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칸더와 프레드 엡의 스완 송
돈으로 정의를 살 수 있는가. 다수의 불확실한 행복을 위해 한 사람의 희생을 요구하는 것은 타당한가. 정의를 가장한 복수는 옳은가. 지난 4월 23일 리시움 극장에서 막을 올린 <비지트: 노부인의 방문>은 이에 대해 윤리적, 도덕적,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뮤지컬로 담아내기에 다소 무거운 이야기를 뮤지컬로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맞지 않는 옷을 입혀놓은 듯한 인상을 남긴다.
인간의 탐욕과 정의의 상대성에 관한 어른들의 우화
스위스 극작가 프리드리히 뒤렌마트의 희곡을 원작으로 하는 <비지트>는 어둡고 무거운 뮤지컬의 명맥을 이어가는 작품이다. 사랑했던 남자에게 버림받은 여자가 몇 차례의 결혼과 사별, 이혼을 통한 위자료로 세계적인 부를 축적하고 다 쓰러져 가는 마을에 돌아와 자신에게 상처를 준 남자에게 복수를 한다는 내용으로, 복수극의 흔한 원형을 따르고 있지만, 복수의 방법에서 다른 복수극들과 차별성을 둔다. 1956년 초연 당시 많은 반향을 일으켰고, 영어로 바로 번역되어 2년간 영국과 미국에서 꽤 인기를 끌었다.
공연은 고풍스럽고 웅장하지만 한참 동안 관리를 안 해 창문은 깨지고 다 말라비틀어진 담쟁이넝쿨이 지저분하게 얽혀 있는 기차역을 배경으로 시작한다. 마치 과거의 망령을 불러일으키는 듯한 전주와 함께 젊은 시절의 클레어 자카나시안과 안톤 쉘(클레어의 첫사랑)로 보이는 남녀가 등장해 왈츠 선율에 맞춰 아름다운 파드되를 추지만, 이내 선율이 어그러지고 그들의 파드되도 파국으로 치닫는다. 이 남녀 배우는 대사는 몇 마디 없지만, 클레어와 안톤, 그리고 현재의 사건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존재로 90분의 공연 내내 무대 위에서 함께한다.
두 사람의 파드되가 끝나면, 잿빛 겨울옷을 입고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여자가 되어 돌아오는 클레어가 탄 기차가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씩 무대에 들어온다. 모두 클레어가 마을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갖고 있지 않을 것 같다고 짐작은 하지만, 마을의 절박한 상황을 생각할 때 그녀가 마을에 금전적인 도움을 주길 바라는 희망을 품고 있다. 클레어가 도착하고, 안톤에게 아직까지도 마음이 있는 듯, 과거를 회상하며 얘기하는 그녀를 보고 마을 사람들의 그러한 희망은 더욱 커져간다. 그러나 그들의 희망은 클레어가 사실은 안톤에게 복수를 하러 왔다는 진실이 드러나자 절망으로 바뀐다.클레어는 마을에 100억 마크를 주는 조건으로 자신을 버린 안톤의 목숨을 요구한다. 마을 사람들은 처음에는 절대 안 된다고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태도가 달라지고 결국 정의와 공동체의 선(을 가장한 탐욕)의 이름으로 안톤이 희생된다는 내용으로 극이 진행된다.
전반부는 클레어의 귀향의 이유와 그녀와 안톤의 관계가 밝혀지기까지의 과정이 긴장감 있게 전개된다. 그 긴장감을 유지시키고 관객의 충격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클레어가 안톤을 대하는 태도는 마을 사람들의 희망을 고취시킬 수 있을 정도로 다정다감해야 한다. 다정다감한 클레어의 태도는 안톤에게 의족과 의수를 착용한 채 “나는 죽지 않아(I’m unkillable)”라거나 “세월을 아주 정통으로 맞았구나(The years have not been kind to you)”라고 거침없이 말하는 차갑고 비인간적인 모습과 대조된다. 클레어의 동기가 밝혀지는 이후부터는 마을 사람들이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지, 그들의 마음이 어떻게 조금씩 달라지는지, 안톤이 사람들(과 가족들)의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보여주는 것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다시 말해, 사건은 일어나지 않고 클레어의 등장과 제안에 뒤따르는 인물들의 내재적인 심리 변화에 대한 묘사가 작품의 주된 동력이 된다.
