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계 큰 별이 지다
연극계와 뮤지컬계의 큰 별이었던 김효경 교수가 지난 1월 7일 췌장암으로 별세했다. 향년 70세였다. 선생은 연극과 뮤지컬을 넘나들며 100여 편에 가까운 작품 제작에 참여했다. 1990년대 한국에 <캣츠>를 처음 소개한 것도 선생이었다. 작품 연출과 함께 서울예전(현 서울예대)에서 후학 양성에도 힘썼다. 안재욱, 류승룡, 황정민, 김수로 등 브라운관과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많은 배우들을 길러냈다. 특히 제자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각별하신 분이었다. 졸업을 하고도 설 무대가 없는 제자들이 안타까워, 궁리 끝에 일본 극단 시키의 문을 먼저 두드린 것도 선생이었다. 시키 1호 배우인 김지현은 선생의 권유로 일본에서 자리를 잡아 한때 외국인으로서는 드물게 시키의 톱 배우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했다. 선생과 시키와의 인연도 각별하여 시키의 <라이온 킹>이 한국에서 공연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탰고, 많은 제자들에게도 참여를 권유했다. 심바 역의 이경수, 무파사 역의 김준현 역시 선생의 제자들이다. 말년 서울종합예술학교에서 마지막 열정을 불태우던 선생은 투병 중에도 학생들과 연극을 준비해왔다고 한다. 선생의 명목을 빌려 제자들이 기억하는 김효경 선생의 모습을 담았다.
≫ “제가 학교 다닐 때, 서울예전 학생들은 두 분류로 나뉘었어요. 김효경 교수님의 ‘연출론’ 수업을 들은 학생과 안 들은 학생. 두 그룹은 실력 차이가 분명히 드러났죠. 선생님의 제작 실습 수업도 인기 과목이었어요. 제작 실습은 한 한기 동안 공연 한 편을 무대에 올리는 수업인데, 아서 밀러의 『시련』으로 하는 실습 공연은 학교에서뿐 아니라 공연계에서도 유명했어요. 많은 선배들이 ‘시련’ 수업에 얼마나 목을 맸는지…. 전 아쉽게도 그 수업을 놓쳤지만, 다행히 연출론은 수강할 수 있었죠. 그때 배운 연출 기법은 제 배우 생활의 자양분이 됐고요. 선생님 영향으로 학교 졸업 후 일본 극단 시키에 들어가게 돼서 선생님과 관련된 기억은 굉장히 많지만, 그래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선생님께서 쓰신 대학 졸업논문을 읽고 놀랐던 기억이에요. 하루는 선생님께서 졸업논문을 어떻게 쓰셨을지 궁금해져서 선생님의 모교인 동국대에 찾아갔거든요. ‘연극에 있어서의 감정 이입에 관한 연구’란 제목의 논문을 읽으면서 두 번 놀랐어요. 처음엔 한자가 너무 많아서 놀랐고(웃음), 연극에 대해 이렇게 과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나 싶어 또 놀랐죠. 연극 논문이 아니라 과학 논문이더라고요. 생각해보면, 선생님께서 늘 강조하셨던 게 막연한 기분과 감정만으로 연기하지 말라는 거였어요. 선생님께서 너무 갑자기 돌아가셔서 마지막 인사도 못 드렸어요. 제 인생에 선생님이 없었다면 이런 큰 세상을 볼 수 있었을까요? 선생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 이경수 서울예대 99학번 |
≫ “선생님은 무척 거침없고 화끈한 분이었어요. 일화를 하나 들려드리자면, 서울예전 실기 시험을 보러 갔을 때 심사 교수였던 선생님께선 제게 이렇게 소리치셨죠. ‘입 더 벌리라! 찢어버리기 전에!’ (웃음) 날 떨어뜨리려는 건가 싶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절 뽑아주신 게 선생님이셨어요. 네 학기 중 세 학기 동안 선생님이 하신 실습 수업을 들었으니, 연기에 관해 많은 가르침을 받은 건 말할 것도 없고, 배우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선생님께 배웠어요. 학교를 졸업하고 데뷔를 서두르지 않았던 것도 선생님의 영향이었어요. 선생님께선 무대에 설 준비가 될 때까지 절대 오디션을 보지 말라고 늘 강조하셨거든요. 그래서 졸업 후에 작품 오디션을 보거나 기획사에 들어가지 않고, 노래 레슨과 다양한 장르의 춤을 트레이닝 받으며 때를 기다렸죠. 이건 꼭 하고 싶다는 마음에 오디션에 지원했던 첫 작품 <그리스>에 합격하고 나서 선생님께 전화 드리며 얼마나 울었던지. 선생님에 대한 기억은 책 한 권을 쓸 수 있을 정도로 많지만, 꼭 말하고 싶은 점은 선생님은 제자들에게 길을 열어주려고 부단히 애쓰셨던 분이셨다는 거예요. 당신의 제자들이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일본에 보내려고 힘쓰시고, 기꺼이 그 연수에 동행해주셨던 분이였으니까요. 선생님께서 제자들 앞에서 흘리셨던 눈물을 잊지 않고 살아가겠습니다.”
