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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ZOOM IN] 가족 뮤지컬의 작은 변신 [No.140]

글 | 송준호 2015-06-04 5,253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가족 뮤지컬이 본격적으로 무대에 오르고 있다. 기성 뮤지컬과 마찬가지로 지난해 세월호 여파로 한동안 부진의 늪에 빠졌던 가족 뮤지컬은 이번 달을 계기로 반등을 노리고 있다. 특히 그동안 익숙한 동화나 유명 캐릭터 중심으로 기존의 패턴을 답습하던 양상을 벗어나 진화를 시도하며 가족 뮤지컬의 변신을 예고하고 있다. 



세분화하는 아동/가족 뮤지컬


아동/가족 뮤지컬 시장은 한때 침체에 빠지긴 했지만, 양적인 면에서 지속적인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제작되는 작품 중 가장 많은 형태는 방송용 애니메이션을 뮤지컬로 만든 공연들이다. 이런 현상은 공중파 방송의 문화적 파급을 알리기 위해 방송국이 동화를 기반으로 하는 뮤지컬을 만들던 70년대부터 시작된 것이다. 당시 MBC가 뮤지컬 <보물섬>을 세종문화회관에 올렸는데, 이는 방송 3사가 경쟁적으로 아동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뮤지컬을 올리는 계기가 됐다. 


이런 흐름은 콘텐츠만 동화에서 애니메이션으로 바뀌었을 뿐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스테디셀러인 <뽀로로> 시리즈를 비롯해 <꼬마버스 타요>, <로보카 폴리> 등이 대표적이다. 그중 최신작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동명의 KBS 애니메이션을 가족 뮤지컬로 재탄생시킨 <헬로 카봇>. 이 작품은 기존의 어린이 뮤지컬과는 달리 이야기와 시각적 요소의 수준을 끌어올려 성인 관객에도 어필하는 전략을 시도한다. 내용 면에서는 특별한 사건 없이 로봇 캐릭터를 적절히 활용하던 방식 대신, 일상의 훈훈한 에피소드를 통해 가족의 소중함과 행복을 이야기하며 어린이 관객과 보호자들을 함께 아우른다. 또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등장하는 여타의 뮤지컬과 달리 공중을 나는 플라잉 장치 등을 활용해 보다 생동감 넘치는 무대를 연출한다. 


그동안 국내에서 가족 뮤지컬은 대개 어린이 뮤지컬과 혼용돼 왔는데, 엄밀히 구분하면 두 장르는 다르다. 가족 뮤지컬은 가족 구성원 모두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장르이고, 어린이 뮤지컬은 오로지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공연이다. 하지만 두 장르는 어린 관객의 수준을 감안한 소재를 다루고 있어 상당 부분 관객층이 비슷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공연 예매 사이트에서는 아동극과 가족 뮤지컬을 함께 집계하고 있다. 대표적인 공연 예매 사이트 ‘인터파크 티켓’도 올해부터 별도 판매 순위를 집계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인터파크 연간 판매 순위는 <번개맨의 비밀3-스페이스 번개맨>, <변신자동차 또봇 ‘아빠의 노래’>, EBS 키즈쇼 <톡톡 튀는 보니하니 쇼>, <아빠 사랑해요-두 번째 이야기>, <뽀로로 드림콘서트>, 액션 라이브 쇼 <파워레인저 다이노포스>, <디즈니 온 아이스 트레져 트로브>, 송승환의 명작동화 뮤지컬 <오즈의 마법사> 순으로 나타났다. EBS <모여라 딩동댕>의 한 코너로 시작해 뮤지컬로 옮겨진 <번개맨의 비밀3-스페이스 번개맨>은 지난해 중국에 콘텐츠가 수출돼 중국 공연도 추진 중일 정도로 대성공을 거둔 사례다. 액션라이브쇼 <파워레인저 다이노포스>도 완구 시장에서의 돌풍을 토대로 뮤지컬 무대에서도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4월 현재 관객들의 관심을 많이 받고 있는 작품들은 액션뮤지컬 <최강 전사 미니 특공대>, 코코몽 뮤지컬 <타임머신 대소동>, <번개맨의 비밀3-스페이스 번개맨>, 블록버스터 뮤지컬 <헬로 카봇>, 액션 라이브 쇼 <파워레인저 다이노포스>, <캣 조르바>, <피터 팬> 라스베가스 플라잉 기술팀 내한 공연, 등이다. 이로부터 알 수 있는 것은 아동극이나 가족 뮤지컬의 장르 구분과 별개로, 내용과 기술 면에서 진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들에 관객들이 반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부모까지 공략하는 고품질 전략


똘똘해 보이는 주인공과 말귀 어두운 그의 친구, 배불뚝이 관료. 아웅다웅 말다툼을 벌이는 이들의 머리에는 뾰족한 귀가 붙어 있고, 얼굴에는 얼룩무늬가 있어 금세 고양이라는 점을 알 수 있게 한다. 비록 <캣츠>의 정교한 분장까지는 아니어도 고양이들이 보여주는 움직임과 진행되는 사건은 제법 흡인력 있게 시선을 모은다. 


