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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FOCUS] 무대 위의 스포츠, 그 땀방울이 품은 진정성 [No.141]

글 | 안세영 사진 | 심주호 2015-07-17 4,389

스포츠는 흔히 인생에 비유되곤 한다.  우승을 향해 달려가는 과정 안에 모든  희로애락의 순간이 압축돼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포츠는 만화, 영화,  드라마 등의 소재로 꾸준한 인기를  누려왔다. 최근 공연계에도 스포츠를 소재로 한 작품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유도, 복싱, 배드민턴 선수의 이야기를 그린 연극 <유도소년>에 이어  야구 뮤지컬 <너에게 빛의 속도로 간다>까지 무대 위의 스포츠는 그 신선함과  현장성으로 이목을 끌고 있다. 



선수 못지않은 훈련 과정
스포츠 소재 공연의 가장 큰 매력은 눈앞에서 현장감 넘치는 경기 장면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스포츠 소재 공연을 쉽게 찾아보기 힘든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대역이나 편집이 없는 무대에서 실감 나는 경기 장면을 선보이려면 배우들이 강도 높은 훈련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고등학생 운동선수들의 이야기를 다룬 연극 <유도소년>의 배우들은 2개월간 체육관에 다니면서 유도와 복싱을 배웠다. 매일 아침 체육관에 가서 코칭을 받고, 오후엔 연습실로 넘어와 대본을 보는 강행군이었다. 배드민턴의 경우 배울 만한 곳을 찾기 힘들었는데, 운 좋게 학창 시절 배드민턴 선수였던 뮤지컬 배우 남정우를 소개받아 배울 수 있었다. 처음 도전하는 스포츠에서 단기간에 고난도 기술까지 습득할 수 있었던 데에는 배우들의 운동신경도 한몫했다. 유도 선수 경찬 역의 박훈은 어린 시절 태권도를 배운 경험이 있었고, 복싱 선수 민욱 역의 차용학은 PT트레이너 출신이었다. 특히 차용학은 초연 당시 배우들의 식단 조절까지 책임지며 팀 트레이너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대련 장면은 드라마에 잘 녹아들면서도 화려한 액션이 돋보이도록 서정주 무술감독이 디자인했다. 더불어 학창 시절 실제 유도 선수였던 박경찬 작가가 기술적인 정확성을 직접 감수했다. 
복싱 체육관의 이야기를 다룬 <이기동 체육관>의 배우들도 공연 3개월 전부터 훈련을 시작했다. 복싱의 기초부터 차근차근 배워 나가면서 기초 체력 단련을 병행했다. 약 2개월은 운동 위주로 연습이 진행되고, 공연을 한 달 앞두고부터 본격적인 대본 맞추기와 군무 연습에 들어갔다. 여기에 개인 훈련 시간까지 합치면 모든 배우가 매일 6~8시간 정도 운동을 한 셈이다. 특별히 높은 실력이 요구되는 배역은 10~12시간 동안 훈련을 강행했다. 보통 1년 이상 연습해야 나오는 자세를 3개월 만에 습득하려니 어쩔 수 없었다. 일반인 체력으로는 소화할 수 없는 훈련이라서 처음부터 주요 배역에는 운동 경력이 있는 배우를 선발했다. 초연에 이기동 관장 역할을 맡은 김정호는 복싱을 한 경력이 오래된 배우고, 2011년부터 참여한 이국호도 무술감독 출신의 유단자이다. 나머지 배역에도 웨이트 트레이너, 운동선수 출신의 배우들이 다수 참여했다. 개막 후에도 훈련은 끝나지 않았다. 공연이 없는 낮 시간에 훈련을 계속하면서, 배우의 기술이 느는 만큼 복싱 장면도 업그레이드를 해 나갔다. 