| 김우형 서울예대 00학번 |
≫ “선생님 장례식장에서 안재욱 선배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와, 망치 맞았던 사람들은 다 왔네.’ 선생님에 관해선 ‘망치 얘기’를 빼놓을 수 없는데, 선생님 별명이 망치 던지는 교수였거든요. (웃음) 선생님은 학생들이 제작 실습 공연을 위해 세트를 만드는 것도 함께해주셨던 분이에요. 세트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못 박는 법 같은 사소한 것 하나하나 직접 가르쳐주려고 하셨고, 그러다 보니 학교에서 항상 망치 같은 공구를 들고 계셨어요. 그러다 학생들이 제대로 안 하면 그걸 그대로 집어던지시는 거죠. 성격이 불 같으셔서. (웃음) 물론 당신이 아끼는 제자들에게만 그러셨고, 열심히 하지 않는 학생에겐 애정을 보이지 않으셨어요. 지금 생각해봐도 현장에서 못질 해가며 가르침을 주려고하는 교수가 또 있을까 싶어요. 선생님이 수업 중에 가장 많이 하셨던 말 중 하나는 ‘똥이나 열두 번 싸고 와요’예요. 생각 좀 하고 오라는 얘기를 그렇게 표현하셨죠. ‘왜 손을 들어요?’ ‘왜 고개를 돌렸어요?’ 선생님은 저희들에게 항상 ‘왜?’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무대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대한 이유를 생각해 볼 것을 강조하셨어요. 그때 몸에 밴 훈련이 여전히 제 배우 생활에 많은 질문과 답을 던져주죠.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까지도 학생들을 만나셨을 정도로 제자들에게 정말 많은 사랑을 주셨던 선생님. 진정한 스승이셨던 선생님을 만난 건 제 인생의 행운이었습니다.”
| 김준현 서울예대 00학번 |
≫ “대학 시절 선생님의 수업을 듣는다는 것은 수강 신청 날 남들보다 일찍 컴퓨터 앞에 앉아서 온 신경을 손가락 끝에 집중해야 하는 치열한 전쟁터에서 성공했다는 것을 의미했어요. 예대 연극과 학생들에게 ‘김효경’이란 세 글자는 특별했기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그 수강 전쟁에 동참했고, 수강 신청에 실패한 선배들은 후배들한테 빌어서 자리를 양보받기도 했죠. 기억을 더듬어보면 선생님 수업은 무엇보다 재미가 있었어요. 지루할 수 있는 연극 사조 같은 내용도 언제나 재미있는 비유를 통해 명쾌하게 설명해주셨죠. 선생님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느새 예술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충만해지고, 그로 인해 어떤 학생들은 연극이 아닌 다른 예술 장르에 심취해 특기를 계발하기도 했어요. 또 선생님은 대단한 완벽주의자이어서, 실기 수업을 지도하실 땐 조명에서 콘솔까지 무대 구석구석을 통솔하셨기 때문에 스태프 전공자들은 언제나 완성도에 대한 엄청난 압박감에 시달렸죠. 대본을 분석해서 그것을 무대 메커니즘화하는 솜씨와 배우들을 휘어잡는 논리가 워낙에 뛰어나셨던 덕분에 선배들은 그런 교수님을 ‘선수’라는 별명으로 부르곤 했죠. 전 지금까지 공연계 생활을 하면서 그만큼 뛰어난 선수를 아직은 만나보질 못했어요.”
| 박인배 서울예대 01학번 |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7호 2015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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