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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INSIDE THEATER] <카포네 트릴로지> [No.143]

글 |안세영 사진제공 |아이엠컬처 2015-09-01 4,837

<카포네 트릴로지> 심층 들여다보기




<카포네 트릴로지>는 마피아 알 카포네가 도시를 지배하던 시절, 시카고의 한 호텔 방에서 일어난 세 가지 사건을 그린 옴니버스
연극이다. 같은 배우가 세 개의 독립적인 에피소드에 모두 출연하고, 관객은 그중 원하는 작품만 골라서 볼 수 있는 색다른 형식이
특징이다. 이 작품은 작년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를에서 내한 공연을 올렸던 <벙커 트릴로지>와 한 핏줄에서 나왔다.


제스로 컴튼의 3부작 시리즈
<벙커 트릴로지>와 <카포네 트릴로지>는 1988년생 영국 연출가 제스로 컴튼이 이끄는 ‘제스로 컴튼 컴퍼니’의 작품이다. 두 작품 모두 사방이 막힌 좁은 공간 안에 무대와 객석이 함께 있고, 같은 배우가 독립적인 세 편의 에피소드를 모두 연기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3부작 형식은 일정 부분 페스티벌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탄생했다. 페스티벌 기간에는 한 공간에서 짧은 시간차를 두고 여러 공연이 올라가기 때문에, 무대 세트를 빠르게 설치했다 빠르게 철수해야 한다. 이런 환경에서 공연 팀이 무대 세트를 제대로 갖추기란 어렵기 마련. 하지만 제스로 컴튼 컴퍼니는 같은 세트를 사용하는 세 편의 공연을 함께 올리는 방식으로 페스티벌 측에서 공간 하나를 온전히 따냈고, 다른 공연보다 높은 퀄리티의 무대를 선보일 수 있었다.

3부작 시리즈의 시작을 알린 것은 <벙커 트릴로지>였다. 2013년 초연한 <벙커 트릴로지>는 신화와 고전을 1차 세계대전 때 벙커 안에서 벌어진 이야기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아서왕 전설을 재해석한 <모르가나>, 아이스킬로스의 희곡을 재해석한 <아가멤논>,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재해석한 <맥베스> 세 작품으로 이뤄져 있다. 흙과 나무로 실제 벙커처럼 꾸민 세트 안에서 네 명의 배우가 모든 에피소드를 소화한다. 간이 의자로 된 객석에 앉을 수 있는 인원은 단 60명이었다. 이 작품은 2014년 재연 당시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최고연극상을 받았고, 같은 해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를 통해 국내에도 소개됐다. 내한 공연에서는 부상을 당한 배우를 대신해 연출인 제스로 컴튼이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후속 시리즈인 <카포네 트릴로지>는 2014년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초연했다. 갱스터 누아르를 표방하며, 마피아 시대 호텔 방을 재현한 무대에서 세 가지 다른 성격의 에피소드를 선보인다. 1923년을 배경으로 한 코미디 <로키>, 1934년을 배경으로 한 서스펜스 <루시퍼>, 1943년을 배경으로 한 하드보일드 <빈디치>가 그것이다. 여자 배우 1명과 남자 배우 2명이 에피소드마다 돌아가며 주인공을 맡는다. 제스로 컴튼 컴퍼니는 올해 8월에도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새로운 3부작 시리즈 <프런티어 트릴로지>를 선보인다. 이번에 도전하는 장르는 서부극. 서부 개척 시대 캘리포니아의 한 성당을 배경으로 , , 세 가지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한국에서 새롭게 각색된 공연
<카포네 트릴로지>의 라이선스 공연은 2014년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벙커 트릴로지>와 <카포네 트릴로지>를 흥미롭게 관람했던 김태형 연출과 아이엠컬처 정인석 대표에 의해 실현됐다. <벙커 트릴로지>가 아닌 <카포네 트릴로지>가 먼저 공연된 이유는 제스로 컴튼 컴퍼니에서도 올가을 <벙커 트릴로지> 재연을 계획하고 있어 라이선스를 넘겨주지 않았기 때문. 하지만 내년에는 <벙커 트릴로지> 역시 라이선스 공연을 올리는 것으로 구두계약을 마쳤다.

