “초대 주장이었던 주민진 형이 상당히 강압적으로 밀어붙였거든요. 어떤 상황에서도 무조건 모여야 한다고 저희를 몰아 세웠죠. 올해는 최성원이 주장 권력을 잡게 되면서 한 해가 가기 전에 교재 한 권을 끝내야 한다고 권력 남용의 수준으로 저희를 압박하고 있는데, 이 책이 상당히 어려워서 그게 될지 모르겠어요.” 집단 ‘하고 싶다’가 교재로 삼고 있는 책은 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철학서보다 더 철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배우와 목표점』. 여섯 멤버들은 책을 바탕으로 연기와 인생에 대한 난상토론을 벌이고, 때때로 연출가와 같은 외부 인사를 초빙해 강연을 듣는 것으로 스터디를 진행하고 있지만, 오늘 모인 다섯 남자들은 자신들 모임의 가장 큰 목적은 ‘힐링’이라고 입을 모았다. “저희 모임에 대단한 목정성이 있는 건 아니에요. 우리 스스로에 대한 치유의 시간, 그게 어쩌면 저희가 매주 모이는 진짜 이유일 수도 있겠네요.” 모임의 의미에 대해 설명하는 박해수의 표정이 진지해진다. “오늘 연습은 어땠는지. 공연하면서 미웠던 사람은 없었는지. 작품하면서 겪는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서로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어주는데, 거기서 얻는 위안이 무척 커요. 그리고 아무래도 서로의 작품 과정에 대해 훤히 꿰고 있으니까 결과가 궁금해서라도 그 공연을 챙겨보게 되거든요. 내가 한 공연을 진심으로 기억해주는 내 편이 있다는 게 정말 든든하죠.” 주민진은 진정한 동료들이 있는 이곳에서 고향에 온 것 같은 마음의 안정감을 느낀다고 했다. 만약 이들이 없었다면 스트레스 해소를 제대로 못해 지금처럼 작품을 계속하지 못했을지도 모르다면서. 농담과 진담을 쉴 새 없이 오가는 이야기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을 때, 이준혁이 멤버들을 향해 환한 미소를 보이며 등장했다. 시계를 보니 어느덧 열두 시. 컨디션 관리를 위해 오늘 모임은 빠지는 게 낫지 않겠냐는 주위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늦게라도 멤버들 얼굴을 보러 왔다는 그의 이야기에 이 스터디 모임이 그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금세 이해가 됐다. 무언가 하고 싶어서 자발적으로 모이는 이들이 결과물에 대한 의무가 있는 ‘극단’이 아닌 ‘집단’으로 불리길 고집하는 이유일 거다. “스터디 ‘단톡방’에 누군가 오늘 모임은 못 갈 것 같아 미안하다고 하면, 다들 우리 1~2년 하고 말 것도 아닌데 몇 번 빠진다고 너무 미안해하지 말자 그래요. 우리 모임이 오래도록 계속됐으면 좋겠어요. 일희일비하지 말고!” 임철수의 인터뷰 맺음말에 신성민이 힘주어 덧붙였다. “큰 목표를 가지고 시작한 모임이 아니니까 지금처럼 쭉 함께 걸어갔으면 좋겠습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7호 2015년 1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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