통쾌하지만은 않은 복수극
원작이 지닌 어둡고 철학적인 내용을 생각할 때, 존 칸더와 프레드 엡 콤비는 작품을 뮤지컬화하는 데 가장 잘 어울리는 팀이었다. 두 사람의 작품 경력을 살펴보면, 나치를 배경으로 한 1966년 작 <카바레>부터 흑인 노예들을 부당하게 처벌한 사건을 민스트럴 쇼(백인이 얼굴을 검게 분장하고 흑인 가곡 등을 부르는 쇼) 형식으로 만든 2010년 작 <스캇츠보로 보이스(The Scottsboro Boys)>에 이르기까지, 무겁고 민감한 소재를 다루는 데 특히 재능을 드러내 왔기 때문이다. <비지트>는 작사가인 프레드 엡이 2004년 심장마비로 유명을 달리하기 전에 칸더와 함께 작업한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작품에서 둘의 음악은 풍부하고 아름다운 멜로디와 작품 전반에 깔려 있는 불협화음을 넘나들며 작품을 풍성하게 하는 역할을 충실히 한다.
마을 사람들이 부르는 클레어에 대한 찬가라든가 마을이 어떻게 이렇게 가난해졌는지에 대해 클레어에게 설명해 주는 장면의 노래는 경쾌함과 어두움, 그리고 불협화음을 적절히 섞어서 관객들이 마음을 쉽게 놓지 못하게 한다. 그에 반해, 클레어와 안톤이 듀엣을 부를 때 흐르는 왈츠 선율의 노래들은 풍부한 멜로디로 그들이 서로 사랑했던 과거의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3막으로 이루어진 원작에서는 클레어의 대사들이 그녀의 복잡한 감정들-차갑고 잔인한 복수극을 준비하고 왔지만, 그와 동시에 안톤에 대한 따뜻하지만 왜곡된 사랑을 품고 있는-을 여러 각도에서 보여준다면, 이 작품에서는 칸더와 엡의 노래가 짧아진 대사의 빈자리를 채워준다.
음악으로 좀 더 풍성해진 클레어라는 인물을 완성시켜주는 것은 치타 리베라의 연기이다. 올해 여든두 살인 리베라는 무려 14년 전 2001년 작품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부터 함께했다. 그녀의 까랑까랑한 목소리와 날카로운 눈빛, 가볍지만 무게감이 느껴지는 춤 동작과 대사, 걸음걸이는 ‘클레어’라는 다층적인 캐릭터를 완성시키는 데 한몫한다. 특히 과거의 클레어를 연기하는 미쉘 베인티밀라와 함께 왈츠를 추는 ‘You’와 ‘Love And Love Alone’의 안무는 인조인간처럼 보이는 현재의 클레어와 사랑에 진실했던 과거의 자신을 엮어내 캐릭터를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게다가 브로드웨이 베테랑으로 공연계에서 산전수전을 겪은 치타 리베라가 클레어를 연기하는 것은 그 어느 배우도 모방해낼 수 없는 아우라를 만들어준다. 무대 위의 클레어가 “나는 죽지 않아”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웃음이 터지는 이유는 관객들 대다수가 치타 리베라의 무대에 대한 집념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디자인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들은 소도구와 소품 들이다. 클레어가 무대에 등장할 때 열댓 개쯤 되는 여행 가방과 함께 카트에 싣고 오는 관은 가방과 클레어가 퇴장해도 무대에서 사라지지 않는데, 이는 관객의 궁금증을 자극하는 동시에 다가올 죽음을 암시해 불길한 분위기를 더하는 데 한몫한다. 무대에서 계속 보이는 여행 가방도 이후 돈 가방임이 밝혀진다. 무엇보다도 클레어의 심복들이 신고 있는 노란색 신발이 전체적으로 잿빛을 띠는 무대에서 눈에 확 들어오면서 어딘지 모르게 꺼림칙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런 이미지는 극 중반부가 넘어가면서 이어진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노란색 신발을 신고 여행 가방을 하나씩 든 채, 전반적으로는 밝지만 불협화음이 넘치는 ‘Yellow Shoes’를 부르는 장면은 극의 비극적인 종말을 암시한다.