개막 전 공개한 연습 현장에서 <캣 조르바>는 ‘가족 뮤지컬’이라는 장르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줬다. 잃어버린 아기 고양이를 찾기 위한 명탐정 고양이의 위험한 모험을 그린 <캣 조르바>는 내용만으로는 어린이 뮤지컬에 가깝다고 할 수 있지만, 의외로 성인 관객에게도 어필할 만한 요소들을 담아내고 있다. 극 중 왕국 이페르는 지금도 고양이 축제가 열리는 벨기에 도시 ‘이프르(Ypres)’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이곳에서 벌어진 중세의 고양이 학살이 이 작품의 모티프다. 고양이 숭배 신앙이 있던 이프르는 카톨릭 종교가 들어오면서 시작된 마녀 사냥 때문에 마녀의 시종으로 여겨지던 고양이가 집단적으로 학살된 역사를 갖고 있다. 또 같은 시기에 유럽 전체에 퍼지던 흑사병의 원인으로 쥐가 아닌 고양이가 잘못 지목된 역사적 사실들도 고스란히 <캣 조르바>의 줄거리와 배경으로 활용돼 눈길을 끈다. 


또 대개 성인 뮤지컬의 제작 인력이 참여하지 않던 이 장르에 역량 있는 창작 스태프들로 구성된 제작진은 다른 가족 뮤지컬과 차별화를 이룬다. <스프링 어웨이크닝>, <쓰릴 미>, <아르센 루팡>의 연출 이종석을 비롯해 <빌리 엘리어트>, <웨딩싱어>의 음악감독 이나영, 그리고 조명디자이너 백시원 등이 가세해 완성도를 높였다. 이는 출연진도 마찬가지다. 주인공인 조르바 역은 <모차르트!>, <쌍화별곡> 등에 출연했고 6월부터 공연될 <엘리자벳>에도 참여하는 김순택이 맡았다. 그는 “가족 뮤지컬이라고 해서 처음엔 몸짓이나 표현이 과장된 공연이라고 생각했는데, 소재만 그럴 뿐 뮤지컬 넘버도 일반 성인 뮤지컬에 견주어도 다르지 않은 수준이어서 기꺼이 참여했다”고 말한다. 


이런 뮤지컬 전문 인력의 참여는 그대로 작품의 퀄리티와 직결되기 때문에 아동 관객과 대동한 성인 관객의 취향까지 사로잡을 수 있는 요인이 된다. 지난해까지 공연된 이엠미디어의 <뽀로로 탐험대 - 크롱을 구해줘>도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공연이었지만 <그날들>의 중심 창작진이었던 오재익 안무, 연출과 장소영 음악감독, 정재진 무대·영상디자이너가 참여해 부모들에게도 좋은 반응을 얻은 바 있다. 


<캣 조르바>의 이종석 연출은 ‘가족 뮤지컬’에 대한 외부의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지금의 가족 뮤지컬은 사실상 어린이 뮤지컬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아 역량 있는 스태프나 배우들의 참여를 막고 있다는 것. 그는 “기존의 ‘가족 뮤지컬’이라는 전제에 갇혀 있을 게 아니라, 단지 모든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좋은 창작뮤지컬을 개발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작품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일갈한다. 그래서 그는 <캣 조르바>에 대해 ‘가족 뮤지컬’이라는 규정을 하는 것을 꺼린다. 뮤지컬계 안팎에서 ‘모든 연령층(All-Age)이 볼 수 있는 새로운 공연’을 지향할 때 <캣츠>나 <라이온 킹> 같은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진화가 요구되는 가족 뮤지컬


물론 역량 있는 뮤지컬 전문 인력의 참여는 가족 뮤지컬뿐 아니라 기성 뮤지컬에서도 중요한 요소다. 특히 창작뮤지컬의 경우 전문성이 더 중요한데, 뮤지컬에 특화된 전문 창작자의 부족은 완성도 높은 가족 뮤지컬의 탄생을 어렵게 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이런 가족 전체가 볼 수 있는 공연의 중요성을 깨닫고 일찍부터 관련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경우 성인 관객을 위주로 시장이 발달했지만 ‘브로드웨이’라는 상징적인 브랜드가 가능했던 데는 양질의 콘텐츠의 공급과 더불어 두터운 관객층이라는 또 하나의 요인이 있었다. 그리고 이런 관객층의 유지와 개발을 위해서는 어린 관객들이 공연을 경험할 때마다 흥미와 관심을 느낄 수 있는 콘텐츠의 개발과 공급이 또 다시 요구된다.


한정된 제작비 규모도 개선되어야 할 부분으로 지적된다. 물론 제작비가 반드시 작품의 질과 비례하지는 않지만 아직까지도 가족 뮤지컬에 대한 인식은 다소 왜곡돼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인식을 바꾸지 않는 한, 가족 뮤지컬의 질적 수준에 대한 인식 또한 변하지 않을 것이다. 공연 티켓 판매 조사에서도 나타나듯이 나날이 관객의 수요가 증가하는 장르인 만큼 가족 뮤지컬에 대한 인식 변화의 필요성은 계속해서 대두될 전망이다. 


이제까지 국내에서 가족 뮤지컬은 어린이 뮤지컬과 관객층을 공유하며 성인 보호자가 아이의 재미를 위해 본인의 시간을 ‘희생’하는 장르에 다름없었다. 그동안 성인과 어린 관객이 함께 볼 수 있는 가족 뮤지컬은 <오즈의 마법사>나 <피터 팬>, <신데렐라>, <인어공주> 같은 오래된 뮤지컬들이 대부분이었고, 그마저도 외국 동화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작품이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새 일부 작품에서 전문 창작 스태프와 배우들의 참여로 완성도 높은 음악과 대본, 무대미술을 갖춘, 성인 관객도 즐길 만한 작품이 나오고 있어 고무적이다. 소위 기존의 영·유아용 어린이 뮤지컬과 가족 뮤지컬은 각자의 영역이 있는 만큼, 이런 인식 변화와 장기적 안목에서의 개발이 이루어진다면 언젠가 가족 뮤지컬의 시대도 도래할지 모른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0호 2015년 5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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