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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LONDON] <야리코> YARICO [No.140]

글 | 조연경 (런던 통신원) 사진 | Daisy Honeybunn 2015-05-27 5,298

사랑과 배신의 서사시  

런던 남서부 한적한 동네의 펍 위층에 있는 작은 극장. ‘런던 시어터 워크숍(London Theatre Workshop)’이라는 단체가 주로 공연을 올리는 이 공간에는 티켓 창구도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공연 한 시간 전쯤 되자 청년 둘이 펍 구석에 노트북을 펴들고 앉아서 박스오피스 역할을 하기 시작했고, 펍은 서서히 공연장 로비의 모습을 갖춰갔다. 관객들은 객석을 가득 메웠고, 신작을 바라보는 시선이 항상 그렇듯, 공연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표정엔 설렘과 불안이 교차했다. 그때 옆자리에 앉은 영국 할아버지가 프로그램 북을 건넸다. <잉클과 야리코>라는 공연의 오래된 프로그램 북이었다. 옛날에 공연을 봤던 기억을 더듬어서, 낡은 물건 틈을 뒤져 옛 프로그램을 꺼내 들고, 작은 펍에 찾아와 같은 이야기를 소재로 한 새 공연을 기다리는 할아버지의 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어쩌면 그 자리에 앉은 관객들 모두, 자신이 작은 펍 극장에서 본 작품이 훌륭하게 자라서 웨스트엔드에 당당하게 입성하기를, 오래도록 역사에 남기를 한마음으로 바라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관객들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으며 공연의 막이 올랐다.




잔인한 반전이 주는 매력 

<야리코>의 바탕이 된 잉클과 야리코 이야기는 실화라고 하지만 현실이라 믿기 어려울 정도로 충격적인 반전을 담고 있다. 아메리칸 인디언 소녀 야리코는 자신이 사는 섬에 표류해 온 영국 남자 토마스 잉클을 만난다. 둘은 곧 사랑에 빠지고 결혼해서 런던을 향해 떠나게 된다. 하지만 배 위에서 야리코가 잠든 사이, 잉클은 도박에 눈이 멀어 아내를 노예로 팔아버리고 만다. 하룻밤 사이 남편의 손에 의해 노예로 팔린 야리코의 비극적인 운명은 1657년에 기록된 바베이도스 섬 이야기에 최초로 등장한다. 이후 이 이야기를 소재로 1787년에 막을 올린 코믹 오페라 <잉클과 야리코>는 런던에서 공연을 마친 후 뉴욕과 캘커타 등지에서 해외 공연을 이어갈 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악보만 전해지던 18세기의 오페라는 1996년에 다시 빛을 보게 된다. 여느 사랑 이야기처럼 애틋하지만, 충격적인 배신으로 끝나는 잉클과 야리코 이야기가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올해 새롭게 무대에 오른 런던 시어터 워크숍의 뮤지컬 <야리코>는 기존의 작품들과 달리 잉클과 야리코의 사랑 이야기보다 원주민 소녀 야리코의 성장에 초점을 맞췄다. 그리고 야리코의 고향과 바베이도스 섬 등 서인도제도를 무대 삼아 바다에서 식민지 총독의 저택과 사탕수수 밭으로 이어지는 드넓은 배경에 다양한 인종과 계층의 인물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풍성하게 요리했다. <야리코>는 개성 있는 인물들의 사연을 층층이 쌓아 당시 영국 식민지의 생활과 사회상을 다각도로 접근했고, 향후 더 큰 규모의 작품으로 발전할 수 있는 여지를 보여주었다.



희망을 짓밟는 비극

서인도제도의 한 섬에 사는 아메리칸 원주민 소녀 야리코는 물고기를 잡고 그물을 손질하는 똑같은 일상에 지루함을 느낀다. 옛날에 표류해 온 외지인이 남기고 간 셰익스피어 책을 독학해 영어를 익혔고, 『템페스트』를 낭독하며 새로운 세상을 향한 꿈을 꾸는 소녀. 친구 노노를 제외한 다른 부족민들은 그런 야리코를 우려 섞인 눈으로 바라보며 그녀가 헛된 희망에 휩쓸리지 않고 현실에 발붙이고 자라나길 바라고 있다. 