한국 공연은 지이선 작가가 텍스트의 완성도를 높이고 한국 관객에게 어필할 수 있는 방향으로 대본을 각색했다. 그 결과, 건조하고 심플했던 오리지널 공연보다 정서적인 면이 강화됐다. <로키>의 주인공 로키에게는 은퇴한 쇼걸이 빚을 갚고 사랑하는 남자와 떠나려 한다는 설정을 새롭게 부여하여 탈출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을 부각했다. <빈디치>는 절반 가까이 다시 썼다. 원작에는 주인공 빈디치의 부인이 상사에게 성적인 착취를 당해 자살했다는 사실만 나오지만, 한국 버전은 부인이 남편의 승진을 위해 몸을 바쳤다는 설정을 추가, 그 사실을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싶어 했던 빈디치의 죄책감을 더 강하게 표현했다. 빈디치와 그의 복수를 돕는 루시 사이에는 묘한 성적 긴장감을 살렸다. 원작은 마지막에 빈디치가 루시를 죽이는 것으로 간단하게 끝나지만, 한국 공연에서는 빈디치가 루시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키스를 하다가 총을 빼앗아 죽이는 것으로 끝나 더 큰 여운을 남긴다. 작품 중간에 삽입된 노래의 멜로디와 가사, 배경음악도 김경육 작곡가가 새롭게 만들었다.

세 작품은 모두 독립적인 에피소드지만, 시대 순서상 앞에 놓인 에피소드의 사건이 뒤의 에피소드에서 짧게 언급된다. 한국 공연은 세 작품에 공통적으로 쓰이는 대사와 소재를 통해 이런 연관성을 한층 강화했다. 등장인물은 에피소드마다 조금씩 다른 상황에서 “당신 품에서 숨 쉴 때가 가장 편해”와 “전형적인 범인의 대사”라는 말을 한다. 3부작 전체에 등장하는 빨간 풍선은 순수했던 시절의 상징이자, 자의든 타의든 렉싱턴 호텔 661호에 갇혀 살고 있는 등장인물들의 자유롭게 날아가고 싶은 마음을 나타낸다. 빨간 풍선은 세 작품 모두에서 등장인물이 갖고 싶어 하는 대상이나 다른 이에게 주는 선물로 나온다.

김태형 연출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미국 대공황 시대의 마피아 이야기를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고민했다. 그리고 극 중 직접 등장하지 않는 마피아 ‘알 카포네’의 손에 온 도시가 좌지우지되는 모습이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과 비슷하다는 점을 발견했다. ‘관피아’, ‘금피아’라는 말이 나올 만큼 거대 세력이 실권을 장악한 사회에서, 누군가는 그 카르텔 안에 들어가고 싶어 하고, 누군가는 거기서 탈출하고 싶어 하는 현실을 극 중 상황에 투영했다. 김태형 연출은 내년에 공연될 <벙커 트릴로지> 또한 전쟁의 배경을 1차 세계대전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한국 전쟁이나 베트남 전쟁, 혹은 최근의 이라크 전쟁으로 바꿀 생각이다.




실제 호텔 방 같은 무대
한국 공연은 페스티벌용으로 제작된 오리지널 공연보다 무대미술에 더 많은 공을 들였다. 장춘섭 미술감독이 디자인한 무대는 대공황 시대 미국의 비좁은 호텔 방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모습이다. 사방 벽과 천장까지 모두 막힌 방 안에 일곱 평이 채 안 되는 연기 공간과 100개의 객석이 마련돼 있다. 무대와 객석 사이의 거리는 손만 뻗으면 닿을 만큼 가깝다. 이러한 무대는 마치 관객이 방 안에서 실제 사건을 목격하는 듯한 극한의 몰입감을 선사한다. 한국 무대는 오리지널 공연에 없던 호텔 복도와 프런트까지 구현하여, 객석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이 복도를 지나 호텔 방문으로 들어서야 한다. 배우들 역시 같은 문을 통해 등퇴장한다. 무대 사방에는 여덟 대의 스피커를 설치해 방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 라디오와 전화기에서 나오는 소리 등을 서라운드 음향으로 들려준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3호 2015년 8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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