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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INSIDE THEATER]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 [No.147]

글 | 송준호 사진제공 |아시아브릿지컨텐츠 2016-01-06 5,248

세상 밖으로 나온 자폐증 소년 이야기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은 올해 열린 토니 어워드에서 가장 많은 5개 부문 (최우수작품상과 남우주연상, 연출상, 무대디자인상, 조명상)을 석권해 뜨거운 관심을 받은 작품이다. 영국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휘트브래드’에서 대상을 탄 마크 해던의 동명 원작을 무대로 옮긴 이 연극은 자폐증을 앓는 비범한 소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별다른 세트와 소품 없이 4면의 무대에서 조명과 영상, 음향을 활용해 소년의 성장담을 기발한 상상으로 그려낸다.




자폐증 소년의 모험을 담은 드라마



드라마나 영화에서 아스퍼거 증후군을 포함한 자폐증을 가진 인물들은 그 자체로 매력적인 캐릭터로 등장한다. 대표적인 이가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포레스트 검프. 이들은 말투에 리듬이 결여돼 있고 눈치가 없는 것이 특징인데, 이는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읽는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사회성이 태생적으로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의 주인공인 15세 소년 크리스토퍼도 마찬가지다. 이웃집 개의 죽음을 목격한 후 범인을 밝히겠다고 나선 이 소년이 특별한 것은 아스퍼거 증후군이라는 특징에 있다. 그리고 이로부터 펼쳐지는 그의 무모한 여행담은 이제 ‘자폐 스펙트럼’으로 불리는 다양한 자폐증 환자에 대한 사회적 시선과 결합해 뭉클한 감동을 자아낸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크리스토퍼의 엄마가 신체 접촉을 거부하는 아이에게 처음으로 접촉의 느낌을 알려주는 장면이다. 본격적인 포옹이나 스킨십보다 두 사람이 손을 마주하고 각 손가락의 지문 끝만 서로 맞닿게 함으로써 서로를 느끼는 것이다. 크리스토퍼에겐 이것이 악수이고 포옹이다. 이를 통해 크리스토퍼는 잠깐이나마 타인의 온기를 느끼고, 이것이 확장돼서 세상과 커뮤니케이션을 하게 된다.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은 그런 소통의 확장 과정에 관한 이야기다.


소년의 1인칭 시점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쓴 이야기를 말하는 원작 소설과 달리, 연극에서는 ‘시오반’이라는 또 다른 화자가 등장한다. 1막은 크리스토퍼가 쓴 책을 시오반 선생님이 읽으면 그 이야기들이 그대로 무대에 구현되는 방식이고, 2막은 시오반 선생님의 제안으로 크리스토퍼와 교사, 학생들이 이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드는 구조다. 특히 연극을 한다는 2막의 설정은 결코 가벼울 수 없는 크리스토퍼의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내는 틀이 된다. 여기서 크리스토퍼는 이야기의 주인공이면서 동시에 ‘배우’들의 캐스팅이나 연기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극 중 대사를 멈추고 연기 지시를 하는 등 연출가의 역할까지 하기도 한다. 이렇게 극 안팎을 오가며 소년의 이야기는 한층 더 중층적인 재미를 보여준다.




소년이 바라보는 세계를 담은 무대



특별한 드라마 못지않게 이 작품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상황에 따라 절묘하게 변하는 4면의 어두컴컴한 무대다. 무한히 확장된 공간을 표현하기 위한 검은 막이 무대 전체를 뒤덮고 있는 것이다. 영상이 이 파노라마 막과 바닥에 프로젝션 또는 매핑되고, 무대 곳곳에 등장하는 LED 유닛들은 크리스토퍼의 머릿속 생각을 반영해 시각화한다. 이때 시냅스 속 뉴런의 이미지가 우주의 별과 연관지어 그려지는데, 이는 물리와 천체에 대한 크리스토퍼의 관심과 생각을 반영한다.