어느 날, 영국 상인의 아들인 토마스 잉클과 그의 흑인 친구 시세로가 섬으로 흘러들어 온다. 부족민들은 이전에 외지인과의 안 좋았던 경험을 되새기며 잉클을 발견하자마자 죽이려고 하지만, 야리코가 중재에 나서 잉클은 겨우 목숨을 건진다. 원주민들을 두려워하는 잉클에게 야리코는 먼저 다가간다. 셰익스피어를 읽으며 더듬더듬 익힌 영어로 야리코는 조금씩 잉클과 소통해 나가고, 둘은 서로에게 언어를 가르쳐주며 가까워진다. 결국 하룻밤을 함께 보낸 둘은 결혼을 약속한다. 두 사람은 섬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함께 잉클의 고향 런던으로 가기로 한다. 한편, 시세로와 노노는 서로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호감을 느끼고 가까워진다. 결국 야리코와 노노는 잉클과 시세로를 따라 배를 타고 섬을 떠나게 된다.


평범한 사랑 이야기였다면 여기서 해피엔딩을 맞았을 것이다. 식민지 시대 영국인과 원주민 소녀의 사랑. 인종과 언어를 초월한 사랑이기 때문에 더 애틋하고 따뜻한 이야기로 청중의 가슴을 울렸으리라. 하지만 잉클과 야리코 이야기는 충격적인 반전을 맞는다. 한밤중에 배 위에서 벌어진 도박판. 도박을 하다 배에서 던져진 적이 있지만 여전히 도박에 빠져 있는 잉클은 자기가 가진 것 전부를 판돈으로 걸고도 이기지 못하자, 결국 자신의 아내까지 걸고 만다. 잠시 뭐에 홀린 듯 도박에 아내를 잃은 잉클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쳐봤자 이미 소용없는 일. 야리코는 아침이 밝자마자 행복에 겨워 남편을 찾지만, 영문도 모른 채 바베이도스 섬의 노예 경매에 끌려 나가는 신세가 된다. 야리코는 있는 힘껏 저항하고 잉클을 찾아 절규하지만, 잉클은 차마 아내의 얼굴을 볼 수 없어 야리코를 외면한다. 
한편, 바베이도스 섬 총독의 아내는 야만적인 식민지 생활에 지쳐가던 중 총독을 졸라 경매에서 야리코를 산다. 셰익스피어를 읽을 줄 아는 아름다운 원주민 노예는 그녀가 꿈꾸는 교양 있는 모임에 필요한 적절한 인재였다. 총독 집안의 다양한 인종의 노예 중 마님의 총애를 받아 자부심이 하늘을 찌르는 흑인 하녀 제시카는 마님의 관심을 야리코에게 뺏겼다고 생각해 그녀를 질투한다. 야리코는 믿기 힘든 자신의 처지에 식음을 전폐할 정도로 좌절하고, 설상가상으로 잉클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된다. 노노와 시세로는 야리코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노예를 탈출시키는 게 불법인 바베이도스 섬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오히려 그들은 거리를 걸어 다니는 것만으로도 해를 입을 위험이 있어 숨어 지낼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 


수많은 인물들이 풀어내는 사연들은 <야리코>의 매력이자 한계가 된다. <야리코>는 노예로 전락한 야리코가 다시 자유를 찾는 이야기지만, 여러 곁가지 사연들이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주요 인물들이 다 각자의 사연을 갖고 있고, 관객들이 그들의 사연에 공감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확장시켰기 때문에 <야리코>의 이야기는 작은 무대에 펼쳐내기엔 너무 방대하게 느껴진다. 자신들의 고향에서 전통적인 삶의 방식을 고수하는 원주민들의 삶과 식민지 바베이도스 섬을 잘 다스려 부와 명예를 축적하고자 하는 총독의 욕망. 흑인이지만 프릴 장식이 주렁주렁 달린 고급스러운 옷을 입고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깔끔하게 구는 시세로의 사연과 도박에 중독되어 아내까지 걸고 도박을 한 잉클의 행보. 반강제로 바베이도스 섬의 생활에 적응해야 하는 처지가 된 총독 부인이 식민지에 문화와 교양을 전파하겠다고 벌이는 노력들. 마님의 총애를 받으며 다른 노예들을 함부로 대하는 제시카의 경멸적인 시선과 그런 그녀의 애정을 받는 아일랜드 출신 백인 노예 프랭크의 드러나지 않은 속내. 일일이 나열하기도 어려울 만큼 다양한 인물들의 사정을 풀어내려다 보니 이야기의 흐름은 계속 삐걱대며 옆으로 새게 되고, 그 틈에 정작 주인공이어야 할 야리코는 가려진다. 자신을 배신한 남자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야리코가 느끼는 절망과 희망의 복잡한 감정, 아이를 위해서라도 섬을 탈출해 자유를 되찾으려는 야리코의 의지를 전부 담아 표현하기에 <야리코>의 무대는 너무도 좁았다. 