꼭 뮤지컬로 만들어야 했을까?
작품 개발에 많은 시간을 쏟는 브로드웨이라고는 해도, 2001년부터 14년간 발전시켰다는 건 꽤 긴 시간이다. 잘 알려진 희곡작가 테렌스 맥널리(Terrence McNally)가 각색을 했고, 그의 남편인 톰 커다히(Tom Kirdahy)가 메인 프로듀서로서 14년 동안 이 작품의 진행을 진두지휘해 왔다. 이 작품의 시작점을 찍은 2001년 시카고 트라이아웃 공연에서는 9·11테러로 인해 뉴욕의 관객들이 시카고로 오지 않아 전문가들의 의견을 제대로 듣지 못한 채 한동안 쉬어야 했고, 2004년에는 작사가인 프레드 엡이 심장마비로 사망해 잠시 휴식기를 가져야 했다. 2008년 워싱턴 DC의 시그너쳐 극장(Signature Theater)에서 2막 공연으로 다시 올라갔을 때, 톰 커다히는 작품이 전체적으로 좀 더 어두워져야 한다고 판단해 2001년부터 연출을 맡아 왔던 프랭크 갈라티를 빼고 <컴퍼니>와 <스위니 토드> 리바이벌 프로덕션에서 액터 뮤지션 뮤지컬로 반향을 일으킨 연출가 존 도일을 찾았다. 그렇게 산전수전을 겪고, 2014년 윌리엄스타운 페스티벌에서 존 도일의 연출로 만들어진 1막짜리 <비지트>가 탄생하게 된다.
작품 전반에서 연출은 단조롭지만, 작품이 지닌 성격을 고려할 때 존 도일은 연출로서 최선을 다한 듯 보인다. 존 도일이 합류하기 전의 작품이 어떠한 느낌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에게 주어진 음악과 대본으로 만들어 놓은 <비지트>의 세계는 확실히 어두우면서 무겁고 어딘지 모르게 불길한 느낌이 있고, 그런 묵직한 불길함과 냉소적인 관점은 극이 진행되면서 클레어의 감성적인 모습들과 대비되어 계획된 불협화음을 만들어낸다. 1막으로 짧아지면서 많은 대사들이 생략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이렇다 할 사건도 없는데, 인물들의 내면의 이야기만 가지고 2막짜리 작품을 만들었으면 더 지루했을 것이 분명하다. 대사가 생략되면서 인물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그림은 희미해졌지만 그 부분은 음악과 연기로 최대한 채우려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무엇보다 치타 리베라가 연기해 낸 클레어는 분명 다층적인 면모를 지닌 입체적인 인물이었다.
14년간의 노력은 분명 공연 구석구석에 다 배어 있는데도, 작품을 보면서 불편했던 이유는, 윤리적. 도덕적인 기준을 돌아보게 만드는 내용에서 오는 불편함뿐만이 아니라, 이 소재가 과연 브로드웨이 극장용 뮤지컬에 적합한 소재였을까에 대한 원론적인 질문 때문이었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방식이 내면적 심리에 의존하는 면이 큰데, 노래로 감정과 상황을 표현하는 뮤지컬에 담아내기에는 메울 수 없는 괴리가 존재했다. 좋게 말하자면 연극적인 뮤지컬이지만, 어떤 의미로는 연극으로서 더 그 가치를 드러낼 수 있는 텍스트였다고 할까. 작품에 대한 그렇게 나쁘지 않은 평과 치타 리베라의 출연에도 티켓이 많이 안 팔리는 이유는 아마도 이 작품이 지닌 태생적 한계 때문인 듯하다. 6월에 열리는 토니상에 최우수 작품상을 비롯해서 여우주연상, 음악, 대본, 그리고 조명 상까지 다섯 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는데, 작품상은 어렵겠지만 여우주연상이나 음악은 노려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1호 2015년 6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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