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와 신라의 영웅 서사시
정동극장의 경주공연브랜드 ‘SILLA: 신라’에서 가무극 <신국의 땅, 신라>, <찬기파랑가>에 이은 신작 <바실라>를 선보인다. ‘SILLA: 신라’는 지금까지 전통 예술의 세계화, 명품화, 대중화를 목표로 신라를 배경으로 한 연중 상설 공연을 기획해 왔다. 2011년 초연한 <신국의 땅, 신라>는 신라의 건국신화에서부터 선덕여왕과 화랑, 삼국통일에 이르는 신라 천 년의 역사를 응축한 작품이었다. 2014년 초연한 <찬기파랑가> 역시 신라 경덕왕 때 승려 충담사가 지은 10구체 향가를 소재로 하여 화랑 ‘기파’의 꿈과 사랑을 그렸다. 하지만 2015년 새 레퍼토리 <바실라>는 신라의 설화가 아닌 페르시아의 구전 서사시 ‘쿠쉬나메’를 원작으로 삼는다.
수백 년간 이란에서 구전되다가 11세기에 필사된 ‘쿠쉬나메’는 중국의 왕이자 기이한 용모를 지닌 악인 ‘쿠쉬’의 탄생과 몰락을 그리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1만 129절에 달하는 이 방대한 ‘쿠쉬나메’의 절반 이상이 신라에 관한 내용이라는 점이다. 신라를 찾은 페르시아 왕자가 중국과의 전쟁을 돕고, 신라 공주와 결혼하여 이란의 전설적인 영웅을 낳는다는 이 이야기 속 신라는 이상향과 같은 모습으로 그려진다. 공연 제목이기도 한 ‘바실라(Basilla)’는 ‘쿠쉬나메’에서 고대 신라를 가리키는 지명으로, 그 자체로 ‘좋은 신라’라는 뜻을 담고 있기도 하다. 실제로 페르시아와 신라의 교류 가능성은 경주에서 발견되는 페르시아계 유물과 서역인의 모습을 한 무인상을 통해 추정해 볼 수 있으며, 이에 따라 ‘쿠쉬나메’는 고대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바실라>는 ‘쿠쉬나메’ 속 신라 이야기를 각색해 70분간의 역동적인 퍼포먼스로 재구성했다. 세력 다툼에 휘말려 신라에 망명한 페르시아의 왕자 ‘아비틴’은 신라 공주 ‘프라랑’과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아비틴’은 사악한 ‘자하크’에게 빼앗긴 아버지의 나라를 되찾기 위해 다시 페르시아로 돌아가고, 결국 ‘자하크’와의 대결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한편 신라에 남았던 ‘프라랑’은 ‘아비틴’의 아들 ‘페리둔’을 낳는다. 복수를 위해 페르시아로 향한 두 사람은 ‘자하크’를 물리치고 승리를 거두지만, 그 사이 신라는 또 다른 악의 무리 ‘쿠쉬’의 침략을 받게 된다.
고대 페르시아와 신라 영웅들의 대서사시는 다이내믹한 액션과 춤, 특수 제작된 대형 배와 같은 무대 장치 그리고 신라, 바다, 실크로드, 페르시아 등 시공간을 초월하는 영상 효과를 통해 재현된다. 신라, 경주에 한정돼 있던 기존 ‘SILLA: 신라’ 공연의 지리적 배경을 고대 페르시아와의 교역이 활발했던 실크로드까지 확장함으로써, 고대 한국과 아랍, 중국 등 아시아권 국가 문화 융성기의 모습을 무대 위에서 보여준다.
<공동경비구역 JSA>의 콤비 이희준 작가와 최성신 연출이 이 작품으로 다시 뭉치고, 황호준 작곡가, 김혜림 안무가, 박성민 무대디자이너, 김장연 영상디자이너 등이 참여한다. 지난해 Mnet <댄싱9> 시즌2에서 고운 선과 폭넓은 감정 표현으로 주목받았던 댄서 이호준의 출연도 눈길을 끈다. <바실라>는 5일간의 서울 공연 후, 오는 4월 6일부터 경주세계문화엑스포 문화센터 공연장에서 오픈런으로 공연된다. 또한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주최 ‘실크로드 대축전’과 연계해 국내 관객은 물론 방한 외국인들에게도 고대 신라의 모습을 알릴 예정이다.
3월 18일~22일 극장 용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8호 2015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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