게다가 소극장 무대 위의 한정된 수의 배우들로 표현하기에 버거운 면도 있었다.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 배우들은 인종과 관계없이 다양한 역을 맡아 무대를 빽빽하게 채웠다. 그래서 백인 여자 배우는 총독 부인을 맡아 인종차별적인 대사를 말하지만, 다른 장면에서는 부족민이 되어 한마디 덧붙이기도 한다. 입을 삐죽대던 흑인 하녀는 옷을 갈아입고 사탕수수밭에서 일하는 다른 노예를 연기한다. 부족의 우직한 우두머리는 배 위에서 도박을 주도하는 선원이 되기도 한다. 배우들은 의상의 디테일을 살짝 바꾸는 등 배역을 구분해 연기하고 있지만, 쉴 틈 없이 배역을 바꿔 나오는 배우들을 보면 관객 입장에서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잉클이나 노노처럼 제법 비중 있는 조연을 맡은 배우들까지 다른 장면에선 타 배역을 연기하다 보니 관객의 몰입이 깨진다. 배우가 연기력을 발휘해 캐릭터가 혼동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한계가 있어서, 배 위에서 잉클을 걱정하던 여인과 시장에서 시세로와 노노를 걱정하는 여인, 사탕수수 밭의 노동을 진두지휘하는 여인이 다 같은 배우라면 누가 누군지 헷갈리기 시작하고, 극에 온전히 몰입하기 어려워진다. 장면마다 항상 배우들이 다 등장해 작은 무대를 가득 메우는 것도 답답해 보일 때가 있었다. 



작은 무대에 넘실대는 바다

광택 있는 재질의 까만 바닥에 밝은 조명을 비추니 모든 것이 반사되면서 드넓은 바다가 무대 위에 펼쳐진 것처럼 보였다. 소품이나 대도구는 거의 없지만, 무대는 부족이 생활하는 외딴섬의 해변, 야리코와 잉클이 사랑을 나누는 동굴, 운명의 갈림길에 선 배가 헤쳐 나가는 거친 바다, 다양한 인물의 욕망이 부딪치는 총독의 저택, 바베이도스 섬의 노예들이 노동하는 사탕수수 밭 등의 배경으로 전환됐다. 무질서하게 꽂혀 있는 사탕수수 대는 물고기를 잡는 작살이나 그물이 되었다가, 그물 침대를 묶는 기둥이 되고, 탈출을 돕는 뗏목으로 변신하기도 했다. 등장하는 인물 수만큼 풍성하게 바뀌는 배경이 작은 무대를 무한하게 넓혀 주었고, 그 덕분에 관객들은 상상력을 동원해 바다가 넘실대는 서인도제도에서의 모험을 함께 그려볼 수 있었다. 


