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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CULTURE IN MUSICAL] 각양각색의 광인들 ​[No.142]

글 | 송준호 2015-08-10 4,081

두 시간 남짓한 시간에 최대한의 재미와 감동을 줘야 하는 뮤지컬에는 그만큼 일상적이지 않은 소재나 인물 들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주변 인물과 확연히 구별되는 성격과 행동을 보여주는 광인(狂人)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스토리를 전개하는 원동력일 뿐만 아니라  때로는 스스로 작품의 주제까지 품고 있는 존재다. 



천재의 이면, 광인


흔히 창의성과 광기는 종이 한 장 차이로 표현되곤 한다. 실제로 역사 속 천재 중엔 미치광이에 가까운 모습을 보인 이들이 적지 않다. 특히 예술가들의 기행은 이들을 극으로 재조명할 때마다 흥미로운 연출 포인트가 된다. 천재 예술가의 전형인 모차르트는 영화 <아마데우스> 흥행 이후 괴상한 웃음소리와 괴팍한 성격이 하나의 스테레오타입이 됐다. <모차르트!>에서도 그는 머릿속에 뭔가가 떠오르면 혼자 중얼거리며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든다. 천재들이 보통 사람들과 다른 정신세계를 지니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이었다. 


그들만의 예민한 감성과 광기는 실제로 예술가들을 정신질환으로 몰고 가기도 한다. 그런데 걸출한 천재들은 그 불안정하고 과민한 상태에서 더 뛰어난 작업을 진행한다. 발작을 일으켜 자신의 한쪽 귀를 잘라버린 고흐도 정신분열증에 걸린 천재였다. 그의 작품들은 풍경이나 자화상이 대부분인데, 이는 고흐가 너무 가난해서 따로 모델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귀를 자른 후에 그린 「파이프를 물고 귀에 붕대를 한 자화상」은 그런 처참한 현실과 광기가 담긴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는 광인 화가의 이미지 대신 고흐의 인간적이고 일상적인 모습에 초점을 맞춰 차별화를 시도한 바 있다. 


이런 천재들의 광기는 사랑이나 야심 같은 개인적 욕망을 통해 한층 더 흥미롭게 변주되기도 한다. <오페라의 유령>의 광기 어린 음악 천재 팬텀(에릭)은 <팬텀>에서 그런 삐뚤어진 성격의 근원을 자세히 밝히고 있다. 애정 결핍과 추한 외모로 인한 자발적 고립은 음악에 집착하게 해 에릭을 ‘마에스트로 팬텀’으로 완성시켰다. 하지만 크리스틴의 등장으로 집착의 대상이 바뀌며 그의 광기는 상황을 파국으로 치닫게 한다. 반면 <데스노트>는 무소불위의 능력을 얻은 천재 대학생 라이토가 점차 광기에 휩싸이는 과정을 인상적으로 보여준다. 처음엔 경찰인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정의로운 세상 만들기를 꿈꿨지만, 노트의 힘에 중독된 후 그는 명석한 두뇌를 십분 활용해 법망을 교묘히 뒤흔드는 소시오패스가 된다. 



내 안의 다른 목소리


다중인격이 대중문화에서 본격적으로 활용되기도 전에 지킬과 하이드의 이야기는 ‘내 안의 또 다른 나’의 구조를 선보였다. 이 구조가 흥미로운 것은 두 인격의 성격이 상반됐다는 점이다. 과학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사명감을 지닌 지킬은 스트립 댄서인 루시에게도 깍듯하게 예의를 갖추는 신사다. 반면 그의 또 다른 인격인 하이드는 평소 지킬의 앞길을 막았던 이들을 닥치는 대로 해치는 광인이다.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두 인격의 모습은, 반대로 이들이 분리될 수 없는 동전의 양면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즉 하이드는 또 다른 인물이 아니라 지킬의 일부라는 것을 말해 준다. 한 배우가 두 역을 함께 연기하는 <지킬 앤 하이드>에서는 이런 사실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특히 ‘Confrontation’ 장면은 영화 <반지의 제왕>의 골룸과 스미골의 갈등 신처럼 분열된 자아의 모습을 인상적으로 그리고 있다. 


‘주인님’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노예 광인들도 있다. <레베카>의 맨덜리 저택의 집사인 댄버스 부인은 저택 안주인 레베카의 세계에 묶인 몸이다. 레베카는 죽고 없지만 댄버스 부인의 정신은 레베카가 지배했던 그 시간과 공간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 댄버스 부인에게 강렬히 각인된 레베카의 기억은 곧 현실 부정으로 이어지고, 이는 저택의 다른 사람들에게 섬뜩한 광기를 느끼게 한다. 바로 이 광기가 댄버스 부인이 조연임에도 주연 같은 아우라를 뿜어낼 수 있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드라큘라>의 렌필드 역시 드라큘라라는 주인의 노예다. 출연 장면과 시간이 한정적임에도 렌필드가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건 그가 보여주는 기괴한 분위기 덕분이다. 자주 다른 곳을 응시하며 중얼거리는 모습은 언뜻 코믹하게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미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는 드라큘라의 존재가 깔려있다. 그렇기 때문에 렌필드의 광기는 단순한 병리 현상이 아니라 드라큘라의 공포를 드러내는 징후라고 할 수 있다. 



시대가 만든 광인


지나친 천재성이나 다중인격, 강박적 집착증 등은 개인의 정신적 현상에 국한되는 문제지만, 광인이 만들어지는 데는 당시 사회 분위기나 외부 환경도 영향을 미친다. 가령 어떤 사람이 그 시대에서 일반적이지 않은 행동을 한다면, 그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비정상적인 인물로 인식될 수 있다. 이때 그는 단순히 미친 사람이라기보다 시대와 맞지 않는 존재일 것이다. 


<맨 오브 라만차>의 돈키호테 같은 이가 바로 그렇다. 정신이 온전치 않은 노인 알론조 키하나는 정의를 수호하는 기사가 되고자 풍차와 싸우고, 여관을 성으로 여기며, 매춘부를 순결한 숙녀로 본다. 원작인 『돈키호테』의 작가 세르반테스는 이 작품에서 당시 유행하던 기사 소설과 기사도의 폐단을 패러디했다. 돈키호테의 광기를 통해 시대착오적인 기사도를 풍자한 것이다. 그런데 뮤지컬은 돈키호테의 꺾이지 않는 꿈을 찬양한다. 원작의 돈키호테는 이성을 찾고 숨을 거두는 반면, 뮤지컬에서는 그간의 행적을 꿈인 줄 알던 키하나가 알돈자의 등장으로 그것이 실제로 진행됐다는 사실을 기억해 내고 ‘돈키호테로서’ 숨을 거둔다. 이 장면에서 대표곡 ‘이룰 수 없는 꿈’이 뭉클한 감동을 주는 것은, 키하나의 꿈에 대한 굳건한 신념과 그것을 이루려는 노력의 과정이 저절로 소환되기 때문이다. 흔히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인간을 ‘돈키호테형’이라고 부르며 조소하는 경우가 있지만, 지금에 와서 키하나 노인의 꿈에 대한 집념과 저돌적인 추진력은 광기보다 용기로 재평가되고 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2호 2015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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