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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PREVIEW] <치정> [No.146]

글 |나윤정 사진제공 |남산예술센터 2015-11-12 4,095

치정과 정치, 그 수상한 관계



<두뇌수술>, <1984> 등 기존의 연극 형식을 벗어난 실험적이고 도발적인 작품들을 선보였던 극단 그린피그가 신작을 내놓았다. 박상현이 쓰고 윤한솔이 연출하는 <치정>이다. 박상현 작가는 시인 송욱의 ‘하여지향’의 한 구절인 ‘치정 같은 정치’를 언급하며 이 작품의 기획 의도를 설명한다. 전도된 음절로 일종의 말장난을 한 ‘치정’과 ‘정치’가 의외로 썩 잘 어울리는 상호 수식 관계를 보여주는데, 이처럼 수상한 관계가 뒤집혀진 현상을 <치정>으로 그려내겠다는 것이다. 그에 따라 작품은 불륜 같은 잘못된 만남의 이면에 숨어 있는 정치성이나 권력 관계를 교묘히 파헤친다. 나아가 떨치지 못한 부적절한 관계들로 인해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결핍과 과잉 그리고 그로 인한 폭력과 단절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황미영, 최지연, 최문석, 정양아, 임정희, 이동영 등이 출연하는 <치정>은 전형적인 연극의 플롯을 따르지 않는다. 두 개의 중점적인 이야기가 서로 맞물려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해 나간다. 작품의 한 축을 차지하는 이야기는 1950년대 센세이션을 일으킨 정비석의 『자유부인』을 둘러싼 당대의 논란이다. 때는 바야흐로 1954년, 서울시경 수사부의 남덕술 수사부장이 소설 『자유부인』을 읽고 있는 장면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자유부인』은 대학교수 장태연의 아내인 가정주부 오선영이 옆집 대학생 신춘호에게 사교춤을 배우면서 가정 파탄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는 파격적인 소설이다. 당대 사회에 만연한 퇴폐풍조와 춤바람을 경고하는 이 작품을 둘러싸고, 서울대 법학과 황산덕 교수와 정비석 작가는 열띤 논쟁을 시작한다. 여기에 독자들까지 논쟁에 가담해 열렬한 반응을 보낸다. 한편, 이런 와중에 남덕술 수사부장의 부인 어을동이 전설의 춤꾼 신춘수와 춤바람이 나게 되고, 현실의 치정극은 점차 극단적인 결말로 향해 간다.


『자유부인』의 논란과 맞물려 펼쳐지는 또 하나의 이야기는 온라인 동호회 ‘한국고고학회’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다. 이 온라인 동호회에 모인 멤버들은 전설의 춤꾼 신춘수의 행보에 대한 스터디를 시작하고, 그 과정에서 걷잡을 수 없는 이념 논쟁에 빠져든다. 한편에서는 광주와 부산 조폭 간의 한국현대무협사에 대한 토론이 이어지고, 동호회 멤버들은 서로를 볼 수 없는 모니터 속에서 정치적 이념과 지역적 갈등으로 싸움을 벌인다. 그 사이 대화에서 고립된 흑산은 자신에게 적대적이었던 카르멘의 위치를 해킹으로 찾아내고, 직접 그녀를 만나 무참히 살해하기에 이른다. 이렇듯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는 채팅창 속의 이야기는 현실과 가상의 세계를 넘나들며 공허한 울림을 남긴다. 


두 개의 중점적인 이야기 아래, 작품은 막간 치정극을 비롯한 스무여 개의 에피소드를 쉴 새 없이 풀어낸다. 이를 통해 <치정>은 모든 것에 패가 갈리는 현 사회에서 과연 공명정대하게 권력을 나누면 연애의 뒤끝이 안전한지, 혹은 이웃의 아내를 탐하지 않고 의리로써 연애하면 나라가 바로 서는지, 거침없는 질문을 던진다. 물론 이러한 메시지를 심각하게 풀어낸 것이 아니라 웃으면서 생각할 수 있는 무대로 연출한 것이 바로 <치정>의 미덕이다.


11월 19일~12월 6일/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02-758-2150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5호 2015년 1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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