거기에 음악이 공간을 넓히고 깊이를 더했다. 퍼커션을 중심으로 한 소규모의 밴드는 다양한 효과음으로 무대를 생생하게 살려줬다. 잔잔한 파도 소리부터 사탕수수를 베는 소리까지 그대로 살린 음악이 관객들이 더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도와줬다. 그리고 극 중 배경의 문화와 사회에 어울리는 민속음악풍의 뮤지컬 넘버가 작품을 하나로 감싸는 힘을 발휘했다. 배 위에서 도박판이 벌어질 때는 음악으로 긴장을 불어넣고, 사탕수수 밭에서 노동할 때는 다양한 출신의 노예들을 노동요로 엮었다. 규모가 크고 웅장한 음악이 삶의 애환을 표현해 줬고, 때로는 애절한 발라드가 야리코의 처지를 대변했다. 잉클과 야리코가 처음 만나 사랑을 키워갈 때는 서로 자신의 언어를 가르쳐주며 가까워지는 모습이 귀여운 선율로 표현됐다. 야리코의 음색은 초반의 소녀 시절과 노예가 되어 어두운 기색이 역력할 때, 마침내 섬을 탈출하여 자신의 아이에게 꿈을 불어넣어 줄 때 각기 달랐다. 서인도제도라는 독특한 배경과 문화적 특색을 살려 작곡한 음악이 무대에 잘 어우러졌다. 
하지만 소극장 무대 위에 풀어내기에 다양한 음악은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조금 더 규모가 큰 극장에서, 더 많은 배우들을 데리고 공연을 올렸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와 음악 모두 더 큰 무대를 염두에 두고 만든 것처럼, 소극장 무대에 차고 넘쳤다. 그만큼 더 발전시켜서 키워 나갈 가능성이 충만한 공연이었다. 




미완의 이야기가 남긴 과제

‘잉클과 야리코’가 아닌 <야리코>라고 제목을 정한 것은 두 사람의 사랑보다 그 사랑에 상처 입고 홀로 서는 야리코에게 집중하겠다는 뜻이었을 터다. 실제로 이 작품은 잉클에게 별로 관심을 주지 않는다. 이 작품에서 토마스 잉클은 섬에 흘러 들어와서 야리코와 잠시 엮였다가 그녀를 노예로 팔아먹고 마는 무능력한 인물로 그려진다. 야리코가 잉클에게 마음을 준 만큼 잉클이 야리코를 생각했는지조차 불분명하다. 오히려 시세로와 노노의 관계가 말은 통하지 않아도 더 유쾌하고 진정성 있는 사랑으로 그려진다. 야리코가 노예로 팔린 후, 잉클은 야리코를 되사기 위해 런던에 다녀오는 등 나름대로 노력을 하지만, 야리코가 겪는 좌절과 고통에 비하면 너무도 미미하다. 그렇기 때문에 잉클이 야리코를 찾아왔을 때도 그녀는 그를 차갑게 대하고, 아이의 아버지로서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 작품이 온전히 야리코에게 집중하는 것은 아니다. 풀어야 할 이야기가 산적해 있어서 그 시대의 사회상, 노예들 사이의 긴장과 갈등, 식민지 귀족들의 생활상 등을 하나하나 건드리느라 야리코가 한동안 등장하지 않기도 한다. 야리코가 아이를 낳을 때까지 1년 남짓한 세월은 작품 안에서 순식간에 흘러간다. 오히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은 노노와 시세로 커플이다. 말이 안 통하지만 죽이 잘 맞는 둘은 코믹한 역할을 담당하며 극의 긴장을 풀어준다. 노노는 원주민 언어를 쓰고 영어를 못 알아듣는 설정이라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알지 못해 답답해하는데, 둘 다 영어로 대사를 하니까 관객들은 둘이 생각하는 게 똑같은 걸 보고 웃게 된다.


식민지 시대의 서인도제도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는 영국 입장에서는 부끄럽고 아픈 역사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감추거나 숨기려 하지 않고, 정면으로 돌파하며 웃음으로 승화시킨다. 배우가 인종차별적인 대사를 해도 관객들이 웃을 수 있는 이유는, 현재는 그런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현대와 너무 비슷한 문제점을 보여주는 대사가 경각심을 주듯 가슴을 찌르고 들어오기도 했다. 


<야리코>는 세련되지 않은 의상과 소품 들로 꾸민 프린지 작품에 가깝다. 장면 구성부터 음악까지 아직 손보아야 할 구석이 많아 보이는 미완의 작품이다. 그래도 중간중간 반짝이는 순간들이 있었다. 특히 자식을 위해 위험한 탈출 계획에 기꺼이 몸을 던지는 야리코의 진심 어린 표정은 이 작품에서 가장 환하게 빛나는 신의 한 수였다. 또 서인도제도의 문화와 영국의 시대상을 살리고 있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0호 2015년 5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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