무대의 한계를 넘어선 연출
유도와 복싱 같은 일대일 스포츠는 훈련을 통해 실제처럼 재현할 수 있지만, 축구나 야구 같은 대규모 스포츠는 한정된 무대에서 표현하려면 특별한 연출법이 필요하다. 뮤지컬 <뷰티풀 게임>과 <너에게 빛의 속도로 간다>는 안무를 통해 문제를 해결했다. 
1970년대 북아일랜드 축구팀의 이야기를 다룬 <뷰티풀 게임>은 웅장한 군무로 축구 경기의 생동감을 살린 작품이다. 차고 뛰고 구르는 동작을 안무로 승화하여, 공 없이도 실감 나는 축구 경기 한판을 만들어낸다. 서로 다른 유니폼을 입은 양편 선수가 무대 끝과 끝을 오가며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응원단의 환호와 합창이 열기를 고조시킨다.
야구 선수 김건덕과 이승엽을 주인공으로 한 <너에게 빛의 속도로 간다> 역시 공을 사용하지 않고 배우들의 움직임만으로 야구 경기를 재현한다. 투구와 타격 폼을 적용한 안무는 실제 야구장처럼 꾸며진 무대·조명의 도움을 받아 더욱 실감나게 표현된다. 응원가풍의 음악, 캐스터와 해설자 역할 배우들의 현란한 중계 멘트도 실제 경기에 버금가는 긴박감을 만들어낸다. 재연은 초연보다 더 남성적이고 파워풀하게 안무를 수정할 예정이다. 배우들은 유도나 복싱처럼 스파르타식 훈련을 받지는 않지만, 야구 선수다운 투구와 타격 폼을 선보이기 위해 연습한다. 이승엽 역할의 배우 김영철, 김찬호, 전재홍은 실제 이승엽 선수가 구단주로 있는 연예인 야구단 ‘폴라베어스’의 수석 코치 김영조에게 자세 교정을 받았다. 김영조 코치는 “이승엽 선수에게는 오른발로 땅을 고르거나 헬멧을 만지는 등의 독특한 습관이 있다. 배우들이 이런 특징을 살려 표현한다면 실제 이승엽 선수를 아는 관객들 입장에서 더 몰입하여 즐길 수 있을 것이다”라고 코칭 방향을 설명했다. 



역경에 맞서 성장하는 인물
스포츠 소재 작품이 주는 쾌감은 대부분 보잘것없던 주인공이 열정 하나로 최고의 위치에 오르는 과정에서 나온다. 여태까지의 스포츠 소재 공연도 한계를 극복하는 과정을 그린다는 점에서 이러한 흐름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다만 승패의 결과보다 성장 과정 자체에 좀 더 초점을 맞춘다는 특징이 있다. 
고교 레슬링 선수들의 이야기인 연극 <레슬링 시즌>은 경쟁, 따돌림, 성폭력 등 청소년기의 일상적인 갈등을 지름 9미터의 원형 매트 위에서 펼쳐지는 레슬링으로 표현한다. 몸과 몸이 부딪치는 가장 원초적인 스포츠, 레슬링은 청소년이 또래 집단의 악의적 소문과 부딪히며 자기 정체성을 찾는 모습을 효과적으로 가시화한다. <유도소년>에는 슬럼프를 극복하는 고교 유도 선수 경찬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내가 끝낼 때까진 끝난 게 아니랑께!”라는 대사와 함께 칠전팔기 정신을 상기한다. <이기동 체육관> 역시 포기하지 않으면 희망은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품이다. 작품의 주인공은 챔피언이 되는 데 실패하고 아들마저 잃은 전직 복서 이기동. 그가 관장으로 있는 ‘이기동 체육관’의 관원들 또한 힘겨운 일상을 견디는 소시민이다. 무기력한 삶을 살아가던 이들은 복싱에 대한 열정을 되찾으면서 삶에 대한 열정도 되찾기 시작한다. 세상이 날리는 펀치에 쓰러지지 않고, 주먹을 뻗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한편 <너에게 빛의 속도로 간다>는 여타 스포츠물과 정반대의 전개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고교시절 천재 투수로 주목받았던 주인공 김건덕은 잘못된 선택과 불의의 사고로 몰락의 길을 걷는다. 하지만 좌절의 끝에서 코치라는 새로운 길을 찾는 그의 모습은 ‘야구는 9회말 투아웃부터’라는 말을 연상시키며 운명에 굴하지 않는 힘을 보여준다. 
역경을 딛고 성장하는 인물들의 모습은 지켜보는 관객의 가슴에도 뜨거운 열정을 되살린다. 특히 눈앞에서 직접 목격하는 배우의 땀방울은 그 리얼리티 때문에 더 큰 공감과 감동을 불러일으키기 마련. 흘린 땀만큼 성과가 돌아오는 스포츠와 눈속임이 불가능한 무대의 만남은 드라마의 진정성을 배가시키는 형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1호 2015년 6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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