이처럼 특별한 세트 없이 조명과 영상만으로 장소를 표현하는 이 연극은 크리스토퍼가 떠올리는 대로 좌우, 후면과 바닥에 영상을 프로젝션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영국 오리지널 공연에서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장면도 무중력 상태에서 크리스토퍼가 유영하는 상상을 하는 대목이다. 이번 한국 공연에서는 이에 덧붙여 크리스토퍼가 별무리 속으로 들어가거나 거대한 우주선을 조종하고 있는 장면들을 추가로 삽입할 예정이다. 이처럼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은 무대 디자인과 영상 디자인의 존재감이 두드러지는 연극이다. 드라마보다 시각적으로 먼저 다가오는 것은 첨단의 느낌이 강렬한 어둠 속 빛의 이미지들이다. 한국 공연에서도 이런 시각적 연출을 위해 홀로그램 필름과 10대에 가까운 프로젝터, LED 라이트, 배우의 몸에 붙이는 트래킹 장치 등 다양한 첨단 테크놀로지가 사용된다.


하지만 오리지널 공연에 비해 아날로그적인 연출도 상당 부분 강조됐다. 공연 내내 배우들이 등퇴장을 거의 안 하고 무대 위에 머무는 만큼, 다양한 상황이나 도구 역할도 직접 해낸다. 배우들이 몸을 활용해 쓰레기통이나 소파, 현금인출기 등의 소품을 만드는 장면은 그대로 웃음 포인트가 되기도 한다. 몇 개의 대도구들은 단순하게 집을 표현하는 정도로만 활용된다. 이 작품에서 또 하나의 인상적인 장면이 크리스토퍼의 기차 조립 신인데, 바닥 전체를 활용할 정도로 큰 철도를 깔아야 하기 때문에 다른 배우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때 분리된 철로를 크리스토퍼에게 전달해주는 배우들의 움직임은 흡사 무용 동작을 연상시킨다.




한국 공연만의 개성



이 작품의 분위기는 각국 버전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 영국 오리지널 공연은 세련된 조명과 첨단 영상 장치와 유머러스한 드라마로 시종일관 쿨한 느낌을 자아낸다. 반면 자기네 지역과 인명으로 윤색을 한 일본 공연은 ‘집 나간 엄마와 남겨진 아빠, 장애인 아들’의 조합을 부각시키며 다소 신파적으로 연출했다. 영국 공연의 시각적 기술력을 대거 뺀 대신, 피아노 한 대의 라이브 연주로 이야기에 집중함으로써 정서를 강조했다. 한국 공연은 이 두 버전의 장점을 취해, 정서적으로 울림을 주면서도 시각적으로 세련된 작품으로 완성될 계획이다. 


한국 공연만의 가장 큰 차별점은 마무리다. 원작 소설에서는 크리스토퍼가 “나는 뭐든지 할 수 있다”라는 말로 끝이 난다. 오리지널 공연 역시 소년에게 희망을 주는 느낌으로 극을 마무리한다. 반면 이번 공연에서는 마지막에 “(이런 모험을 하고 책도 썼으니) 내가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뜻인가요?”라는 질문을 던진다. 김태형 연출은 이 질문이 사회에 따라 다른 함의를 가질 것이라고 말한다. 크리스토퍼를 동정이나 경멸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 극 중 인물들처럼 영국은 그 질문에 실제로 희망적인 답을 줄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2015년 대한민국은 ‘아니, 너 어떡하니’ 정도의 답밖에 내놓을 수 없는 곳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장애인을 대하는 각 사회의 태도를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또 이 작품은 비단 자폐증 환자의 모험담이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도 된다. 김태형 연출은 “자폐적 특징들을 제외하면 크리스토퍼가 세상을 처음 접하는 모든 순간은 우리가 버스나 기차를 처음 탔을 때의 감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그래서 김태형 연출은 이 작품을 ‘거대한 아동극’으로 만들 계획이다. 전형적인 아동극이 아니라 빛나는 상상력을 통해 성인과 아동을 모두 감동시키는 ‘잘 만들어진 아동극’이 그의 지향점이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7호 2015년 1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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